소설리스트

〈 95화 〉 95화 (94/173)

〈 95화 〉 9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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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스마는 신의 은총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기적을 행하는 초능력이나 절대적인 권위를 뜻하는 이 단어가 나에게 쓰일 일이 생길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시험을 해본 결과, 황금색 빛깔이 나는 이 반점은 오로지 나에게만 생긴다. 그리고 지워서 없애는 점이 아니라 이 점을 다른 점에 갖다대면 내가 원하는 색상으로 바꿀 수 있었다.

이것으로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최고의 마사지를 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언제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재빠른 임기응변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한서연에게 다섯 차례 정도 사정을 하고 나서야 발기가 멈춘 나는 옷을 입으면서 그녀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나서 한서연에게 물었다.

“아, 근데... 남편은 언제 와요?”

“왜 또 존댓말이야?”

“아... 아까는 좀 흥분해서.”

“음, 내 남편이 왜 궁금한데?”

“그냥 하루종일 이러고 있는데 의심하지나 않을까 해서요.”

“의심? 푸흐흐... 웃기네. 우리 남편 계속 여기에 있었잖아.”

“엉?”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나 싶었다.

“계속 정원에 있을걸. 그 양반, 아주 제정신이 아니야.”

“뭐, 뭐라고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내가 당황한 표정을 짓자 한서연은 재밌다는 듯이 웃어제꼈다.

“하하하! 지금까지 몰랐어? 난 알고있는줄 알았어. 남편은 거의 하루종일 정원에 살아. 밤이 되면 들어오지. 완전 괴짜... 이러니 내가 싫어하지.”

“잠깐만. 설마 그 정원사가..?”

“정원사? 크하핫! 아, 웃겨... 그래. 그 정원사가 내 남편이야.”

“근데 그 정원사는 되게 나이가 많이 들어보였었는데..?”

“응. 맞아. 나랑 스무살 정도 차이나.”

할 말이 없었다. 미리 귀띔이라도 해주지.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렇게 대차게 추삽질을 해댔던 건가. 일하시는 분들도 안에 이렇게 있는데 대놓고 외도를 해왔던 거다. 분명 밖에까지 신음소리가 들렸을텐데... 남편이 한서연을 어떻게 생각할지 눈에 훤하다.

근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분명 초코를 치료해줄 때 나에게 서글서글하게 대해줬던 한서연의 남편이다. 그런데 난 그런 그를 밖에 두고 그의 아내와 바람을 피웠다. 그것도 스무살이나 어린 아내의 가랑이를 마음껏 따먹었다.

총 7번 사정을 했다. 그것도 질내사정으로.

내가 한서연의 남편이었으면 바로 부엌에서 칼 가져와서 도륙을 내놨을 거다.

“저, 저... 가볼게요. 이제.”

“왜애. 왜 그렇게 불편한 표정이야? 걸리적거리면 다음부터는 자기네 집에서 마사지 받자.”

마사지가 아니라 섹스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좋을거 같네요.”

나는 애써 웃음지으며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문 앞에서 딱 한서연의 남편과 마주쳤다.

“이제 가세요?”

남편은 내 얼굴을 뜯어보며 싱긋 웃었다.

“네... 저, 그럼.. 수, 수고하세요.”

“아, 잠깐.”

내가 멀어지려고 하자 그가 뒤에서 날 불렀다. 나는 영화에 나오는 슬로우모션처럼 천천히 몸을 돌렸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걸까? 불길한 기분이다.

“네?”

가까스로 묻자 그가 내게 말했다.

“다음에도 초코나 호두한테 문제가 생기면 부탁 좀 드려도 되요?”

“... 네?”

“개들이요. 제 깜냥으로는 도저히 케어가 불가능해서요.”

“아... 그거라면 언제든지...”

“와이프 쪽을 통해서 연락드리면 되겠지요?”

“아, 예... 그, 그럼 가보겠습니다.”

내가 다시 뒤돌아서 가려고 하자 그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맛있었나요?”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속이 울렁거리고 지구가 빙빙 돌기 시작했다.

들키지 않는게 더 이상하긴 했다. 근데 맛있었냐니. 자기 아내를 두고 맛있었냐니. 머리에 돌이라도 맞은 듯 가만히 있자 그가 말을 이었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도우미분이 쿠키를 기가막히게 잘 구워서요. 나도 그거 먹을 생각하면 군침이 돌아요. 그거 안 드셨나요?”

?

나는 의문 가득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무슨 의중으로 이런 얘기를 했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자 그가 씨익 웃었다.

“앞으로도 자주 놀러오세요.”

“... 네.”

“그럼.”

나는 감히 대답하지 못하고 침만 꿀꺽 삼켰다.

그런데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손을 까딱거리며 내게 이만 가보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다시 오지 않을 것만 같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부리나케 정원을 가로질러 밖으로 내달렸다.

*

나는 나에게 생긴 새로운 능력을 도인에게 알려줘야 했다.

나는 자해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이 능력을 이용한다면 제 아무리 신용섭이라도 제압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무려 색깔을 변하게 하는 능력인 거다.

만약에 가능하다면... 가능하다면...

내 마음대로 천기누설도 가능할지 모를 일이다.

천기누설이라는 말이 있다.

하늘의 비밀을 누설하는 행위.

그렇다.

오색찬란한 점을 만들어낸다면 능히 천기누설도 가능했던 거다.

운전을 하는 동안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다.

나는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 사람. ‘기적의 손’이라는 타이틀은 비단 타이틀로 머물뿐만이 아닌 사실화되었다.

이제 이걸 잘 사용하기만 하면 된다. 방송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삼일. 그 동안 도인에게서 마사지 기술을 배워서 완전히 준비가 된다면 신용섭쯤은 손쉽게 이길 수 있을 터.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를 지나 산길을 올라가 지난번에 주차해뒀던 곳에 차를 세워두고 숲길을 걸었다. 10분 가량을 걷자 도인의 집이 나왔다.

그런데 이상했다. 원래라면 바위 위에서 수련을 하고 있을 도인이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거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하긴 늙긴 충분히 늙었지.’

아마 제 몸 하나 간수하기도 어려울 거다.

‘그나저나 뭐라고 얘기하지?’

내 능력의 발현조건은 그랬다.

고통, 치욕, 욕망의 절제. 내가 낮 시간 내내 한서연을 상대로 실험을 하면서 얻은 결론이다.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빠지면 ‘기적의 손’(나는 앞으로 이 능력을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은 발동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한서연과 함께 SM플레이를 한 것은 크나큰 성과였다. 이걸 실험하기 위해서 또 똑같은 짓을 몇 번 반복해야 했지만.

마지막에는 내 손가락 마디를 자해하는 게 중요했다.

마치 글러브를 끼는 것처럼 ‘기적의 손’이 내 손에 장착되는 느낌. 그 느낌은 우월감 그 자체였다.

‘이 능력을 어떻게 응용할지 설명해야지. 아마 도인이라도 오늘 무단결석한 걸 뭐라고 할 수 없을 거다.’

나는 나무로 된 도인의 집 문을 두들겼다.

“스승님. 저 왔습니다.”

시간은 8시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졌다. 뒤쪽에 숲을 등지고 있었기에 휴대폰으로 조명을 켜지 않으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으슬으슬하기도 하고 간혹 오소소 소름이 돋기도 했다.

때문에 나는 약간 초조해졌다. 도인이 문을 안 열어주면 어떡하나 싶었던 거다.

나는 조금 더 세게 문을 두들기며 외쳤다.

“스승님! 좋은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끄으...”

어?

내가 잘못들은걸까.

나는 재빨리 문에 귀를 댔다.

“스승님?”

“으윽...”

잘못 들은게 아니다.

자기 몸을 가누기 힘든 노인네가 쓰러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강제로 들어갈 수 있을만한 수단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 문을 열어줘야하는데 도인은 그럴 기력이 없는 듯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나는 재빨리 손가락 한 마디를 뒤로 꺾어서 자해했다. 그리고 푸른점을 빠르게 제거. ‘기적의 손’을 발동시켰다. 이후에 손 전체를 강화된 붉은색 반점으로 가득채웠다.

붉은색 반점은 근육의 수축을 뜻한다. 게다가 강화된 반점은 통증을 느끼지 못하고 상처조차 입지 않는다.

처음 써보는 응용이지만, 차를 타고 이곳으로 오는 동안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을 했던 터였다.

‘어떤 식으로 응용할까 했는데 이렇게 빨리 실천하게 될줄이야.’

나는 심호흡을 한번 한 다음에 주먹을 등 뒤로 당겼다가 스프링이 튕겨나가듯이 앞으로 밀어냈다.

나무로된 문이기에 부시는게 어렵지는 않았다. 콰쾅거리는 소리와 함께 우지끈 문이 두동강이 나면서 너끈히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스승님!”

도인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방금까지는 소리라도 냈었는데 이제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다. 눈을 치켜뜬 채로 바닥에 피를 흘리고 있었으니 굳이 살아있는지 확인해보지 않아도 될 듯했다.

그런데 문제는 방 안에 도인만 있는게 아니라는 거였다.

검은 후드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몸집 좋은 남자는 내가 문을 깨부수고 들어가자 허둥지둥 몸을 뒤흔들더니 나갈 곳이 딱히 없다는 걸 알고는 문쪽에 있는 내게 와락 달려들었다.

‘젠장.’

방금 강화된 붉은점을 썼기 때문에 오른손에는 힘이 떨어진 상태였다.

게다가 남자의 손에는 번쩍이는 칼이 들려있었다. 나는 재빨리 몸을 옆으로 굴려 피해야만 했다. 내가 옆으로 피하자 문가에 선 남자는 날 어떻게 할지 가만히 생각하더니 방금 내가 문을 깨부수고 들어갔다는 걸 인지했는지 후다닥 도망가기 시작했다.

“후...”

다행이다. 지금 저 놈이 덤볐으면 뭣도 하지 못하고 죽었을 거다.

그러나.

내 옆에 쓰러져 죽은 도인. 그리고 도인을 살해한 남자. 이런 오두막 따위에 CCTV가 있을 턱이 없다.

고작 하루뿐이지만, 내 스승이었던 남자의 몸을 내 무릎 위에 얹었다. 종이로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가벼운 몸인데 싸늘하게 죽어 있어서 더욱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나는 왼손에 빛나고 있는 황금색 점을 봤다.

혹시 이거라면...

나는 죽은 사람의 몸을 보는 건 처음이다. 태어나서 29년 인생 사는동안, 죽은 사람의 몸을 못 봤다는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을까. 나는 죽은 도인의 옷을 벗기고 속살을 보았다. 도인의 몸에는 그 어떤 색깔의 점도 있지 않았다.

혹시라도 푸른색점으로 가득했다면 기능상실에 의한 죽음으로 간주되지 않을까 했던 나의 어리석은 착각에서 비롯된 행위였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 도인의 몸에 생명을 불어넣어줄 수 있을지 누가 안단 말인가.

나는 도인의 빈약한 가슴 위에 내 손을 얹었다.

‘지금 필요한 색깔의 점은 무엇일까?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서 필요한 점...’

나는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 점을 도인의 가슴에 심어주었다.

벚꽃처럼 반짝이는 분홍색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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