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화 〉 91화
* * *
강원도의 어느 산간지역. 문득 내 차가 랜드로버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륜구동의 힘이 없었다면 이 산길을 오르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도인의 집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네비게이션에도 제대로 표시되지 않은 길이라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부터 시작해서 흙길을 주욱 올라가야 했다. 평소에 운전 연습을 해놔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고생 좀 할뻔했다.
확실히 도인은 도인이다.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고 생각했을 때는 나무로 우거진 숲이 앞을 가로막아서 차를 대놓고 걸어야만 했다.
한참을 걷다보니 별의별 자연공간이 나타났다. 오솔길 부스럭거리는 동식물의 움직임과 바람을 따라 얘기하는 듯한 숲의 실루엣. 그리고 무엇보다 더 놀라운 건 자그마한 폭포가 하나 있었다는 점이다.
콰콰쾈
작은 폭포 주제에 물 떨어지는 소리가 꽤나 살벌하게 들렸다.
그리고 나는 폭포 주변을 둘러보다가 마치 자연에 동화되어 있는 듯한 도인을 보고 깜짝 놀랐다. 도인은 바위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뭔갈 궁시렁거리고 있었다.
‘시발, 이게 무슨 무협지도 아니고.’
그렇다. 도인은 바위의 뾰족한 부분에 엉덩이를 박고 앉아있었던 거다. 기상천외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아까 계단에서도 축지법을 쓴 듯 빠른 속도로 뛰었을 때도 그렇고. 저건 정말이지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도인이 있는 쪽을 향해 다가가자 도인이 눈을 감은 채 내게 말했다.
“무엇을 알아냈지?”
“네?”
대뜸 날아오는 뜬금없는 질문에 벙찌고 말았다.
“신용섭에 대해 뭔가 알아채고 온 게 아니던가?”
“아...”
사실 나는 이곳에 오면서 조수석 쪽에 의문의 서류를 놓고 틈틈이 서류를 확인하면서 왔다.
앉은뱅이를 치유한 신용섭. 그러나 얼마 후에 치료 받은 사람은 요절. 어떤한 연관성도 없었기에 신용섭은 용의자로 뽑히지도 않은 모양이다. 그러나 그건 어찌보면 당연했다. 신용섭은 그저 치료를 해줬을 뿐, 내가 구병훤을 낫게 해준것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런 사건들이 몇 차례 더 있었다. 도인은 그 점을 내게 보여주려고 했던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가 말한 내용들을 유추해 봤을 때, 내게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신용섭은 사람을 죽이는 마사지를 하고 있는 거군요.”
그제야 도인은 눈을 뜨고 바위 아래로 내려왔다. 나는 그의 똥구멍에서 피라도 새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그만큼 바위의 모서리는 뾰족했다.
“그래, 맞아. 그리고 앞으로는 그런 일들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의 신용섭을 향한 신뢰도는 현저히 높은 상태야. 이번 기회를 통해 그를 반드시 이겨야만 하네.”
그렇구나.
그래서 도인이 내게 접근한 거다.
만약 신용섭보다 내가 더 재능있는 마사지사라는 게 알려지면 정말로 마사지가 필요한 사람들은 내게로 몰려들 거다. 특히 신체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신용섭에게 몸을 맡겨선 위험하다.
만약 구병훤이 신용섭에게 자기 다리를 맡겼다고 생각해보자.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다리가 나았다고 좋아하는 것도 한 순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요절을 하게 되면 구소민이 얼마나 슬퍼할까? 나조차도 그렇게 된 구소민의 미래를 바꿔놓을 자신이 없다.
“제가 뭘 어떻게 하면 될까요? 하라는대로 뭐든 다 하겠습니다.”
“경력을 이길 수 있을만한 노력... 고통을 인내할 수 있나?”
“...”
‘시발, 진짜 무협지 찍자고?’
나는 머릿속으로 좆같은 순간들을 상상해버렸다. 혹여 도인이 나에게 바위 위에 엉덩이를 꽂아서 앉으라고 하면 어쩔지에 대한 좆같은 생각.
그러나 나는 이성을 통해 진지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말이 맞다.
나는 이제 막 마사지를 시작한 마린이에 불과하다. 정말 실력적인 면으로 놓고보면 기본기에서 신용섭에게 밀릴 수밖에. 게다가 어떤 미지의 힘이 있는지는 몰라도 그에게는 나 못지 않은 초능력이 있다.
둘 다 같은 능력을 갖고 있다고 봤을 때, 내가 그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어보였다.
“네, 해보겠습니다. 뭘 하면 될까요?”
“보챌 필요 없어. 우선 여기 앉아봐.”
‘아, 시발! 진짜냐고.’
도인은 바위 모서리를 가리키며 말했다가 내 표정을 보더니 다시 주워담았다.
“푸흐흐... 농담이야. 내가 여기 앉아있는 동안 자네는 여기 앉아.”
도인은 바위 위로 폴짝 뛰어올라서 또 다시 기상천외한 자세로 앉았고 나는 주춤거리며 그대로 흙바닥 위에 주저앉았다.
‘이거 비싼 바진데...’
그러자 곧바로 도인의 손바닥이 날아와 내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떵 소리가 나도록 맞고 눈물을 찔끔 흘리며 도인을 올려다봤다. 딱 때리기 좋은 각도였다.
“물질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만큼 마음의 수련이 중요한 게지. 너는 내게 배우기로 마음을 먹은 이상, 나를 스승이라고 생각해라. 네가 갖고 있는 재능이 아깝지도 않더냐?”
“제, 제가 무슨... 재능을... 아, 알고 계셨나요?”
“그럼. 네 녀석이 내 팔을 잡았을 때부터 알았지. 그 손은 일반인의 손이 아니야. 너는 뭔갈 알고 있잖아. 그렇지?”
“...”
나는 꿈속에서나 나오는 악마와 대화를 하는 기분이었다.
마치 내 모든걸 꿰고 있다는 듯이 줄줄이 설명하는데 머리가 다 띵할 지경이었다. 확실히 도인은 도인이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속세와 멀어진 듯한 도인이 내 능력을 안다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발설할 걱정 따위는 할 필요가 없어보인다.
나쁜 짓을 하려는 신용섭을 저지하려는 것도 그렇고, 어쩐지 이 도인에게는 선한 냄새가 풀풀 풍겼다.
그래서...
지금부터 나한테 뭘 시키려는 거지? 잠깐 침묵이 스치고 지나갈 줄 알았는데 끈적할 정도로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이상하게도 도인의 앞에 앉자마자 시공간 속에 빨려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궁금하려는 찰나 노인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나는 노인의 몸... 하지만 봤다시피 나는 너보다 빠른 속도로 이곳에 도착했다. 그 이유가 뭘까?”
핫!
생각해보니 그렇다. 차를 타고 왔을까? 그렇다기엔 이 주변에 차를 주차해둔 흔적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계단에서 어린아이 못지 않게 뛰어 내려가던 노인의 모습을 떠올리면 정말이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전혀 모르겠습니다.”
“그렇겠지. 알면 이상한 거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하게 얘기해주겠다... 본디 안마사는 자기 자신부터 가눌 수 있어야 하는 법이다... 내 몸 정도는 강화할줄 알아야한다는 거지.”
나는 도인의 말을 듣고 이번에도 머리가 띵하고 울렸다.
보라색점을 제거해서 성기 크기를 늘린 것도 그렇고 상대의 힘을 흡수해서 내 힘으로 만든 것도 그렇다. 아픈 근육을 풀어주는 건 또 말할 필요도 없는 기초 중의 기초였다.
내가 알아차린 눈치를 보이자 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바로 그것이지. 그러나 네가 할 수 있는 범위는 좁다! 그 이유는... 아는만큼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나는 너에게 사람이 어떻게 하면 강해지는지, 어떻게 하면 안마사의 의도대로 고쳐나갈 수 있는지를 알려주겠다. 한번에 대단한 걸 배우려 하지말아라... 자칫 잘못하면 네 능력이 너를 집어삼킬 테니까. 그 녀석처럼...”
“신용섭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럼 그 신용섭도 도인께 배움을 받았다는 뜻이겠군요?”
“당연하지! 이 대한민국 땅에서 나만한 경지에 오른 인간이 나 말고 딱 두 명이 있다. 경상도에 뭐시기 전라도에 거시기... 솔직히 그 새끼들이 뒤졌는지 살았는지 궁금하지도 않다. 그러나 확실한건 제자를 둔 건 나뿐이라는 거다.”
“아... 그러시군요...”
어째 가면 갈수록 도인이 왈가닥으로 느껴지는건 기분 탓일까..?
“자, 지금부터는 내가 전수할 수 있는 관절치료법을 알려주겠다. 인간의 혈액이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아느냐? 손을 줘보거라.”
나는 뭔지도 모르고 도인을 향해 팔을 건넸다. 그러자 그 순간, 바로 도인이 힘껏 내 손목을 꺾었다.
“끄아아악!”
귀까지 고통이 올라와 전율이 흘렀다. 이런 미친..! 진짜 꺾였다. 멍이 든 건 아니고, 손목 부근의 푸르스름한 점이 보였다. 기능 상실을 나타내는 푸른점이다. 그것도 급작스런 기능저하로 인해 딱딱하게 굳은 점이라는 걸 만져보지도 않고 알 수 있었다. 쉽게 풀리지 않을 것만 같은 딱딱함이었다.
“끄으으... 아오, 진짜...”
“멍청한 것아. 화를 내지 말고 잘 생각해보거라. 네 능력을 잘 떠올려 보란 말이다.”
“?”
나는 아픈 손목을 부여잡고 도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생각했다.
딱딱한 푸른점?
아, 그래. 이 딱딱한 푸른점을 제거하면... 무수히 많은 다른 점들이 생성된다.
그 순간, 나는 머리가 번쩍거렸다.
재빨리 소매를 팔뚝 쪽으로 걷어붙였다. 손목 부근은 푸른점이 있었고 근육이 놀라서 붉은점이 근육의 결과 함께 쭉 이어진 모습이다. 이 역시 딱딱하게 굳은 붉은색점이다.
나는 우선적으로 붉은색점을 주물러 없앴다. 있는 힘껏 압력을 줘서 재빨리 깨버리자 온몸에서 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딱딱했던 푸른점이 열에 의해 녹아내렸는지 흐물해진 순간, 손쉽게 몇 번 문지르자 깨끗하게 나았다.
‘그렇다면 이제 곧...’
아!
딱딱한 푸른점을 제거하자 손목 부근에 보라색점과 분홍색점을 비롯한 여러 개의 점들이 형형색색 자리를 잡았고 시간이 지나자 세균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쭈르륵
팔뚝 주변에 자리를 차지한 점들. 나는 그 점들을 내려다보다가 도인을 올려다봤다. 그는 위쪽에서 날 향해 씩 웃고 있었다. 도인의 눈에는 이 점들이 보이는 걸까. 표정으로 봐서는 알 수 없었다.
“이, 이거...”
“그래. 그것만 있다면 너는 스스로 강해질 수 있다.”
요는 간단했다.
성기가 거대해진 것과 마찬가지로 근육 주변에 있는 보라색점들을 제거한다면..? 내게 콤플렉스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근육은 비대해지고 더 딱딱해질 것이다.
성기도 엄연히 근육에 속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으니까 교육 순서가 바뀌었을 뿐이다. 나는 성기 강화를 통해 심화학습을 미리미리 공부했던 거다.
그러고보니 떠올랐다.
딸딸이를 과도하게 친 날이면 항상 왼쪽 팔뚝이 마비된 것처럼 저렸었다. 나는 그걸 주물렀고, 어느 날 확인해보니 내 왼쪽 팔뚝은 비대해져 있었다. 아, 물론 헐크마냥 두꺼워졌다는게 아니라 오른팔에 비하면 어느정도 근육이 생긴 정도였다.
처음에는 딸근이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서아와 첫 섹스 이후에 그녀가 내게 왜 왼쪽 팔이 이렇게 우람하냐고 말했을 때 깨달았어야 했다.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시간을 허비했던 걸까.
만약 미리 이 사실을 알았으면 온몸을 보랏빛으로 만들어서 몸을 미친 듯이 비대하게 만들었을 거다. 언제까지 비실이로 살아야 하나 싶었는데 이제 나도 멸치탈출이다.
나는 열심히 보라색점들을 찾아서 지워나갔다. 온몸에 열이 솟구치는 탓에 보라색점을 제거하는 효과가 상당히 좋았다.
온도가 안마에 미치는 영향은 이것으로 확연해졌다.
열심히 색깔 점을 지워도 지워도 이 정도의 효과를 얻을 수 없었는데 보라색점을 몇 번 지웠다고 이렇게 확연하게 몸이 좋아질 수가 있을까.
내가 보라색점을 지워나가는 동안, 도인은 앉아서 내 모습을 차분히 관찰했다.
팔도 그렇고 가슴 부분과 복부 그리고 다리까지 열심히 마사지를 한 결과, 대단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전보다 꽤 힘이 생긴 기분이었다. 운동을 하지 않았는데 운동한 효과를 느낄 수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나는 벼락부자가 될 거다.
“자, 그럼 심화학습이다.”
‘여기서 더 심화할 게 있다고?’
나는 귀를 쫑긋 세워서 도인의 말을 집중해서 들었다.
“자해해라.”
“네?”
어처구니가 없는 소리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