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8화 〉 88화 (87/173)

〈 88화 〉 88화

* * *

“장소는 어딥니까?”

­ ... 으음... 용천궁입니다.

용천궁!

“이런 미친..!”

­ 네... 맞습니다... 신용섭 씨 사업장입니다.

왜 불길한 예감은 항상 맞아 떨어지는 걸까..? 아니나다를까 섭외장소 자체가 아예 신용섭의 마사지샵이었다.

신용섭이 나한테 따로 연락을 하지 않은 이유는 이런 좋은 기회를 내가 놓치지 않을 거란걸 알기 때문일 거다. 그런데 리스크가 너무 크긴 하다. 우리 매장에서 한서연과 신이설을 마사지한 것 자체가 나에게 유리한 점이 있었는데 용천궁에서 어떤 미션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 패배할 확률이 높다.

그런데 이걸 공중파에서 방송한다? 그것도 국민 예능에서 처참하게 찢겨발리면 떠오르는 샛별도 짓뭉개질 것이다.

그래, 나는 떠오르는 샛별이다.

다르게 말하면 맹수들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지금쯤 신용섭은 날 잡아먹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거다. 그 때문에 이번 예능 출연에도 엄청난 준비를 해뒀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민할 거리는 아니었다.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었다.

“하겠습니다.”

­ 그렇죠. 이런 기회는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에요. 구소민 씨도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최근 구소민이 대한민국에 미치는 영향이 알게 모르게 커졌다.

유럽의 유명 잡지사에 등장했을 정도로 모델로써의 길이 창창했고 한국인만의 매력을 어필하고 한국 정통 의상을 입는 걸로도 유명했기에 국뽕 이슈를 쫓는 기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인터뷰도 수십 개가 쌓였고 기사로도 많이 나왔다.

당연히 듣는 질문 중에 하나는 현재 남자친구가 있냐는 질문이었는데 구소민은 그때마다 남자친구는 없으나 좋아하는 사람은 있다고 대답해서 화제가 됐다.

그녀와 내가 밀접한 관계라는 걸 아는 건 맨즈케어 잡지사밖에 없었다.

­ 저희가 알아서 잘하겠습니다. 촬영은 다음주 화요일이고요. 자세한 그쪽 PD님께서 따로 연락을 주실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통화를 끊었다.

“...”

나는 가만히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적적한 느낌의 내 방. 여자들이 수차례 왔다갔다 한 방에 나 혼자 있으려니까 넓게 느껴졌다.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일이 벌어졌다.

집이 생기고 차가 생기고 잡지에도 나오고. 이제는 예능출연까지 확정. 이번 고비만 넘으면 확실한 탄탄대로가 열린다.

전화번호부에는 예쁜 여자들이 잔뜩, 거기에 수입까지 짱짱하다. 내 평생 통장에 이렇게 돈이 많아본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현실에 안주할 수는 없었다.

손.

나는 내 손을 위로 높이 들어 전등에 비췄다.

기적의 손.

별안간 하늘이 내어준 이 기적의 손으로 더 위대한 일을 해내고 말 것이다.

맨즈케어는 며칠 후에 기사를 냈다. 소위 말하는 기적의 손끼리의 대결. 대한민국에서 마사지의 대명사 신용섭과 신흥강호 강준현의 대결은 많은 사람이 궁금해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구소민의 미모의 비결이 강준현의 마사지라는 것까지 밝힘으로써 사람들의 관심은 급격하게 쏠리게 됐다.

원래 맨즈케어는 남성의 미용과 건강을 주요 컨텐츠로 다루는 잡지사였는데 이제 얼추 성비가 맞아질 정도로 여성 구독자 숫자가 많아졌다.

마사지로 피부가 좋아질 수 있다? 심지어 가슴도 커질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고, 주름까지 없어진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하반신 마비된 사람까지 치료했다는 보도와 인터뷰가 다시 또 수면으로 오르면서 나는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됐다. 약 이틀 정도 검색어 순위에 내 이름이 들어가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와 동시에 머발에스 샵은 난리가 났다. 실장을 맡은 김지연으로는 전화받는 손이 모자라서 직원을 두 명이나 더 고용해야 했다.

고객들은 머발에스를 무슨 종합병원처럼 생각했다. 성형외과, 외과, 정형외과, 피부과. 이거 되요? 저거 되요? 라는 질문만 수십 건이다. 그럴 때마다 김지연을 비롯한 다른 직원들은 “전화를 통해 말씀드릴 수 없는 부분이 있으니 직접 찾아오셔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최원재는 이 상황이 기쁘면서도 어리둥절해 했다.

나를 복덩이라고 얘기하며 엉덩이를 토닥거리면서도 “이걸 어떻게 해야하냐?” 라는 질문을 빼놓지 않았다.

강준현이라는 사람은 로봇도 아니고 분신술사도 아니다. 몸은 하나밖에 없는데 나를 원하는 사람은 너무 많았던 거다.

“하, 이설이가 있었으면 무슨 방법이라도 생각해냈을텐데.”

최원재는 휴게실에서 잠깐 회의를 하기 위해 마사지사들을 전부 모아놨다.

“이설 실장이 그렇게 일을 잘했어요?”

“야, 말도 마라. 걔가 얼마나 똑 부러졌으면 잘하던 마사지도 그만두게 하고 실장일을 시켰겠냐?”

하긴. 그것도 그렇다.

지난번에 이연두와 얘기하는 걸 봐서도 알 수 있듯이 신이설은 꽤 잘나가는 마사지사였다.

그런데 실무 일을 맡는 매니저 실장직으로 전환시킨 걸 보면 일처리를 잘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나야 뭐, 옆에서 그녀가 무슨 일을 하는지 보질 못했으니 알 수 없지만, 얘기를 들어보면 고객 유치나 매달 이벤트, 메스컴 혹은 SNS 광고를 잘 해냈다고 보여진다.

그런 유능한 인재가 하나 빠진데다가 일이 포화상태가 되니까 업장에 락(Lock)이 걸려버린 거다.

계속해서 회의시간에 뻘소리가 가득한 한 가운데, 나는 보다가 참지 못하고 최원재에게 물었다.

“업장을 늘릴 생각은 없으신가요?”

“아, 물론 있지! 근데 지금 당장 발등에 불부터 꺼야될거 아니야.”

“저희 업장은 지금 여성전용이라 남성들을 유치하지 못하고 있죠. 그런데 최근에 문의하는 사람들 중에 30%는 남성이었습니다. 남성들을 유치할 수 있는 새로운 업장을 만들게 되면 업무분담이 되면서 훨씬 쾌적해질 겁니다.”

“... 맞는 말이야. 근데 지금 자본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

자본이라. 자본이라면 방법이 아예 없는건 아니다.

얼마 전에 진아영과 부동산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술집 일을 하는게 만만치도 않거니와 은근히 떳떳하지도 못해서 더 이상 하기 힘들어졌다고. 지난번에 자기 아버지가 찾아왔을 때 자살충동이 느껴졌던 것도 술집 마담으로 일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떠올린 방법은 이거였다.

진아영과 함께 머발에스에 공동 투자자가 되어 2호점을 인수하면 어떨까. 당연히 나는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게 좋기 때문에 이곳에서 일하겠지만, 필요하다면 2호점으로도 파견을 나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거다.

어차피 진아영은 술집 마담으로도 그렇고 리더로써도 최고의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내가 지금 갖고 있는 돈을 투자없이 통장에 썩히는 것보다 누군가에게 투자를 한다면 당연히 진아영일 것이다.

내가 진아영 얘기를 하자 최원재는 귀가 솔깃해졌다.

그 역시 진아영의 술집에 가봤기 때문에 인테리어 부분에서 크게 손 댈 것 없이 마사지샵으로 둔갑시킬 견적이 나온다는 걸 아는 거다.

“아영이랑 얘기는 된거고?”

“네. 어렵지 않을 겁니다.”

“흐음... 그럼 좋아. 어차피 너랑 진아영 씨가 공동 투자자가 된다는 얘기지.”

“네.”

최원재 입장에서는 나쁠 것 없는 제안이었다. 2호점이 생기면 현재 포화상태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거기에 금액적인 리스크도 크지 않다. 1호점과 2호점의 거리가 멀지도 않으니 관리도 편하다.

무엇보다 내가 책임 진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오케이... 그럼 조금만 기다려봐.”

최원재는 복도로 나가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휴게실에서 가장 친한 이연두와 눈길을 주고받았다.

‘sex?’ ‘yes!’

우리는 발정난 남녀처럼 서로 눈길만 닿아도 살을 부딪치고 싶어했다. 물론 이성을 완전 잃은건 아니다. 상황에 따라 본능을 절제하면서 즐긴건 즐기는 편이었다. 중요한건 이제 눈빛만 봐도 대화가 되는 편이어서 시간이 날때마다 가슴을 떡 주무르듯 한다는 거다.

“근데 2호점 생기면 여기 중에 누가 가요?”

한참 눈빛 교환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물었다.

그러게. 누가 가? 곧바로 이연두가 신호를 보내왔다.

이연두도 2호점으로 가고 싶지는 않을 거다. 무엇보다 그곳에는 내가 없을테니까. 아무래도 내 주요 서식처는 1호점이 될 건데 2호점에 가게 되면 날 많이 만나지 못하게 되고 그만큼 가슴 마사지 당할 일도 없을 거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앞날을 위해서라도 2호점에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남자 고객들을 상대로 재능이 있었다. 날 처음 마사지 해줬을 때가 떠올랐다. 은근슬쩍 섹슈얼한 느낌도 풍겼었지. 나와 관계를 맺은 이후로 다른 남자에게 어떤 식으로 대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색기가 있다는 거다.

여자가 색기를 잘 사용하면 돈을 벌어다 주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이전 직장에서 이연두는 그 점을 잘 활용했던거고 절대 나쁜 일이거나 떳떳하지 못한 일이 아니다. 어쩌면 그 부분에서 이연두와 진아영이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제가 생각해둔 멤버들이 있습니다. 그 멤버들이 갈 거예요.”

“그럼 준현쌤은 여기서는 직원이고 거기서는 슈퍼바이저가 되는 거네요.”

“그렇죠.”

“준현쌤... 저도 가고 싶어요. 저 여기서 일거리가 너무 없어요.”

“어... 저도..! 준현쌤이 원장님하시면 마사지 교육도 시켜주나요? 부탁이에요.”

“어? 어..? 잠깐만요.”

갑자기 피라냐처럼 달려드는 여자 마사지사들. 그녀들 중 대부분은 내게 마사지 교육을 받고 싶어했다. 따라서 총애를 받는 이연두만 교육을 받는걸 내심 질투했던 모양이다.

“어차피 연두쌤만 데려갈거잖아요.”

“맞아... 이건 불공평해요. 저도 열심히 할 수 있다고요. 기회가 없을 뿐이지...”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따라오길 바란다니.

최원재에게 미안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나에게도 다 계획이 있다. 그녀들을 전부 데려갈 수는 없다. 옆에서 눈총을 주는 이연두도 있다. 예쁜 직원 몇 명이 눈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데려가기는 힘들 것 같다.

출세를 하기 위해선 내 마음에 들어야 한다.

여자들의 손이 내 어깨와 팔뚝을 잡고 조물딱거리기 시작했다.

세상에나. 쓰리썸을 할때도 이런 스킨십을 당해본적이 없다. 전부 합해서 10개 정도 되는 손이 내 몸을 쪼물쪼물거리며 주물렀다.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묵직하게 들어오는 손길에 나는 정신을 못 차렸다.

이연두는 가만히 지켜보다가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여자들의 손길에 가세했다.

그녀는 다른 여자들이 눈치 못 채게 내 사타구니쪽을 공략했다. 나는 발기가 되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을 해야했고.

그러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최원재가 안으로 들어오자 우리는 모두 일시정지 상태가 됐다.

여섯 명의 여자 마사지사가 한 남자를 괴롭히는 듯한 이 장면에서.

최원재의 동공이 흔들렸다.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거지?”

그제야 후다닥 제자리로 돌아가는 여자들. 최원재는 한 차례 직원들을 쭉 둘러본 후에 말했다.

“좋아. 머발에스 2호점 계획 시작해보자.”

“오오!”

“축하드려요!”

“축하드려요. 준현쌤!”

여자들은 다들 갈망하는 눈빛을 내게 보냈다.

최원재는 한숨을 쉬곤 내게 말했다.

“잠깐 나랑 얘기 좀 하지.”

“네.”

최원재는 나만 따로 불러서 데려갈 직원들 명단을 작성해서 넘겨달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왜? 아무도 안 데려갈 거야? 직원 다시 뽑으려면 힘들텐데. 누군가는 교육도 해야될 테고.”

“한 명이면 되거든요. 연두쌤이요.”

“아... 하긴 연두라면 괜찮겠지.”

이연두의 과거 자초지종을 알고 있는 최원재도 이에는 쉽게 납득했다.

“그래도 다른 직원들 더 안 데려가도 되겠어?”

나는 차마 신이설을 데려가겠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녀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니까.

“또 새로운 직원을 뽑아서 키우는 맛이 있지 않겠어요?”

내 말에 최원재는 씨익 웃었다.

“널 보면 내 옛날 모습이 떠올라. 그래, 열심히 해라! 난 이제 은퇴할 때가 됐으니까 먼 발치에서 지켜보겠으.”

최원재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를 떠났다.

이걸로 또 하나 더.

내가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한 발걸음을 계속 내딛는 중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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