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 80화
* * *
마사지 시간 종료.
나는 씻고 있는 한서연을 뒤로 하고 복도로 나갔다.
신용섭은 이미 복도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분명 그가 방금 전과 마찬가지로 썩은 표정을 짓고 날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불안하게도 그의 표정은 더 없이 밝았다. 처음에 내게 이 제안을 했을 때보다도 더 밝아보였다.
‘대체 또 무슨 꿍꿍이지..?’
이번 경쟁은 완전한 나의 압승이라고 생각했다.
신이설은 내 마사지...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섹스에 두 번, 세 번이고 만족했을 것이다. 절정을 몇 번을 보냈던가. 정신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뻔질나게 섹스를 해대서 자기 꼭지가 보이는 것도 잊은 채 퍼질러지지 않았던가.
한서연은 또 어떤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내게 1표를 써줄 것이다.
그런데 왜.
대체 왜 신용섭의 표정은 저리도 밝단 말인가.
“고생하고 나오셨네요. 그렇게 하면 뼈 안 삭아요?”
“뼈가 왜 삭죠?”
“뭐, 그거야 본인이 더 잘 알테죠.”
신용섭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다 아는 사람치고는 너무 여유로웠다. 설마 신이설을 따먹고 저렇게 여유로운 표정을 짓는 건가?
도무지 알 수 없는 놈이었다.
“우리는 카운터 쪽에서 기다리죠. 여자 두 분이 오시기 전에 투표함을 만들 거예요. 누가 어디에 뭘 넣었는지 모르게 해야겠죠.”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첫 번째 들어왔던 사람이 괜찮았는지 두 번째 들어왔던 사람이 괜찮았는지만 알면 되잖아요?”
“그거야 두고 보면 알게 되겠죠. 내가 왜 이렇게 하자고 했는지.”
저런 식으로 말하니까 더 불안해졌다. 물론 내가 불안해 할 필요는 없었다. 무조건 내 승리가 확정일 테니까.
카운터로 가자 최원재는 근심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1시간이라는 시간은 최원재에게 꽤 길게 느껴질만한 시간일 거다. 내가 지게 되면 그에게 발생할 피해가 상당할 테니까.
그는 내 표정을 본 후에 조금은 안심하는 듯했다. 신용섭만큼이나 나 역시 자신만만했던 거다.
나는 가만히 카운터에 서서 원래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신이설을 떠올렸다. 지금쯤 위층에서 뻐근해진 가랑이를 열심히 닦고 있을 거다. 아무리 물티슈로 닦았다고는 해도 애액이 잔뜩 뿌려졌기에 상당히 찝찝할 거다.
그나저나 이런 식으로 섹스를 하게 돼서 뭔가 아쉽다. 자주자주 만날 사람인데 얼굴도 모른 채 이런 상황에서 섹스를 했으니 말이다.
신이설은 내가 언제 들어갔는지 알고 있을까? 자신에게 삽입하고 절정을 맛보여줬던 사람이 나라는 걸 눈치챘을까? 그럴 거다. 만약 내가 신용섭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쉽게 보지를 내주지 않았겠지.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지는 시간이었다.
내가 이길게 확실했는데도 밀려오는 초조함. 그 요인은 당연히 신용섭의 재수없을 정도로 여유로운 얼굴이었다.
그는 연신 내 얼굴을 흘깃거리면서 ‘쫄리냐? 쫄리냐?“ 묻고 있는 것 같았다.
‘진짜로 무슨 꿍꿍이냐고... 젠장.’
한 시간 내에 모델 뺨치는 몸매의 두 여자와 섹스를 해놓고서도 초조한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다. 시발. 지고 싶지 않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내가 져야 되? 말이 안 된다.
두 여자가 계단을 따라 밑으로 내려왔다. 나는 한서연의 얼굴은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녀는 너무도 노골적인 눈으로 내게 구애의 눈길을 흘리고 있었다. 부담스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일 거다.
아무리 그녀의 현상황을 알고 있어도 그녀는 나와 열 살 정도 차이나는 유부녀다. 예쁘기는 예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는 이미 그녀의 성적 취향까지 알고 있지 않던가! 오늘은 순종적으로 자지에 박혀서 꼼짝 못했다 한들 언젠가는 또 S의 성향이 발동해서 날 묶은 다음에 채찍질하고 불알을 걷어찰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나는 신이설을 봤다. 신이설이 어떤 선택을 할지가 최대의 관심사였으니까.
마지막에 신용섭의 미소가 시사하는 건 신이설의 선택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터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신이설이 내 눈길을 피하는 것이 아닌가. 원래 그녀 성격 같으면 “뭘 꼬나보냐!”고 해도 모자랄 참에 내 눈길을 슬금슬금 피하면서 카운터 앞으로 걸어왔다.
“자, 그럼 지금부터 투표를 할거예요. 다들 샤워하시면서 어디에 투표를 해야할지는 이미 정해뒀을 거라고 생각해요.”
두 여자는 신용섭의 말에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마사지는 마사지다워야 마사지다. 여러분도 그 점에 착안해서 결정을 해주셨으리라 믿습니다.”
또 다시 두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투표용지를 이용해서 투표 하시면 됩니다. 자신이 몇 번방에 있었고 몇 번째 마사지가 좋았는지를 제출하시면 됩니다.”
확실히 그렇게 하면 물어보기 전까지는 누가 누구인지 모를 거다. 하지만 나와 한서연만은 이번 경쟁이 어떤 식으로 배치되었고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부 파악하고 있었다.
따라서 내게 무기명 투표는 큰 의미가 없다. 결과가 중요할 뿐이다.
투표가 끝났다. 두 사람만 투표를 했으니 순식간에 끝났다.
“자, 그럼 개표하겠습니다.”
신용섭은 투표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투표 용지를 꺼냈다. 용지를 펼친 신용섭은 고개를 한 차례 저었다.
“2번방, 두 번째 마사지사.”
그 결과는 신용섭과 나만 알고 있을 거다. 하지만 신용섭이 고개를 저었기 때문에 누가 누구인지는 금방 탄로났다.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2번방의 2번째가 나고 1번방의 1번째가 나라는걸 알게 된 순간인 거다.
그리고 신이설도 바보가 아니었다.
그녀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는지 퍼뜩 고개를 들고 내 얼굴을 쳐다봤다.
‘응?’
신이설의 얼굴을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게 뭔? 왜 저런 표정을 짓는거지?’
궁금하다. 궁금해서 미치겠다.
“빨리 다음 표를 까보시죠.”
내 재촉에 신용섭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씩 웃으며 주머니에서 투표용지를 꺼냈다.
“1번방은...”
첫 번째. 첫 번째라고 말해. 첫 번째잖아.
“두 번째.”
시발... 말이 돼? 섹스한 나를 안 찍고 신용섭을 찍었다고? 설마 신용섭이 들어가서 내 섹스보다 만족스러운 섹스를 해줬다는 건가. 말도 안 된다.
“그럼...”
옆에서 최원재가 운을 띄우자 신용섭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동점인 거죠. 아쉽게도 우리 둘의 승부는 오늘 이뤄지지 않을 모양입니다.”
“하...”
최원재는 다행이라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오늘은 잘 놀다 갑니다. 훗... 뭐,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마사지가 있는 법이죠. 단지 받아들이는 사람도 그걸 똑같이 받아들일지는 뭐... 자유겠지만요.”
신용섭은 대놓고 내 마사지를 비판하고 있었다.
시발... 나는 옆방에서 신음소리가 나길래 내가 했던 대로 했을 뿐인데..? 어이가 없었다. 자기는 깨끗한 척 말하는게 꼴보기 싫었던 거다.
“승부라는 것은 늘 그렇듯 승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강준현 씨의 홈그라운드에서 승부를 했으니 다음에는 제 홈그라운드로 오시죠.”
“... 네?”
“만약 오지 않는다면 메스컴에도 똑같은 글이 실릴 겁니다. 제2의 기적의 손이 신용섭의 재대결 제안을 거절했다. 잔뜩 겁을 집어먹고 꼬리를 말았다. 이 정도일까요?”
“신용섭 씨.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습니까?”
“해야죠.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없듯이 누군가는 최고가 되어야 하고 누군가는 나락에 떨어져야 하는 법이니까요. 현대의 대중성에 맞는 마사지가 뭔지 한 번 합을 겨뤄봐야하지 않겠습니까?”
어우, 씨. 띠꺼워 죽겠네.
어떤 만화에나 등장하는 재수없는 캐릭터가 바로 신용섭이었다. 겉보기에는 카리스마 넘치게 생겼는데 말하는 건 느끼한 그런 캐릭터.
‘저런 캐릭터가 웬만하면 제일 먼저 뒤지던데.’
장르가 호로였으면 넌 벌써 뒈진 몸이야.
“알겠습니다. 초대해주시면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준현아..! 그건...”
최원재는 날 말리고 싶은지 내 팔뚝을 잡았지만 소용 없었다. 이미 제안은 받아들여졌고 남은 대결을 끝내기로 합의됐다.
신용섭이 웃으며 문밖으로 나갔으니까.
“하하. 좋아요. 역시 그렇게 나와야죠.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강. 준. 현. 씨.”
나는 그의 떠나는 뒷모습을 마지막까지 바라보며 생각했다.
대중이 원하는 마사지?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매체의 요소는 무엇인가? 나는 자극성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곳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자극을 선사해주면 그만이다. 님도 보고 뽕도 따고. 일거양득이야말로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패스트 라이프의 절정이 아니던가.
그런데 생각이 그렇게 끝맺음 될수록 궁금한 게 있었다.
왜 신이설은 신용섭의 마사지를 좋게 평가한 걸까?
나는 단숨에 신이설 쪽으로 향했다.
“저기... 실장님?”
그런데 신이설의 앞에 서자마자 눈 앞이 벌개질 정도로 강한 타격이 날아왔다.
짜악
여기 있던 사람들 모두 어안이 벙벙해져서 신이설을 바라봤다. 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몰랐다. 아니, 알 수가 없었다. 내 뺨에 싸대기를 올려붙인 신이설은 자기 가방을 챙겨서 부리나케 밖으로 빠져나갔으니까.
“시, 실장님..!”
내가 신이설을 따라가려고 하자 최원재가 나를 막았다.
“강준현쌤! 여기 담당 고객님 계신데 어딜 가려는 거야?”
“아... 그래도 잡아야하지...”
“신경 쓰지말고 고객님부터 먼저 챙겨드려야지.”
“아, 알겠습니다.”
끙...
나는 어쩔수 없이 한서연과 계약을 마무리 하기 위해 상담실로 들어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