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7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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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설이 ‘내 지갑을 열어서’ 만든 헤어스타일에 맞는 정장과 그에 알맞은 셔츠 그리고 구두까지 샀다. 그런데 아무리 이렇게 사도 사실 100만원도 쓰기 힘들었다. 가까스로 구두 하나를 샀을 때, 100만원이 넘어갔다.
“흠, 기본 아이템은 이 정도 사면 된거 같고. 이제 이번 겨울 내내 입을 빡센 코트 하나만 사면 되겠네요.”
“...”
쇼핑. 그것도 여자와 함께 하는 쇼핑은 처음이다. 내게는 이 상황 자체가 신세계였다.
신이설은 나를 명품관 쪽으로 데려갔다. 연예인들이나 입는 옷이라고 생각했던 명품옷들, 그 중에는 구찌나 에르메스 같은 브랜드도 있었다.
“한 달도 아니고 한 주에 2천만원 씩 버는 사람은 명품 하나 정도는 입어줘야 한다고요. 그 중에서도 남자들한테 가장 손이 많이 갈 아이템은 신발이랑 코트죠.”
“... 실장님은 이런 쪽에 관심이 많으신가봐요.”
“훗. 내가 이래봬도 의상 디자인과 나왔거든요. 친구랑 인터넷 쇼핑몰도 했었는데 망했어요. 남성 의류를 전문적으로 했는데, 하, 생각보다 잘 안되더라구요.”
“실장님이 남성 의류를 팔았다고요? 왜요?”
일반적으로 여자가 여자옷을 팔고 남자가 남자옷을 파는게 맞다고 생각했다. 남성전문 미용실도 그렇지만, 남자 머리도 남자가 해주는게 알맞다고 생각했으니까.
“여성전문 에스테틱에서 일하시는 남자 마사지사도 아주 잘 나가더라고요~”
아.
당연히 나를 얘기하는 거였다.
근데 나는 신이설이 쭈뼛거린다는 걸 느꼈다. 그녀는 꼭 들키기 싫은 뭔가가 있을때마다 쭈뼛거린다.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혹시 쇼핑몰 같이 했던 친구가 남자친구였어요?”
“뭐, 뭐요? 아니에요!”
“그럼... 짝사랑?”
“푸핫! 아, 진짜! 됐고. 이거나 입어봐요.”
나는 양손 한가득 들고 있는 쇼핑백을 바닥에 내려놓고 신이설이 입혀주는 코트를 입었다. 명품이라 그런지 질감 자체가 확 틀리다.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이 미용실에서보다도 더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확실히 옷이 날개긴 했다.
이제까지 이런 식으로 입어본적이 없었는데 정장에 구두 신고 명품 코트 하나 걸치니까 사람이 달라보이는 거다.
신이설이 원하는 그림이 딱 이거였을 거다.
머발에스의 간판은 샵에 있을 때만 신경 써야하는건 아니다.
따라서 돈이 있고 돈을 쓸 수 있을 때 옷을 사두는 편이 낫다. 옷이 소모성이라고는 하지만, 사두면 오래오래 입을 수 있으면서도 가장 필요한 의식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마주보고 선 신이설이 코트쪽을 여며주면서 내 얼굴을 지그시 응시한다.
“이렇게 예쁘게 입으니까 얼마나 좋아요.”
“아, 아직 어색하네요...”
“그러고보니 준현쌤 원래 나한테 장난 많이 쳤는데 요새는 왜 안 쳐요?”
“예?”
언뜻 신이설의 눈이 개구쟁이처럼 느껴지면서도 다정다감하게 느껴졌다. 오묘한 눈빛이었다. 눈웃음 때문에 눈가가 살짝 구겨지는데 포근했고 눈빛이 잔망스럽게 흔들려서 귀엽게 느껴졌다.
위험하다. 심장이 너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아니지. 이딴 싹쑤 노란 여자한테 빠지면 안 된다. 다만, 여태까지 여자들의 능력치 중에서 신이설의 능력치를 소폭 상승시켜야할 것만 같다.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했다.
“장난 쳐드려요?”
“예? 흠... 뭐, 가끔은 장난도 치고 그러던지.”
그렇게 말해놓고 다시 몸을 훽 돌리는 신이설. 나보다 2배 정도는 멋져보이는 남자 직원에게 “이거 얼마냐”고 물으면서 대뜸 자기 지갑에서 카드를 꺼냈다.
“에이, 인심 썼다! 내가 실장으로써 직원 첫월급날 선물 하나 해주는 거예요.”
“어... 아, 안 그러셔도 되는데?”
정말 의외였다. 그녀가 말한대로 의례적으로 그렇다 할지언정 명품옷을 선물 받는건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것도 신이설에게 받는건 더더욱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니까 앞으로 내 말 좀 고분고분 잘 들으라고요. 출근도 제때제때해서 눈도장 좀 잘 찍고.”
“아, 예...”
원래 전혀 어색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좀 어색해졌다.
드물게 살결이 닿을때도 아까까지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섬칫 놀라게 되고 그런다.
쇼핑을 끝내고 로비에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았다. 신이설은 팔을 위로 쭉 뻗으며 하품을 하기까지 했다.
“아후~ 쇼핑은 역시 피곤해. 하루종일 누구 옷 사주느라 진 다 뺐네.”
아니, 그니까 누가 시켜서 그랬냐고요...
나는 분명 돈을 어떻게 쓸지 고민이라고만 얘기했지, 쇼핑을 도와달라고까지 얘기하지는 않았다.
나를 째려보는 신이설, 그녀는 분명 츤데레가 맞다.
내가 옆에 가서 앉자 그녀는 앙증맞게 몸을 돌리더니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쳐다보자 그녀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휴대폰.”
“왜요?”
“왜긴 왜에요. SNS 관리 해주려는 거지. 실장이면 우리 샵 에이스 SNS 관리 정도는 해줘야지. 안 그래요?”
“SNS 안하는데요?”
온라인 소셜 네트워크는 소위 말하는 인싸들이나 하는 거라고 배웠다. 어딜가나 예쁘고 잘생긴 미남, 미녀들이 자기들 몸매 자랑하는 사진이나 얼굴 사진을 올려서 사람들에게 자랑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걸 내가 할 리가 없잖아.
신이설은 내 말이 멍청하다고 생각했는지 쯧쯔 혀를 차며 내민 손을 재차 흔들었다.
“잔말 말고 내놔봐요. SNS도 안 하는 스타가 무슨 스타야. 요즘 시대에는 말이예요. 성공하려면 무조건 개인방송이나 SNS를 해야하는 거라고요. 자, 생각을 해봐요. 잘 나가는 사람들이 자기 잘 나가는거 자랑하려고 뭐 해요?”
“SNS..?”
“그쵸! 그럼 그 잘 나가는 사람들이 대충 돈을 어디에 쓰겠어요? 옷! 미용! 차! 자기관리!”
“아...”
나는 최면에 걸린 듯 신이설의 손에 내 스마트폰을 건네줬다.
“흐흥. 일단 아이디부터 만들어야죠. 그리고 오늘 입은 옷이랑 해서 올리는 거야. 그 다음에는 우리 샵 간판이랑 같이 사진 찍어서 올리고 VIP룸 사진 찍어서 올리고. VIP 중에 유명한 사람들 있으면 그 사람들이랑 같이 인증사진 같은거 찍어서 올리고. 그러다보면 어휴, 생각만해도 짜릿하네.”
그렇게 설명해줘도 나는 모른다. 그 세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조차 모른다.
지금까지 나는 그런 세계를 이세계나 다름 없다고 치부해왔다.
나는 어깨 너머로 신이설이 하는 걸 구경해야 했다. 그녀는 우선 자기 아이디를 우선적으로 친구추가를 해놓고 자기 인맥을 이용해서 나를 팔로우하게 만들었다.
“자~ 선수입장~”
이제 본격적으로 뭘 하려는지 소매를 걷는 신이설.
그녀는 신랄하게 타이핑해서 하나의 텍스트를 작성했다. 그리곤 그 텍스트를 복사해서 다시 여러명에게 전송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팔로우 이벤트 : 제2의 기적의 손이라고 불리기 시작한 >강준현
주변인 소개하기 이벤트도 있어요!를 통해 지인 5명에게 동일한 텍스트 복사 후 전송, 팔로우하고 인증 시 스타벅스 무료 쿠폰 무조건 드려요!
그렇게 빠른 속도로 작업을 마치고 몇 십 개의 전송을 마쳤다.
이벤트가 효과가 있는지 빠른 속도로 팔로우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신이설은 빠르게 놀리던 손끝을 쉬며 다시금 팔을 뻗어 기지개를 켰다.
“후우... 선수 퇴장... 이렇게 해놓고 좀만 기다려요. 스타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준 거야. 항상 그걸 생각하라고요. 내가 첫 번째 팔로워이자 그대의 첫 번째 팔로잉이라는 사실을.”
그리곤 내게 휴대폰을 넘겼다.
내가 휴대폰을 건네받았는데도 여전히 손을 내밀고 있었다.
“손.”
나는 이 말을 듣고 정말로 당황했다. 손을 달라고? 내가 무슨 개냐고.
내가 멀뚱거리고 있자 신이설이 내 생각을 읽었는지 고개를 저었다.
“손!”
나는 훈련된 개가 되고 싶지는 않았기에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을 잡고 깍지를 꼈다.
그러자 그녀는 자기가 시켜놓곤 막상 이렇게 되니 창피하기라도 한지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아니, 나 수고했으니까 손 주물러달라는건데...”
“아.”
재빨리 알아듣고 손을 주무르기 시작했지만, 이 미묘한 분위기는 사그라들 생각을 안 했다.
살결이 닿았다가 떨어졌다가 다시 닿을 때마다 몸 구석구석이 찌릿찌릿 울렸다.
‘최근에 섹스를 안 해서 그런건가. 내가 왜 신이설한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거지.’
솔직히 말해서 신이설보다 몸매 좋고 예쁜 여자는 내 전화번호부에도 이미 많았다.
그런데 오늘 있었던 일 때문인 걸까. 이 감정은 대체 뭘까.
“아, 좀 더 집중해서 주물러 봐요.”
이 싹퉁바가지를... 왜...
“저기... 그... 준현쌤?”
“네?”
손을 주무르다가 문득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곧 있으면 신이설과 침대에서 뒹굴겠구나. 직감. 최근에 섹스를 많이 해본 나의 직감이었다!
“그... 예전에 내가 했던 약속있잖아요? VIP 아이돌 소개해주기로 했던거...”
엥?
갑자기 그 얘기를 왜.
“미안한데 나 그런 손님 없어요.”
“...”
“그래서 그런데...”
한참을 뜸을 들인 신이설은 몸을 앞으로 숙여서 내게 속삭이듯 말했다.
“내가... 준현쌤 VIP하고 싶... 어요. 아니. 해야되요.”
“뭐, 뭔 소리예요?”
“약속을 지켜야하니까?”
“아니. 실장님을 어떻게 제 VIP로 하라는 거예요. 농담도 참.”
“농담 아닌데? 나 지금 완전 진지한데? 나 사실 아이돌이거든요.”
“풉!”
“웃어?”
“아, 아니 그럼 이 말을 듣고도 안 웃어요?”
“참내. 다른 사람들한테는 비밀이에요. 나 고등학교 때 아이돌 연습생이었어요. 무려 데뷔까지 했다고요.”
나는 그녀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서 얼굴을 뜯어봤다.
아니지. 대체 나한테 그따위 거짓말을 해서 얻을 게 뭐란 말인가.
“데뷔를 했다고요?”
“응응. 그래서 뭐, 아이돌 친구들도 몇 있고 그래요. 근데 싫어! 친구들 준현쌤한테 소개해주기.”
“왜요? 그래야 돈 많이 벌텐데.”
“흥, 글쎄? 왜 그럴까요?”
여전히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신이설은 내가 빤히 쳐다보자 눈길을 돌렸다.
그리곤 나지막이 말했다.
“나 박유영 씨랑 뭐하는지 들었어요.”
“!”
“근데 어떻게 내 친구들을 소개해줘요...”
시발... 들켰구나. 하긴 그걸 들키지 않는 것도 쉽지 않다. 신이설이 조금만 의혹을 품었으면 언제든지 문에 귀를 대볼 수 있었을 거다.
‘엇, 잠깐만.’
근데 자기는 VIP가 되고 싶다는 거잖아.
나는 새빨개진 신이설의 얼굴에서 끈적이는 색기를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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