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 7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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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동안 일에만 집중한 결과, 나는 총 25명의 VIP 고객을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후다닥 복도를 뛰어다녀야 겨우겨우 스케줄을 맞출 수 있었다.
보통 다른 마사지사들이 50분 마사지에 10분 휴식인 경우가 많은데 나는 스페셜 마사지를 60분으로 연속해서 진행했다.
돈 벌 생각을 하니까 섹스에는 딱히 눈이 돌아가지 않았다. 막말로 내가 원하면 섹스할 수 있는 미녀들이 많았는데 마사지 문의를 해오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성에 차지 않는 외모 수준이었다.
몸매가 좋은 여자들은 많았다. 자기 몸을 아무 거리낌없이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여자들. 특히 그런 여자들이 다음 여름을 준비하기 위해 비키니 라인 피부를 관리하느라 여성 전용 테라피스트를 찾는다고 한다.
따라서 3일 동안 나는 세끈한 여자 몸을 원없이 만져볼 수 있었다.
게 중에는 핑크색 반점을 건드려서 달아오른 여자들도 있었으나 닿을 듯 말 듯 애만 태울 뿐 아슬아슬한 선을 넘지는 않았다.
그러자 그런 여자들에게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지갑을 여는 것이다.
여자들이 원하는 섹스 판타지는 상상력이 끼치는 영향이 큰 것 같다. 남자야 직관적으로 와닿는 쾌감이 없으면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지만, 여자는 다른 거다. 줄 듯 안 줄 듯 하는 게 더 효과가 좋을 줄이야! 보리쌀 게임을 하는데 보리만 연신 질러 넣는 기분이었다.
아무튼 그 결과, 이번 주까지 열심히 일한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일단 가장 큰 건은 구소민이었다. 그녀는 천만원짜리 계약금을 걸어놓고 가장 큰 계약금이 얼마였냐고 물었다. 나는 이미경의 계약금이 2천만원이라고 알려줬고, 그러자 구소민은 다소 고민을 하더니 선뜻 3천만원의 거금을 내놓았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가끔씩 저희 아버지 상태가 나빠지면 봐주셔야 해요.”
“당연하지, 소민아.”
“그럼 좋아요. 여기... 일시불로 결제 부탁드릴게요.”
3천만원짜리 일시불! 미쳤다. 아무리 돈 많은 여자들이 씀씀이가 좋다지만, 대체 유럽에서 얼마짜리 계약을 했길래 3천만원 거금을 슥슥 긁는단 말인가.
패션이나 모델업계 쪽은 완전히 문외한인데다 어디 가서 정보를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당췌 그 금액대를 예측해 볼 도리가 없었다.
거금 3천만원짜리 계약을 해오자 최원재는 장난스럽게 내 앞에서 큰절을 올렸다.
“아이고! 우리 가게에 복덩이가 오셨네! 고맙습니다!”
나도 덩달아 주섬주섬 맞절을 올렸다.
지나가던 다른 마사지사들이 피식피식 웃는데도 최원재는 큰절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날 당일, 계약금 3천만원에 대한 커미션이 들어왔다.
그리고 25건의 VIP 계약을 따낸 결과, 내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에스테틱에 가져다 준 계약금만 무려 7800만원.
덩달아 나도 2천만원이라는 거금을 만지게 됐는데 마사지를 할때마다 들어오는 수익금이 따로 있어서 이번달 총 수익금은 약 3천만원 정도다.
이는 이미경과 계약해서 받은 돈은 제외하고 계산한 결과값이다.
“후...”
당장 통장에 2천만원이라는 숫자가 찍혔지만, 실감이 나지는 않았다.
요 며칠 사이 나에게 여러 가지 사건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다.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고 평생 말도 걸어보지 못한 미녀들과 섹스라이프를 즐기게 됐다.
남자 새끼들만 있던 전화번호부도 어느덧 핑크빛으로 뿜뿜거리는 여자들 이름으로 가득 찼다.
말 그대로 역전되어 버린 이 상황에 얼떨떨한 거다.
돈을 어디에 써야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지금 당장 이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았으나 원래 첫 월급을 받으면 자신을 위해 투자하라고 들었다.
잠시 짬이 나는 시간이라 카운터에 서서 돈 쓸 궁리를 행복하게 하고 있는데 문득 신이설이 눈에 들어왔다.
“실장님.”
“예, 예? 아, 아닌데요?”
“네? 뭐가요?”
“그런 생각한적 없다고요.”
“뭔 생각? 저 아무말도 안하고 실장님 부르기만 했는데요?”
내가 이상하다는 눈으로 쳐다보자 신이설이 얼굴을 금세 붉히며 손사래쳤다.
“아, 뭔데요. 뭔데 이렇게 뜸을 들여. 얼른 말해요. 나 바쁘니까.”
하. 방금까지 멍 때리고 있었던 주제에 바쁘긴 뭐가 바쁘다는 건지. 여자는 패지 말자, 준현아. 여자는 육봉으로 패는 거야.
나는 깔끔하게 신이설을 제치고 이연두에게 물어보기로 마음 먹었다.
“아니에요. 바쁘시면 일 보세요.”
“윽! 아니, 나 이런거 꺼림칙해서 그냥 못 넘어가지. 말해봐요. 무슨 얘기하려고 했는데요. 내가 실장으로써 들어줄게요. 실장으로써.”
괜찮다고 몇 번을 말했는데도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신이설이 서아보다 더한 찰거머리라고 생각했다.
결국 나는 신이설에게 고민거리를 털어놓았다.
“이번에 커미션을 받았잖아요? 근데 큰 돈을 만지는 건 너무 오랜만이라 이걸 어디에 써야할지 모르겠어서...”
“얼마였죠?”
“2천... 좀 넘죠?”
“2천!”
신이설은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눈을 크게 떴다.
“예상은 하고 있었는데 2천이라니... 그것도 커미션만... 준현쌤 완전 부자되겠네요. 부러워라.”
“...”
“아참... 그래요, 돈 어디에 쓰는지 그게 고민이었죠? 그거라면 내가 해결해줄게요. 그 돈 전부 나한테 기부해요.”
“... 쓸데없는 소리할거면...”
“아, 아! 알았어요. 알았어! 진짜... 내가 이렇게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간곡하게 부탁하면 할 수 없지. 원장님!”
“어, 어?”
신이설은 지나가던 최원재를 향해 빽하고 소리질렀다.
“지금 뭐하세요?”
“나 할거 없어서 그냥 퇴근할까 생각했는데?”
“잠깐 카운터 좀 봐요.”
“뭐, 뭐? 야, 야! 너 미쳤어?”
“흥... 미쳤는지 어쨌는지는 이유를 들어보셔야죠. 준현쌤이 고민이 있는데 신실장한테 털어놓고 싶다고해서 잠깐 마실 좀 나갔다 올거예요.”
시발. 신이설은 잠깐 못 본 사이에 능구렁이가 되어버린 건가.
아니면 능구렁이가 신이설로 둔갑이라도 한 건가.
“어, 그래. 그럼 그렇게 해.”
원장은 또 왜 이렇게 쉽게 납득을 하는 거냐고.
신이설이 내 팔꿈치를 꼭 잡고 나가서 엉겁결에 그녀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나가기 전에 최원재가 뒤쪽에서 소리질렀다.
“언제쯤 들어오는데?”
“퇴근 시간 맞춰서 올게요.”
“야, 이 미친년아!”
계단을 내려가면서 신이설은 키득키득거리며 웃었다.
“아하핳. 아, 원장님 욕하는거 너무 오랜만에 듣는다. 후... 웃겨.”
“저... 어디 가시려는 건데요?”
“돈 쓰고 싶다면서요?”
“네.”
“그럼 일단 밖으로 나가야죠.”
신이설은 멈춰서서 나와 마주 섰다.
내가 워낙 키작남이라도 신이설에 비해 그렇게까지 작지는 않다. 살짝 올려다보는 위치에 선 신이설은 내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다정스럽게 쓰다듬었다.
시발, 뭔데 설레지?
커다란 눈과 땋아올린 똥머리, 시크하게 입은 룩과 무심한 듯 다정한 손길에 왈가닥 신이설이라도 예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머리부터 해야겠네요.”
“머, 머리요?”
“비싼 돈은 아닌데 머리 스타일을 정해야 옷도 살 수 있는 법이죠. 준현쌤은 이마가 넓어서 포마드하면 잘 어울릴거 같긴한데. 지금까지 헤어스타일 신경 써본적 없죠.”
“네...”
“어이구. 그러니까 여자친구가 없지! 남자는 머리빨! 몰라요?”
남자는 머리빨? 진짜 머리털 나고 처음 들어보는 소리다.
내가 어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자 신이설은 나를 데리고 어디론가 계속 걸어갔다. 이러고 있으니까 말 잘 듣는 강아지가 된 기분이다. 신이설에게 손목을 잡혀서 쫄래쫄래 그녀의 뒤를 쫒았다.
그녀는 나를 남성 전용 미용실에 데려다줬다.
안에 들어가니 머리를 왁스로 바짝 올린 미용사가 인사를 했다.
“사장님. 이 짐승을 사람으로 만들어주세요!”
“오, 그럼 30일동안 마늘만 먹어야 되겠는데요?”
“하... 그러면 다행이게요. 진짜 이 꼴로 돌아다니는데 창피해서 못 봐주겠어요.”
“남자친구?”
“별... 무슨. 크흠. 잔말 말고 빨리 사람이나 만들어줘요.”
둘이 뭔 티키타카가 이렇게 잘 되나 했더니 여기 사장님이랑 최원재랑 막역한 친구 사이라서 종종 회식 때 사장님과 함께 얼굴을 비췄다고 한다.
두 사람은 내 머리를 두고 미주알고주알 수다를 떨어댔다.
“아무래도 포마드?”
“이 짐승이 관리를 잘 할수 있을까요?”
“포마드만큼 쉽고 편한 스타일도 없어요. 짧아서 그냥 넘기기만 하면 끝이니까. 10분도 안 걸릴걸요?”
“그럼 어떻게 관리해야되는지도 꼭 좀 알려줘요.”
“오케이.”
그 다음에 나한테는 일언반구도 안 하고 칙칙 분무기를 뿌린 다음에 바리깡을 들어 윙윙 옆머리를 밀어올리기 시작했다.
“자, 잠깐만요... 몇 미리예요?”
순간 군대 때의 악몽을 떠올리며 식겁했다.
“3미리입니다! 3미리가 넘으면 답답해서 자다가도 벌떡!”
시발, 뭐라는 거야?
나는 결국 이 남자 미용사에게 머리를 맡겼고 그들이 말하는 ‘짐승에서 인간이 되는 작업’을 했다.
“다 됐습니다.”
약 20분 쯤 걸렸을까. 머리를 감겨주고 세팅을 끝낸 뒤에 보여준 거울은 그저 어색하기만 했다. 셔츠에 넥타이라도 매야할 것처럼 느끼한 머리 스타일. 그런데 신이설은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좀 볼만 하네. 계산은 본인이 알아서 할거에요.”
“난 또 원재 사장님이 내주나 했네.”
“저 사람 돈 많아요. 삼일만에 2천만원 벌었어요.”
“와우 자주 뵙겠습니다, 준현 씨.”
“아... 예...”
나는 떨떠름하게 인사하고 미용실 밖으로 나갔다.
“자, 이제 진짜 본격적으로 돈을 써볼까요?”
신이설은 신이 났는지 백화점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여전히 내 손목을 잡은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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