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9화 〉 70화 (69/173)

〈 69화 〉 70화

* * *

‘어이가 없네.’

­ ‘제2의 기적의 손’ 강준현 테라피스트 : 신용섭은 카이로프라틱을 빼면 나한테 상대 안돼.

내가 언제 저런 식으로 인터뷰를 했다는 건지 모르겠다.

이거 고소감 아니냐고.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도저히 참지 못하고 맨즈케어 이정필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 어우! 대스타님! 이렇게 다 전화를 주시다뇨. 제가 먼저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요.

“대체 이게 무슨 짓입니까?”

­ 하하. 우리 강 테라님 많이 놀라셨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주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으니까요.

진짜 경우없는 양반이었다. 나는 적어도 이정필이 당황할줄 알았는데 그는 태연하게 말을 해왔다.

­ 우리 강 테라님을 대스타로 만들어주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거든요.

이정필은 말끝을 속삭이듯 말했다.

­ 구소민 씨도 함께 도와줄 예정입니다.

그러고보니 구소민이 옆자리에 없었다.

어제 인터뷰가 끝나고 집에서 간단하게 맥주 한잔 한 다음, 저녁부터 새벽 2시까지 거친 섹스를 즐겼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온데간데 없었지만.

­ 지금 구소민 씨가 바로 옆에 계시거든요!

“예? 소민이가요? 하, 진짜... 대체 뭘 어쩌시려는...”

­ 헤헤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앞으로 돈 벌 일만 남으셨으니까요.

“아니, 그러니까 뭔지는 알아야 하는거 아니냐고요.”

­ 오오... 그렇죠. 준비하실 게 있긴 하죠. 신용섭 씨가 꽤 많이 화가 나신 모양이니까요.

“아이... 진짜. 그러니까 인터뷰를 왜 그렇게 왜곡하시냐고요.”

­ 신생 스타를 위한 일이었습니다. 하이고, 강 테라님 진짜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르시네. 스타 만들어주는건 우리 전문이니까, 강 테라님은 딱 지켜보고 계시면 됩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이 있잖아요?

얘기를 들어보니 조금은 이해가 됐다.

가장 빨리 이름을 알리는 길은 이슈를 만드는 거다.

지금 기적의 손이라고 불리는 신용섭은 연예계에서는 뜨거운 감자로 통한다.

건강을 중요시 여기는 현대인들의 주요관심사가 아무래도 마사지나 도수치료같은 쪽으로 쏠려 있다고 한다. 그래서 신용섭이 간간히 연예계 쪽에 섭외가 된다고. 등장할 때마다 반응도 좋고 시청률도 좋고 검색어 순위에도 항상 올라가서 PD들의 1등 섭외대상이라고 한다.

문제는 신용섭이 방송 외적으로 하도 인기가 많아서 섭외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하는데 잠자는 신용섭의 코털을 건드릴 건수가 필요했다는 거다.

맨즈케어와 관련된 방송 중에 하나가 연예인들이 달리기를 하면서 각종 게임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그쪽에 나와 신용섭 두 사람을 동시에 등장시켜 이슈몰이를 할 생각이라고 한다.

근데 왜 하필이면 거짓말로 그걸 하느냐고 계속 물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한결 같았다.

연예계가 다 그렇다. 메스컴은 대결구도를 좋아하고 디스전을 좋아한다고 한다.

‘후, 어쨌든 이름을 알릴 수 있다는 거지.’

사실 그렇게까지 나쁜 스토리텔링은 아니었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이름이 알려지면 좋다. 대국민적으로 쌍욕을 먹을 일만 아니면 된다는 얘기다.

나는 조금씩 이정필의 말에 감화되고 있었다. 그는 너스레를 잘 떨었고 내 비위를 아주 잘 맞춰줬다.

시발, 보험가입하라고 하면 몇 개든 들어버렸겠는데.

나는 눈 뜨고 코 베이는 느낌으로 그의 말을 들었다.

“알겠습니다...”

­ 하핫! 강 테라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실줄 알았습니다. 그럼 저는 마무리 미팅을 하겠습니다. 아! 물론 강 테라님 스타 만들기 프로젝트에 대한 미팅입니다!

“... 알겠다고요. 알겠으니까.”

­ 넵!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 뿅!

내가 잘못 들은건가? 뭐? 뿅?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온다.

나는 떨떠름하게 휴대폰을 이불 위에 내던졌다. 무거운 어깨를 그대로 뒤로 넘겨 침대 위에 털썩 누웠다.

분명 당한거 같은데 왜 자꾸 입술이 씰룩거릴까. 내 인생에서 이렇게까지 관심을 받았던 적이 없었다.

나는 벌써 궁금해져서 방금 던진 휴대폰을 들어서 카톡창을 확인했다.

무려 300개가 넘는 문자가 부재중이었다.

­ 쌤~ 잡지 봤어요! 완전 멋있던데요? 근데 신용섭은 누구예요?

­ 출근 좀 일찍일찍 하시죠? 몇 번째야 이게. 에이스면 다예요? 잡지에 나오면 다냐고요.

­ 야! 신용섭한테 뭔 소릴한 거야? 너 미쳤어!?

­ ♥♥♥♥♥♥

­ 강 테라님... 나한테 욕 박으면서 보지도 같이 박아줘... 나 진짜 너무 절실해

­ 오오~ 쌤 완전 대박났네요. 축하해요. 앞으로 꽃길만 걸으시길.

­ 강준현 씨, 축하 기념으로 우리 술집 놀러와요. 다음번엔 혼자 와서 전에 놀았던 애랑 같이 놀아요.

­ (사진이 도착했습니다.)

­ 쌤! 쌤! 완전 대박! 나 지금까지 누구한테 마사지 받았던 거야?

­ 대박사건 대박사건 잡지 보셨어요? 인터뷰한다더니 이런 내용이었구나. 근데 신용섭 씨한테는 개인적인 원한 같은거 있으세요?

하아... 진짜 어이가 없네.

신용섭 얼굴도 모르는데 뭔 신용섭이야.

근데 바로 그때 내 눈에 확 들어오는 미확인 문자가 있었으니 다름아닌 한서연이었다.

­ 한서연 : 안녕하세요, 선생님. 지난번에 방문하셨던 한서연이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선생님을 다시 뵐 수 있을지 궁금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덧붙여서 말씀드리자면 호두가 선생님을 너무 보고싶어하는거 같아요. 이건 제 예감이지만요.

나는 한서연의 문자를 보면서 끝내 절제했던 입꼬리가 쭈욱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자기가 매달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호두를 들먹이는거 같은데 꽤나 귀엽게 생각됐다.

그러다가 불현 듯 한서연의 비밀의 방이 떠올라서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니, 정신을 차리기 위해 스스로 귀 싸대기를 날려야 할 정도였다.

‘미쳤어. 미쳤어. 그 년은 미친년이야.’

비밀의 방에 있었던 수갑들과 채찍 그리고 밧줄들... 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진 정사의 흔적들. 한서연은 섹스에 미친 여자가 확실하다. 그것도 자기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저택에서 그 짓거리를 하고는 문도 잠궈두지 않았으니 미친년이라고 확신했던 거다.

무엇보다 집사를 데려다가 때리고 괴롭히면서 정액을 뽑아냈을 걸 생각하면 정말이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거다.

근데 그러면서도 한서연은 거부할 수 없는 여자였다.

일단 돈이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온나 예쁘다.

앞서 설명했듯이 평균 점수를 웃도는 외모를 갖고 있는 그녀였기에 머릿속에 맴도는 알몸 뒤태가 지울래야 지울 수가 없는 거다.

나는 곧바로 한서연에게 답장을 보냈고 조만간 보기로 얘기를 맞췄다.

‘그래, 섹스만 하지 않는 거야. 집사 말마따나 업무 외적으로까지만 넘어가지 않는 거야!’

나는 굳은 결심을 갖은 채 샵으로 출근했다.

그리고 출근하자마자 최원재와 독대를 해야 했다.

그는 나를 비어있는 VIP룸 중 하나에 데려다놓고 마주 앉았다.

“너 미쳤어? 신용섭이 누군지 알고 그랬어?”

“그러니까 아까도 말씀드렸잖아요. 제가 한 말이 아니라니까요.”

“너가 뭔가 건덕지를 줬겠지. 그 잡지사가 미쳤다고 있지도 않은 소리를 했겠어?”

“하...”

내가 이정필 앞에서 신용섭 이름을 꺼낸 게 잘못이지.

자기가 너무 다그쳤다고 생각했는지 최원재는 스스로 숨을 깊게 들이마셔 안정을 취한 후에 내게 말했다.

“아무튼 앞으로 바빠질 거야. 그건 알고 있지?”

“네. 알고 있습니다.”

“신용섭 지인한테 전화가 왔었어. 조만간 여기 방문할 거래. 근데 신용섭 그 양반이 워낙 장난을 좋아해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몰라. 선발대를 보낼 수도 있는 거고.”

“선발대요?”

“자기가 직접 오지 않고 제자나 주변 사람을 대신 보내는 거지. 마사지 실력을 보고 싶으면 여자 중에 하나를 보내겠지. 여기가 여성전용 샵이니까.”

“아... 설마 그렇게 치밀한 짓을 하겠어요? 들어보니까 자존심 꽤 강한 사람이라던데.”

“그러게 말이야. 그런 자존심 강한 사람을 왜 건드렸어? 내가 듣기에도 그래. 그 새끼 완전 사이코야. 지 능력 믿고 깝치는 종자 중에 하나라고.”

나는 최원재가 이토록 이성을 잃고 말하는 모습을 처음 봤다.

말은 저렇게 해도 은근히 신용섭과 나의 대결이 기대되는 모양이다.

“아무튼 그 새끼가 와서 뭔 짓을 할지 모르니까 단단히 준비해놔.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잖아? 그러면 하이에나 마냥 물어뜯을 거야.”

내가 멀뚱멀뚱 있자 최원재가 말을 이었다.

“네가 먼저 공격한 이상, 그 놈이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는 거야.”

“앞으로 절 찾는 고객님들은 의심을 해봐야겠네요.”

“뭐 어쨌든 모든 고객들한테 최선을 다해야 하는건 사실이니까, 별로 달라질 건 없겠지만. 건수 주는 일은 만들지 말어.”

“네, 알겠습니다.”

최원재는 내가 신용섭을 이기길 바라고 있었다.

애초에 내가 ‘기적의 손’이라고 생각했던 건 최원재가 최초였으니까. 자신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이기길 바랄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그의 기대를 져버리고 싶지 않다.

그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최원재와의 독대가 끝나고 내가 카운터로 가자 신이설이 자기 휴대전화로 전화를 받으면서 두 번째 전화를 가리키며 제발 좀 받아달라고 손짓을 했다.

전화를 받자마자 이 사태의 원인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바로 나였다.

­ 강준현 선생님 계시죠? 제2의 기적의 손.

맑고 청아한 목소리. 아나운서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또박또박한 말투였다.

“네, 제가 강준현입니다.”

­ 어맛! 진짜요? 저, 저 진짜 급한데 예약 좀 잡아주세요. 그, 그... 하반신 마비 온 분을 일으켜 세웠다는 말이 사실이죠?

두서없이 아무렇게나 말하는 모습만큼은 바보가 따름 없었다. 언제 또박또박 말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서둘러서 말하는 모습이 정말 급하긴 급한가보다.

“네... 맞긴한데요. 인터뷰 내용을 그대로 믿으시면 곤란...”

­ 제발요! 저 진짜 급해요!

“무슨 이유 때문에 그러시죠?”

나는 그녀가 중대한 병을 앓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 허리가 좀 틀어졌는데 병원에서 디스크 증상이라고 하더라고요!

“...”

시발. 디스크 증상 정도는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 이상은 있겠다.

나는 스케줄을 잡아주고 그 이후에도 몇 개의 오퍼를 받았다. 전부 시시껄렁하고 사소한 디스크나 가벼운 틀어짐 정도에 대한 얘기였다.

그러니까 요는 이랬다. 내가 잡지에 등장한 것도 등장한 거지만, 아무래도 이슈가 있기 전에 나라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 모양이다. 더불어 요새 디스크나 뒤틀림 증상이 있으니까 치료도 하면 좋으니까 괜히 예약을 하는 거다.

실제로 마사지가 얼마나 비싼지 알면 다들 깜짝 놀랄 거다.

신이설이 말한대로 하면 내 마사지의 가격은 무조건 VIP 마사지 중에서도 스페셜 마사지 가격으로 책정이 될 것이며 기존 가격에서 30% 이상 비싼 가격이라고 했다.

심지어 원장인 최원재보다도 높은 금액이었다.

뭐, 디스크고 나발이고. 일단 선착순으로 예약을 전부 채워놨으니 VIP 고객을 늘려볼까.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상당히 고된 하루가 될 예정이었다.

첫 고객이 입장한 이후부터 입과 손을 한번도 쉬지 않고 일에 착수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