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 6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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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피곤했는지 집에 들어가자마자 씻고나서 바로 곯아 떨어졌다.
문제는 일어났을 때, 이미 오후 3시가 넘었다는 거다. 옆에서는 휴대폰이 미친 듯이 울리고 있었다.
나는 발신인도 확인하지 않고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누, 누구세요?”
왜 이제 전화를 받아요! 준현쌤 미쳤어요?
빽빽대는 게 딱 신이설이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잠깐 휴대폰을 멀리 떨어트렸다가 다시 귀에 댔다.
“하... 어제 늦게 들어와서 잠을 못 잤어요.”
뭐, 뭐야? 왜 이렇게 당당해요? 참내 어이가 없네. 이제 에이스 됐다고 눈에 보이는 것도 없는 거예요?
“아니, 뭐 그런건 아닙니다. 준비해서 출근할게요.”
잠깐, 잠깐! 아직 끊지 말아봐요. 할 얘기 있으니까.
신이설은 수화기 너머로 목을 가다듬었다.
대체 뭐길래 이렇게 시간을 끄는거지 싶었다.
혹시 요 며칠 간 시간 내달라고 했던 게 구소민 씨 아버님 때문이었어요?
‘응? 어떻게 그 사실이 신이설에게까지 전해졌지?’
나는 의아해하면서 대답했다.
“네... 그런데요?”
어휴. 그러면 그렇다고 말을 했어야죠. 아까 구소민 씨한테 전화왔는데 난리도 아니에요. 맨즈케어라는 잡지사 알죠?
“... 네. 남성 건강 잡지사 아닌가요?
응응. 거기서 준현쌤을 인터뷰하고 싶어하더라고요. 구소민 씨가 힘 좀 써주신거 같던데.
“엥?”
나는 잠결에 머리가 몽롱했던지라 사태가 빠르게 파악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바보처럼 말했더니 신이설이 답답했는지 더 설명해줬다.
그냥... 아무것도 묻지 말고 구병훤 씨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가보세요. 그쪽에서 두 사람 동시에 인터뷰를 진행할 모양이에요. 하, 진짜 에이스는 에이스라 뭐라고 하지도 못하겠네.
“아니, 그게 무슨... 그럼 오늘 출근하지 말라고요?”
출근이 중요해요? 그리고 그건 그거고 구소민 씨가 준현쌤 앞으로 천만원짜리 VIP 계약금 걸어놨어요. 뭐, 이 정도는 들어서 알고 있겠지.
“뭐요? 처, 천만원?”
못들었구나. 예예, 천만원. 근데 이거 계약금 일부에요. 얼마 결제할지는 두분이서 상의하세요. 아주 그냥 원장님이랑 둘이서 부자되시겠어요~ 예? 구소민 씨가 그러더라고요. 며칠 샵 비우셔서 원장님한테 혼날까봐 계약금 미리 걸어두셨대요~ 진짜 좋은 VIP 고객이죠? 하하.
나는 구소민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렇게 예쁜짓을 하다니. 역시 예쁜 사람은 하는 짓도 예쁜 모양이다.
그나저나 구병훤이 있는 쪽으로 바로 출근하라니. 인터뷰 일정도 잡지 않고 나더러 그쪽으로 출근하라는걸 보면 잡지사 스텝들이 이미 그쪽에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나는 후다닥 일어나며 신이설에게 말했다.
“저 빨리 나갈 준비할게요!”
아, 아니... 자, 잠깐..!
뚝.
나는 신이설의 말을 더 듣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그래놓고 샤워를 하면서 씩 웃고 말았다.
이제 슬슬 내가 갑이되고 있다. 내 인생에서 내가 갑이었던적이 있었던가. 알바를 하더라도 사장 눈치보고 1분이라도 지각하면 잘릴까봐 전전긍긍했던 밑바닥 인생은 이제 끝났다.
앞으로 내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일만 남은 거다.
그로부터 2시간 정도 흐른 후, 나는 구병훤이 있는 병실에 입장할 수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깜짝 놀랄만한 요인이 여러 개 있었다.
일단 유럽에 있어야할 구소민이 이곳에 있었다는 것. 그리고 나와 섹스했던 병실 담당 간호사가 그녀와 함께 앉아있다는 것. 그리고 촬영 스텝이 다섯명 정도 앉아 있었다. 구병훤은 목발을 짚고 서 있었다. 그가 목발을 짚고 재활운동을 하는건 본적이 있어도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서 있는 걸 본적은 없었다.
“강준현 씨!”
가장 먼저 날 반긴 사람은 다른 사람도 아닌 맨즈케어 측이었다.
“와주셨군요. 오늘 오시기 힘들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요. 저는 오늘 인터뷰를 맡은 스텝팀장입니다.”
“아, 예...”
“강준현 씨가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병원 측에서도 할 수 없었던 일을요.”
“아닙니다. 병원 측에서 재활운동을 열심히 시켜준 덕도 있습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마사지를 해드렸을 뿐입니다.”
“그런 말씀을 하시기엔 다른 분들의 진술내용이 너무 다른데요. 여기 계시는 구소민 모델님이 얼마나 칭찬을 많이 하시던지. 그쪽을 마치 ‘메시아’인 것처럼 말씀하시더라고요.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 아참! 마사지사라고 하셨으니까 ‘기적의 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예전에 한번 이슈가 된적이 있었죠. 그분은 마치 도인같은 분이셨는데요. 강준현 씨는 엄청 젊으시네요! 하하!”
스텝팀장은 뭐가 그렇게 웃긴지 혼자 연달아 말하곤 시원하게 웃어제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스텝들도 장비를 든 채로 크게 웃었다. 나 역시 그들을 따라서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겸손하자. 겸손하자! 상대는 메스컴이야!
“병원의 힘을 무시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아, 물론입니다! 아이고..! 나도 정신이 참! 그런 종류의 매도를 할 생각은 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하하!”
젠장, 아무래도 이상한 사람한테 잘못 걸린 것 같다.
나는 그와 인사를 끝낸 후에 구소민 쪽으로 걸어갔다.
“소민아, 유럽에서 볼 일은 다 끝난 거야?”
“아직 끝난건 아닌데 이런 희소식이 있다고 말하니까 갔다 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계약은 마쳤어요. 당분간 유럽에서 지내야 할 것 같지만.”
“계약금 걸어뒀다는 얘기도 들었어.”
“... 쌤한테는 너무 고마운 마음이 가득해서요. 계약금도 많이 받았고 은혜도 갚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너무 주제 넘었나요?”
“아니! 주제 넘었다니. 생각지도 않았는데 고마울 따름이야.”
나는 그녀를 향해 싱긋 웃어줬다. 그리고 곁눈질로 옆에 앉은 간호사를 쳐다봤다. 그녀는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을 앞에 둔 여자처럼 야망의 눈을 뜨고 날 쳐다봤다.
다행히 간호사가 이상한 소리를 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나는 그녀를 애써 외면하고 목발을 짚은 구병훤을 봤다.
“아버님은 좀 어떠세요? 걸을만 하신가요?”
“덕분에요. 이렇게라도 보답을 할 수 있을까요? 정말 어떻게 이 은혜를 갚아야할지 모르겠어서.”
“보답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닌걸요. 건강하게만 살아주시면 제 마음이 뿌듯할 것 같습니다.”
“아이고... 말씀도 이쁘게 하셔라... 그래서 제 딸은 언제 데려가시나요?”
구병훤이 장난스레 웃자 옆에 있던 구소민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아, 아빠!”
“하하하. 장난이다, 장난. 뭘 그렇게까지.”
“선생님이 불편해 하시잖아.”
진짜 불편해 보이는건 옆에 있는 간호사였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내게 섹스 시그널을 보내고 있었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여자들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섹스 어필을 하는구나 싶었다.
우리가 반가운 재회를 하고 있는데 맨즈케어의 스텝팀장이 내게 와서 말했다.
“자, 자! 그럼 인터뷰를 시작할까요?”
“네, 그러시죠.”
스텝팀장의 이름은 이정필이라고 했다.
이정필은 세상 낙천적인 사람처럼 흥얼거리며 볼펜을 끄적끄적거렸다. 원래 인터뷰어들이 다 이렇게 세상 즐거운건가 싶을 정도로 흥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는 몇 가지 질문을 했고 나는 차근차근 대답을 했다.
요새 임기응변할 일들이 많아서 순발력이 꽤 단련됐다. 내가 생각해도 꽤 잘 대답을 하고 있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구병훤 씨의 병을 낫게 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나요?”
“확신을 갖었다기 보다는 최소한의 도움을 줄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름의 노하우도 있고 사람들을 도와주는걸 워낙 좋아했던 터라서요.”
“직업정신이 정말 투철하신 것 같은데 이 일을 하시기 전에 그 어떤 보상도 원하지 않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정말 존경할만한 부분이 많으십니다. 아마 이 인터뷰를 본 많은 분들에게 연락이 닿을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이 전국 곳곳에 많이들 계실 겁니다. 그런 분들을 전부 케어하실 수 있을까요?”
“전부 케어하는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제 손이 두 개 뿐이라서요.”
나는 두 손을 들여보이며 웃어줬다.
역시나 이정필은 또 기분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러다가 또 다시 돌변해서 진지한 대답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아주 궁금했던 부분이 있는데요. 이건 아마 모든 사람들이 다 궁금해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거죠?”
“바로 ‘기적의 손’에 대한 질문입니다. 혹시나 강준현 씨가 예전에 유명했던 그 도인 같던 분의 제자일지에 대한. 혹시 그 분을 알고 계시나요?”
나는 이 질문에 대해서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아뇨. 전혀 모르는 분입니다. 그 분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조차도 모르는 걸요.”
“아, 그러시군요. 그렇다면 혹시 신용섭 씨에 대해서 알고 계시나요?”
아. 신용섭이라면 최원재가 말했던 카이로프라틱을 중심으로 마사지를 하는 최고의 마사지사. 그가 제2의 기적의 손이라고 불린다고 들었었다.
“이름만 들었습니다.”
“그래요? 의외네요! 이 분야에 있어서 그 분을 연구하지 않는 분이 없을 정돈데요. 속세에 나온 도인이라고 할까요?”
이상했다.
나는 아까부터 도인에 대한 질문이 나왔을 때부터 이상한 기류를 직감했다.
뭔가 분위기가 다르다고 할까.
대체 이정필은 내게 뭘 원하길래 이런 질문을 하는 걸까.
본론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드러났다.
“그럼 마지막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신용섭 씨와 본인 중에 누가 더 ‘기적의 손’에 가깝다고 생각하시나요?”
“예?”
하도 어이가 없는 질문이라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거였구나. 그러면 그렇지. 맨즈케어에서 아무 생각없이 날 섭외하지 않았을 거다.
시발.
메스컴을 통해 나와 신용섭을 붙게 만들 작정이구나. 세상은 언제나 일등을 원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나는 내 위치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신용섭같은 베테랑과 나를 비견할 수는 없었다. 물론 나의 초능력 덕에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었지만 이번에는 한풀 꺾는게 좋겠다 싶었다.
“신용섭 씨한테 마사지를 배우고 싶습니다. 특히 카이로프라틱이요. 어디서나 쉽게 배울 수 있는 능력은 아니잖아요?”
인터뷰는 그렇게 끝났고 다음날 맨즈케어 잡지에 내 멘트가 이렇게 실렸다.
‘제2의 기적의 손’ 강준현 테라피스트 : 신용섭은 카이로프라틱을 빼면 나한테 상대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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