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68화
푸르딩딩했던 구병훤의 다리는 어느덧 약간은 물 빠진 푸른색을 띠기 시작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 그는 병원에서 제공해주는 도수치료를 받는 중이었다.
“크흑... 으...”
구병훤이 조금씩 다리를 움직이는 걸 확인한 치료사가 놀라서 이렇게 말했다.
“환자분... 몸이 많이 나아지셨네요... 놀라워요.”
“그, 그런가요?”
구병훤 본인도 놀란 모양이다. 이전에 안 되던 자세가 되는 거다. 예전에는 발을 바닥에 가져가기만 해도 허리쪽이 욱신거렸는데 이제는 무릎에 힘이 조금 들어가니 꽤 버틸만 하기도 했다.
그와 동시에 고개를 들어 기다리고 있는 나를 보니 구소민이 이곳에서 날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구세주를 보는 눈빛이다.
“신이시여...”
말 그대로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구병훤이 의사와 상담을 하고 오는 동안, 병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 나타났고, 간호사가 그를 눕히고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손을 잡기도 전에 구병훤이 내 손을 덥썩 잡았다.
“아이고...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할지...”
이전과는 전혀 상반된 반응. 이게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반응이다. 기적을 본 사람은 겸손해지기 마련이다.
“아직 좀 남았습니다.”
“... 선생님... 이미 해주실만큼 많이 해주셨습니다. 앞으로는 제가 노력해야죠.”
“아뇨. 처음에 제가 말씀드렸던 대로 병훤 씨가 자리에서 일어나게 해드릴 겁니다.”
구병훤에게는 지금 상태도 감지덕지다. 아예 바닥에 발도 가져다대지 못할 정도였는데 지금은 재활 트레이닝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할 수 있는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걸어다닐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여전히 생활은 불편했고 누군가 수발을 들어야만 볼 일을 볼 수 있으니까.
인간에게가장 치욕스러운 게 그것이다. 똥오줌을 받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
나 역시 그런 구병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이대로는 만족스럽지 않다.
그건 나 역시 그렇다.
애무를 하는데 젖꼭지만 빨고 만 느낌이랄까.
구병훤은 이제 내 말이라면 뭐든지 굽신굽신이다.
그도 그럴게 내가 병 간호 목적으로 몇 시간을 붙어 있었으니까.
친족조차 하지 못할 일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거다.
이 정도면 시발, 나라에서 상이라도 줘야하는거 아니야?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계속해서 치료 작업에 착수했다.
간혹가다 간호사가 이상하게 쳐다보더라도 그냥 주물러주는 거라고 얘기하면 될 일이다. 어떤 관계냐고 물어보면 사위 될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제 구병훤은 진심으로 내가 사위가 되길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 담당 간호사가 바뀌었고 그녀가 내게 환자분과 어떤 관계냐는 질문을 들었을 때, 나는 앞선 설명을 끝낸 후에 이렇게 말했다.
“제가 마사지사라서요.”
왜냐하면 간호사가 예뻤으니까.
간호사에 대한 성판타지가 없는 건 아니다. 사실 내가 원하는 관계는 내가 환자인 경우이긴 하지만, 아무튼 간호복을 입고 있는 여자는 언제나 옳다. 긴 생머리를 어쩔 수 없이 뒤로 땋아 올리고 순백의 피부에 호리병같은 몸매라면더할 나위 없다.
간호사들 중에는 출세를 위해 의사들을 꼬시려고 치장을 하는 부류가 있다.
이번에 새로 이 호실을 담당하게 된 이 간호사도 그런 부류에 속하는지 화장을 예쁘게 하고 립스틱도 은은하게 발랐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섹스럽고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그렇다.
이제는 구병훤의 몸상태가 슬슬 한눈을 팔아도 될 정도에 이르렀다.
실제로 그가 아침 일찍 재활 트레이닝을 하고 왔을 때, 상황이 약간 호전되어 있기도 했다. 굳이 내가 손을 대지 않아도호전될 정도라면 이제부터는 한눈을 조금 팔아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이 병원에 그래도 눈도장 찍어놨는데 정액도장도 하나 찍어둠직하지 않을까.
생각보다 간호사를 꼬시는건 쉬웠다.
일이 힘든 그녀들을 꼬시기 위해선 종아리 몇 번 주물러주는 것과 입을 몇 번 털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렇게 3~4시간 정도 공을 들인 결과, 병원 변두리에 위치한 한 창고에서 낯 뜨거운 섹스를 즐길 수 있게 됐다.
“하아..! 하악..! 하아악..!”
“소리 너무 지르는거 아니에요? 들키면 어쩌려고.”
“들키라고 해요. 하아... 나 진짜 너무 좋아서 아무 생각도 안 나니까.”
콘돔 챙길 시간도 없어서 급한데로 허겁지겁 박았는데 아무런 거부반응이 없다.
전에 박유영이 그랬지. 위험하면 바로 콘돔을 씌웠을 거라고. 그럼 안에다 잔뜩 싸질러도 되는 각 아닌가.
퍼억- 퍼억- 퍼억- 퍼억-
나는 마음대로 따먹은 다음에 좆물도 안에 마음껏 싸제꼈다.
얼마나 격하게 박음질을 해줬는지 그 자리에서 풀썩 쓰러지는 간호사. 나는 축축하게 젖은 고추를 그녀의 옷에 아무렇게나 닦은 다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창고를 빠져나와 다시 구병훤이 있는 병실로 돌아왔다.
“어디 다녀오셨어요?”
구병훤이 눈을 꿈벅거리며 묻는다. 날 의심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고 정말 궁금해서 하는 소리다.
“잠깐 외식 좀 하고 왔어요.”
거짓말은 아니니까.
병원밥을 먹을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병훤 씨,아니... 이제 아버님이라고 불러도 돼죠?”
“그럼요!편하신대로 불러주세요.”
“요즘 통 소민 씨가 안 보이네요? 무슨 일 있대요? 연락은 되시는건지...”
내가 묻자 구병훤은 눈을 새초롬하게 떴다.
“제 딸이 걱정되시는 거군요?”
“아... 예, 뭐. 연락이 통 안 돼서요.”
“소민이 지금 계약하러 유럽에 갔어요.”
“네?”
나한테 말도 안 하고?
구병훤은 씩 웃었다. 자기 딸만 생각하면 자랑스러워 어쩔줄 모르는 딸바보 아빠의 모습 그대로였다.
“꽤 괜찮은 브랜드에서 제의를 해온 모양이예요. 원래는 저 때문에 해외에 나가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선생님이 계시기도 하고 몸이 많이 호전됐다고 하니까... 마음 편히 다녀오라고...”
구병훤은 울음이 북받쳐 올라왔는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나는 들어봤는데 어딘지 모르긴 하겠던데... 하하... 지금까지 짐 됐던거 생각하면참...”
대충얘기를 들어보니 유럽의 하이엔드 브랜드는 아니고, 바로 산하에 있는 브랜드 정도는 되는 모양이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1류를 위해서는 그 전 단계를 밟아야 하는 법이다. 지금의 나처럼.
“아버님, 잠시 열이 확 올라오실 겁니다.”
“아, 예.”
딱딱한 덩어리 하나를 또 벗겨내는데 성공했다.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다. 하루만 더 고생하면 모든 푸른점을 제거할 수 있을 듯했다.
사실 하루가 아쉬운 상황인지라 빨리 구병훤의 병을 낫게 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러나 나조차도 상상이 안 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어나지도 못했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서 걷는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절대로 상상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내가 정말구세주라도 되는 게 아닌 이상.
야밤에 땀이 뻘뻘 솟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마사지를 멈추지 않았다.
중간중간에 붉은점이 다닥다닥 솟아 오르면 그걸 제거하는 것도 하나의 일이었다. 차분히 단계를 밟지 않고가면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와중에 근육 경련이 몇 번 일어나기도 했다.
이게 말이 쉽지, 미치도록 어려운 일이었다. 하루종일 1mm 간격으로 지압을 하면서 다시 왔던 곳을 돌아가 반복하는데 노가다도 이런 노가다가 없다.
그런데도 입 안에서 침이 고이면서 더 하고 싶어졌다.
나의 능력은 내게 있어서 최고의 효율을 뽑을 수 있었다. 나는 어느순간 이 능력과 하나가 된 기분이었다.
“서, 선생님?”
“하아... 하아... 다 끝났어요. 다 끝났다고요... 후...”
“?”
끝났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몰랐던 구병훤은 잠결에 눈을 껌벅거렸다.
“이제 발가락을 한 번 움직여보세요.”
이전에는 발가락도 제대로 못 움직였던 구병훤이었다.
그는 내 말을 듣고 잠깐동안 발 끝에 집중을 했다. 이제 내 말이면 껌뻑 죽는 그였기 때문에 한치의 의심도 없었다.
참... 웃기는 일이다. 처음 봤을 때는 그렇게 못 믿겠다고 지랄염병을 떨더니 이제는 고분고분하다. 이게 대한민국 꼰대의 현실인가.
“으...”
구병훤은 한참을 집중하더니 마침내 땀까지 흘리기 시작했다.
비로소 이 병실에는 두 남자의 땀냄새로 진동을 하게 됐다. ㅅ발.
“어... 어?”
그리고 마침내.
구병훤의 엄지발가락이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그 동안 잠을 자고 있던 근육이 움직이기 시작한 거다.
“크흣..! 으...”
그는 발가락 한 번 까딱 움직이고는 다리 전체에서 통증이 피어오르는지 무릎 쪽을 부여잡고 한참을 씨름했다.
나 역시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몇 년을 이렇게 살아온 사람이 갑작스레 근육을 움직이는데 정상이라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후하... 후하...”
시간이 꽤 흐르고 구병훤이 마침내 숨을 깊게 내쉬었다.
다행이다.
모든 일이 잘 해결된 듯 보였다.
“움직여요. 선생님. 움직인다고요!”
이제는 다섯 개의 발가락을 차례대로 움직이면서 꼼지락거리는 구병훤. 그는 어린아이처럼 신이나서 외쳐댔다.
“소민이! 소민이한테 말해줘야겠어요!”
그리고 이전까지는 어떻게든 참았던 눈물을 펑펑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마음껏 움직이지는 못해서 움직임이 제한되었지만, 만약 움직임이 자유로웠으면 얼싸안고 춤이라도 출 기세였다.
“소민아! 소민아! 아빠 이제 움직인다. 움직여!”
- 아, 아빠? 무, 무슨 일이야?
스피커폰으로 들리는 구소민의 목소리. 얼떨떨한 목소리. 하지만 이내 말끝이 번쩍번쩍 올라갔다.
- 움직인다고? 이제 걸을 수 있는 거야? 아빠! 아빠... 흐엉엉... 아빠아...
하.
두 모자의 감격스러운 통화를 듣고있자니 내가 다 눈물이 난다.
‘기적의 손’에 한걸음다가간 느낌이다.
이것이 구소민이 나를 만남으로써 바뀌게 된 확고해진 미래.
이제 다시 구소민을 만나 키스를 하면 모든 게 확실해진다.
그 다음에는 한서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