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3화 〉64화 (63/173)



〈 63화 〉64화

“계약을 못했다고?”
“네.”
“이미경 님이 소개해준 사람이라 무조건 될줄 알았는데...”
“뭐, 그렇게 됐습니다.”

물론 나는 아직 한서연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와의 계약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한서연쪽이 내게 먼저 연락을 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최원재를 안심시키기 위해 말했다. 그는 에이스인 나를 다그칠지 말지 우물쭈물하는 중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원장님. 오늘은 실패했지만, 조만간 연락이 다시 올겁니다.”
“그래? 어떻게 그걸 확신하지?”
“감입니다.”
“감?”

최원재는 처음에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보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는지 어깨를으쓱하며 웃어보였다.

“그래. 뭐, 내가 준현이를 믿지 누굴 믿겠어? 들어온지 며칠 만에 에이스 등극해버렸는데.”
“하하... 에이스라뇨. 당치도 않습니다.”
“말씀 중에 죄송한데 얘기가 너무 지연되시는  같아서 잠시...”

옆에서 신이설이 끼어들자 최원재가 기꺼워하며 말했다.

“어. 얘기해. 이설 실장.”
“아, 아니... 준현쌤한테 볼 일이 있는거라서요.”
“아...그렇구나... 하하... 요즘 날 찾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어~”
“그만큼 준현쌤이 잘해주기 때문이겠죠.”
“컴플레인도 확 줄어들었고 이상해~ 역시 신입빨이 있나봐~”

최원재는 찐행복의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를 툭툭치더니 휴게실로 들어갔다.
신이설은 크흠하며 목을 가다듬은 후에 내게 말했다.

“혹시 구소민이라는 사람 알아요?”
“아, 예... 알죠.”
“그분이 예약을 잡아달라고 해서 잡아드렸어요. 오늘 스케줄 많이 비어있으시기도 해서.”
“아, 감사합니다. 좋아요.”
“대체 어디서여자들을 그렇게 데려오는 거예요?”

신이설은 의심이 가득한 눈을 떴다.

“무슨 뜻이죠?”
“왜, 그런 사람들이 꽤 있거든요. 이전에 일했던 곳 단골 손님을 데려와 놓고 마치 새로운 고객인 것마냥 위장하는 사람들. 나쁘다는 건 아닌데 나중에 그쪽 업체에서  나올 수도 있거든요.우리 직원이 그러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고.”
“저는 여기가첫직장입니다.”
“뭐, 그렇게말씀하시면 어쩔 수 없고요.”

신이설은 뭔가 다른 할 말이 있을 때, 꼭 무리수를 두는 소리를 하곤 했다.
나는 그런 신이설을 잘 파악하고 있었기에신이설을 떠보려고 말했다.

“혹시 나한테 할말 있어요?”
“네, 네? 무슨..?”
“아까 구소민  얘기할 때, 굳이  스케줄 비었다는 말을 강조하시길래요. 저한테 시간 내달라는 소린줄 알았죠.”
“하하! 하하하! 제가 왜 준현쌤이랑?”
“저 앞으로 스케줄 다 비는데 어깨라도 좀 주물러드려요?”
“네.”

엉겁결에 대답해버린 신이설은 갑자기 발작난 듯 고개를세차게저었다. 얼굴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주, 준현쌤이 워낙 실력도 좋고 그래서.”
“네, 알겠어요. 해드릴게요.”
“네? 아, 크흠. 네. 그럼... 연두쌤한테 잠깐 카운터 좀 맡아달라고 할게요. 아, 그리고... 고마워요.”
“뭐가요?”
“연두쌤이랑 되게 어색한 사이였거든요. 근데 지난번 일 이후로 부쩍 친해져서 말도 쉽게 건네고 볼때마다 인사도 잘 하거든요.”

사실 그 말이 하고 싶었던 거구나.
나는 수줍게 고맙다는 말을 빙빙 돌려 꺼내는 신이설을 다시 보게 됐다.
조금은 귀엽다는 생각도 했다.
호출을 받고 휴게실에서 나온 이연두가 날 발견하곤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준현쌤, 오늘 좀 늦으셨네요.”

베시시 웃는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방금 신이설에게 품었던 귀엽다는 생각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얼굴로만 따지면 이연두보다 예쁜 여자가 어디있을까. 한서연도 예쁘지만, 나이가 깡패인 법이다.

“하하, 오늘 일이  있어서.”
“실장님, 저 부르셨어요~”

전보다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로 신이설을 부르는 이연두. 신이설도 반갑게 맞았다.

“네. 저 잠깐 준현쌤한테 마사지 좀 받으려고 그러는데 카운터 잠깐만 봐주실수 있어요?”
“... 준현쌤한테요?”
“네.”
“... 알겠습니다.”

이연두의 얼굴은 신이설의 부탁을 받자마자급격하게 구겨졌다. 아니, 구겨졌다고 하기에는 표정관리를 그나마 잘해서  정도라는 것쯤은 눈치가빠르면 금방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무딘건지 어떤건지 신이설은 이상하다는 느낌이 전혀 없는지 카운터를 빠져나와 내게 손짓했다.

“VIP룸으로 가요.”

고개를 끄덕인 후에 이연두 쪽을 바라봤다. 그녀는 카운터에 서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내 눈에는  모습이 마치 내가 쳐다봤을 때, 눈을 안마주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또 두 사람 사이에 마찰이 생길까. 이연두는 나를 두고 질투를 느끼는 모양인데 글쎄, 신이설의 속마음은잘 모르겠다.
귀엽다, 이연두. 저런 허망한 표정이라니. 정말 날 두고 질투를 하는건가? 저렇게 예쁜 여자가! 심장 주변이 찌릿찌릿 울려댔다.
이연두는 전에도 느낀 거지만, 여자친구같은 느낌이 팍팍 든다. 그녀와 데이트할 때도 그랬지만, 그녀와 함께 있으면 풋풋한 감정이 두텁게 올라왔다. 속궁합도 잘 맞는 듯하고.
VIP실에 도착한 신이설은 가볍게 배드 위에 걸터앉았다.

“지난번처럼 가볍게 어깨만 주물러드리면 될까요?”
“아, 예... 뭐... 아니면, 다른것도 해줄 수 있어요?”
“어디 해드릴까요?”
“사실 제가 이쪽 쇄골쪽이 며칠 전부터 찌릿찌릿하면서 좀 아프더라고요. 뭔가 문제가 있는게 아닌가해서.”
“문제가 있는 거라면 번지수 잘 찾아오셨네요. 제가 사실 그런 쪽으로 전문이거든요.”
“아, 그래요! 맞아! 이상해...”

신이설은 갑자기 횡설수설을 했다.

“네?”
“맞잖아요! 일하는데가 여기가 처음인데 어디서 경험을 쌓으신건지... 원장님한테 들어보니까 다방면으로 도움을 주신다면서요... 문제가 생기면 바로 치료를 해주신다고! 대체 어디서 배운 거예요?”
“아...”

뭐라고 해야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이렇게 대답했다.

“독학입니다.”
“독학? 그게 되요?”
“되던데요.”
“하아... 서울대생한테 공부 어떻게하면 잘하냐고 묻는 꼴이네요.”

이게 그 정도인가. 내심 기분이 좋아졌다.
한 가지 확실한건 신이설은 근육 치료에 대한 기술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내가 어딜 만져도 이게 어떤 근거로 하는 짓인지 모른다는 뜻이다.

“그럼 바로 봐드릴게요. 잠깐 여기 좀...”

내가 내 가슴쪽을 가리키며 말하자 신이설이 “아!”하면서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그러더니 고개를 반쯤 돌린 후에 검지 하나로 티셔츠를 쭉 늘려서 내게 쇄골을 보여줬다.
뭐, 말이 쇄골이지 저 정도로 당기면 얼추 턱만 올리면 안이 훤히 보인다.
근데 이게 뭐야.
실하다.
생각보다 안쪽이 실해서 깜짝 놀랐다. 브래지어를  타이트하게 차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가슴골도 확연했고 가슴살이 브래지어를 삐져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근데더 중요한  가슴이 아니었다. 진짜 그녀의 말대로 쇄골 전면부의 하단쪽이 푸르스름하게 빛나고 있었다.
거의 가슴과 맞닿는 자리에 있어서 한서연의 사타구니의 오색찬란한 빛깔이 떠오를 지경이었다. 경계선에 애매하게 걸쳐져 있어서 마사지를 하려면 손이 안으로 깊게 들어가야 하는 스팟이었다.

“누워줄래요?”
“아, 그게 편할까요?”
“아무래도 쇄골이니까요. 근데...”

나는 신이설의 어설픈 검지를 가리켰다.

“그거 마사지할 때 동안 계속 그러고 있을 거예요?”

신이설은 처음에 무슨 뜻인지 몰랐다가 자기 가슴쪽을 내려다보면서 화들짝놀랐다.

“아... 그, 그치! 그, 그럼 어떻게 하는게 나을까요?”
“실장님.”
“네?”
“제가 혹시 남자로 보이세요?”
“아, 아니... 무슨 그런..!”
“저도 실장님 여자로 안보이니까 그냥 티셔츠 벗으세요. 제가 육안으로 상태 확인해보니까 지금 바로 치료하지 않으면 좀 위험하겠어요.”
“지, 진짜요? 그 정도로 심했구나... 아, 알았어요. 버, 벗을게요. 뭐! 까짓거! 준현쌤이 남자로 보일 리가 없잖아요.”

근데 신이설이착각하는게 하나 있었다.
지는 내가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젖탱이 두 개랑 가랑이 사이에 고추만 없으면 다 여자로 보인다.
그녀는 훌러덩 쿨하게 티를 벗었다.
방금까지 몰래 봤던 가슴이 대놓고 보여지자 오히려 김이 팍 새는 느낌이다. 몰래 볼때가 더 보암직스러웠구나. 오늘도 하나 배우는 기분이다.
참... 한서연도 이렇게 쉬우면 얼마나 좋을까. 벗으라면 벗고 계약하라면 계약하고. 그랬으면 얼마나 편했냐 말이다.
나는 신이설을 배드 위에 눕히고 우선 쇄골의 상단 부분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이곳에도 붉은색 점이 몇  분포되어 있어서 풀어주면 아마 기분이 좋아질 거다.

“흥큿..?”

역시나 내가 손을 대자마자 바로 반응이 온다. 신이설은 지난번에 어깨를 주물러줬을 때도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상체가 흐물흐물 녹아내렸었다.

“몸이 엄청 민감하시네요.”
“으큿... 시, 실례 아닌가요?”
“마사지사로써 드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대사같은데요?”
“아... 아, 그, 그치...”

신이설이 오늘따라 유난히 말을 더듬는다.
나는 눈치를 봐서 조금씩 쇄골의 밑단쪽으로손을 옮겼다. 손님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시간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여기 맞죠?”

괜히질문도 하나씩 던지면서.

“조금  내려가서 눌러봐야 할거 같아요. 괜찮죠?”
“아, 예...”

나는 신이설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조금 더 밑으로 내려가서 가슴과 쇄골의 경계 부분을 넘어섰다.
사실 B-컵 정도만 되어도 이곳은 가슴이라고부를  있는 구간이다. 그런데 신이설이 완전 납작 가슴도 아니어서 볼륨감이 느껴졌다.
은근히 보들보들한 촉감이다. 가슴을 잡고 마음껏 만지고 싶어지는 촉감이랄까.
한서연처럼 완전 무결점의 피부는 아니지만, 워낙 하얀 피부라서 더럽혀지지 않은 눈길을 처음 밟는 듯한 산뜻한 기분이었다.

‘아, 말랑말랑해.’

푸른점을 전부 지워내는데는 3초도 걸리지 않았다.
뭐라도 묻은 것처럼 손끝으로 살짝 문지르기만 해도 없어지는 걸로 봐서는 쇄골 부위의 통증 증상이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근데도 신이설의 가슴에서 손을 떼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내친김에 손을 조금 내려보기로 했다.

“원인을  것 같아요.”
“뭔데요?”
“여성분들 중에 몇몇은 공감할만한 거죠. 사이즈가 좀 크신분들은 공감할 만한.”
“아...”
“지금은 어때요? 쇄골 부분에 불편한 느낌 전혀 없죠?”
“어? 그러네요? 방금까지만 해도 조금 찌릿찌릿했는데 지금은 목을 움직여도 아무렇지 않아요.”
“그러면...”

나는 손을 내리면서 말했다.

“가장 중요한 원인 제거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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