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2화 〉63화 (62/173)



〈 62화 〉63화

잘 생각해야 했다.
성적인 관계로 넘어가지 않는 선에서 속옷 안에 손을 집어넣는다?
아무리 봐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확실한 건  오색찬란한 빛의 반점을 만지는 순간, 그녀의 미래를 확인할  있다는 것이다.
내 능력의 장점은 모든 사람에게 거의 동일하게 적용이 된다는 것이다. 구소민의 암울한 미래를 봤으니 한서연의 미래를 보는 순간, 그녀의 미래를 어떻게 바꿔야할지 계획이 잡힐 거라는 것 정도는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한서연은 나를 정말 무당처럼 생각할 수 있을 거다. 아니면 예언자 정도로 생각하거나.
나 같아도 그럴 것 같다.
내가 말하지 않은 최근의 근황들을 알아맞히고 어떠한 미래가 나올 수밖에 없는 적절한 원인들을 들춰낸다면 그 사람에 대한 신뢰가 생길 수밖에 없다. 고작 강아지 하나 고친 것과 자신의 비밀을 속속들이 알게 되는 건 차원이 다른 얘기라는 거다.
그만큼나는 속옷에 손을 넣는 게 간절했다.
한서연이 예쁘고 몸매가 좋아서가 아니다! 진짜 아니다..!
나는 마음 속으로 다시금 최면을 걸고 작업을 시작했다.

“다시 오일을 바르겠습니다.”
“오일은 어디걸 써요?”
“저희 샵에서 제작하는 핸드메이드 오일입니다. 정확한 제작법은 저희 원장님만 알고 계십니다.”
“흐음. 미경 언니가 예전에도 칭찬했던 그 원장님이신가요?”
“아마 그럴 겁니다. 제가 오기 전까지는 원장님께서 담당을 하셨으니까요.”
“오~ 그럼 원장님보다 그쪽이 더 뛰어나다는 소린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내가 당돌하게 말했다고 생각했는지 한서연은 누운 채로 고개를 살짝 들어서 다리 마사지를 시작하는 나를 보면서 픽하고 웃었다. 내가 특이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쩔 때 보면 나를 완전히 파악하고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굴리는 것 같으면서도 어쩔 때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바라보거나 저렇듯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볼 때가 종종 있다.
그만큼 내가 지금 시험대에 올라와 있다는 뜻일 터.
나는 실망감을 안겨주지 않기 위해 열심히 다리에 있는 붉은점을 풀어나갔다.
그런데 한서연이 내 귀를 쫑긋 세울만한 소리를 했다.

“기적의 손이라고... 알아요?”

내게 매끈한 다리를 맡겨놓고 담담하게 말하는 한서연. 그녀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소리를 하는 걸까?

“네, 들어는 봤습니다.”
“마사지를 엄청 잘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사람이 마사지를 하면 하루가 바뀌는 게 아니라 앞으로의 1년이 바뀐다나 어쨌다나. 난 사실 그런걸 믿지는 않아요.”

어찌보면 적절한 표현이었다. 하루가 바뀌는 게 아니라 미래가 바뀐다... 그렇다면 내가 보는 오색찬란한 빛깔의 반점은 ‘기적의 손’의 초식격이 아닐까.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손. 그것을 ‘기적의 손’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
말로만 표현했던 내 손이 ‘기적의 손’일 것이라는 가정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미경 언니 목주름을 없애줬다고 들었어요.”
“네.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갑자기 그 소리를 들으니 신기한 게 하나 있었다.
자존심이 강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한서연에게는 보라색 점이 없다... 물론 박유영도 보라색점은 없었지만, 그건 푸른색 점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에 콤플렉스가 없는 사람이 있다? 한서연의 얼굴과 몸매를 보면 딱히 허황된 얘기는 아닐 것 같다.

“혹시 그쪽이 ‘기적의 손’이라고 생각해요?”
“네..?”

갑자기?
갑작스런 질문이기도 했고 방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맥락과  맞아떨어져서 조금은 당황했다.

“말 그대로예요. 그쪽이 ‘기적의 손’이라고 생각하냐고요. 날 마사지하려면 그 정도 클래스는 되야한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이번에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저는 한낱 샵의 직원일 뿐인걸요. 손님들의 하루하루를 개운하게 해주는게 제가 하는 일입니다. 1년을 바꾸는 건  1년동안 매일 만나면  일이 아닐까요?”
“뭐라고요? 파핫!”
“그래서 저 역시 ‘기적의 손’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저한테 불만족했던 손님은 단 한 번도 본적이 없거든요.”
“그거야 면전에서는 침을 뱉지 못하니까 그런 거겠죠.”

한서연은 흐흥거리며 아까처럼 날 재밌다는 듯이 올려봤다.
 거만한 표정이라니. 어쩐지 한서연은 섹스할 때도 저런 표정으로 날 올려다볼 것만 같다. 아니지... 지금 내가 뭔 지랄맞은 생각을. 정신 바짝 차리자, 강준현. 상대는 미친년이야.

“그쪽이 기적의 손이라면  정도에서 끝내지 않겠죠.”
“뭘 원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남자 마사지사의 마사지 특성상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알아두셔야  겁니다.”

이번에도 준비했던 멘트처럼 줄줄 외워 말했다. 어려운 일은아니었다. 박유영 때도 그랬지만, 더 과한 스킨십을 위해서는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제한적? 뭐가 제한적이라는 거죠?”
“음, 아시겠지만 아직 계약을 하신 상황이 아니라서요. 저랑 계약을 하시게 되면 따로 스킨십에 대한 제한을 범용적으로 넓히실 수 있습니다.”
“아, 좀 더 안쪽을 만지셔야 한다는 거예요?”
“아까도 설명을 드렸지만, 주기적으로 섹스를 하는게 좋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음... 그쪽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는데... 이상하네요.”
“저도 그게  이상하네요. 문제가 있는데 느끼지 못하고 계신건지 아니면 민감한 문제라 감추시는 건지...”
“맹세컨대 감추는 건 하나도 없어요. 풉... 그쪽이 뭐라고 내가 발언 하날 두고 무서워하겠어요?”

이년은 말을 참 예쁘게 하는거 같아요.
시발, 서비스 계통의 직업상 이런 수모를  참아야만 한다는 게 참...

“뭐, 아무튼 그런 문제라면 신경 쓸 것 없이 마음껏 만져도 좋아요. 아, 대신! 너무 선을 넘으면 안되는건 당연히 알고 계시죠?”
“물론입니다. 하지만 계약을 하셔야만 합니다.”
“계약은... 오늘 마사지가 만족스러우면 해드리려고 했는데?”
“절 믿어보십시오. 절대 후회하지 않는 마사지를 해드리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솔직히 말해보세요. 지금까지의 마사지를 미뤄 봤을 때, 만족스럽지 않은 게 하나라도 있으세요?”
“아니, 뭐... 그런건 아닌데... 딱히 특별할 게 없다는 얘기죠.”

역시 그거였나.
어디서나 받을 수 있는 평범한 마사지를 거부하는 여자 같으니라고.
돈이 많을수록 재수없어진다고 하더니 역시나. 쉽지 않은 여자다.
나는 조금 더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그럼 어쩔 수 없군요.”
“..?”
“만약 마음이 바뀌시면 그때 다시 연락을 주세요. 오늘 마사지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이상 하는건 의미가 없어보이는군요.”
“아니... 신경 쓰지말고 만지셔도 된다니까...”
“아닙니다. 저는 원칙을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라서요. 저를 믿지 않으신다면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씀드릴게요. 저한테 맡기시면 말씀하신 ‘기적의 손’. 하루가 아니라 마사지하는 사람의 1년을 바꿀 수 있는 세상 최고의 마사지를 해드릴거라고 약속하겠습니다.”
“...”

내가 수건으로 손을 닦자 한서연은 한동안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러다가 차마 내 입으로는 입에 담을  없는 말들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안에다 넣고 막 만져도 된다니까?”

심지어 반말이다.

“손가락만 안 넣고 하고 싶은대로 다 해도 된다고. 그래도  할 거야?”
“네, 죄송하지만 안 하겠습니다.”
“하하... 나 있잖아요, 선생님. 내가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한테 계약 한 번 할  기본 천만원 이상씩 쓰는 사람이야. 근데도 그냥 가겠다고?”
“네.  믿지 않으실 거라면 돈이 몇푼이든 소용 없습니다.”

나는 잠시 한서연과 눈싸움을 했다.
상체를 일으킨 그녀는 가슴에 얹혀진 수건을 와락 움켜쥐고선 가슴의 중요부위를 가렸는데 가슴이 얼마나 볼륨감이 있는지 옆가슴이 옆으로 다 빠져나왔다. 하반신 쪽을 덮어놓은 작은 수건도 살짝 구겨지면서 접혔는데 그 때문인지 성기만 간신히 가리고 있었는데 이게 은근히 가리니까 직접 보여주는 것보다 더 섹시하다. 시발, 내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근데 문제는 한서연도 지금 자기 모습이 얼마나 유혹적인지 알고 있다는 거다. 그녀는 분명 알고 있었고 그걸 이용하려 하고 있었다.
체감상 1분 정도 서로 눈을 마주치고 있다가 결국 한서연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몸을 일으키며 가운을 몸에 걸쳤다.

“그래요. 그렇게 해요. 오늘일당은 계좌로 보내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잠깐.”

그녀는 내가 돌아서서 나가려고 하자 불러 세웠다.
멈춰 서자 한서연은  중심으로 돌아서 내 앞에 서더니 내 볼에 입을 맞춰주었다.

“?”

나는 얼떨결에 받은 키스에 놀라서 한서연의 예쁜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러자 그녀가 킥킥거리며 웃었다.

“그냥 답례예요. 답례. 뭘 그렇게 새삼스레 놀라고 그래요? 실력 좋은 마사지사 만나서 영광이었어요.  가세요.”
“아... 예...”

나는 떨떠름함을 감추지 못했다.
누군들 그러지 않았을까.
그런데 신발을 신고 현관 앞으로 나가자마자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뽀뽀 한방에 이렇게까지 발기가  수 있다니.
내가 잠시 아랫도리의 묵직한 것이 풀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앞쪽에서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호두가 날 발견하곤 헐레벌떡 뛰어왔다.

왈왈-

저게 왜 저러나 싶을 정도로 부리나케 달려오는 통에 몸을 피해야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때 마당에 줄로 매달아놓은 커다란 개가 사납게 짖는 바람에 호두가 낑낑거리며 속도를 줄였다.

히잉...

귀엽게 고개를 떨군채 내 발등 위를 조심스럽게 핥는다.

“나갈 때도 이러더라고요. 신나서 막 짖기 시작했는데 초코가 시끄럽다고 조용히하라고 짖자마자 조용해지더라고요.”
“초코? 저 시꺼먼 도베르만 이름이 초코예요?”
“네... 좀 안 어울리긴 하지만, 이름을 지을 때만 해도 귀여운강아지였으니까요. 저는 그럼 이만 들어가보겠습니다.”
“네, 수고하세요.”

나는 그런 그를 측은하게 바라봤다.
아까 한서연의 비밀스러운 방을 들여다본 이후로 이 집의 집사가 참 불쌍하게 보였다.
나는 약간의 비보를 들고 머발에스로 출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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