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9화 〉60화 (59/173)



〈 59화 〉60화

하다하다 개마사지까지 능통했다.
내가 만져주자 호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배를 깔고 누워서 더 이상 헥헥거리지 않았다. 몸에서 열기가 올라오고 있기는 하지만,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처음에는 의심만 많이 하던 한서연도 조용히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느정도 붉은점들을 다 제거해나갈 무렵 나는 호두의 목덜미 쪽에서 보랏빛 점을 발견했다.

‘개한테도 콤플렉스가 있냐..? 진짜 개염병이네.’

나는 이것 또한 이용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혹시 호두한테 안 좋은 습관이라던가 다른 개들한테는 찾아볼 수 없는 뭔가가 있었나요?”

내가목덜미쪽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말하자 한서연 대신 집사가 대신 대답했다.

“호두는 새끼때부터 한 번도 짖어본 적이 없습니다.”

짖지 못하는 개라. 헥헥거리기나 할줄 알지 리트리버 과에 속하는 대형견이  지킬 능력이 없다는 소리다. 그러니 자기 딴에는 콤플렉스라고 생각할 수밖에.
주인 입장에서는 짖지 않는게 오히려 편할 수도있지만, 어쩌면 호두가 다친 결정적인 요인은 이 콤플렉스 스트레스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했다.

“치료는 근원지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호두는 자존심이 많이 낮아진 상태입니다. 그걸 알고 계셨습니까?”

이번에는 집사가 아니라 한서연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한서연은 뭔가 짚이는 바가 있는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 때문에 자신이 언제고 버려질까 두려웠던 호두는 다친 다리를이끌어서라도 자기 주인 앞에서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던 겁니다.”
“호, 호두야...”

내 말을 들은 한서연은 금세 울먹울먹해졌다. 지금까지 귀엽기만 하고 건강한줄만 알았던 호두에게 그런 아픈 사정이 있었다는 걸 깨닫곤 감정이 북받쳐 오른 모양이다.
유추가 맞는지 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괜찮은 소설이 하나 깔렸다.
이제 내가 하는 말이라면 전문가의 말에 버금가는 효력이 있을 것이다.

“오늘부로 호두는 짖기 시작할 겁니다.”

그런데 아무리 전문가의 말이라도 통하는 게 있고 통하지 않는 게 있는 모양이다.
한서연은 촉촉해진 눈가를소매로 닦아내곤 허탈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소용 없을 거예요. 용하다는 수의사들한테 전부 찾아가봤는데 태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어요. 병원을 몇 개를 다녀왔는지 몰라요. 근데도 불가능했다고요.”
“...”

나는 아무말 없이 호두의 목덜미를 천천히 문질러줬다.
호두는 또 기분이 좋아졌는지 그 커다란 혓바닥을 내밀어서 마사지하는 내 손목을 대뜸 핥았다.

‘욘석 봐라.’

내가 자길 치료해준다는  알았는지 집사를 바라볼 때보다도 더 똘망똘망한 눈빛이다. 자세히 보니 눈이 아주 맑고 예쁘게 생겼다. 코도 그렇고 큼지막한 턱까지. 아주 미견이다. 미견.
보아하니 암컷들 좀 홀리고 다녔겠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샌가 녀석의 목덜미에 있던 보라색점을 전부 제거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차츰 뜨거웠던 표면도 식기 시작하더니 정상체온으로 떨어졌다.
별안간 벌떡 일어난 호두는 곧바로 자기 주인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펄쩍 앞다리를 들어서 내 허벅지 위쪽으로 발을 올렸다.
그러면서 허겁지겁내 구석구석을 핥아대기 시작했다.
나는 강아지 침이 이렇게 범벅이 되는 게 싫었지만, 한서연의 시선을 인식해서 애써 웃음을 지어보였다.

“건강해졌다...”

집사가 놀랍다는 듯이 얘기했고 한서연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나는 호두의 이곳저곳을 긁어주면서 예쁘다, 예쁘다반복해줬다.
그러다가 어느샌가.

왕! 왕!

호두의 입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나 역시 진짜 가능한지 모르고 있던 터라 호두가 짖을 때 온몸에 닭살이 돋았는데 주인과 집사는 어떻겠나.
한서연은 화들짝 놀란 나머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앉아버렸고 집사는 어안이 벙벙해 했다. 무릎을 꿇은 한서연은 신나게 왕왕거리는 호두의 허리춤을  끌어안았다.

“어머나... 세상에... 호두야, 호두! 너 짖을 수 있게 됐구나.”

나는 속으로는 잔뜩 거들먹거리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그나저나 한서연의 몸이 가까이 다가오자 그녀의 향기가 화 올라왔다.
호두에게 한눈이 팔려서 내가 어딜 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정확히 그녀의 숙여진 가슴골을 보고 있었다. 헐렁한 옷은 아니어서 세심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얼핏 볼륨감이 느껴지는 육감적인 몸매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최근에 몸매 좋은 여자들의 나체를 많이 봤기 때문에 그녀의 얄팍한 가슴골만 보더라도 전체적인 실루엣이 얼추 연상됐다. 뭐 그 몸매가 아니더라도 내 마음대로 생각해버리면 그만이기도 했다.
어쨌든 그 결과, 내 똘똘이가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였다.  정도로 한서연의 몸매는 좋았다.

“크흠... 사모님, 자세를...”

집사가 내 눈위치를 눈치챘는지 헛기침을 해댔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날카로운 소리였다.

“지금 자세 같은  중요해요? 호두가 짖었다고요! 호두가!”

그리곤 나를 향해 초롱초롱한 눈을 떴다.

“혹시 예수님의 재림이신가요? 하느님?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거죠?”

솔직히 말해서 나도 잘 모른다.
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빠르게 둘러댈 말을 떠올렸다.

“사람의 몸과 동물의 몸은다르면서도 비슷한 맥락이 있습니다. 중요한 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죠.근육의 뒤틀림, 근막의 수축현상. 그 어떠한 비정상적인 현상에도 원인은 있는 법입니다.”

나는 말하고나서 한서연의 몸을 노골적으로 쳐다봤다.
그녀는 내 말을 들은 직후였기 때문에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보여주기 위함인지 내가 눈을 옮길 때마다 그쪽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니까 내가 가슴을 보면 가슴을 내밀고 엉덩이를 보면 엉덩이를내밀었다는 얘기다.
이 능력... 정말 요긴하게 잘 쓰이는 능력이다.
제 아무리 나보다  나이가 많은 여자라지만, 한서연은 어디서나 알아주는 미인이다. 남편이 있는게 아쉽다. 그런데 예전 같았으면 그 남편이 부러웠을텐데 이제는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이런 여자가 내 아내라면 나 같은 놈이 들러붙을까봐 전전긍긍할 거다.
왜냐면 내가 지금부터 이 여자의 벌거벗은 몸을  생각이니까.
남편분에게 개인적인 원한은 없다. 다만, 남자의 본능이라는 것은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을 뿐이다.
나는 손으로 턱을 괴고 감상을 하다가 그녀에게 말했다.

“한서연 씨 같은 경우에는 관리를 꾸준히  티가 나네요.”
“정말요?”

한서연은 뿌듯하다는 듯 허리를 이리저리 돌렸다. 하, 허리 참 잘 돌린다.
그녀는  웃기는 여자였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면서 노발대발 나를 무시하더니 이제는 내 앞에서 귀여운짓까지 해댄다.

“그런데 문제가 아예 없는건 아닙니다. 그림이 그려진 도화지에 아무 의미없는 점이 찍힌다해도 알아보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순백색의 도화지 위에 점이 하나 찍히면 바로 눈에 띄기 마련이거든요. 한서연 씨가 비록 완벽한 미모를 지니고 있으시지만, 이를 빨리 해결하고 싶어하실 겁니다.”
“어? 그게 뭐죠?”
“일단 자리를 좀... 단둘이 말씀드릴 부분인 같습니다.”

한서연이 집사를 향해 턱짓을 하자 집사는호두와 함께 자리를 물려줬다.
호두는 한동안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주인인 한서연보다도 더 내게 몸을 부벼댔던 거다. 아무래도고마움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하긴 인간으로 따지면말을 못하는 사람을 말하게 만든 것과 다름 없으니까.
새삼 이렇게 생각해보니까 내 손이 ‘기적의 손’이라는 실감이 난다.
예수의 재림이라.  손의 능력으로만 따지자면 그런 표현도 과언이 아니겠지.
성경이란 걸 읽어본적은 없지만, 예수가 앉은뱅이를 고쳤다는 얘기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자, 됐어요. 어때요. 제 몸은 어떤 문제가 있는데요? 집사가 있을 때  못할 정도면 듣기 전에 좀 긴장해야하는 부분이려나?”
“아뇨. 우선 몇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네, 뭐든 물어보세요.”
“일단 자리에 앉으시죠.”

나는 한서연을 자리에 앉히고 그녀의 뒤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붉은점이 보이는 어깨를 만져주기 시작했다. 주무른다기 보다는 만지는 쪽에 가까운 야릇한 터치였다.

“민감한 질문일 수는 있지만, 대답해주시길 바랍니다. 만약 민망하거나 대답하기 영 불편하시면 말씀하시면 됩니다.”
“아... 알겠어요...”

붉은점을 풀어주자 입질이 오는지 한서연이 약간 더듬거리며 말했다. 날숨에서 뜨거운 잔향이 느껴졌다.

“남편 분과 관계는 일주일에 얼마나 하시나요?”
“네!?”
“몸 상태와 관련해서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묻는 겁니다.”

나는 박유영 때를 떠올렸다. 그녀는 향기를 잃은 꽃. 한때는 성감을 느끼지 못해서 자살까지 결심했던 여자였다.
유부녀의 마음을 흔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아무래도 이런 종류의 질문이아닐까 생각했던 거다.
그런데 아니나다를까.

“남편이랑은거의... 안해요. 결혼하고 얼마 안 지나서 각방을 썼거든요.”
“그러시군요. 어쩐지...”
“진짜... 용하네... 미경 언니가 말한 게 뭔지 알  같아요.”
“이미경 님이요? 이미경 님이 저한테 뭐라고 하시던가요?”
“음. 꼭 자기 속내를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고... 무당같다고 했어요.”

그랬나. 나는 피식 웃고말았다. 이미경이라면 그럴만도 했다. 그녀의 콤플렉스를 내가 풀어줬으니까. 목에 있는 주름에 대해 언급했던 내용을 퍼뜩 떠올렸다.
운이 좋다. 톱니바퀴처럼 잘 맞아떨어져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음에 날릴 멘트는 뻔했다.

“관계를 주기적으로 맺어주시는 게 한서연 씨에게 필요한 솔루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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