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59화
초인종을 울리자 문이 열렸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미친. 미친. 미친. 미친.
영화에서나 볼 법한 정원이 펼쳐졌다. 마당에는 어딘지 무심해 보이는 개가 한 마리 묶여 있었고 정원사인지 꽃가지를 하고 있는 나이 든 남자도 있었다.
나는 이런 곳에 자주 온 사람인 척이라도 하고 싶어서 최대한 고개를 돌리지 않고 정면만 보고 걸었다.
돌로된 타일을 따라 걸어 현관에 도착하자 이번에도 문이 알아서 열렸고 이번에는 안에서 누군가 날 반겨줬다.
“안녕하십니까. 강준현 선생님이 맞으시죠?”
“네.”
“테라피스트시라구요.”
“네, 그렇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알현실에서 기다리시면 사모님께서 곧 오실 겁니다.”
허. 집사도 있어?
나는 꿈을 꾸는 기분으로 집안으로 들어갔다.
이미경에게 듣기로는 소개받은 여자의 이름은 한서연이라고 했다. 나이는 35살. 기혼이고 이미경과는 사교모임에서 만났다고 전해 들었다.
어떤 여자일까.
지금까지의 정황을 따져보면 이미경과 어울려 다니면서 어린 남자들만나러 다니는 여자라고 밖에는생각되지 않는다.
자녀는 있을까. 남편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길래 이런 집을 갖고 있을까.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이 가득했다.
시발, 어떻게 하면 접시에 구찌 로고가 박혀있지? 싶어서 휴대폰으로 비슷해 보이는 물건의 가격을 봤더니 접시세트 하나에 4백만원이다.
이 정도로 씀씀이가 헤픈 사람이라면 마사지에 감복받았을 때 정말 많은 돈을 쓸거라고 생각했다.
그때, 거실쪽에서 아까 그 집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라고 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는데 어쩐지 다급해 보이는 목소리였다.
내가 또 궁금한 걸 못 참는 성격인지라 자리에서 일어나서 알현실 문을 살짝 열었는데 바로 집사의 목소리가 정확하게 들려왔다.
“호두! 거기 들어가면 안 돼! 앗!”
내가 문을 열자마자 어떤 거대한 존재가 문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헥- 헥- 헥- 헥-
반응을 하기도 전에 부드럽게 밀려온 금색의 존재는 다름아닌 리트리버 계열의 강아지였다.
“호두! 가, 강준현 씨. 문을 여시면 안 됩니다. 이 녀석 얼마나 무거운지 데리고 나가려고 해도 말을 안 듣는다니까요.”
실제로 그랬다. 녀석은 리트리버 중에서도 거대한 축에 속하는 종인지 10살짜리 어린아이가 타고 다녀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거대한 몸집을 자랑했다.
호두는 헥헥거리며 구석쪽으로 가서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얼굴은 착해보이는데 개치고는 표정이 참 다양해서 개구지다고 해야 할까. 고놈 참 말 안듣게 생겼다.
안으로 들어간 집사는 낑낑거리며 호두를 옮기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제 주인이 아니면 절대 말을 안 들어요. 힘도 얼마나 쎈지... 혹시 개 알레르기가 있으시지 않은지요.”
“아뇨,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하. 다행이군요. 근데 얘가 오늘따라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요. 아까부터 끙끙거리더니 엄청나게 헐떡이더라구요. 조만간 병원이라도 한번 가봐야겠어요.”
집사는 꼭 나랑 오랜 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걱정거리를 말하기 시작했다.
“제가 여기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가장 주된 걱정이 집 안에 이만한 강아지가 있는 거랑 마당에도 엄청 사나운 강아지가 있다는 거거든요. 참, 이것 때문에 그만둘지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여기 일하러 새로 온 사람들도 다 이 강아지들 때문에 못 버티고 나갔을 정도라니까요. 근데 집주인님도 그렇고 사모님도 그렇고 요 녀석을 정말 아끼시거든요.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아마 절 죽이실 겁니다.”
“... 한서연 씨가 강아지를 많이 아끼시나보네요?”
“그럼요. 지난번에도 한 번 난리가 있었다니까요. 호두가열이 많이 올라서 새벽에 동물병원을 찾으러 다닐정도였다니까요. 결국 아침까지 전부 스탠바이해야 했어요. 정말 극성이시랍니다.”
“그럼 지금 이 상태를 보시면 좀 놀라시지 않을까요? 제가 보기에도 좀 심하게 헐떡이는 것 같기는 한데요.”
“글쎄요... 이럴 수도 있기는 한데...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서 보일러를 틀었더니 적응을 못하는 걸까요?”
“저, 저도 강아지쪽으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습니다.”
휴-
집사는 안타까워하면서헥헥거리는 호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왜 그러니~ 오늘따라 왜 그러는 거야? 이러다가 사모님 오시면 내가 또 혼난다~”
처음에는 진중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알면 알수록 빈틈이 많은 사람이다.
나는 가만히 호두를 바라봤다. 기다란 황금빛 털 때문에 잘은 모르겠지만, 나 역시 처음보다는 노련해졌다.
찬찬히 뜯어보듯 세밀하게 바라보자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금호두의 몸상태가.
“잘은 모르겠지만, 정상은 아니네요.”
“누가 정상이 아니라고요?”
등뒤로 들리는 여자의 목소리. 나는 집사와 동시에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언뜻 보기에도 이 여자가 한서연이었다. 각선미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광택있는 가죽바지를 입었고 배꼽이 드러나는 크롭티에 시스루 가디건을 걸치고 있었는데 그렇게 귀티가 날 수가 없었다.
몸매는 군살 없이 쫙 뻗은 길쭉했다.
시선이 더 위로 올라가 이번에는 얼굴에 머물렀다. 하얗고 인형같은 외모. 지금까지 이렇게 생긴 사람은 죄다 사진 보정빨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다니. 눈이 너무 컸는데 쌍꺼풀이 너무 올곧고 규칙적이어서 인위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성형을 어느 정도 한 것 같은데 이런 얼굴이라면 인정이다. 너무 예쁘다. 결코 서른다섯살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완전 무결점의 피부였다.
“사, 사모님. 깜짝 놀랐습니다. 인기척이라도 내시지...”
“왜요? 나 몰래 호두를 어떻게 하려고 했던 거예요?”
“아, 아니... 그게... 사실 오늘 아침부터 호두 상태가 좀 안 좋아서.”
끼잉- 끼잉-
자기 주인이 나타나자 곧바로 낑낑거리는 호두.
한서연은 얼른 호두의 이마를 쓰다듬더니 코에 손을 가져다댔다.
“코가 말랐네요. 뭔가 문제가 있는게 확실해요. 병원에 가게 빨리 준비해요.”
“아... 근데 지금 손님이...”
“그딴게 중요해요?”
나는 순간 집사와 눈이 마주쳤다. 집사는 눈빛으로 내게사과를 하고 있었다. 못난 사모님의 발언을 용서해달라는 간곡한 눈빛이었다.
“지금 호두가 아파 죽겠는데 내 몸 하나 건사하려고 마사지 받는게 말이나 되냐고요. 빨리 외출 준비해요. 빨리.”
“아... 예... 지금 당장 차에 시동을...”
“아뇨.”
두 사람의 대화를 꿰뚫고 들어가는 단 두글자. 아뇨.
이건 다름아닌 내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한서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내쪽을 바라봤다.
“그쪽이 강준현 씨?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아니라고 했습니다. 호두는 병원에 가도 나아지지 않을 겁니다. 다른 문제가 아니라 근육의 문제니까요.”
“하, 지금 낄 데 안 낄 데 구분 못하시는거 같은데요. 그쪽이 뭐 수의사라도 되요? 아니면 그쪽이 내 새끼 치료라도 해줄수 있는 거냐고. 김집사. 빨리 차에 시동 안 걸고 뭐해요?”
“아... 예...”
“제가 치료할 수 있습니다.”
나는확신을 갖고 말했다.
어느 때보다도 더 내 ‘기적의 손’을 믿고 있었으니까. 내 눈에는 이미 호두의 문제점이 속속들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도 설계가 끝났다.
“저한테 맡겨주시면 치료가 가능하고 그렇지 않으면 시간만 낭비할 뿐입니다. 급한 건 아니니까 원하신다면 시간낭비를 하셔도 좋습니다.”
“...”
한서연은 잠시 팔짱을 끼고 날 노려봤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시간도 얼마 오래가지 못했다. 곧바로 호두가 낑낑거리는 소리를 냈다.
“빨리.”
나는 가만히 서서 한서연이 말을 잇길 기다렸다. 자존심이 강해보이던 한서연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호두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빨리 뭐라도 좀 해봐요. 대신 그쪽이 허튼 짓하면 가만 안둘 거예요.”
“그럼 잠시 비켜주시죠.”
헥- 헥- 헥-
나는 엎드린 채 숨을 헐떡이는 호두의 다리를 잡고 쓰다듬었다.
옆에서 한서연은 반신반의하면서 어쩔줄 몰라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한 차례 곁눈질했다.
사실 동물병원에 가서 주사로 근육이완제를 맞으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다. 그리고 천천히 부어오른 부위에 약을 바르거나 찜질을 해주고 붕대를 감아서 한동안 사용하지 못하게하면 나을 거다.
그러나 나는 그런 기회를 수의사에게로 돌리고 싶지 않았다.
이것은 나만이 할 수 있는, 어느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나만의 기술이다. 이런 부호를 두고내 능력을 보여주지 않는건 미친짓이다.나는 돈을 벌어야 했다. 더군다나 이 개 때문에 날 뒷전으로 돌린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나는 천천히 호두를 쓰다듬으면서 조금씩 손을 위로 올렸다. 그리고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푸른색 점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은근히잘 안풀리는데?’
그렇다는 얘기는 딱딱하게 굳었다는 얘기다.
가만있자. 딱딱해진 푸른점을 제거하면 몸의 표면이 뜨거워지면서 그에 따라 2차적인 반점이 발생한다.호두의 몸이 불덩어리가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랬다간 한서연이 미쳐 날뛸 게 분명하다.
그런데 호두의 현상태를 낫게 하려면 이 푸른점을 제거해야만 했다. 나는 한서연이 보는 앞에서 호두의 다리 위쪽을 강한 압력으로 누르기 시작했다.
“잠깐. 너무 세게누르는거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리고 한서연 씨. 저한테 이 일을 맡기실 건지 아닌지 확실하게 정하세요. 저는 확실히 호두의 병을 낫게 해줄 자신이 있습니다. 믿고 맡기실 게 아니라면 그만두겠습니다.”
“하. 그니까 뭔데요. 대체 병명이 뭐냐고요.”
“근육의 뒤틀림입니다. 원인은 알 수 없지만, 호두의 다리가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그렇다고 한쪽 다리를 쓰지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통증도 잘 못 느껴서 다리를계속해서 사용했을 겁니다. 최근에 활동적인 일을 시킨적이 있습니까? 가령 산책인데 빠르게 달렸다던지.”
“음, 남편이 공원에 데려가서 뛰어놀게 냅둔 적이 있어요. 공을 던지고 주워오는 식으로요. 나는 하지 말라고 했는데... 참.”
“네... 아무래도 그것 때문인거 같네요. 자기 주인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아픈데도 꾹 참고 뛰어다녔을 겁니다. 그 때문에 염증이 퍼져서 이 지경에 이른 겁니다.”
“하... 주사라도 맞아야 되는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아까부터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동물병원에 보내고 싶으시면 보내시라고요. 근데 저한테 맡기시면 완전히낫는 것을 병원에서는 임시방편만 해준다는 겁니다.”
“알겠으니까. 뭐든 해봐요.”
“절 믿으시는 거죠?”
“아, 알겠다니까요.”
나는 얘기를 하면서 호두의 딱딱하게 굳은 푸른점을 완전히 제거했다. 그러자 호두의 표면이 뜨겁게 고온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더불어서 바깥 공기의 온도와 호두의 온도가 차이남에 따라 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머나. 지금 무슨 일이?”
“한서연 씨가 절 의심하는 동안 상황이 악화됐어요. 하지만 걱정마세요. 제가 다 해결할 수 있으니까.”
나는 침착하게 호두의 푸른점이 사라진 곳에 푸른점 대신 형성된 붉은점을 천천히 풀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