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5화 〉56화 (55/173)



〈 55화 〉56화

‘그래... 그랬단 말이지.’

나는 룸을 빠져나오기 전에 내 휴대폰으로 진아영에게 발신을 걸어두었었다. 진아영의 휴대폰으로 수신을 하고 방 안에서 오가는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었던 거다.

‘사실이 아니었단 말이지. 날 가지고 놀려고 했던게.’

뭔가 오해가 있었다는 사실을 들은데다가 생각지도 못한 고백까지 들어버렸다.
 앞에서는 절대 좋아한다느니 이런 얘기 안 했었다. 심지어 섹스를 할 때도 눈을 마주치고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가 싶으면서도 내뱉지 않았던 말이었다.
마음이 심란해졌다. 그런 사실도 모르고 그동안  모질게 굴었구나 싶었던 거다.
그럴수록 빠르게 대처를 해야했다. 상황이 급박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휴대전화 너머로 이상한 옷 벗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진아영에게 지시해서 인원을 투입시켰다.
열쇠를 이용해서 잠긴 문을 열어젖히고 남자 직원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야, 임태훈! 시발! 너 뭐하는 거야?”

바지를 내리고 있던 임태훈이 이제야 자신이 반라 상태라는  깨닫곤 후다닥 바지를 추켜올렸다. 축쳐진 엉덩이에 기분 나쁜 여드름이 잔뜩 나있어서 발정난 돼지새끼가 따로 없었다.
밑에 깔려있던 서아가재빨리 몸을 옆으로 굴려 빠져나왔다.
진아영은 팔짱을 낀채 임태훈을 빤히 노려봤다.

“지금 무슨 짓을 하신거죠?”
“으... 저, 이, 이건...”
“이 새끼가 저 강간하려고 했어요.”
“뭐, 뭔 개소리야. 증거있어?”
“증거..? 내가  눈 똑바로 뜨고 봤는데 뭔 증거야?”
“시발... 물증있냐고 물증. 막말로 내가  안에다 넣길 했냐 뭐 했냐?”

임태훈의 막무가니 항변에 서아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녀의 얼굴은 이미 눈물로 범벅이었다. 나는 서아의 어깨 위로 내 외투를 걸쳐주며 말했다.

“이리와, 서아야.”
“주, 주녀나... 왜케 늦게 왔어어엉...”

서아는 내 따뜻한 말투에 무방비 상태로  품안에 폭 안겼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몸을 쓰다듬으며 임태훈을 봤다. 놈의 눈은 시뻘겋게 충혈돼서 나와 서아를 번갈아봤다. 녀석은 자기가 당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곤 이를 갈며 내게 손가락질했다.

“저, 저 새끼가! 저 새끼가 시킨 거예요. 나, 나한테 문자 기록도 남아있어요. 잠시만요.”

녀석은 이곳의 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진아영에게 황급하게 자기 휴대폰을 보여줬다.
나는 서아를 안은 채로 씨익 웃어보였다. 순간 임태훈의 얼굴 위로불안한 기색이 스쳐지나갔다. 그래, 이 새끼야. 너가 생각하는 그 불안이 맞다.
나는 문자 기록을 남겨두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녀석이 말하는성폭행에 가담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었다.
처음부터 치밀하게 계획했기 때문에 증거조차 남기지 않았던 거다.

“무슨 근거로 준현 씨가 그런 짓을 했다는 말이죠?”

한참을 문자 내역을 확인하던 진아영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임태훈은 말문이 막혀서 뭐라고 하려다가 식은땀만 흘릴 뿐이었다. 불타는 성욕을 잡아먹을 정도로 흘러넘치는 불안감이 그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경찰한테 연락했으니까 얌전히 기다려요. 우리한테 음성 증거자료가 있으니까.”
“뭐? 으, 음성자료?”

진아영은 자신의 휴대폰을 보여주면서 말했다.

“준현 씨가 여기서 나오기 전에 저한테 전화를 걸어놓고 나왔어요. 준현 씨가 전화를 걸어두고 갔다는 걸 술김에 까먹으신 모양인데, 저는 수신을 했고 그때부터  사람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아서 계속 듣고 있었어요.”

임태훈은 다시금 나를 보더니 이제는 정말 참을  없다는  분개해서 자신을 막고 있는 남자직원들을 뿌리쳤다.

“너... 이 개새끼... 처음부터 다 계획했던거지! 이 시발놈아... 가만 안둔다. 이 시팔!”

녀석은 드디어어렸을 적의 본능을 드러냈다. 학교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자행하던 녀석이 분수에도 없는 큰돈을 만진 거다. 멧돼지처럼 달려드는 임태훈. 확실히 힘 하나는 장사다. 제 아무리 바니걸 복장을 하고 있는 남자직원일지라도 막으려드는 3명의 남자들을 뿌리칠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빨랐다. 덩치에 맞지 않게 빠른 데에는 지금 녀석의 혈액을 타고 도는 호르몬이 작용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 역시 바라던 바였다. 나는 서아를 소파 의자쪽으로 던져놓고 날아오는 임태훈의 주먹을 손으로 낚아챘다. 바로 득달같이 반대쪽 손이 날아왔으나 내 손은 이미 녀석의 손목 주변에 있는 붉은점을 꽉 누르자 임태훈의 온몸에서 힘이 빠지는게 느껴졌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손목을 확 꺾었다. 그러자 붉었던 점이 순식간에 푸르게 변했다.

“으아아악!”

응용하는 법은 간단했다. 마사지를 할 때도 그랬지만, 붉은점을 누르면 여자든 남자든 온몸이 노곤해지고 힘이 빠진다. 뭉쳤던 근육이 급작스레 풀리면서 힘이 빠질 때, 있는 힘껏 힘을 줘서 손목을 꺾어버리면 곧이곧대로 꺾이게 된다. 기능을 상실한 손목은 당연하게도 푸른점이 생기게 된다.
나는 달려오다가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진 임태훈을 내려봤다. 여전히 손목은 그러쥐고 있는 채였다.

“어떠냐? 힘으로 밀리는 기분이.”
“이... 이 개새... 끄아아악!”

나는 녀석이 고분고분해질 때까지손목을 돌리고 있기로 했다. 여기서 손목을 아예 작살낼 생각까지 하고 있다. 뭐가 됐든 나는 성폭행을 당할 뻔한 서아를 도와줬다고 진술하면 되니까.
하지만 녀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다리를 치며 탭을 외쳤다.

“제발... 제발 놔줘... 윽!”

나는 녀석의 손목을 살짝 놔줬다.

“이제 좀 진정이 되냐?”
“...”
“아직 정신 못차리겠으면 왼손 영영 못 쓰게 해주고. 그러면 볼만 하겠네. 앞으로 그 성욕 풀려면 이쪽손 많이 써야될텐데.”

임태훈이 어벙한 표정으로 날 올려다봤다. 무슨 소리인지 아직 감이  잡히는 모양이다. 나는 놈의 얼굴에 신발 바닥을 올려줬다. 그리곤 녀석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게 속삭여줬다.

“구소민 씨... 맛있더라.”
“!?”
“너랑 헤어지고 나한테 오겠다던데? 너가 서아한테 껄떡대는 게 참기 힘들었나봐.”
“소, 소민이 아버지는...”
“구소민 씨 아버지는 내가 알아서 해줄게. 너랑은 다른 방법으로.난 너처럼 돈 갖고 지랄 안해.”

진심이었다. 녀석이 돈으로 뭐든 다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혐오스러웠다. 그것도 자신의 능력으로 번 돈이 아니라 그저 운이 좋아서 돈을 벌었을 뿐이니까. 녀석 때문에 누군가는 돈을 잃었을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생긴 부를 이용해 약한 사람들을 얼마나 괴롭혔을지를 생각하면 정말이지 참아주기 힘들었다.

“감방에서  잡고 딸이나 쳐라.”

발바닥에 짓눌린 임태훈의 얼굴을 보고있자니 나도 모르게 가슴 언저리가 찌릿하고 울렸다.

*

임태훈은 경찰이 연행해 갔다. 서아는 증인으로 소환이 되어야 했으나 지금은 심신의 안정을 취해야 한다며 짧게 진술하고 끝냈다.
오히려 가장 바쁘게 움직인  진아영이었다. 그녀는 증거자료를 확보하고 있었고 이곳에 있는 수많은 직원들이 임태훈의 더러운 엉덩이를 증인들이었다.
임태훈이 바지를추켜올린 것과 그때 당시에 서아의 속옷이 벗겨져 있었던 점. 그리고 그가 화를 내면서 내게 죄를 이양시키려고 했던 것과 갑자기 열 받아서 달려들어 폭행을 하려했던 점까지.
이곳에 있는 어느 누구도임태훈의 편을 들어줄 수 없었다.
나는 자리에 남은 서아를 계속 끌어안아주고 등을 다독여줬다.

“흑흑... 주녀나... 나 너무 무서워...”
“괜찮아. 괜찮아. 경찰이 태훈이 데려갔어. 이제 다 괜찮아질 거야. 내가 지켜줄게.”
“진짜? 오늘 나 지켜줄 거야?”
“그럼.”

지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총 3개였다.
첫 번째는 구소민이다. 구소민은 자기 집으로 가긴 갔지만, 당장이라도 전화를 하면 그녀의 집으로 찾아갈 수 있다. 하지만 필수적인 선택지는 아니다.
두 번째는 박유영이다. 박유영은 나와의 섹스를 고대하면서 우리집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오늘 있었던 일을 설명하면 자신을 선택해주지 않아도 뭐라고 하지는않을 거다. 아마 그녀의 성격이라면 “어머, 그런 일이 있었어요? 다치지는않았어요? 서아 씨는?” 이라며 걱정부터 해줄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서아. 서아는  품에 안겨서 작은 몸을 부풀리며 가쁜 숨을 쉬고 있다.
나는 결국  3가지의 선택지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행복한 고민이다. 그것도 존나 행복한 고민.  여자 전부 매력적인 여자들이다. 얼굴은 말할 것도 없고 몸매도 예쁘다. 어느새  휴대폰은 이런 여자들로 가득하게 됐다.
이게 다 진아영 덕분이다. 나는 그녀에게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아영 씨, 고마워요.”
“뭘요.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빨리 파악하고 대처하신 준현 씨가 잘한거지.”

나는 진아영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문자 내용도 그렇고 임태훈이 서아를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아서 둘이서 뭔짓을 하나 궁금했다고. 처음에 진아영은 내 뜻을 잘못 알아듣고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웬걸. 결론이 이렇게 나니까 나를 보는 시선까지 달라졌다.

“그래서 두 사람..?”

진아영은 나와 서아를 흐뭇한 눈으로 쳐다봤다.
확실히... 진아영은 천사가 맞다. 나에게 이것저것 다 내어주면서도 독차지하려는 생각은 하나도 없다. 이런 여자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나는 문득 한강에서 그녀를 처음 만난 순간을 떠올리며 그때부터가 내 행운의 시작이라는  인정할수밖에 없었다.
내가 회상에 잠겨 대답하지 않고 있자 진아영이 윙크를 하면서 말했다.

“이번 일은 내가 알아서 마무리할테니까 서아 씨 데리고 얼른 집에 가봐요.”
“아영 씨... 진짜 이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무슨 고마움은... 준현 씨는 내 생명의 은인인걸요. 어서 가봐요. 어서...”

나는 거의 떠밀리듯 술집 밖으로 나가며 진아영에게 연차례 인사를 했다.
그나저나 서아는 정말 상처입은 사슴처럼  품에 안겨서 빠져나올 생각을 안했다. 눈물에서 흐르는 뜨거운 기운이 내게 와서 묻었다. 그 순간만큼은 그녀가 애처롭게 보이기까지 했다.
내 계획의 희생양이 되었던 그녀다. 불쌍할 수밖에.
그리고 직접 들은 것도 아니고 음성으로 들은 것일 뿐이지만, 속마음도 들었고 대충 오해도 풀렸다.
아무래도 내 심장이 시키는 쪽으로 선택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서아를 안은 채로 휴대폰으로 다른 여자의 번호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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