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3화 〉54화 (53/173)



〈 53화 〉54화

나는 구소민을 택시에 태워 집으로 보냈다. 술을 마시긴 했어도 멀쩡했기 때문에 따로 집에 데려다주지는 않았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안으로 들어가자 예상대로 조병찬은 꽐라가 되어 있었고 이영준은 똥 씹은 표정, 옆에 있던 여자애는 집에 갔는지 온데간데 없었다. 임태훈은 여전히 서아 옆에서 똥폼을 잡고 있었다. 녀석도 이제 슬슬 지쳤는지 기진맥진한 표정이다.
내가 들어가자 제일 먼저 서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날 반겼다.

“준현이다! 준현아~”

누가 보면 회식하고 돌아온 서방님 반기는 소리인줄 알겠네.
박유영도  소리를 듣고 흠칫 고개를 들었다. 엄청 취했는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대체 어딜 갔다 오는거냐며 화를 내고 있는 거겠지.
아니나 다를까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박유영이 흐느적거리며 내게 붙었다.

“어디 갔다 왔어요?”
“태훈이 여자친구 분이 많이 취하셔서 집까지 데려다주고 오는 길이에요.”
“하앙... 그랬구나. 근데  사람... 나 아는 사람이에요.”
“예?”

이건 또  소린가.

“그 사람 모델이죠? 나랑 몇 번 마주쳤는데 오늘 보니까 절 못 알아보시던데.”
“아...”
“아마 스치듯 지나가서 몰랐을 거예요. 저보다 언닌가 그런데 진짜 예쁘죠.”
“유영 씨가 더 예쁘죠.”
“힝... 나는  뒷전이잖아요. 근데 쌤 이거 봐요오.”

박유영은 잠깐 부스럭거리면서 뭘 하더니 검지와 중지를 붙여서 내게 보여줬다. 처음에는 뭔지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찐득한 젤같은 게 묻어 있었다.

“이게 뭐예요?”
“흫. 모르는 척하면 민망한데.”

아, 설마.
나는 그 정체를 알아채고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박유영도 상당한 섹무새... 어쨌거나 그녀도 내가 아니면 성관계라는  못하는 처지가 되어버렸으니 그럴만도 하다.
근데 어쩌겠는가. 고추 마사지를 받지 않는 이상, 내 고추는 여전히 뻐근하다. 오늘만 벌써 이런 상황이 두 번째다. 박유영하고 섹스할 기회가 생길 때마다 고추가뻐근해서 도저히 섹스를 못할 지경에 이른 거다.
그래도  자리에 부른건 난데 그냥 보낼 수도 없고. 하...
근데 이제보니까 되게 공격적인 패션을 소화한박유영의 몸 이곳저곳이 울긋불긋한  술을 마셔서 생긴 게 아니라 붉은점들이 뭉쳤기 때문에 생겼다는 걸 알  있었다.

‘와,  정도면 엄청 고통스럽겠는데.’

 정도로 근육이 많이 수축됐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박유영의 목 뒤로 손을 올려서주물거려줬다. 여기도근육이 엄청 수축돼서 딱딱한 상태다. 이건 붉은점이 보이지 않더라도 알 수 있었다. 딱딱하게 굳은 어깨가 마치 설거지를 끝낸 어머니의 굳은 어깨 같았다.
내가 뒷덜미를 사근사근 눌러주자 박유영의 표정이 아까보다 한결 풀렸다.

“하아... 쌤 손길만 닿으면 너무 좋아져요. 진짜 어떻게든 보답을 해드려야 하는데.”
“오늘 촬영은 잘 하고 오셨어요?”
“네, 엄청. 엄청.엄청. 엄청요. 다른 쇼핑몰 실장님도 저한테 명함 주고 가셨거든요. 이번에 겨울 신상 나오는데 같이 콜라보하면 안 되겠냐고 하더라고요.”
“그거 잘 됐네요.”

와, 그저 붉은점만 제거했을 뿐인데 아주 살살 녹는다. 딱딱하게 굳은 붉은점이 우수수 떨어지면서 제거됐다.
구소민 때도 그랬지만, 붉은점을 제거한다고 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하아... 쌤... 조용한 곳 없어요? 여기말고 다른데.”

나는 고개를 들어서 주변을 둘러봤다. 룸의 분위기는 점차 루즈해지고 있었고, 각자 집에 들어가는 분위기다. 이영준은 연신 부러운 눈으로 날 쳐다봤다. 이렇게 예쁜 박유영한테 아무렇지 않게 스킨십을 해대는게 그저 부러운 모양이다. 뭐, 사실 5분 전까지만 해도  나가는 모델이랑도 섹스를 하고 왔고 전에는 쓰리썸까지 즐기고 오는 길이지만.
임태훈은  말할 것도 없다. 서아를 꼬시긴 꼬시는데 계속 꼬셔도 안 넘어오니까 미칠 노릇. 여자친구한테  까일 운명에 방금 지 여자친구랑 내가 하고 온줄도 모르는 머저리.
나는 박유영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말했다.

“우리 집에 가 있을래요?”
“쌤 집이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박유영도 환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쉬운 여자였나. 참 여자들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근데 가 있으라뇨? 쌤은요?”
“저도 곧 뒤 따라 갈게요. 아무래도 동창회인데 애들한테 인사라도 하고 가야할 것 같아서요. 먼저 일어나기도 좀 그렇고.”
“아... 그럼...  가서 기다릴게요.”

나는 그녀에게 우리집 주소와 비밀번호를 알려줬다.

“그럼 저 가볼게요. 저... 병찬 씨? 저 갈게요.”
“아... 으... 가시게요? 저, 저도 같이 나가요.”
“아니에요. 저 이만 가볼데가 있어서요. 영준 씨도, 저 가보겠습니다. 챙겨주셔서 고마워요.”
“...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박유영은 그나마  마시면서 얘기를 나눴던 조병찬과 이영준과의 작별인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이영준은 얼굴이 반색이 돼서 내게 말했다.

“야,  여자 어떻게 알게 된 거야? 유영 씨 말이야.”
“어디서긴 샵에서 알게 된 거지.”
“후아. 진짜 너네 샵에 예쁜 여자만 득실득실 거리나 보다.”
“으... 으... 유영 씨? 유영 씨, 어디갔어? 흐... 아으... 나  깨우지.”

이영준은 조병찬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야, 야. 유영 씨 나  소개시켜줘.”

쥐뿔도 없는 소리 작작하라고 해주고 싶었지만, 그저 쓴웃음만 지어줬다.
나는  다른 방식으로 이영준의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해주고 싶었다.

“왜?”
“... 왜냐니. 이쁘니까.”
“너 정도 생기면 그냥  꼽을 수 있을거 같아?”
“푸핫. 야, 장난하냐? 나 어디 가서  꿀리는거 알잖아. 아까도 유영 씨가 조병찬 저 새끼한테는 술 안 따라주고 나한테만 술 따라줬구만.”
“야~ 뭔 소리야~ 나한테도 술 따라줬다고.”
“어? 암튼 나 소개 좀 해줘. 번호 뭐냐?”
“너가 직접 물어보지 그랬어.”
“그럴만한 타이밍이  나왔으니까 그랬지.”

나는 물끄러미 이영준의 위아래를 훑었다. 잘생기긴 잘생겼지.  여자들이 좋아할 상이라고 할까. 아마 고등학교 때도 서아를 제외한 많은 여자들이 이영준의 몸을 거쳐갔을 거다. 대학교 때부터 인기가 많다고, 남자들끼리 동창회 모임을 하면 여자 얘기로 꽃을 피워댔었다. 그 이후에도 원나잇한 얘기, 남자친구 있는 여자 자취방에서 몇 날  일을 자면서 있었던  등등. 아주 휘황찬란한 고추돌림 얘기를 자랑스럽게 늘어놨었다.
어린 마음에 자격지심을 느끼게 된 원흉이기도 했다. 좆도 능력도 없는 놈이 얼굴 하나 잘생긴 탓에 여자들 후리고 다니는게 아니꼽게 보였다.

“근데 어쩌냐. 유영 씨는 너처럼 생긴 사람보다 날 더 좋아하는거 같은데.”
“... 뭐? 푸핫! 푸캬캬캬캬. 와, 이 새끼 김칫국 오지게 마셨나보네. 너가 마사지 해줘서 좋아라 하니까 진짜 너한테 반한거 같아? 야, 그러지말고 형한테 넘겨.  째도 없어.”
“지금 유영 씨가 내 자취방에 가는 길인데?”
“...”
“...”

 말에 조병찬과 이영준은 둘  벙쪄서 날 바라봤다.

“지, 진짜야?”
“야, 시발! 그러면 말을 좀 해주지. 괜히 쪽팔리게. 아하하... 야, 그래. 좋겠다. 잘해봐라.”
“와, 이영준. 존나 꼽주더니 개쪽이네? 븅신같은 새끼.”
“병찬아. 니가 할 말은 아니야.”
“아니, 근데 조오오온나 부럽다.”
“유영 씨 친구 없대? 친구  소개시켜줘봐.”

이 시발, 소개무새새끼. 뭐만 하면 다 소개해달라고 졸라대네. 요즘 여자가 없나?

“소개는 해줄수 있는데 너 주변에 여자 없냐?”
“여자야 있기야 있지. 근데 다 와꾸가 영...”
“풉.”

나는 녀석의 말에 웃고 말았다.
드디어 밑바닥이 보인 거다. 남자가 얼굴만 믿고 설치면서 이 여자 저 여자한테 다 껄떡거리더니 마지막 종착역은 결국 밑바닥이다. 마치 꿀단지에 모아둔 꿀을 몰래 훔쳐먹다가 밑바닥까지 싹싹 긁어 먹어놓고는 단물 찾는 격이다.

“불쌍한 새끼.”
“뭐?”

이영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너 지금 나한테 뭐라고 했냐?”

괜히 화를 내는걸 보니 자기 병신짓을 인지하고있는 모양이다.

“불쌍한 병신 새끼라고 했다. 주변에 왜 여자가 없는지 모르겠냐?”
“... 이 시발... 시발놈이... 근데...”

이영준이 내 멱살을 잡는데 녀석의 왼쪽 손목 부분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근육의 경직도가 상당히 높아진 곳. 나는 이영준의 왼손을 잡고 힘있게 반대쪽으로 꺾었다.
순간적으로 붉은점이 사라지면서 그곳에 푸른색 점이 형성됐다.

“악!”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몸 전체를 비틀어 통증을 호소한다.
 능력, 싸울 때도 꽤 쓸만하겠는데. 나는 고개를 쳐든 이영준의 목덜미 쪽에 보라색 점이 나타난 것도 봤다. 그것도 아주 단단하게 굳은 보라색 점이다. 콤플렉스? 굳이 목덜미 쪽에 콤플렉스가 있을 필요가 있나?
하지만 이게 웬걸. 자초지종 따질 필요없이 몸을 비비 꼬면서 고통을 호소하는 이영준의 목덜미를 꽉 잡았다. 그것도 아주 힘껏.
그러자 딱딱하게 굳은 보라색점이 파괴되면서 녀석의 힘을 빨아들일 수 있게 됐다. 쭉쭉. 이연두에게서 힘을 양도 받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힘이 들어오는게 느껴진다. 이대로라면 녀석의 목을 그냥 으스러뜨릴 수 있을 것만 같은 힘이 손 끝에서 느껴졌다.
임태훈과 조병찬이 뜯어 말려서 결국 밀려나게 됐지만.

“헉... 헉... 저, 저 새끼... 나 죽일려고...”
“목덜미 한번 잡은 걸로 생사람 잡지마, 이 새끼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화룡점정을 찍어줬다.

“얼굴만 믿고 나대는 퇴물 찐따 새끼야.”

아연실색한 이영준은 내 말에 반박하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문밖으로 나갔다. 그 뒤를 따라 하이에나같은 조병찬이 따라나갔고.

“여, 영준아... 같이 가...”

다시는 보지 말자. 이 버러지들아.

“주, 준현아... 괜찮아?”

나는 셔츠의 카라를 정돈하며 윗옷을 탁탁쳤다.

“어. 괜찮아.”
“쭌이 너, 엄청 세졌다? 요즘 뭐 무술같은거 배우냐? 손목 기가 막히게 잘 꺾던데.”
“무술은 무슨 무술. 앉아서 술이나 먹자.”

이제 룸에는 나와 임태훈 그리고 서아. 이렇게 셋만 남았다.
서아는 우리 집에 박유영이 대기하고 있는 것도 모른채 자기가 이긴 것만 같아서 신이 나 있었다.
오늘은 서아에게 좀 미안한 날이 될  같다. 임태훈 이 새끼를 담구려면 서아가 필요했다.
나는 두 사람에게 각각 잔을 따라주며 방금 있었던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다.

“두 사람 무슨 얘기 나누고 있었어?”
“뭐 사는 얘기 하고 있었지.”
“아닛. 태훈아. 너 자꾸 물어보지도 않은거 얘기했잖아. 학창시절에 누굴 때렸고 생활하는 사람들이 너 찾아와서 캐스팅하려다 시비 붙어서 싸웠는데 뭐, 18  1로 싸워서이겼다며.”
“에이, 그건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미친놈인가, 진짜.
나는 쿨하게 술을 마시는 임태훈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 새끼는 진짜 진성 술고래다. 나야 몰래몰래 밑잔을 빼서 맨정신을 유지한다고 치지만, 이 새끼는 주는대로 다 마시는데 아무렇지 않다.
오히려 서아의 등 뒤쪽으로 거만하게 팔을 올리는 여유까지 보였다. 서아는 꿈틀거리면서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이틈을 타서 그에게 물었다.

“근데 태훈아.”
“엉?”
“너 목 자주 뻐근해지고 그러냐?”
“야, 씨. 너 어떻게 알았냐? 확실히 마사지하는 놈은 다르긴 다른가 보네. 요즘 목이 뻐근해서 확인해보니까 디스크가 있다네? 그래서 운동도 시작하고 요새 다이어트도 하고 있어.”
“오... 다이어트. 좋지. 좋지. 근데 다이어트보다 직빵인게 있는데.”
“뭔데?”
“내 마사지.”
“푸핰. 나더러 지금  마사지 받으라고?”
“한 번 받아보면효과 좋은거 그냥 알거야, 아마.”
“맞아, 태훈아! 나도 쭌이랑 VIP 계약했어. 마사지 효과 완전 짱짱이야.”

임태훈은 옆에서 거드는 서아가 마냥귀엽기만 한지 아빠미소를 지었다.

“그래? 짱짱이야?”
“응! 짱짱! 장난 아니야. 막 다음날에 엄청 개운하고 피부도 전보다더 좋아진거 같고 애들도 나한테 하루만에 더 예뻐졌다고 막 그랬어.”
“오~ 그랬어~? 그럼 나도 등록해야겠네.”

서아는 날 위해 영업질을 시전했는데 확실히 미인계가 효과가 좋긴 좋다. 온갖 아양을  떨면서 저러니까 임태훈의 지갑이 열리기 일보 직전이다. 근데 나는 그놈의 지갑보다  원하는게 있다.

“임태훈.”
“어?”
“일로와봐. 내가 잠깐 목 봐줄게.”

아까부터 봤던 게 있거든.

“어, 어... 어...”

녀석은 홀린 듯이  옆으로 바싹 다가왔다. 윽, 돼지 특유의 비계냄새가 코를 찔렀다. 제발 씻고  다녀라 개자식아.
나는 녀석의 티셔츠를 좀 늘려서 등이 좀 드러나게끔 내렸다.
아까부터 계속 봐왔다.
녀석의 목덜미에 김유진때처럼 분홍색 점이 굳게 뭉쳐있는 걸.
그리고  분홍색 점을 부셔뜨리는 순간, 임태훈의 인생도 송두리째 날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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