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48화
남녀가 골고루 섞인 가운데 갑자기 산 넘어 산을 하자는 얘기가 나오자 여자애들 사이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아, 조병찬 저 새끼 변태야!”
“미친 새끼!”
“아니, 싫으면 술 마시면 되지. 어차피 게임 할 사람은 할거면서 꼭 저런다? 그럼 나부터 할게. 서아야~”
“아, 씨. 너 이상한거 하지 말아라.”
“처음부터 누가 이상한 걸 하냐. 자, 손만 잡았다. 됐지?”
처음에는 약한 스킨십으로 시작하다가 자기 차례쯤 됐을 때, 굴러온 스노우볼을 전부 만끽하려는 심산이다.
‘멍청한 새끼. 속 보인다 속 보여. 그런다고 서아가 너한테 넘어가겠냐. 술 마시면 그만인 것을.’
그러면서 조금씩 수위가 높아지면서 내 차례까지 왔을 때는 허그까지 추가됐다.
‘처음이니까, 좀 약하게 가볼까.’
나는 구소민을 향해 살짝 고개를 까딱거리며 어색한 인사를 다시 한번 더 했다.
“초면에 죄송해요. 술은 먹기 싫어서.”
“아, 아니에요. 게임인데요, 뭘.”
한쪽 구석에서는 임태훈이 씩씩거리고 있다. 나는 곁눈질로 녀석을 한번 쳐다본 후에 구소민의 손을 잡았다.
쓱-
쓰다듬듯 손등을 살짝 문질렀다. 당연하게도 그곳에는 붉은점이 있는 곳이었고, 내가 한번 훑자 구소민은 예상치 못한 부드러운 지압에 이상한 소리를 냈다.
“흥-”
그리곤 자기 입을 틀어막고 놀라했다.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내고 만 것이다.
나는 씩 웃고 차례차례 산을 넘었다.
구소민의 허벅지를 한번 쓱 훑으면서 붉은점을 차례대로 제거해 나갔다. 그 후에 끌어안으면서 목덜미 쪽에 살포시 지압. 꽤 빠른 속도로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소민은 정신이 나갈 것 같은지 입술이 살짝 벌어지고 눈빛이 흐릿해졌다.
여기서 나는 새로운 걸 발견하게 됐다. 아까까지는 붉은색 점 밖에 보이지 않던 구소민의 몸 곳곳에 분홍색 점이 꽃처럼 피어올랐다.
‘역시 분홍색 점은 상대방에 대한 감정이나 현재 심리상태에 의해 바뀌는 게 아닐까?’
확인해 볼수 있는 방법은 하나. 이 여자가 나에게서 떨어져 다시 임태훈의 옆에 앉게 됐을 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허그보다 한 단계 위 수위를 하면 됐다. 나는 가볍게 한바퀴 돌리기 위해 구소민의 분홍색 점이 감도는 귀불을 살짝 만져줬다.
여기가 혹시 성감대세요? 하고 묻듯이.
그에 대한 답변은 명확했다.
“흐읏- 크흥.”
콧소리가 나오면서 어깨를 움츠리는 게 정곡을 찌른 모양이다.
사실 별 의미없는 스킨십들이다. 우리가 뭐, 성기를 부비기라도 했나 입술을 갖다 대기라도 했나. 전부 가벼운 터치와 가벼운 스킨십들이니 이상할 게 없다. 다만, 막상 스킨십 당한 구소민은 아까와는 다른 눈으로 날 보게 됐다.
이 맛에 지압하지.
순서가 돌고 임태훈 차례가 되자 녀석은 병신처럼 옆에 앉은 여자애의 가슴을 만지려다 스톱.여자애가 그냥 벌주를 마시기를 선택해 버린 거다.
“푸하하하!”
“야, 무안하게 그걸 그냥 마셔버리면 어떡해!”
“태훈이가 갑자기 산을 태백산으로 넘어버려서.”
“하긴 그렇긴 해.”
임태훈은 자기가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고주망태처럼 얼굴이 뻘개져서 씩씩거렸다.
진짜, 진심이야? 저런 놈의 뭐가 좋아서 만나는 거냐? 머릿속에 갖은 의문이 드는 가운데 나도 모르게 구소민을 쳐다보게 됐다.
구소민은 시선이 느껴졌는지 내게 몸을 돌리고 말했다.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아뇨. 그쪽처럼아름다운 분은 대체 어떤 인생을 살지 궁금해서요.”
“... 뭐 별거 있나요.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이 사는 거지. 근데 준현 씨는 테라피스트라 그런지 손길이 남다르네요.”
“그랬나요? 아버지한테 여자들은 아껴주고 보듬어줘야 한다고 배워서요.”
물론 뻥이다.
그래도 내 거짓말이 구소민에게는 잘 먹혀 들었는지 그녀는 한동안 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하긴. 임태훈, 저 새끼 행동거지를 보면 그녀를 아껴줬을 것 같지는 않다.
“야, 한판 더 하자!”
조병찬이 칭얼대듯 말하는데 아무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다.
남녀를 섞어 넣자 생각보다 스릴있고 재밌는 모양이다. 여기서 열 받고 오기가 생기는 건 임태훈 뿐인 것 같지만. 그리고 반대하는 사람은 서아밖에 없었다.
“아, 나 안 해.”
“아~ 왜~ 찐막으로 한번만 더 하자. 애들도 다 아쉬워하는데.”
여기선 내가 나서야 겠지.
“서아야.”
내가 부드럽게 부르자 서아가 깜짝 놀라서 대답했다.
“으, 응?”
“하자.”
“어... 알았어.”
너무 순순히 대답해서 주변애들의 표정이 벙쪘다. 내 말에 껌뻑 죽는 서아의 표정과 몸짓이 너무 야하기도 했고. 이건 뭐 거의 신혼 첫날밤을앞둔 신부같은 표정과 몸짓을 하고 있네.
“자, 해. 해! 뭐 아무거나 해봐. 씨. 너 뭐할건데.”
“이번에는 요 정도로 시작해볼까?”
이때다 싶어 은근슬쩍 서아의 허벅지를 만지는 조병찬. 그러나 그것도 잠시, 살포시 뎄다가 떼는 정도로 끝났다.
“오, 이번엔 좀 빡센데? 진도 쭉쭉 나가겠어?”
물론 서아 차례에서 아주 약한 스킨십이 들어갔지만, 다음 차례부터는 과감하게 스킨십이 진행됐다.
결국 내 차례까지 왔을 때는 귓불 빨기에 볼뽀뽀까지 스텍이 쌓인 상태였다.
“그럼, 또 실례할게요.”
나는 구소민에게 말하면서 그녀를 다시 한번 살폈다.
얼굴이 어쩜 저렇게 작은지. 연예인들 얼굴이CD 한 장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은 얼굴.그리고 조각칼로 깎은 것같은 턱선이며 뽀얗게 관리한 탱글탱글한 피부. 앉은 키만 놓고 봤을 때, 남자들에게 꿇리지 않는데 다리는 또 길어서 키가 173은 되어 보인다. 아마 나랑 서면 비슷하거나 더커보일 정도다.
이런 여자에게도 나름대로의 문제가 있어서 임태훈같은 놈을 만난 걸 거다. 대체 그 이유가 뭘까?
스킨십을 하나하나 해가면서 생각했다. 여자의 몸체라는 생각을 저버리고 호기심에 의해 이 사람을 알고 싶다는 생각이 잔뜩 들었다.
이제 남은 건 볼에 뽀뽀하는 건가. 맞은편에 앉은 서아의 눈빛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지만, 상관 없다. 서아야 내가 앉았다 일어나게 만들 수도 있고 짖으면서 엉덩이를 내 고추 위에 비비게 할 수도 있으니까.
내가 끌어안은 후에 볼에 입을 맞추려고 하자 주변에서 녀석들이 극성을 부렸다.
“야~ 태훈이 열 받겠다! 적당히 해!”
“뭘 열 받아~ 게임인데~ 그리고 자기 여자친구 걱정되면 지가 마시겠지!”
그러자 임태훈은 좆도 없는자존심을 내세우며 뻐겼다.
“마시긴 누가 마신다고 그래. 니들 말마따나 게임이고 저런다고 내 여친이 저딴 찐따 새끼한테 넘어갈 애가 아니지.”
나는 그 순간 느꼈다. 구소민의 눈이 날카롭게 임태훈 쪽을 노려봤다가 빠르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곤 나를 유혹하듯 매력적인 눈동자를 흘기며 입술을 살짝 벌린 후에 말했다.
“역시 유명한 테라피스트셔서 그런지 손길이 부드럽네요.”
“별 말씀을요. 하, 근데 고민이네요. 볼뽀뽀보다 더한수위를 하기엔 좀 많이 실례인거 같은데. 벌주 나눠 드실래요?”
“아뇨.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요? 하고 싶은거 있으면 하세요. 다 받을 거니까.”
그러면서 이번에는 대놓고 임태훈을 째려본다.
‘그래? 그럼 어디...’
나는 구소민의 입술을 쳐다봤다.
‘응?’
지금껏 많은 현상들을 봐왔지만, 이런 색상의 반점이 생긴 건 처음 본다. 아랫입술에서부터 턱까지 살짝 걸쳐 있는 반점은 오색찬란한 색상이었다. 분홍색과 보라색, 붉은색, 푸른색이 오묘하게 섞인 색상. 내가 이 현란한 색상의 반점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자 구소민은 다음 순간을 예측이라도 했는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내가 얼굴을 조금씩 가까이 붙였다. 그러면서 구소민의 다리쪽에 생긴 분홍색 반점을 톡톡 건드리며 터트렸다.
이건 예정에 없던 스킨십이지만, 구소민은 저항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쁜 숨을 내쉬었다.
“흐응-”
조금씩 더 가까이. 그리고 이제 막 서로의 입김이 닿을 정도까지 가까이 붙었을 때, 머리를 번쩍 때리면서 어떤 현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새하얀 웨딩드레스. 신부는 아름다웠다. 술 쳐먹고 집에 돌아온 임태훈과 바닥에 떨어진 꽃병과그릇들. 피부에 새겨진 멍. 어린아이의 흐느끼는 소리. 정형외과 의사의 말 “이제 더 이상 운동을 하실 수 없습니다.” “엉망진창이에요.” “워킹 하실 때 무릎이 아프셨다고 하셨잖아요? 그럼 워킹을 하시면 안 되는데 그걸 계속...” “그건 저희도 도와드릴 방법이 없습니다.” “스무살부터 진단 받은 부분인데 마구 써버렸으니.” “말하자면 그때는 살짝 풀린 실밥이었을지 모르지만, 계속 쓰다보면 그 실밥이 결국 옷을 망가트린 격이 된 거예요.” “미안합니다.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네요.” 쓰러져서 좌절하는 구소민. 여기에 임태훈까지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서 이혼 수속까지 밟기 시작한다. 그러다 결국 극단적인 결정을 내린 구소민.
‘이건 뭐지? 과거의파노라마? 아니... 뭔가 다르다.’
웨딩드레스며 모델 일을 관두게 되는 일까지. 이건 분명... 미래다. 구소민의 미래에 무슨 일이 있을지 미리 본 거다.
나와 구소민의 입술이 살포시 닿는 순간, 임태훈이 일어나면서 소리쳤다.
“아, 씨발! 잠깐만!”
임태훈이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곤 테이블 위에 만들어놓은 벌주를 집어 들더니 벌컥벌컥 들이켰다.
“오오오! 흑기사!”
“자기 여자친구는 자기가 지킨다!”
“올~ 안 마신다고 하더니 웬일이래?”
“에이, 씨발. 뭐 이까짓거 그냥 마시고 말지. 야, 소민아. 안 되겠다. 일루와. 내 옆으로 오란 말이야.”
그래도 제 여자친구는 자기가 챙긴다는 건가.
나는 구소민과의 키스가 아쉬웠지만, 단순히 신체 접촉에 의한 쾌락 때문에 아쉬웠던 게 아니다. 내가 미래를 봤다면 더 자세히 보고 싶었던 거다. 내가 왜 그녀의 미래를 보게 됐는지도 궁금했고.
나만 아쉬운 게 아닌 모양이다. 구소민은 떨어트린 입술을 살짝 달싹이며 뭐라고 말하려다가 꾹 눌러 참고 임태훈의 말대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옆자리에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구소민의 몸에는 붉은색 반점밖에 남지 않게 됐다.
내가 그녀의 미래를 본 이유는 너무도 당연했다.
미래의 그녀가 내게 구조요청을 보내고 있는 거다. 나라면 그녀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 모델일이나 부상당한 무릎이나 미래의 배우자까지도. 전부 도움을 줄 수 있다.
다시금 제 여자친구의 허리를 꽉 끌어안는 임태훈.
나는 저 철통같은 보안을 뚫을 방법을 쥐어짜내야만 했다.
시간은 흘렀고, 2차로어딜 가냐는 얘기가 나왔다.
아직 일요일의 밤은 길다.
나는 동창애들이 다 들을 수 있게 손을 들었다.
“내가 잘 아는 테이블 술집이 하나 있는데. 거기 점장이 나랑 친분도 있고.”
“오, 그래? 그럼 서비스도 잔뜩 받겠는데?”
“에이 근데 뭔 테이블 술집이냐? 돈 많이 들어갈걸?”
“할로윈데이 이벤트라고 해서 종업원들이 죄다 바니 복장이야. 알지? 망사스타킹.”
“와, 진짜? 무조건이지 그럼. 야, 가자가자.”
그러자 여자애들이 어이없어 했다.
“야,니네만 눈 있냐? 우리는?”
그래서 내가 대답해줬다.
“남자들도 바니 복장이야.”
그렇게 우리는 거의 한 명도 빠짐없이 진아영의 술집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
- 나 : 오늘 아영 씨네 가게 놀러 갈게요.
- 진아영 : 앗!
- 진아영 :진짜요?
- 진아영 : 너무 기뻐요. 누구랑 와요?
-나 : 고등학교 친구들.
- 진아영 : 준비 잘 해드릴게요.
- 나: 근데 좀 부탁이 있는데...
- 진아영 :뭔데요?
- 나 : 그 남자들도... 바니 복장을 입혀줄 수 있나요? 여자애들이 좀 원하는거 같아서.
- 진아영 : ...
- 진아영 : 해볼게요. 그런 느낌만 나면 되는 거죠?
- 나 : 네. 부탁 좀 드릴게요.
- 진아영 : 알겠어요.
- 진아영 : 준현 씨 부탁인데 꼭 해드려야죠.
- 진아영: 아
- 진아영 : 그리고 나 오늘 준현 씨 위해서 스페셜한거 준비해놨는데.
- 나 : 제가 오늘 찾아갈걸알았나요?
- 진아영 : 안 오면 내가 갔겠죠?
- 나 : 기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