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9화 〉39화 (39/173)



〈 39화 〉39화

얼마 안가서 이연두의 말은 허풍이었다는게 증명됐다. 둘이서  병정도 마시자 조금씩 취기를 보여버린것이다.
반면에 나는 멀쩡했다. 스무살 때부터 소주와 야동,  두 가지와 함께 살아온 내 좆같던 인생. 주량이 4병까지는 아니더라도 2병까지는 아무 탈 없이  마신다.

“연두 씨. 너무 빨리 마시는거 아니에요?”
“아녜요! 저 진짜 술 쎄요!”

귀엽긴... 귀엽다. 못생긴 여자가 저랬으면 바로 죽빵 꼽고 경찰서 가는건데 이연두같은 여자가 땡깡을 피우니까 귀엽게만 느껴진다.
나는 어쩔  없는 척 그녀의 잔에 소주를 따라줬다.

“바로 짠! 바로 짠!”

무슨 술 마시기 대회라도 하나 싶을 정도로 공격적인 속도다.  수는 없지. 나도 맞짠을 하고 잔을 비웠다.

“크으.”
“오늘 술이 달지 않아요?”

술이 달면 위험하다는데. 오늘 진짜  제대로 잡았네.
나는 살짝 풀린그녀의 두눈을 지그시 바라봤다. 지금이 기회인가? 예전 같았으면 여자한테 제대로 말도 못 걸었을 나지만, 예쁜 여자들이랑 속살 섞고 대화도 많이 했더니 자신감이 생겼다.
여기서는 고민을 들어주자. 이연두 안에 내재된 고민거리를  벗기듯이 한올 한올 벗기는거다.

“연두 씨.”
“넹?”

주섬주섬 미디움 레어로 익은 소고기를 입에 집어넣던 이연두. 아까 그렇게 떡볶이를 먹고도 식욕이 미쳐 날뛰는 모양이다.

“솔직히 말해봐요. 아까 영화 내용 하나도 기억 안나죠?”
“윽! 뭐, 뭔 소리에요. 저 영화 엄청 열심히 봤다고요.”
“그래요? 왜 집중 못했는지 지금 말하면 내가 들어줄 수 있는데.”
“... 네?”
“고민거리 있잖아요. 그래서 영화도 집중 못한거고, 일부러 오버액션도 하고. 술도 약하면서 쎈척 하고.”
“아닛! 진짜, 이 사람이? 나 술 쎄다니까요... 흥. 알았어요. 말할게요. 나 솔직히 준현 씨한테 열등감 느끼고 있어요. 내가 준현 씨보다 경력도 오래됐는데 매출이 준현 씨만큼  나오니까 좀 그래요. 아! 오해는 하지 마세요. 그렇다고 질투하거나 그런건 아니에요. 나한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냥 괜히 울적해지고 그러는 거예요.”
“앗... 그렇구나. 음... 그건 제가 샵에서 원장님을 제외한 유일한 남자라서 그러는게 아닐까요?”
“참내. 그런건 잘생긴 남자한테나 통하는 거죠.”
“억! 팩트폭행이다.”
“아, 아니... 물론 준현 씨가 못생겼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말인지 아시잖아요. 아, 아니! 오해, 오해에요. 저, 저는 진짜 외모  봐요.”
“... 뭔 소리에요?”
“아, 몰라. 몰라.소주나 한잔 해요.”

그래도 말하고 나니까 한결 후련해 보인다. 실제로 이연두는  앞에서 “아우, 후련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랬구나. 그럼 오늘은적과의 데이트 뭐, 이런 거네요?”
“아닛! 적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준현 씨는 내 아군이잖아요. 그쵸?”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쵸. 맞죠. 100번 지당한 말이죠.”
“후후. 그래서 오늘 이렇게 나온 거예요. 아니었으면 안 나왔지.”
“아, 내가 못생겨서?”
“아닛! 언제까지 우려먹을 거예요.”
“근데 진짜 그런 생각할 필요 없어요. 저 되게 운 좋아서 어쩌다 그렇게 된거예요. 어쩌다보니 이설 실장님하고도 좀 친해졌고 원장님도 절 좋게 봐주시는거 같고요. 좀 기다리면 연두 씨한테도 좋은 일 분명 생길 거예요.”
“흐... 진짜 그랬으면 좋겠어요. 내가 잘 할줄 아는게 아직은 이것밖에 없으니까.”
“그림도 잘 그리시던데요?”
“아, 아까 그거는... 제발 머릿속에서지워줘요.그리고 그때 몸은 한 2년 전이니까... 지금은 뱃살이  쪘다는 것만... 알아두시고요.”
“푸핫! 그걸 제가 왜 알아야 되는데요?”
“아, 몰라요. 모른다고요. 진짜. 짠이나 해요.”

이렇게 소소한 잡담을 주고 받는 사이. 어느샌가 테이블에 빈 소주병이 하나 더 추가됐다. 이제 이연두는 그야말로 거나하게 취했다.
이런. 아까부터 마시게 했어야 했는데. 완전히 내 불찰이다. 여기서 더 마셨다간 모텔에 가도 바로 잠들어버린다.
내가 말리려는 찰나, 그녀는 소주 한잔을 더 입안에 털어 마신 후에 잔뜩꼬부라진 혀로 말했다.

“으브... 소찍히 말해봐요. 소찍히. 응? 어떠케 하는 거야. 어떠케 글케 실력이 좋은 거냐고오...”

눈을 반쯤 뜬 이연두에게 타이르듯 말했다.

“연두 씨. 많이 취한거 같네요. 이제 술 그만 마시자.”
“무슨 소리! 나는 대답 들을 때까지 마시꺼야. 으뜨케 그렇게  등록시키는 거냐고오.”

바로 잔을 따라서 마시려고 하길래 내가 대신 그 잔을 털어 마셨다.

“크으으, 쓰다. 써.”
“내  어디갔어. 흐웅... 그래서... 얘기 안 해주꺼에요?”
“얘기 해주면 소주 마실 거예요?”

애초에 해줄 얘기도 없지만.
이연두는 내 제안에 흔쾌히 고개를끄덕였다. 상체가 비틀거려 쓰러지려 하길래  옆자리로 이동해서 그녀에게 어깨를 내어줬다.

“히... 뭐야, 언제 왔대.”

그녀는 고개를 돌리더니 내 목덜미 쪽에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하,미치겠네.
어제도 그렇게 섹스를 해댔는데도 숨결 한번에 무너질 정도로 몸이 예민하게 달아올랐다.

“내 비법 알려주려면 정신 차려야 할텐데요. 지금 연두 씨 완전 취했잖아요.”
“안 취해떠! 오, 이거 뭐야...”

이연두는 내 손을 잡고 깍지를 꼈다. 아, 위험하다.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그녀의 입술을 찾게 됐다. 이렇게나 예쁜데. 나한테 이러고 있으니 가만히 놔둘 수가 없다. 근데 여기는 본래 술집이 아니라 평범한 불판 놓고 고기 구워먹는 음식점이다. 보는 눈도 많으니 내가 참아야지.

“근데 이상하지...  깍지 꼈을 뿐인데 뭔가 노곤해지는 것 같고 기분 조하... 손에 미약이라도 발라놨나?”

아차, 나도 모르게 그녀의 손에 생긴 붉은점과 오소소 올라온 핑크빛 점까지 다 긁어내버렸다. 다분히 무의식적인 행위였다.
손에 미약이라... 그래, 어쩌면 이게 내 비법일 수도 있지.
이제 슬슬 취했으니 다음 장소로 이동해볼까.
나는 남아있는 손을 뻗어서 그녀의 목덜미 밑에 손을 넣었다.

“흐힛! 앗, 차가.”
“가만 있어봐요. 내가 비결 알려줄테니까.”

살살.
지압을 야트막하게 넣어서 목덜미 부근을 조금씩조금씩 주물러 나갔다. 그러자 반쯤 풀렸던 이연두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뜨겁던 몸은 더욱 뜨거워졌고 살짝 긴장해 있던 손끝과 다리마저 힘이 풀려서 아이스커피 안에 들어있는 얼음 마냥 녹아내렸다.

“흐응...”
“기분 좋아요?”
“녜에...”
“여기는 보는 사람이 많으니까. 사람들 없는 곳으로 갈까요?”
“어, 어디요오..?”

참 신기한게 본능적으로 자기 몸을 지키려는건지 정신을 번쩍 차린다.
그런데 지금 이연두의 상태로는 저항하기 어렵다. 이미 내게 마음을 내준데다가 스스로 손까지 잡고 있으니. 솔직히 내가 이 말을 해주길 기다렸을거다.

“쉬었다가 다시 돌아다니는게 좋을거 같은데.”
“크흡. 마, 마자요. 나 지금 좀 힘든거 같기도 해요.”

그녀는 정말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여기 뒤에 가면 모텔 많아요. 제가 주물러드릴게요.”
“뭐야... 여기까지 와서 마사지하는 거예요? 출장이에요?”
“넵! 출장입니다!”
“프흐... 바보. 알겠어요. 가요, 우리.”
“방금 술 취한 사람이 나한테 바보라고 한거 같은데.”
“누구야? 누가 우리 준현 씨한테 바보라 그래써? 나오라 그래.”

나는 취한 이연두를 뒤로 하고 얼른 계산대로 가서 내 카드를 건넸다.
그러자 그녀가 뒤에서 촐랑촐랑 빠른 걸음으로 걸어와 나를 나무랐다.

“무, 뭐해요.오늘 밥값 내가 계산하기로 했잖아.”
“글쎄요. 그럴거면 좀 늦었네요. 오늘은 내가 좀 계산하고 싶네.”
“흥...”

소리는 흥흥거리지만, 얼굴은 달아올라서 나한테 흠뻑 빠졌다. 기우뚱거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내 팔에 매달렸다. 나는 거의 반부축하는 심정으로 이연두를 데리고 고깃집 밖으로 나갔다.

“얼마 나왔어요? 내가 이체 해줄게요.”
“얼마 안나왔어요. 이백삼십만원.”
“푸핫! 아 깜짝이야. 진짜 뭐, 아재에요? 이십삼만원 나온거죠?”
“크큭.”
“에이, 너무 많이 나왔다.진짜 나눠 내요.”

이연두는 진심으로 미안해하며 날 멈춰 세웠다. 얼굴을 마주보고선 섰는데 딱 나랑 눈높이가 같다.
젠장. 구두라도 신었으면 나보다 키가 컸겠네. 어, 그러고보니  구두를 안 신고 왔지? 원피스를 입었는데 굽이 낮은 스니커즈를 신고 왔잖아.
내가 여러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동안 그녀 역시 뭔가 생각하는  하다가 문득 재밌는 생각이 들었는지 나를 이끌고 앞으로 나아갔다.

“나 갑자기 사고 싶은거 생각 났어요. 우리, 편의점 가요.”
“?”

그녀가 뭘 사려는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가까운 편의점에 간 이연두는 나더러잠깐 밖에 있으라하더니  분 후에 다시 나왔다.

“뭐 사온 거예요?”
“비밀.”

베시시 웃으며  입술에 자기 손가락을 가져다가 살포시 누른다.

“가요, 가요. 모텔비는 내가 쏜다~”

모텔비 쏜다는 말이 이렇게 섹시하게 느껴지지?
생일날 엄마  잡고 장난감 사러가는 기분이다.

모텔에 도착했는데 대실을 빌리기에는 시간이 좀 늦었다. 뭐가 어쨌건 상관없다는 듯 이연두는 모텔비를 계산했다. 여전히 취기가 남아있는지 이연두는  부축을 받고 안으로 들어갔다.

“후-”

짙은 숨을 내쉬는 그녀.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손에 들고 있던 핸드백이 아무렇게나 바닥에 떨어졌다.
그나저나 뭘  온 걸까. 핸드백을 열면 그 안에 구매한 물품이 있을텐데.
이연두는 가만히  있는나를 한번 올려보더니 픽하고 웃었다. 그리곤 자기 옆자리를 탕탕 치면서 옆에 누우라고 했다.
아임 그루트...
나는 막대처럼 그녀 옆에 쓰러져 누웠다.
아무리 정상이라고 해도 나 역시 술을 꽤나 먹었기에 누워서 잠시 숨을 고를 필요가 있었다.

푸- 푸-

여자랑 모텔에 와본건 처음이다. 모텔 이불이 이렇게나 부드러운지 처음 알았다. 코를 박자마자 나도 모르게 짙은 숨을 내뱉게 됐다.

“크크. 뭐 해요?”
“푸파푸파. 이거 몰라요? 푸파-”
“하아... 그럼일단 저 씻고 올게요?”

앗.
크흠...
친구들한테나 들었던 소리. 남녀가 모텔에 들어가, 여자가 늘상 하는 소리. “오빠 나 먼저 씻고올게.”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여줬다. 대답을 하기엔 뭔가 분위기를 흐릴거 같은 느낌이랄까. 감히 이 신성한 순간에  목소리를 섞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다소곳이 화장실에 샤워를 하러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걸. 샤워부스에 들어가서 옷을 벗은 이연두의 몸이 실루엣으로 비춰졌다. 다 보이는 건 아니지만, 훌륭한 골반라인을 비롯한 모래시계같은 허리라인이 눈에확 들어왔다.
꿀꺽-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이 날뛰는 심장을 부여잡은채 이연두의 핸드백을 몰래 열어봤다.
아, 뭐야.
이거 사온 거였어?
입꼬리가 쫘악 위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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