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0화 〉30화 (30/173)



〈 30화 〉30화

샵 안으로 들어가자 이미 출근한 신이설이 카운터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안녕하세요?”

휘둥그렇게 커진 눈. 믿기 힘든 걸 봤다는 듯 어안이 벙벙해 보인다. 신이설이 원래 저런 캐릭터가 아니다보니 놀라움의 효과가 극대화됐다.

“... 왜 그렇게 놀라요?”

나는 애써 모르는척 물었지만, 사실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어젯밤, 나는 얼굴 주변을 마사지하듯 손끝으로 풀어주다가 보라색반점을 발견했다. 콤플렉스를 나타내는 반점들이 두피 마사지를 하자 올록볼록하게 더덕더덕 생겨났던 것이다. 몸에 반점이있을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얼굴에 생기니 꽤나 보기 흉측했다.
흉측한 걸 덜어내 버리기라도 하듯 재차 마사지로 털어냈더니 놀랍게도 얼굴의 윤곽이 조금씩 바뀌었다.
피부가 화사해진건 물론이고 어정쩡하던턱은 뽀샵 보정을 받은 것처럼 조금 갸름해졌다. 숱이 없어서 휑했던 눈썹도 이상하게 짙어진거 같고, 뭉툭하고 낮았던 콧대가 보기좋게 자리를 잡은 느낌.
물론 얼굴이 성형한 것처럼 확 바뀐건 아니었다. 물광 피부처럼 화사한 피부를 제외하면 아주 미세한 변화들이다. 근데 그 미세한 변화들이 모이고 모여서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낸 것 같다.
 얼굴은 아주 잠깐 새에 그럭저럭 봐줄만한 얼굴이 되었다. (물론 내 기준)
이 정도면 어디 가서 꿀리지는 않겠는데? 하면서 거울 속의 나와 훅훅 원투를 주고 받기도 했다.

“어... 준현쌤 혹시 메이크업 받았어요?”
“메이크업? 그런  제가  받아요?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그렇죠? 근데 뭐가 엄청 바뀌었는데... 뭐지?”

성형을 했다면 하루 아침에 이렇게 정상적으로 나올 수 없다는 걸 잘 알겠지. 피부 관리 역시 마찬가지. 관리를 받는다고  좋아지면 누가 못생겼다는 소리를 들을까? 하지만  손길을 받아봐.  예뻐지고  잘생겨지고... 나는 그 불가능한 걸 가능하게  수 있게 됐다.
기적의 손.
앞으로 그 타이틀을 실현할 일만 남은 것 같다.
휴게실로 들어가자 나를 보는 마사지사들이 전부 얼떨떨한 표정을 한번 지은 후에야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준현쌤.”
“오늘 되게 밝은데요?”
“되게 화사한데 화장했어요? 살도 좀 빠진거 같고.”

등등.
태어나서 한번도 외모 칭찬을 받아본적이 없는 나로써는 대형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몸이 다 떨릴 정도였다. 아주 차가운 날씨에 창문을 열고 바깥 바람을 쐬는 것처럼 등골이 오싹해지면서도 기분 좋은 떨림이다.

‘아침에 확인해보니 고추 길이가 그대로였지. 그러다 점심쯤 지나서 다시 확인해봤을 때, 고추 길이가 원상태로 돌아가 있었다. 그렇다는 얘기는 보라색점을 없애서 얻을 수 있는 효과의 지속시간은 대략 12시간 정도. 출근하기 전에 마사지 쫙하면 퇴근할 때까지 이 비주얼을 유지할수 있다.’

보라색점에 대한 지식이 늘었다. 그리고 이런 비주얼이 생각보다 여자들한테 잘 먹힌다는 것도 알았다. 다들 내가 갑자기 변화가 생겼기 때문에 관심을 주는 것일수도 있지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평소에 관심 1도 없던 여자들이 내게 관심을 주기 시작했다.
이대로면 진짜 이 세상 모든 여자들이랑 다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욕심은 그득할수록 좋다고 배웠다. 내가 좋아하는 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최대 다수의 최대 성교. 이대로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데 뒤에 돌아오는 한 마디.

“키만 조금 더 컸으면 완전 내 이상형인데.”

... 니 이상형 되고 싶지도 않거든? 속으로 이를 악물었지만, 결국 화를 내면 지는건 나였다.
키... 그런가. 아무리 나라도 작은 키를 늘릴 수는 없을 거다. 시팔. 이연두처럼 길쭉한 여자가 옆에 있으면 눈높이가 거의 비슷하게 자리를 잡아서 안 그래도 자괴감을 느끼는데. 욕심 그득한 상상을 하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팩트폭행을 당해버렸다.
그런데 내가 좌절할 이유가 있을까?
키를 늘리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 시점. 이 시점은 내 고추가 길어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했던 시점과 언뜻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내게 현실로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굳이 내가 불가능하다고 단정짓고 좌절할 필요가 있을까? 방법이 있을 거다.
그리고  한 가지. 키를 못 늘리면 또 어떤가? 나는 기적의 손. 남자는 능력이라고 했다. 키도 얼굴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건 부와 명예. 그 중에서도 부가 최고다.
엄연히 따지면 (부>고추>얼굴>키) 순서지. 케이스 바이 케이스겠지만 대체로 그렇지 않을까.
정우성얼굴에 꼬삼이 될 바에야 옥동자 얼굴에 대물이 되지. 이것도 아닌가. 밸런스 게임은 항상 어렵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카운터로 가서 신이설에게 대뜸 질문했다.

“이설 실장님.”
“네?”
“남자친구를 하나 골라야 되는 상황이에요. 정우성 얼굴인데 고자인 남자랑 옥동자 얼굴에 속궁합이 엄청 잘 맞는남자, 둘 중에 하나만 고르면 누굴 고를래요?”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신이설은 생각보다 태연하게 대답했다.

“남자친구요?”
“네.”
“정우성이요.”
“... 왜요?”
“남편이면 옥동자.”
“아... 그런가?”

솔로몬인데? 내가 연신 감탄하자 신이설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건 왜요?”
“아뇨... 갑자기 궁금해서.”

1절만 하면 참 좋았을 것을. 신이설은 2절에 뇌절까지 하고 말았다.

“오늘 얼굴빨  받았다고 정우성의 영역을 넘보는 건 아니죠?”
“에이, 그럴 리가 있나요? 그냥 극단적인 예시를 든거 뿐이에요.”
“정우성은 건드리지 마세요.  더 하위 클래스 연예인을 고르라고요.”
“음... 소지섭?”
“... 미쳤어요? 당장 취소해요.”
“하, 그럼 밸런스가 안 맞잖아요. 밸런스가.”
“밸런스 맞추려면 어느 정도까지 가야하냐면요... 정우성 얼굴인데 날 막 때려! 허구한날 날 구타해! 그 정도가 되면 좀 고민해볼만 하지.”

말 갖지도 않은 소리! 진짜 화가 날뻔 했다. 어떻게 저렇게 뻔뻔하게 좆같은 소리를 할까.

“너무 비약이 심한거 아니에요?”
“이게 진짜 여자들이 생각하는 결론이에요. 다른 누구도 아닌 정우성이니까.”

그런데 이런 말을 들어보니 그럴법 하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한때는  역시 존예여신이 날 줘패고 감금시켜도 좋으니 한번만 만났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으니까. 과연 나만 그럴까?
생각해보니 신이설이 현실적인 여자였네.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자 신이설이 다시 씩 웃었다.

“준현쌤.”
“네?”
“쌤 요즘 썸타는 사람 생겼죠?”
“예? 아, 아니... 아닌데요?”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썸이 아니라면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생긴거겠지. 갑자기 그런 터무니없는 질문을 할 때부터 알아봤어요.”

하. 왜 그딴 질문을 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얼토당토 않는 질문이었네. 아이고  정신아. 머릿속에 좆물로 가득차서 이제 제대로 굴러가지도 않는 모양이다.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요.”
“네? 뭐가요?”

대체 뭔 생각을 하는건지 헬쭉 웃는 신이설.

“걱정되서 그러는 거죠? 밤에 남자 구실 못할까봐.”
“... 아니거든요? 저... 장난 아니거든요?”
“푸핫! 네, 네~ 알겠슴돠.”

아, 씨... 오늘은  말렸다. 외모 칭찬을 받아서 들뜬 나머지 신이설의 페이스에 말려버렸다.
하지만 이대로 질 수는 없지.
나는 지난번에 신이설을 골려줬을 때와 마찬가지로 상체를 숙여 신이설의 얼굴에 가깝게 얼굴을 붙였다. 그녀는 내가 이렇게 행동할 때마다 어쩔줄 몰라하며턱을 뒤로 살짝 빼고 눈을 크게 뜬다.

“뭐, 뭐예요. 또?”
“정 의심되면 시험해보시던가요.”
“네, 네? 뭐, 뭘요?”

엄청 당황해서 얼굴을 붉힌다. 그렇다고 마냥 싫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정말 싫다면 반문이 날아오는게 아니라 바로 발길질을 당했다던지 뺨을 한 대 맞았을 테니까.

“크크... 장난장난. 실장님은 신기하게 눈을안피하시네요. 나는 누가 이렇게 가까이 오면 눈부터 피하게 되던데.”
“아, 뭐에요. 진짜.”

신이설에게 이런 식으로 장난을 치면 지금까지 팩트 폭행으로 쳐맞고 있었어도 기분이 다시금 좋아진다.
마침 이연두도 출근을 하기 위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머나. 준현쌤. 오늘따라 얼굴이 왜 그렇게 화사해요? 실장님도 안녕하세요.”
“신경 좀 썼습니다.”

나도 모르게 머리를 긁적거리며 헤헤 웃었다. 언뜻 찐따같아 보이는 내 행동에 이연두는 씩하고 웃어보였다. 오늘은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연두쌤도 오늘 기분 좋아보이시네요.”
“아, 네. 오늘은 예약 손님있는 날이라서. 예전에 다녔던 샵, 남자 손님인데 자기 여자친구 관리를 맡겨달라고 하더라고요.”
“아하.”
“준현쌤은 오늘 예약있어요? 카운터에 계시네요.”
“네. 이따가 바로 결제건 있어서요.”
“와, 또 결제에요? 진짜  나간다~ 아참. 실장님, 오늘 발마사지 언제할까요?”

이연두의 질문에 신이설은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한테 포핸드 마사지를 해줄 때  친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패배를 승복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다.

“음... 준현쌤 결제건만 끝나고 바로 할까요?”
“그래요!”

밝게 말하고 휴게실 쪽으로 걸어간다.
아무리 봐도 이연두는 성격이 좋은 편에 속한다. 누구랑은 다르게... 나는신이설의 옆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왜요,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뜨거운 시선을 느꼈는지 자기 볼을 쓰다듬는 신이설.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말했다.

“머리 내리니까 예쁜데요?”

컥. 내가 말해놓고도 오그라들어서 순간 숨을 쉬기 어려워졌다.
진아영한테 배웠다. 여자들은 칭찬에 약하지만, 너무 느끼한 소리를 해도 싫어한다고.
그런데 신이설에게는  먹혔는지 얼굴이 금세 붉게 달아올라 내 눈을 회피했다. 그렇게나 내 눈을 잘 쳐다보던 신이설이.

“뭐래요...”

엥... 설마... 신이설이 날 좋아하는 건가? 그렇게 남매처럼 티격태격했는데...

그때 마침 김서아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얼마나 급하게 뛰어왔는지 헉헉거리는 소리가 다 들렸고 얼마나 세차게 문을 열었는지 도어벨이 신경질적으로 울려댔다.

“헉... 헉... 나, 나 왔어... 헉...”
“뭘 그렇게 뛰어왔어. 천천히 오지.”
“아... 시간 늦으면 안될거 같아서. 자... 이거... 카드...”

김서아는 힘들었는지 무릎을 잡고 헉헉거리다가 숨을고르기 위해 고개를 들어올렸다.
신이설과 눈이 마주친 그녀의 이마에는 ‘이 년은 또 누구야?’라는 글자가 적힌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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