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6화 〉26화 (26/173)



〈 26화 〉26화

핑크색 점들이 전부 사라진 가운데, 이미경은 달아오른 숨을 내쉬면서 조금씩 조용해졌다. 숨결이 고와진 그녀는 노곤해졌는지 실제로 새근새근 잠에 빠져들었다.

“일단 열은 내려간거 같은데... 어떡하지? 깨워야하나?”
“아뇨... 당분간 자게 냅두는게 좋을거 같습니다.”

내가 말하자 최원재는  어깨에 손을 얹더니 자연스럽게 VIP룸 밖으로 나를 이끌었다. 복도에 나가서 양옆을 한번 살핀 그는 옆방이 비어있다는 걸 알고선 나와 함께 그 방으로 들어갔다.
한숨을 푹 쉬고나더니 내게 말했다.

“대체 이미경 씨한테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나에게는  가지의 선택권이 있었다.하나는 있는 그대로를 얘기하는 것. 내 눈에 보이는 형이상학적인 것들에 대해 설명하고 그 색깔 반점들이 각각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고 있다는 것까지 말해주는 것. 그러나 최원재가 과연 믿을만한가? 만난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사람이다. 내 손으로 목숨을 구해준 진아영에게도 말하지 못할 비밀인데 최원재에게 말하는 건 더욱 말이 안된다.
나는 결국 빠른 판단 하에 두 번째 선택지를 선택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막혀있던 혈을 뚫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 아니, 그러니까 준현쌤. 준현쌤 정체가 뭔데? 무슨 무협지에서 나온 사람이냐고. 강호의 도리 뭐 이런 거야? 어떻게 그렇게 사람의 혈맥을 잘 봐주는건지 모르겠네. 이번에 마사지도 처음 배웠다면서.”

뭐라고 말하면 설득할  있을까? 아니... 설득하지 않는게 좋겠다. 나 역시 이 능력이 어떻게 개현됐는지도 모르는 상황에 무슨 수로 설득할 수 있겠는가. 갑자기 어는 날부터 야동을 보는데 여자들 몸에 울긋불긋한 반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도 안된다.
나는 애써웃어보이며 말했다.

“느낌입니다. 느낌.”
“하... 그래, 뭐. 느낌이라면야. 나 역시 마사지를 처음 시작할 때는 천부적인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었으니까... 근데 이건 좀 궤가 다르다고 해야할까. 준현쌤은 내가 봤던 사람 중에서 가장 기상천외해.”
“... 그런가요.”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최원재는 양손으로 내 양 어깨를 꽉 쥐었다.

“이건 역대급 재능이라고.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보석. 그래, 어쩌면 기적의 손. 기적의 손일지도 모르지.”

최원재도 기적의 손이라는 말을 언급했다. 이연두도 그렇고 최원재도 그렇고. 세대 차이가 좀 나는  사람 입에서 같은 단어가 나왔으니 이 업계에서는 꽤 유명한 키워드인 모양이다.

“기적의 손이라면 들어본적이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손이라고 하던데요.”
“그렇지.”
“실제로 그런 사람이 존재하기는 한가요?”
“있기는 하지. 그런데 은퇴했어. 지금은 시골에 내려가서 조용히 살고 계시는 도인같은 분이지.”
“흠...”
“왜, 관심 있어?”
“관심이야 있죠.”

혹시 그 사람도 나와 같은 능력이 있는 거라면? 여러 가지 조언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사람이라면 그런 초인적인 능력을 갖은 사람을 궁금해 할 수밖에 없지 않나?

“근데 찾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누구 말로는 어디 산골에 들어가서 살고 있다. 누구는 또 산중턱에 집을 짓고 산다고 하질 않나. 누구는 이미 죽었다고 하기도 하니까. 그 사람은 거의 전설적인 사람이고. 지금 대중에 제일  알려져 있는 사람 중에는 신용섭이라는 사람이 있기는 한데.”
“신용섭이요? 그 예전에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연예인들 마사지 해줬던?”
“어. 맞어. 잘 알고 있네.”
“그거 그냥 연예인들이랑 짜고 치는 고스톱인줄 알았는데. 그게 진짜였어요?”
“진실은 나도 모르고 아무도 몰라. 근데 여전히 지상파 방송에는 간간히 출연하는 모양이야. 나 인터뷰하고 갔던 그 기자 양반도 신용섭에 대해 물어보더라 어떻게 생각하는지.”
“... 그래서 뭐라고 대답하셨는데요?”
“뭐, 그냥 진짜 내 생각을 말해줬지. 일면식도 없어서잘은 모르겠는데 실력이 좋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이렇게까지 회자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신용섭이라. 스무살이 돼서 군대 가기 전의 공백 기간. 그 어중  시기에 한창 연예인들 많이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을 전부섭렵했던 적이 있었다. 그중에하나가 각종 기인들이 등장해서 경연대회를 벌이는 거였는데 그때 신용섭이 나와서 패널로 등장한 연예인들을 마사지 해줬었다. 얼마 전에 병원에서 허리디스크 진단을 받은 연예인의 짤막한 하루를 담은 영상이 비춰지고 신용섭이 그 연예인의 허리를 우두둑 소리가 나도록 풀어줬더니 통증이 말끔히 나았다.
그때까지 대중들은 카이로프라틱이라는 치료요법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는데 그 방송을 계기로 많이들 알게 됐다.
나 역시 어딘가 쑤시고 그러면 농담 반, 진담  섞어서 카이로프라틱이나받으러 가볼까 했더랬다. 그런데 알고보니 가격이 미친 듯이 비싸고 예약하기도 까다롭다고.
안 그래도 한번 받아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이참에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신용섭을 찾아봐야겠다.
최원재는 화제를 돌려 다시 이미경에 대한 얘기로 넘어갔다.

“이미경 씨는 아주 만족한거 같던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끝이 아닙니다.”
“뭐? 아직 끝이 아니라고?”
“예. 조금 더 할 일이 남아있습니다.”
“후. 그래? 그러면 이렇게 하자. 우리 정액제로 해서 VIP 계약 거는거 알고 있지? 담당을 너로 바꾸는 대신 계약을 새로 갱신하자고 꼬셔봐. 포핸드 마사지가 효과가 좋긴한데 일정 맞추기가 어려워서 자주 받기는 힘들고, 지명을 너로 바꿔야 지속적으로 관리 받을 수 있다는 식으로.”

원래 최원재가 담당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원장이 모든 VIP들을 도맡을 수는 없다. VIP 고객은 계속 늘어나니까최원재는 언제든지 등판할 수 있는 구원투수로 남는게 좋다. 따라서 나에게 자기 VIP 고객을 돌리려는거다.
나에게도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지명 고객이 암만 많아도 그 고객이 돈 많은VIP인거랑 일반 고객인거랑은 차이가 크다. 며칠 눈여겨 봤는데 아무리 바빠 죽으려고 하는 테라피스트라도 일반 고객으로만 스케줄이 가득  있으면 월급 300을 겨우 넘기는게 고작이다.
집에서 혼자 계산 해봤는데 스케줄이 전부 VIP로 가득차 있으면 월급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커미션과 더불어 팁과 지명료도 천차만별이니까.
나는 최원재의 제안을 단숨에 수락했다.

“좋아. 그럼 나는 이쯤에서 살짝 빠질테니까 준현쌤이 들어가서 마무리 마사지 잘하고 나와.”
“네, 알겠습니다.”

나는 대답하고 최원재와 함께 빈 방에서 나갔다. 최원재는복도 끝쪽으로 걸어가며 내게 작은 목소리로 “화이팅”을 외쳐줬고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에 이미경이 있는 VIP룸 안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쌕쌕거리며 잠을 자고 있는 이미경.
나는 그녀의 머리맡으로 가서 부드럽게 목덜미를 감싸고 주물렀다.

“흐음~”

상쾌한 아침! 이미경은 한 8시간 숙면을 취하고 일어난 사람처럼 황홀한 표정으로 눈을 떴다. 그러더니 나와 딱 눈을 마주치곤 자기가 어떤 상태라는 걸 깨달았는지 얼굴을 붉혔다.

“내, 내가 잤나?”
“네. 잠깐 주무시던데요.”
“하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도 안 나네. 기분이 엄청 좋아서 까무룩 잠든  밖에는...”

기억이  나긴 개뿔. 머릿속에 문득 아까의 일이떠올랐는지 동공이 확장되더니 몸을 부르르 떤다. 쾌감은 마치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맛을 뇌가 기억하는 것처럼 잔잔한 파도처럼 아직까지 이미경의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거름망에 걸러진 찐득한 노폐물이 남은 거다.
이미경은 허벅다리를 베베 꼬았다.

“시, 시간이 어떻게 됐죠? 마사지 끝난 거예요? 원장님은요?”
“원장님은 포핸드 끝내시고 나가셨는데요. 제가 아직 해드려야 할게 남아있어서요. 시간도  남았고. 한 10분 정도만  해드리면 되요.”
“아, 그래요.”

내 손만 닿았다하면 다들 착하고 순한 양이 되어버린다. 붉은점을 죽여 나갈 때마다 흐드러지듯 녹아내리는 몸짓들 때문에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눈에 확 드러온 건, 목덜미 쪽에 등장한 보라색 점이었다.

“이미경 님.”
“네?”
“평소에 목주름 때문에 고민이 많으시죠?”

이미경은 뜨끔했는지 놀란 표정을지어보였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다 아는 방법이 있죠. 제가 독심술에 좀 능해서요.”
“풉. 독심술? 재밌네요.”
“제가 지금부터 목 주름을 없애는 마법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나는 보라색 점이 있는 위치에 손을 대고 살살 문질렀다. 이연두가 내 보라색 점을 눌렀던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압력으로 살살.
그러자 눈에 띌 정도로 목쪽에 있는 늘어진 살들이 근육에 의해팽팽하게 잡히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광택이 났다.

“골반을 맞춰드린 건 맞는데요. 효과를 보시려면 며칠 있어야 해요. 근데 목 주름 정도는 지금 당장 잡아드릴 수 있는 부분이어서 바로 해드리는 거예요.”
“와... 이런 것도 가능한 거구나.”
“일어나 보시겠어요? 아까 골반 주변을 풀어놔서 전보다 걸음걸이가 가벼워지셨을 거예요.”

이미경은 반라 상태로 일어나서 배드 옆을 걸었다. 그리곤 감탄하며 말했다.

“와, 진짜네요? 전에는 뭔가 삐걱거리는 느낌이었는데 되게 부드럽게 발이 앞으로 뻗어지는 느낌이야.”
“그리고 거울도 한번 보시겠어요?”

이미경은 벽쪽에 나 있는 거울을 보더니 헉하면서 놀랐다.

“엄마야... 진짜... 진짜네요? 목에 주름이 다 사라졌어... 이게 말이 되나? 나 잘 때, 뭐 바른거 아니에요?”

나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했다.
이미경은 자기가 지금 속옷만 입은 상태라는걸 망각했는지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몸을 돌려보면서 바뀐 자신의 모습에 취해 갔다.
확실히 이미경은 미시치곤 예뻤다. 직선으로 떨어지는 기다란 각선미며 잘록한 허리 그리고 잘 관리한 피부. 그런데 여기에 추가적으로 내 마사지를 통해 얼굴이나  쪽에 보톡스를 맞은 것처럼 주름이 사라지고 피부가 빵빵하게 부풀어 올라서 화룡점정을 찍은 것이다. 나였어도 거울 앞에서 자아도취에 빠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신고 서 봐도 되요?”
“음. 잠시만요. 제가 카운터에서 빌려올게요.”

후다닥 나가서 신이설에게 갔다.

“실장님. 미안한데 지금 신고 있는 힐 좀 잠깐 벗어줄래요?”
“... 내가 지금꿈을 꾸고 있나?”
“진짜 급해서 그래요. 힐 좀 벗어줘요.”

내가 안달하자 신이설은 어쩔 수 없다는  신고 있던 힐을 내어줬다. 잽싸게 낚아채서 VIP룸으로 돌아갔다.

“여깄습니다.”
“오.”

정말 가져와줄줄 몰랐다는 얼굴로 힐을 받아선 반나체 상태로 하이힐을 신는다. 타고난 몸매 때문에 힐을 신자마자 태가 확 살아났다. 엉덩이를 쭉 빼서 자세를 취하며 물어본다.

“어떤거 같아요?”
“거짓말  하고 삼십대라고 해도 믿겠어요.”

39.9살 정도?

“진짜? 진짜 좋다. 이대로 계속 유지만 할 수 있으면 바랄게 없겠네.”
“이미경 님.”
“네?”
“앞으로 저한테 관리 받으시죠?”
“엇... 그래도 되는 거예요? 원장님은...”
“원장님도 허락하셨어요. 저랑 이미경  케미가  맞는다고 생각하셨나봐요.”
“확실히 그렇긴 해요... 1시간만에 골반도 맞춰주고 피부도 탱탱해졌는데 뭘 더 바라겠어요. 쌤이야말로 내 완벽한 소울메이트지.”

일이 술술 잘 풀렸다. 이대로만 있으면 계약 갱신 확정이다. 박유영에 이어 이미경까지 계약을 따내면 커미션이 얼마냐...
박유영은 새 계약 갱신을 할 때 400만원이라는 거금을 내놨다. 여기서 내가 가져가는 커미션은 20%. 여기에 1회 관리 때마다 팁 포함해서 5만원 정도를 관리비용으로 더 받게 된다. 일반 고객을 관리 할 때는 이런 추가 비용이 없지만, VIP 고객에 한해서만 팁이라는 개념이 붙어서 돈을 더 받게 된다.

“계약 갱신해야 되죠? 얼마나 추가하면되요? 쌤이 봤을 때는 어때요?”

그녀는 힐을 신은 그 상태로 배드에 앉아서 다리를 꼬았다. 여유로운 자태에서 연륜이 느껴졌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얼마를 불러야 할 수 있을까? 그냥 한번 떠봐? 이미경이 돈이 많은건 알겠지만, 얼마를 쓸수 있을지는 다른 개념의 얘기다.

“얼마나 쓰실 수 있는데요?”

내가 묻자 이미경은 도발적인 표정을 지어보였다. 나를 유혹하는 듯 붉은 입술을 달싹이며 상체 뒤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겼고 군살없는 배가 훤히 드러났다.

“한... 2천 정도?”

그때부터 가슴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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