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0화 〉20화 (20/173)



〈 20화 〉20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나는 살면서 현실과 망상의 괴리감이 존재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야동은 야동일 뿐.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SNS, 대중매체에 노출된 연예인들과 수 많은 셀럽들조차 내가 사는 인생과 전혀 다른 망상 속의 사람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박유영이 내게 남기고 간 명함에는 자기 페이스북, 트위터 및 인스타, 유튜브 아이디가 적혀 있었다. 뿐만 아니라 휴대폰 번호까지 있었으니 시간이 나면 연락하라는 뜻이 아닐까. 나는 당장 휴대폰에 박유영의 번호를 저장했다.

‘근데 지금 뭐라고 말을 걸지?’

방금까지 므흣한 짓을 해놓고 뻔뻔하게 “안녕하세요. 저 강준현이라고 합니다.”라고 보낼 수도 없지 않나. 머리를 긁적이다가 고민하는 김에 그녀의 SNS나 구경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먼저 들어간건 인스타였다.
사진들에는 죄다 얼굴이 없었지만, 나는  눈에 모든 사진의 주인공이 박유영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방금 내가 조물딱거리고 섹스까지 한 그 몸이니까. 근데 볼수록 놀랍다. 수천명의 팔로워들이 댓글과 좋아요를 달아놨다. 매끈하고 섹시한 몸매. 그러나 결코 얼굴만은 공개하지 않았다. 그렇게 예쁜데 왜 얼굴은 공개하지 않았을까.
유튜브에도 들어가보니 얼굴은 보여주지 않고 수영복, 속옷, 스타일링 관련된 영상들이 많았다. 얼굴을 공개하지 않으니 요즘 유행하는 VLOG는 당연히 없다.
마찬가지로 인기가 많다. 남자들은 눈요깃거리를 찾기 위해 들어왔고 여자들은 예쁜 몸매를 보며 대리만족을 하거나 정말 자기한테 필요한 옷을 스타일링 받기 위해 들어왔다.

- 언니 이뻐요~

- 몸매만큼은 국탑인 듯.
 re : ㅇㅈ
⇒ re : 아이돌이라고 해도 믿는다.

- 피팅모델 사이트 주소 -> (확인)

- 섹시 컨셉 제대로 잡았네. 얼굴도 공개하면  좋을텐데.
⇒ re : 얼굴도 분명 넘사벽 수준으로 이쁠 듯.
 re : 개소리마셈. 공개 안하겠냐? 빻았으니까 안하지.
 re : 응 니얼굴.

- 핡 ㅅㅂ 한번만 만져보면 소원이 없겠다.
⇒ re : 이딴 새끼들은 다 감옥 보내야됨.
 re : 인성.
 re : 하여튼 시발 한남새끼들 생각하는거  똑같음.

따끈따끈하게 올라온 동영상도 조회수가 10만에 가까웠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유명인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여전히 그들은 내게 망상이었고. 이제  망상은  현실과 큰 괴리감이 없었다.
나는 고민 끝에 박유영에게 문자를 보냈다.

- 나 : 안녕하세요. 오늘 마사지해드렸던 강준현입니다. 서비스  받으셨나요?

조금 후에 바로 답장이 왔다.

- 박유영  : 안녕하세요 (부끄)
- 박유영  : 힘드셨을텐데 쉬고 계시나요?

왜 힘들거라고 생각하는지 알기에 흐뭇해졌다. 그래도 할  해야지. 딱히 바쁜건 아니지만, 바쁜척 문자를 보냈다.

- 나 : 다음에 예약이 있어서 바로 들어가봐야 해요.
- 박유영 님 : (이모티콘)
- 박유영 님 : 저 때문에 시간 연장되서 쉬지도 못하시고 죄송해서 어쩌죠. ㅠㅠ
- 나 : 아닙니다. 저한테는 여러모로 의미있는 시간이었어요.
- 박유영  : 아...
박유영  : 이거 좀 창피하네요. (부끄)(부끄)
- 나 : 그러게요...
- 박유영 님 : 비밀로 해주시는 거죠?
- 나 : 당연하죠.
- 박유영 님 : 선생님도 오늘 일은 없었던 일처럼 해주세요.

없었던 일로 해달라. 나는 조금 서글퍼졌다. 역시 이런 유명인은 인맥 관리를 하는 걸까. 자기 주변 사람들의 수질을 관리하는 거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장을 보냈다.

- 나 : 네.
박유영님 : 선생님은  은인이에요. 감사해요.
- 나 : 뭘요. 언제나 고객님의 불편한 사항을 풀어드리는 게  일인걸요. 그럼 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

나는 딱딱하게 문자를 보내놓고 한동안 후회했다. 더 길게 문자를 이어나갈 수도 있었을텐데. 매번 이랬다. 대학교 때 썸을 탈 때도 그랬고 친구들이랑 술 먹고 헌팅을 하다가도 그랬다. 왜 매번 후회할 일들을 반복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퉁명스럽게 했는데도 날 좋아해줄 여자는 없는데 말이다.
그런데 아주 조금 후에 박유영에게 문자가 왔다.

- 박유영 님 : (사진)

나는 스마트폰 액정 상단에 뜬 ‘사진’이라는 문구를 보자마자 부리나케 들어가서 확인했다.
운전을 하다가 찍은 듯. 땡땡이 무늬가 뭔가 해서 자세히 봤는데 자신의 팬티 입은 사타구니를 그대로 찍어서 보내준 거다. 그리고가운데 부분은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 박유영  : 이렇게 젖은 것도 진짜 오랜만이네요. 선생님 덕분이에요. 선생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

나는 프로필에 걸려있는 박유영의 얼굴 사진과 팬티 사진을 번갈아보면서 마치 천국에 와 있는 것만 같은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SNS 셀럽이 나한테 야한 사진을 보내면서 하트까지 붙여주다니. 마사지사가 되길 정말 잘했다.
근데 뒤에서 누군가 인기척을 드러내 황급히 폰을 숨겼다.

“누구에요?”

이연두는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아까 스치고 지나갈 때 부끄러워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누군데 팬티 사진을 보내요? 봐봐요. 그거 스팸문자 아니에요?”
“아, 친구들이 야한 사진 보낸거에요...”

어쩌다 튀어나온 변명에 이연두는 가자미눈을 뜨고 날 유심히 뜯어봤다.

“그래요?”
“네.”

내가 진심어린 눈빛을 보여주자 그녀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 먹었어요?”
“아뇨. 아직. 근데 이따가 원장님이랑 포핸드 마사지 들어가야 돼서요. 2시간 정도 남긴 했는데 제가 배가 부르면 나른해져서 공복으로 들어가려고요.”
“아, 스케줄이 뒤로 밀렸다고 하던데 그렇게 됐군요. 그거 끝나면  늦은 시간일텐데.”
“그래도  뒤로는 일정 없으니까그때 밥 먹으려고요.”
“아쉽네요. 같이 밥 먹자고 하려고 했는데.”

지금까지는 원장님이나 신이설과 식사를 해온 탓에 다른 직원들과 얘기할 시간이 많이 없었다. 사회생활이라는 것은 그렇다. 윗사람에게 잘 보이는건 당연한 것이고 나와 비슷한 입장에 있는 동료직원들과 친해지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말이 쉬워서 친해지는 거지,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관계인만큼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색해지기 마련이다.
그중에서도 그나마 친한게 이연두다. 주말에  약속을 잡긴 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너나들이 할  있는 사이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진심으로 애석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게요. 너무 아쉽네요. 다음에  먹어요.”
“아니면... 아, 아니에요.”
“?”

내가 무슨 말을 되물으려고 하는데 눈치없게 열려있는 문틈 사이로 신이설이 고개를  내밀었다. 휴게실 안을 쥐잡듯이 둘러보며 안에 누가 있는지 살피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꼭  부탁할거 있어서 오면 아무도 없다니까.”

나는 이연두와 신이설을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저도 있고 연두쌤도 있는데요?”
“아잇! 준현쌤은 완전 초짜잖아요. 경험있는 사람이 필요해요.”
“아, 그렇군요.”
“맞다. 이따가 이미경 님 포핸드 마사지 하잖아요. 조심하셔야 해요.”
“왜요?”
“다른 샵에서 일하는 친구한테 들었거든요. 거기는 혼성이라 남자 마사지사가 더 많은데 마음에 들면 자기네 집으로 출장 마사지도 부른다나 봐요. 거기서 뭔 일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분명 뭔가 있을거니까.”
“아. 그런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가 걱정이라는 단어를 말하자 그녀는 유독 치를 떨어댔다.

“걱정이요? 걱정이라뇨! 제가  쌤을 걱정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신이설이 차갑게 내뱉어서 내가 뭐라고 하려는 와중에 이연두가 이때다 싶었는지 나섰다.

“저기... 이설 실장님? 무슨 부탁을 하러 오신거라면 저한테 시키세요.  안 바쁘거든요.”
“아, 아니에요. 괜챃아요.”

몸을 홱 돌려서 가버리는 신이설.

‘어우,  시발년. 언젠가 내 몽둥이로 인성교육을 단단히 시켜주마.’

나는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손을 씻었다. 전 시간에 잔뜩 섹스하고 나왔더니 배 안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하지만 이 허기도 나쁘지 않은 느낌이다.  더 배고파져도 상관없으니까 매시간 섹스하고 싶은 생각이다.
내 나이 스물아홉. 발정기라면 발정기인 나이다. 누군가 말했다. 최대 다수의 최대 성교. 내 목표도 그것이다.
이미경의 수업은 그런 의미에서 참 중요했다. 그녀의 아는 동생들이 몇 살 정도를 얘기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여자는 많이 데려오면 데려올수록 좋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의 상황들을 미뤄봤을 때, 내가 그녀의 푸른점을 제거하는 순간 혈액순환이 잘되고 피부가 좋아지는건 물론이고 이전에 불편했던 골반의 뒤틀림이 정비될 거다.
그러면 약속했던 지인 소개도 해주겠지. 예쁘면 더 좋고. 이거야 말로 님도 보고 뽕도 따고가 아닐까. 돈도 벌고 섹스도 하고. 누가 뭐래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직업이다.
그 때문에라도 이번 시간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내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문득 시무룩한 이연두에게 눈길이 갔다. 원래라면 벽쪽에 붙어서 끊임없이 폰질을 했을텐데 이번에는 공허하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에 더불어 화룡점정으로 한숨까지 푹. 참다 못해서 물어봤다.

“이설 실장이랑 무슨 일 있으세요?”
“...”

이연두는 쉽사리 대답하지 않았다. 눈을 새초롬하게 해서는 허공을 응시하다가 마침내 닫힌 입술을 열었다.

“이설 실장님이 원래는 테라피스트였다는 걸 아세요?”
“아뇨...”
“엄청 잘 나가는 테라피스트여서 지명 VIP가 하루에 5명이나 됐어요. 그때 저는 완전 신입이었고요. 근데 한번 제가 이설 실장님 VIP를 대신 해준 적이 있었는데 그 VIP 손님이 지명을 저로 바꾼다고 해서 이설 실장이 엄청 화를 냈었죠.”
“화를 내요? 왜요?”
“제가 관리하던 중에 손님한테 세일즈를 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마사지를 하면서 영업을 했다고 의심 받았다는 소리다. 대충 어떤 얘기인지 감이 잡혔다.

“저는 당연히 아니라고 했는데도 믿지 않으시더라고요. 그러다가 흐지부지돼서 결국  VIP 손님은 안 나오시게 됐어요.”
“아... 그런 일이...”

그러니 신이설과 이연두가 사이가 안 좋을 수밖에. 두 사람 모두의 입장이 이해되는 상황이었다. 어느 직장이건 암묵적인 룰이라는 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알게 모르게 그 룰을 깨는 상황도 많이 발생하고 들키지만 않는다면 개인의 이익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 내가 박유영을 스페셜 오브 스페셜 서비스를 해줬던 것과 마찬가지. 발각되는 순간, 후폭풍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나 역시 이 점을 조심해야 했다. 신성하고 건전한 샵에서 손님과 몰래 섹스를 했다는걸 들키는 순간, 날 좋게 봐줬던 사람들은 나를 쓰레기보다 못한 놈으로 볼 것이다.

“그 뒤로 회식하면 원장님이 우리 사이 이어주려고  노력하시는 것 같은데 이설 실장이 저한테 마음을 안 열어주셔요. 해명할 기회도 안 주시더라고요.”
“이설 실장도참 너무하네요. 앞으로 계속 같이 일할건데 적어도 얘기해볼 시간 정도는 줬으면 좋았을텐데.”

내 말에 이연두는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상사가 저렇게 꽉 막혀서야 이연두로써는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나는 이왕 이렇게 된거 고민 상담이라도 해줄까 해서 그녀에게 물었다.

“커피라도 한잔 할래요? 제가 믹스 커피 맛있게 잘 타거든요.”
“아, 부탁해요. 음, 그럼 커피 갖고 잠깐 밖에 나갈래요? 이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들  퇴근해서 옥상 완전 한적하거든요.”
“그러죠.”

나는 커피두 개를 타서 이연두와 함께 옥상으로 향했다. 그런데 막상 올라가니까 서로 울적해지기 바쁘고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게 됐다.
그러다보니 원래 예상에도 없던 소리를 하게 됐다.

“마사지는 어떻게 시작한 거예요?”

 물음에 이연두는 피식 웃었다. 겨우 생각해낸게 그거냐는 표정이었다.

“마사지요. 글쎄요. 준현쌤은 어쩌다 여기 오게 됐는데요?”
“음... 저는 학교 다닐  안마 잘한다는 소릴 들어서요.”
“헐~ 설마 애들이 강제로 시키거나 그런건..?”
“... 저 그렇게 보여요?”
“네.”
“참나.”
“장난이에요~”

진아영도 그렇고 이연두도 그렇고  두고 장난치는걸 참 좋아한다.

“저는 학창시절에 노느라 바빴어요. 우리 반 여자애들은 물론이고 남자애들이랑 어울려 다니면서 오토바이도 타고 담배도 피고 술도 마시고 그랬죠.”
“... 그게  살 때였는데요?”
“중3이었을 걸요.”
“되, 되게 빨리 시작했네요.”
“그렇게 고등학교 진학하고 고2 때쯤 정신 차렸을 때는 이미 늦었더라고요. 보통 고등학교 1학년 애들 진도도 따라갈 수가 없을 정도였죠. 그래서 바로 일을 시작했는데 어머니가 샵에서 일하고 계셔서 처음에는 허드렛일 도와드리다가 정식으로 고용 됐어요.”

... 그런 과거가 있었구나.

“그러다보니까 사회생활을 못해서 그런지 실장님한테도 찍혔나봐요. 후. 준현쌤 담배 펴요?”
“아, 예. 고맙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담배를  개피 받아서 입에 물었다.
우리는 얘기를 나누면서 맞담배를 피다가 아래로 내려갔다. 냄새가 날지 모르기에 가글로 입안을 헹궜다.
그러다 서로 눈이 마주쳤는데 옥상에서 잘 얘기하다가도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어색해졌다.
아, 쓰바. 아무래도 술이라도 같이 마셔야 될거 같긴한데. 그때까지 이 어색함을 유지하고 싶지는 않고. 무슨 방법이 없을까?
친해지고 싶어서 방법을 찾고 있는 찰나 마침 최원재가 문을 열고 휴게실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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