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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화 〉8화 (8/173)



〈 8화 〉8화

“2시쯤에 여기서 나갔던 손님 있죠?”

아직까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어쩔줄 몰라하는 신이설. 내가 재차 묻자 정신을 차리고 카운터에 비치된 컴퓨터를 들여다봤다.

“네, 네. 그 손님은 왜요?”
“그 손님 앞으로 제 담당으로 바꿔주세요.”
“..? 아는 사람이에요?”
“아뇨. 이설 씨가  생기고 모르는 사람 소개 시켜달라고 했던 것처럼 저도 마찬가지에요. 예쁘니까 제 손님으로 받고 싶네요.”
“으아. 그 사람 완전 VIP에요. 여기 다닌지도 벌써 2년째인 VVVVIP. 자칫 잘못하면 샵에서 돈줄 끊기는 거라고요.”
“어찌됐든 제가 내기에서 이겼으니까 그렇게 해주세요. 아니면 신이설  설마 한입으로 두 말하시는 분이에요?”

내가 묘하게 자존심을 긁자 신이설은 인상을 잔뜩 구기면서 포스트잇에 뭔갈 메모하더니 신경질적으로 노트에 붙였다. 그리고 일정을 확인하는  달력을 확인하더니 내게 말했다.

“이름은 박유영. 내일모레 방문하기로 했어요. 평일에 2회씩 딱딱 맞춰서 찾아와요. 일단 제가 담당 선생님 바뀌었다고 연락은 드려놓을 거예요. 좀 과장 보태서 추, 추천도... 넣을거고요. 그렇게 안하면 아마 안 받으려고 할테니까.”
“좋습니다. 생각보다 신의가 있는 분이시네요.”
“참내, 저를 뭘로 보고... 아, 그리고! 직원들한테 이상한 소리하고 다니면 진짜 가만히 안 있을 거예요..! 여기 인사를 담당하는 건 나니까..!”

분에 못 이겨 씩씩거린다. 나는  모습을 보면서 씰룩씰룩 웃었다. 입술을 헤 벌리고 신음하던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그때는 자칫 잘못하면 키스를 갈겨버릴뻔 했다. 녹아내리는 듯한 얼굴은 성격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야했으니까.
신이설은 한참을 투덜거리면서 계속 포스트잇에 뭔갈 적고 붙이기를 반복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옆에 계속 내가 서 있는 걸 보고는 잠깐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그, 뭐야...”

우물쭈물. 뭔 얘기를 하려고 저렇게 뜸을 들이나 싶어서 빤히 옆얼굴을 바라보고 있자 시선을 인식했는지 또 얼굴을 붉혔다. 근데 그렇다고 이번에는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시선을 다른 쪽으로 보내면서 말했다.

“내기는 어차피 진거니까, 다음에도  부탁해도 되요?”
“뭘요?”
“아, 뭐긴 뭐에요. 마사지요. 돈이라도 드릴까요?”

크큭.
 알아들었으면서 장난으로 되묻는 질문에 저렇게 발끈하다니. 확실히 내 마사지가 마음에 들긴 들었나보다. 자존심 다 내려놓고 저렇게까지 부탁하는 걸 보니 말이다.

“알았어요. 다음에는 정식으로 시간 잡아요. 어차피 제 담당은 없으니까 당분간은 한가할거 아니에요?”
“당분간요? 되게 자신감 넘치시네요. 제가 배정  해주면 영원히 한가할줄 알아요.”
“신이설 씨가 이상한소리를 내니까 어느정도 증명도 된거 같아서 하는 말이죠. 신음소리.”
“아, 진짜! 이상한 소리하고 다니지 말라니까요.”
“여기 우리 말고 또 누가 있나요?”

신이설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의자 뒤로 고개를 젖혔다. 짜증나는데 내 말이 틀린건 아니라 반박할수도 없는 거다. 나는 그녀 쪽으로 상체를 밀어넣고 그녀만 들리게 속삭였다.

“다음에는 전신으로 해드릴 수 있는데. 물론 그때도 내기를 해야할 겁니다.”

나는 한동안 샐쭉 웃는 얼굴로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언뜻 선을 넘은 듯한 말일 수도 있는데 그녀의 머릿속에서 무슨 생각이 일어날지는 안 봐도 뻔했다. 어깨와 목덜미만 잠깐 주물렀을 뿐인데 그렇게나 기분이 좋았다. 그럼 등이며허리, 종아리, 골반 등 뻐근한 부분을 다 풀어놓으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내가 빙글거리며 웃는데도 그녀는 뭐라 말하지 못하고 또다시 일하는 척 궁시렁거려댔다.
1시간쯤 지났을까. 신이설은 몇 명의 손님을 안내하고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 동안 나는 손님들의 얼굴이며 몸매를 들키지 않을 정도로 조심스럽게 관찰했다. 대기하면서 따뜻한 물에 발을 담가놓고 기다리는 여자들.
박유영처럼 완전 몸매가 좋은 손님은 드물다. 뚱뚱한 여자들도 있고 50대 이상의 애엄마들도 많았다. 근데 간혹 진흙 속의 진주처럼 예쁘고 몸매 좋은 여자들이 섞여 있기도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샵에서 하는 일은 마사지 말고도 왁싱도 있고 얼굴만 관리해주는 프로그램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샵에는 왁싱만 따로하는 선생님들이 있는데 그분들은 3층에 있다고. 왁싱은 주로 브라질리언. 부분 왁싱도 있는데 대부분 부분 왁싱은 혼자서  수 있게 물품으로 구매한다고 한다.
왁싱이라... 그럼 그걸 하고 나온 사람은 성기 주변에 털이 하나도 없겠네. 주요 체크사항이다.

“원장님한테 연락왔는데 강준현 씨 일찍 퇴근시키라네요. 원장님 오늘 기분 되게 좋으신가보네... 어땠어요, 오늘? 저 놀려먹느라 아주 재밌으셨죠?”
“네. 살다보니 별의별 진귀한 구경 다 한다 싶었죠.”
“하, 진짜. 빨리 퇴근해요.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은 꿈꿨다 치고 잊으시고.”
“그게 그렇게 쉽게 잊혀질까요?”
“진짜!”

나는 화가 난 신이설을 뒤로 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어느새 저녁. 원래는 10시에 샵이 문을 닫을 때 퇴근하는데 3시간이나 일찍 퇴근했다. 내 인생이 빠르게 급변하는만큼 시간도 빨리 가는 기분이다. 하루종일 싹수 노란 신이설을 놀려주고 골려줬더니 입에 군침이 돌 정도로 재밌었다. 대머리 꽃미남의 발기부전도 치료하고. 그 모든 일이 하루 안에 일어났다는게 놀라울 정도다.

집에 돌아온 나는 내 눈에만 보이는 붉은점과 푸른점을 떠올리며  정체에 대해 생각했다. 점들이 눈에 보였던 건 어렸을 때부터다. 야동을 볼 때도 배우들의 몸에서 붉은점이 빠르게 왔다갔다하는 게 보였었다. 처음에 나는 여자들이 흥분하면 그런 점들이 생기는줄 알았었지. 그때는  순수했었다. 하~  아름답던 아다의 세월이여.
이제는 그게 아니란 걸 확실히 알고 있다.
나는 인터넷에서 마사지에 대해 공부하다가 몇 가지 알게 된 사실로 추론해봤다.
붉은점은 근막이 꼬이거나 경직된 상태를 말한다. 사람의 몸은 유기적으로 연동되어 있어서 한쪽 근육을 이완시키면 다른 쪽에서 수축이 일어난다. 따라서 내가 진아영의 발목을 주물렀을 때, 붉은점들이 다른 곳에서 번져나가던 현상이 설명된다.
그렇다면 푸른점은 뭘까. 그것은 기능적 장애를 말하는 듯했다. 발기부전은 어쨌거나 성기 기능에 장애가 생긴 거니까. 기립근 주변에 있는 근육이 뭐가 됐든 성기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을 테지만, 앞서 알았듯이 결국 인간의 몸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이 모든 추론들은 결국 추론일 뿐. 앞으로도 계속 시험해볼 가치는 있어보였다.
또, 추론과는 다르게 확실한 사실은 있었다.
점들을 보는 능력은 완전히 마사지에적합한 능력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침대에 누워서 한동안 천장을 응시했다. 딸딸이를 칠 필요도 없다. 소주를 마셔서 억지로 잠을 청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다고 아등바등 섹스를  필요도 없다. 눈을 감으면 그냥 잠이 왔다.
다음날, 최원재는 나를 따로 불러서 정식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더불어 어제의 일을 사과하기도 했다.
나는 발기부전을 치료받고 부리나케 달려갔던 그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역시 모쏠아다일 때는 내 등골 뽑아먹으려는 시발년이 부르자마자 후다닥 달려 나갔으니까. (물론 상황은 많이 다르다.)

“아영이가 보는 눈이 좋아도 너무 좋아요. 어떻게 이런 귀인을 다 모시고. 근데 아영이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세요?”

진아영이 자살하려던  구해줬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최원재가 은사라고 했으니 사실을 말해주는 것도 그녀의 심리적인 차원에서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의 인생에 왈가왈부할 처지가 아니니...

“진아영 씨가 일하는 곳에서 만나서 알게 됐어요.”

이 정도로 말하고 그냥 넘어가야 했다. 최원재도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제가 신경 써서 교육시켜 드릴게요. 오늘은 제가 하는 걸 참관만 하세요. 디테일한 스킬들은 다른 선생님이 알려드릴 거예요.”
‘다른 선생님?’

나는 어제 신이설과 함께 샵을 돌아다니면서 다섯명 정도의 마사지사들과 인사를 했었다. 연륜이 있는 베테랑 마사지사부터젊고 파릇파릇한 마사지사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었던 미녀가 있었는데 이름은 알려주지 않았다. 굳이  필요가 없다나 뭐라나...
그래서 나는 VIP실에서 최원재가 하는 마사지를 지켜보게 됐다. 최원재는 전신탈의를 하고 배드에 누운 손님에게 신입 마사지사가 참관을 할 거고 남자라는 점도 인식을 시켜줬다. 40대 중후반 정도의 손님은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엉덩이 부분을 수건으로 가리고 있을 뿐인데 부끄럼 따위는 없다. 새삼 이게 미시녀의 여유로움인가 싶었다.
손님은 나이가 많은 게 티가 나면서도 몸매 관리를 얼마나 잘했는지 라인이 아주 유려했다. 그 위를 적셔내리는 따뜻한 오일과 부드러운 최원재의 손길. 사뭇 야릇할 수도 있는 손길에도 한치의 움직임이 없다.
 와중에 나는 그녀에게 덮여 있는 붉은점들의 향연을 유심히 봤다. 확실히 참관 수업은 나에게 도움이 된다. 붉은점이 보일 리 없는 최원재는 기가 막힌 손길로 붉은점들을 헤쳐 나가고 있었다. 또, 그 부분을 어떻게 마사지하면 더 효과적으로 지압을 할  있는지를 알게 됐다.
전면부 마사지를 위해 가슴쪽을 수건으로 가리고 몸을 뒤집었다. 배드에 누울  출렁이는 중후한 젖가슴. 가끔씩 미시물 야동을 볼 때 봤던 곱게 늙은 여자처럼 얼굴도 꽤나 미인상이었다. 왕년에 인기 좀 많으셨겠다. 그리고 동시에 이런 생각도 하게 됐다. 과연 남편을 두고 바람을 피고 다닐까, 아닐까?
내가 손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 그녀가 내쪽으로 눈동자를 굴렸다.

“신입이라는 분이  사람?”
“어. 어린데 실력 좋아. 마사지 하나는 기깔나게 한다니까.”

그러자 미시녀가 픽하고 웃었다.

“원장님만 하려고.”
“나보다  잘해질 수 있을걸.”
“에이. 진짜 농담도. 원장님 경력이 15년이라고 그랬나?”
“비공식적인 것까지 20년.”
“아, 맞다! 원장님, 나 어제 동생들이랑 나이트 갔다가 번호 따였잖아. 내가 물어보니까걔네 나랑 띠동갑인거 있지.”
“뭐 놀랄 것도 없네. 당연한거 아니야? 언제는 민증 검사도 했다며.”
“아, 내가 언제! 그 정도는 아니야.”

최원재의 립서비스에 격하게 반응을 하면서도 입꼬리는 거의 귀까지 걸렸다.

“애가 둘이나 있는데 이 정도 몸매 유지하는 사람 없을걸.”

최원재가 복부 마사지를 하면서 손길을 부드럽게 옮겼다. 미시 주제에 잘록한 허리라인을 슥 훑고 골반부분을 따라 내려가면서 수건 안으로도 심심챦게 손이 들어간다. 수건 위로 올라오는 윤곽으로 봤을 때는 정말 간신히 외줄타기를 하는 듯. 저 정도면 왁싱을 안 했으면 음모가 까슬까슬하게 닿을 정도다.

“그건 그렇긴 해.미숙이네 엄마 알지? 저번에 내 소개로 왔었던.”
“알지, 그 아줌마. 둘째 낳고 살 엄청 쪄서 투덜거렸잖아. 마사지 하는 내~내 투덜투덜. 꿈에서도 나올 정도라니까.”
“그니까~ 근데 걔가 나보고 뭐라는지 알아? 자기는 물만 마셔도 찐대. 내가 얼마나 이거 유지하려고 노력하는지 모르나봐.”

그러면서 여자는  쪽을 힐끗 봤다.

“몇 살?”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대답했다.

“스물아홉입니다.”
“어리네. 나  살로 보여?”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
“맞춰봐.”

옆에서 최원재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에이, 뭘 그런걸 물어.”
“왜~ 물을 수도 있지. 궁금하잖아. 나 몇 살인지 말 안했지?”
“어.”
“나 애 둘 달린 아줌마야. 몇 살 같아 보여?”

나는 잠시 생각하는 척하다가 대답했다.

“마흔 후반..?”
“어머. 어리게 봐주네. 고마워라.”

립서비스가 생각보다  마음에 들지는 않았는지 무덤덤하게 반응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최원재와 나는 몇 번 눈길을 주고받았다. 눈치를 주는 건가. 그런데 나 역시 이대로 대화를 끝낼 생각은 없었다. 얘기를 들어보면 이 여자는 주변 지인들을 소개해줄 정도로 돈이 많다는 뜻이다. 몸매를 유지하러 다닌다는 걸로 봐서는 애가 둘이나 있는데 자기관리를 열심히 할 정도로 시간적 여유도 된다는 얘기니 틈만 나면 여길 찾아올 거다.
나는 단숨에 이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약간은 도박수. 하지만 괜찮다.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근데 어디 불편하신데가 있을거 같은데. 거기만 뚫어주면 피부가 10년은 젊어질 걸요?”
“?”

내 발언에  사람 모두 잠시 경직했다.
그렇다고 쫄 필요는 없다. 나는 나름대로 자신감이 있었으니까. 나는 시선을 그녀의 골반쪽으로 보냈다. 안쪽 허벅지 깊숙이 박혀있는 형형한 푸른점을 향해.
나는 최대한 도발하듯 여자에게 말했다.

“나한테 맡겨주면 띠동갑이 아니라 내 또래한테도 번호 따이게 해드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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