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화 〉4화 (4/173)



〈 4화 〉4화

“누구세요?”
“퀵입니다. 서명 받아야 해서요.”

나는 귀를 의심했다.

‘뭐, 퀵?’

퀵이라니. 누구도 나한테 퀵을 보낼 것 같지는 않다. 혼자 살다보니 의심병이 도진건가.아니면 의심이 드는 내가 정상인 걸까.
나는 인터폰으로 현관 앞을 천천히 뜯어봤다. 모자를 쓰고 퀵서비스 유니폼을 입은 남자. 손에는 작은 택배상자가 들려있었다.

“진아영 씨가 보낸 택배입니다. 문좀 열어주세요.”
“!”

진아영.
나는 어제 자기 이름을 말하고 나간 그녀의 이름을 잊지 않고 있었다. 한강에서 떨어진 그 여자. 내가 목숨 걸고 살려준 그 여자. 집에 데려와서 마사지해줬던  여자. 근데 갑자기 볼일을 보겠다며 중요한 순간을 앞두고 떠나버린 그 여자! 내가 어떻게 그 이름을 잊겠는가.
나는 내 꼴을 생각도  하고 벌컥 문을 열었다.

“휴. 여기요. 이쪽에 싸인 하나 해주시고요. 네, 그럼 수고하세요.”

퀵서비스가 가버리고 나는 얼빵하게 손에 들린 택배를 내려다봤다.
뭘까.
포장을 뜯고 택배를 개봉했더니 신형 스마트폰이 들어있었다. 나는 진아영이 내게 스마트폰을 사주기로 했던 말이 기억났다. 물론 지금  손에 들린  스마트폰은 한강에 떠내려간 그것보다 훨씬 비싸보였다.
전원을 누르자 이미 켜져있었다. 95프로 이상의 든든한 배터리.
혹시 몰라서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통화목록창이 떴고 진아영의 이름이 나타났다. 통화목록에는 진아영과의 통화기록만이 남아있었다.

‘와, 씨. 뭐지? 이 미스테리 스릴러 영화 뺨치는 연출은?’

나는 더 생각할 필요도 없이 진아영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꿔놓은 건 아니지만, 내 순결을 제발 도로 가져가주세요.
연결음이 계속 이어졌고 초조한 마음에 입술이 말라붙었다. 혹시라도 목소리가 뭉개져서 나올까봐 목을 가다듬었다.

-여보세요?

받았다. 나는 별것도 아닌 상황임을 알면서도 김칫국 마시면서 속으로 만세를 삼창했다.

“아, 저... 강준현이라고 합니다. 어제 한강에서 만났던...”
-네, 알아요.

반대쪽에서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잘 전달된거 같아서 다행이네요. 어제 나갈 때 그집 주소를 알아놓고 갔거든요.
“어떻게요?”
-1층에 내려가면 우편함 있잖아요?
“아... 똑똑하시네요.”
-강준현 씨라고 했죠?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드릴게요. 구해주신것도 그렇고. 마사지도 마음에 들었어요. 아, 그리고 번호는 기존에 사용하시던 걸로 바꾸던가 하세요. 유심칩 잃어버리셨을거 같아서 그냥 개통하고 보내드린 거예요.혹시 연락 안 될까봐.
“아, 예...”

순간 적막이 흘렀다.
이럴땐 보통 뭐라고 말해야하지. 이게 연애고자의 문제점이다. 상대방의 말에 대체 뭐라고 반응해야할지도 모르겠고 당최 어떻게 이야기를 이끌어 가야할지 모르겠다.
이러다간 속으로 입맛만 다시고 통화가 끊길  같았다.
생각을 해보자. “어제 마사지 좋았죠? 그 뒤에 하지 못한 게 아직 남아있는거 같은데.” 이것도 아니면 “어깨가 뭉칠 때는  강준현을 불러주세요! 언제 어디서든 부리나케 달려갑니다!” 하, 시발 뭐라는 거여. “반했습니다. 저랑 사귀어주세요.” 이거지. 아닌가? 머리통이 터질 것 같다.

“저기...”
-저기...
“엇! 먼저 말씀하세요.”
-아니에요. 준현 씨가 먼저 말해요.
“... 아니, 진짜 먼저 말씀하셔도 되는데.”
-...

그녀는 내가 말하길 기다리는 듯했다. 근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걸로 봐선 웃지 않으려고 입술을 가리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드는건 왜일까.
그러고보니 예뻤지. 성형한 삘은 좀 나긴 했지만, 그래도 예뻤다. 물에 빠져서 홀딱 젖은 몸매며 커다란 와이셔츠를 입고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날 기다리고 있었던 그 얼굴은 죽을 때까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뭐라고 말할까 생각하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외쳤다.

“담배!”
-... 네?

나도 모르게 너무 크게 외친 모양이다. 그것도 아주 찌질한 이유로.

“담배요. 스마트폰도 사주고 담배도 사주기로 했잖아요.”
-아, 맞다! 깜빡하고 있었어요. 미안해서 어쩌죠? 사드리고 싶은데 일 하느라 완전 발목이 잡혀 있어서요.
“제가 그쪽으로 갈까요?”

나는 이렇게 말하고 스스로 대견해했다.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다가 드디어 용기내서 말한 거다.
그렇다. 내가 모쏠아다인 이유 중에는 몇 가지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이 자존감이었다. 내 자존감은 거의 땅바닥에서 키스를 할 정도라 여자들에게 쉽사리 말을 걸지 못한다.
그쪽으로 가냐는 질문 하나를 내뱉는 것조차 용기를 싹싹 긁어야 하는  인생이 레전드일 뿐이다.

-그럴래요?

진아영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그녀는 분명 나와의 재회를 마음에 들어하고 있는 거다. 그녀는 내게 주소를 보내주겠다고 하고 어차피 옷이랑 슬리퍼도 돌려줄 생각이었는데  됐다고 했다. 이따 만나자고도 덧붙였다.그저 카페에서 잠깐 얼굴이나 보는건데 왜 이리 가슴이 쿵쾅거리는지 모르겠다. 모쏠아다특:

“아, 근데 아까 하려던 말은 뭐였어요? 아직 못들었는데.”

그녀는  말을 듣고 잠시 고민을 하는 듯했다. 약간의 침묵 끝에 그녀가 수화기 너머에서 속삭이듯 말했다.

-이따 만나서 얘기할게요.

*

나갈 준비를 하다가 문득 김서아가 생각났다.
보험계약을 하게되면 보험사쪽에서 다음날 전화가 온다. 계약조건에 대해서는 잘 들었는지. 약정 설명에 대해서 숙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묻는거다. 근데 암만 연락해도 그 전화번호로는 연락이 안 될 테니 어찌보면 쌤통이다. 나로서는 거부하기 귀찮았는데 다행인 셈이고.
사실 영업이라는 걸 지인을 대상으로하면 여러 가지로 골치다. 그 지인이  하게되면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붉히게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서명까지 다 해놨는데 확인전화 안받아서 자동해지가 되는 경우니까 더 하겠지.

‘그나저나 우리집에 찾아오지는 않겠지. 계약서에 주소 적어놨다고 여기까지 찾아오면 진짜 썅년이지.’

그런 생각을 하며 어제 김서아를 만날 때 신었던 구두를 신고 바닥을 굴렀다.
뭔가 새로운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는 언제나 그렇듯 설레는 법이다. 좆같았던 과거는 세절기에 갈아버리고 새로운 미래를 위해 문을 열었다. 가을 저녁의 스산한 바람이 나를 맞이했다.
진아영이 보내준 주소는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어제 우리가 만났던 다리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따라서 우리집에서도 그렇게 멀지는 않았지만, 걸어갈 거리는 아니어서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따릉이에 탑승했다.
미친듯한 찌질함. 버스탈 비용도 아까워서 따릉이를 타고 있는 꼴이라니.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게 내 현주소인걸 어쩌겠는가.
구두 신고 잔뜩 멋부려놓고 자전거를 타려니 엉덩이가 많이 끼인다. 쓰바, 가다가 아는 사람 얼굴이나 안 마주치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나는 일부러 약속장소보다 훨씬 먼 곳에 따릉이를 반납하고 걸었다.
그렇게 걷고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톡톡 건드렸다. 뒤를 확 돌아보니 진아영이 서있었다.

“어.”
“... 안녕하세요. 자전거 타고 오셨나봐요.”

나는 얼굴이 미치도록 빨갛게 달아올라서 말문이 턱 막혀버렸다. 일부러 100m 떨어진 곳에 반납을 했는데 여기서 만나다니정말 안  놈은 안 되는구나. 아니나다를까 진아영도 그렇게 말해놓고 손으로 입을 가리고 눈을 반달 모양으로 만들어 웃었다. 당신은 이와중에 예쁜거냐고요.
나는 한참을 그렇게 우물쭈물거리다가 이제야 발견한 듯 고개를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크크. 뭘 그렇게 멍하니 있어요? 이렇게 된거 같이 걸어요. 카페까지.”

나는 그녀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이렇게 걸으니까 어제 생각나네요. 처음 만나자마자 한강 둔치를 걸었잖아요.”
“한강 둔치라기엔 길이 너무 험했죠.”
“맞아요.”

그녀는  웃어주는 성격인가보다. 내가 말할때마다 싱긋싱긋 웃거나 피식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웃어주는 마음이 예뻐보였다. 마음이.
진아영처럼 예쁜여자가 걸으면 남자들이 힐끔힐끔 쳐다본다. 나는 진아영의 바로 옆에서도  시선이 느껴지는데 진아영은 오죽할까. 매일 걸을때마다 저런 뜨거운 시선들을 마주하는 것도 귀찮을 것 같기도 하다.

“아, 참. 이거요.”

주머니에서 담배갑 하나를 꺼내서 내게 건넸다. 담배를 진짜 사달라는 게 아니라 그 명목으로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한건데. 나는 찌질한 마음을 들킬까봐 됐다는 말도 꺼내려다 결국 담배를 받아서 주머니에 챙겼다.

“고마워요. 굳이 줄 필요는 없었는데.”
“치. 아까는 무슨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담배!’하고 소리지르던데요.”
“그건... 갑자기 생각나서 소리를 지른  뿐이에요.”
“뭐가 다른거죠?”

우리는 한강에서 처음 만났을 때처럼 티격태격거리면서 카페로 들어갔다. 자리를 잡고 앉자 그녀가 일어나며 손짓으로내게 앉으라고 했다.

“제가 살게요. 저 때문에 오신거니까.”
“아니...”

내가 말을 잇기도 전에 그녀가 카운터쪽으로 가서 주문을 했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선 라떼로 시켰는데 괜찮냐고 물었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커피를 기다리느라 약간의 간격이 있어서 이참에 아까 못들었던 답이나 들어보자는 식으로 질문을 했다.

“그래서 아까 하려고했던 얘기는요?”
“무슨 얘기... 아, 그거요. 음,천천히 얘기해도 되죠?”

나는 순간적으로 김서아가 떠올랐다. 와, 이거 설마...아니겠지?
여태 사냥만 당해오던 초식동물은 비슷한 상황에만 놓여도 부리나케 도망가는 본능이 있다.
천천히 시간을 끌면서 분위기가 고조되면본론으로 들어가서 잔뜩 심란하게 만드는 게 영업가들의 특기다.

“네. 천천히 얘기해요.”

근데 그 말을 바꿔서하면 나와 함께  시가늘 보내고 싶다는 뜻도 됐다. 만약 내게 영업을 시도하려 하면 안녕히계세요. 스마트폰 하나 새 걸로 맞췄다 셈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버리면 그만이다.
다시는 당하지 않을 거다!
내가 다짐하는 동안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며 우수에 가득찬 얼굴을 했다.밖에 있는 사람들의 걸음을 하나씩 세는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저 얼굴은 기억이 난다. 그녀가 다리 위에서떨어지기 전에 지었던 그 표정 그대로다.

“어제는 좀 안 좋은 일이 있었어요...”

나는 처음에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서 가만히 들었다.

“제가 일하는 영업장에 아버지가 찾아오셨거든요. 어머니랑 이혼하고서 많이 힘드셨는지 얼굴이 헬쓱해지셔서.  얼굴로 화를 내면서 키워준대가로 돈을 내놓으라고... 다달이 용돈을 부쳐드렸는데 그걸로도 부족하셨나봐요. 결국 원하시는만큼 돈을 드릴수 없었는데 그 뒤부터 난동을 부리시더라고요.”
“...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근데 이번 일이 처음은 아니에요. 한번은 사업을 하신다고  천만원을 빌려달라고 하시는데... 저는 빚을 내서라도 돈을 빌려드렸죠.  사업하기도 힘들어서 빚이 엄청 많았는데도 빌려드린 거였어요. 그때도 엄청 힘들었는데 꾹 참았거든요. 근데 이게 반복되니까 도저히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사실충동적이기는 했죠. 꿋꿋이 버티고 일어서야 했는데. 솔직히준현 씨 집에 갈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죽고싶은 마음이 잔뜩 남아있었어요.”
“...”

나는 쉽사리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이 상황에서 어울릴만한 말을 찾기 어려웠던 거다.
그런데 그녀가 당황스러워하는 내 얼굴을 보며 피식하고 웃었다. 나는 그녀가 저렇게 웃을 때마다 내 속마음을 들키는 것만 같았다.

“근데 준현 씨가 제 뭉쳐있던 어깨를 풀어주고나서는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어요. 살아있는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요? 그래서 진짜 고마웠어요.”
“아...  부끄러운 소리를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셨던 거군요.”
“근데 그 마사지는 뭐예요. 준현 씨, 여자 꼬셔본적 없죠. 그렇게 하면 바로 싸대기 안 맞아요?”

나는 ‘당신이 처음이었다.’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내가 아무 말 안하고 빤히 쳐다보고 있자 그녀는 마침내 본론을 꺼냈다. 안주머니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더니 내게 내밀었다.

“제가 가끔 찾아가는 마사지샵이에요.명함에 적혀있는 사장님이 제 은사님이시거든요.”
“마사지샵... 이요?”
“네,준현 씨. 마땅히 하시는 일이 없으면 그쪽으로 연락해보세요. 사장님한테는 제가 이미 얘기해뒀으니까요.”

나는 말 없이 진아영과 그녀가 준 명함을 봤다.

‘마사지샵...’

대학교때 친구들이랑 술 먹고 태국인들이 마사지하는 곳에 갔던적이 있었다. 술 취한 손님이라고 얄팍하게 할줄 알았더니 지압이 은근히 세서 깜짝 놀랐었다. 돈도 없는 시절이기도 하고 마사지는 받을 때만 좋다고 생각해서 다시 찾아가지는 않았던 곳이다.
최근에 워라밸이라는 단어가 탄생하고부터 자기애가 강해진 현대인들이 자주 찾아가는 장소라고 알고 있기도 하다. 이색데이트코스에도 들어간다고... 물론 내  바는 아니지만.

“다른 곳보다 훨씬 급여도 많이 주는걸로 알고 있어요.”
“그렇군요...”

이번에도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김서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진아영이 오늘 날 부른 이유는 결국 용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사지가 기분 좋았으니까 마사지샵에서 일해보라는 어줍잖은 용건 말이다.

“진아영 씨가 저한테 하고 싶은 말씀이 이거였군요.”
“...”

나는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속으로 생각하기에 여기서 자리를 뜨고 건네준 명함에 적힌 번호로 연락을 하지 않는다면 다시는 진아영을 만날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한강에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몸을 던지고 나니까 세상을 보는 시선이 조금은 달라졌다. 이 사람이 왜? 모든 사람은 나름의 이유가 있는 법이다.진아영은 나를  만나자고 했을까. 김서아는 나를 왜 만나자고 했을까. 그들에게 돌아갈 이익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서 진아영을 바라보는데 그녀의 몸동작이 어딘지 이상했다. 잔뜩 초조한 얼굴로 손톱을 물고 있는 모습. 아니, 손톱보다는 손가락 끝을 빨고 있다고 해야 맞으려나. 보통 손을 깨무는 습관은 천박해 보이기 마련인데 진아영의 행동은 야릇하기 짝이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제는 엉덩이쪽을 비틀거리며꼬기도 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가, 강준현 씨가 해주는 마사지 다시 받고 싶어요.”

나는 나도 모르게 놀란 눈을 떠버렸다. 저렇게 애닳는 얼굴로  하면 누구나 녹아내릴  같은데.
그리고 잠시 후에 진아영은 테이블 위에 올려둔 내 손위에 자기 손을 살포시 얹었다.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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