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1화
하악 하악 하악 하악
탁탁탁탁탁
쯔걱쯔걱쯔걱쯔걱
응흐읏으으흣
내 나이 스물아홉. 1일 1딸을 지향하는 좆같은 딸창인생을 살고 있다. 일본 AV를 보면서 남자 배우를 부럽다고 생각하는 내 인생은 여러 의미에서 레전드라고 할 수 있다.
나름대로 자부심도 갖고 있다. ‘스킵의 기술’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AV’다. 스킵의 기술은 야메떼 & 기모찌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장점이 있고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AV는... 여러 말할 필요가 있을까. 종류별 속성별로 다 있다. 내가 시팔, 공부를 이렇게 했으면 지금쯤 노벨상을 탔을 거다. 물론 과거로 돌아가도 개뿔 공부는 안 할 거다. 딸롱도르가 있다면 내것이니까.
오늘 내 레이더망에 걸린 건 신인 여배우의 스타킹 퍼레이드다. 여러 종류의 스타킹을 바꿔 신으면서 떡을 치는 거다. 검스, 살스, 흰스, 망스, 빨스... 내 로망 아니냐고... 와중에 저 배우 새끼 부럽네. 스타킹을 신지 않은 매끈한 속살을 마치 자기 여자친구인 것처럼 거칠게 훑고 가슴을 무슨 떡주무르듯이 주무르면서 하고 싶은 짓을 다 한다.
‘할까? AV배우...’
아까도 말했듯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 인생이 레전드다.
한참 허벅지에 열이 오르고 있는데 스마트폰이 울렸다. 이상한 생각으로 가득 찬 내 머리에 경종을 울리듯이.처음에는 확인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재차 울리는걸 보니 전화다.
화면에 찍힌 이름을 보고 깜짝 놀라서 빠르게 동영상을 끄고 스마트폰을 들었다.
김서아. 내 고등학교 동창이자 여사친을 가장한 짝사랑녀다. 방금까지 딸을 잡고 있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뭐야. 엄청 빨리 받았네. 쭌~ 뭐하고 있었어?
“... 그냥 있었지.”
-잘 지냈어? 너무 오랜만에 전화했지~
“난 잘 지내고 있지. 너는?”
-나도 잘 지내지. 준현아. 오늘 시간 어때? 잠깐 볼래?
심장이 두쿵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맥박이머리까지 울린다. 가랑이 사이가 여전히 빳빳하지만, 이전 상황과 아무 상관이 없었다.
‘오늘 만나자고? 왜? 잠깐 보자고? 아니, 오래 보고 싶은데... 술이나 한잔 하자고 할까? 아니, 잠깐만 이거 존나 시그널인가? 그 뭐였지... 그린라이트, 뭐 그런건가?’
김칫국 한 사발을 들이키면서 말라버린 입안을 축축해진 혀로 훑었다. 모쏠아다인 나는 동영상으로 연애를 배웠다. 이럴 때는 한번 튕겨주라고 했다. 여유가 없어도 다급하지 않게 천천히.
“좀 바쁘긴한데.”
-어... 그래? 아쉽네.
“뭐할건데?”
-그냥 얼굴 보는 거지~ 그동안 못 봤으니까 얘기도 좀 할겸.
“너가 쏘냐?”
-뭘 내가 쏴~ 우리 사이에 더치페이지!
“오케. 그럼 나 저녁도 안 먹었으니까 내가 먹고 싶은 걸로. 닭갈비에 소주 괜찮지?”
-좋아! 어디서볼까?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 한 개의 문이 닫히면 다른 하나의 문이 열리기 마련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모쏠아다 30년이면 흑마법사가 된다. 외로울 땐, 섹스. 섹스가 무조건 이득이다.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 예수 그리스도시여. 김서아랑 사귀면 아침마다 동서남북으로 오지게 절 박겠습니다.’
그만큼 나는 간절했다.
고교시절, 남학생들끼리 모여 여자애들 얼굴 품평회를 할때마다 절대 빠지지 않는 게 김서아였다.
“김서아 와꾸 정도면 나중에 연예인 가능?” “응, 쌉가능.” “지랄. 끽해봐야 쇼핑몰 피팅모델 정도겠지.” “응. 쌉가능이야~” “근데 걔 요즘 영훈이랑 사귀는거 아니냐?” “아, 10반 그 키 큰 애?” “맞아. 야자 끝나고 걔랑 둘이서 손잡고 하교하는거 봤음.” “하. 했겠지?” “오지게 했겠지.” “쩝. 남의 떡이 더 크다더니. 내 것도 아닌데 왜 뺏긴 기분이냐.” “슈발, 부럽다~ 나는 언제 해보냐?” “요즘 남녀공학 나왔는데 아다 못 떼면 슈발 좆병신 소리 듣는다던데.”
그 10년 전 좆병신이 여전히 좆병신인 체로 있다면 아무도 안 믿겠지. 아니, 오히려 믿을까? 평범한 외모에 175cm의 이도저도 아닌 키. 하고많은 학과 중에 문예창작과를 골라서 취직은커녕 학비, 생활비로 빚만 쌓이고 있다. 앞으로 석달 후면 이 방도 빼줘야 한다.
하.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사실 앞으로 살 궁리를 먼저 하는게 맞다. 근데 김서아다. 그 김서아가 나한테 먼저 연락을 해서 술약속을 잡은 거다. 개판 오분전이라도 뛰쳐 나가야되는데 지금은 시간적으로 여유도 있다. 어줍쟎은 실력이라도 머리를 만지고 일전에 소개팅 할 때 입었던 꽤 비싼 옷으로 풀세팅을 했다.
담배갑에 손이 갔지만, 혹시나 김서아가 담배 냄새를 싫어할지도 모르니 참기로 했다. 담배 보다는 향수지. 나는 하나 사서 1년 내내 쓰고 있는 향수를 손목에 뿌리고 귀밑을 탁탁쳤다.
‘와, 이 정도면 오늘 홍콩 가도 되겠는데.’
드디어 약속한 시간이 됐다. 먼저 닭갈비집에 들어가서 기다리고 있으니 약속시간보다 10분 정도 늦게 문을 열고 김서아가 들어왔다. 나를 알아보고 손을 흔드는 그녀. 처음에는 왜 늦었냐며 화를 낼까 생각했는데 얼굴을 보니까 그런 마음이 눈 녹듯이 녹아버렸다.
“많이 기다렸지~ 미안미안. 오는데 차가 막혀서.”
그녀는 테이블 위에 벤츠 로고가 박힌 차키를 올렸다. 어, 잠깐만. 갑자기 왜 머리가 띵하지? 관자놀이가 아프고 숨이 가빠왔다. 아무래도 짝사랑하는 여자를 만나서 그런가보다.
“배고프다. 빨리 시키자.”
“여기 치즈 닭갈비가 맛있대.”
“콜~ 이모, 여기 치즈 닭갈비랑 소주 하나 주세요. 하, 진짜 오랜만이다. 쭈운~”
김서아랑 마지막으로 본 건 제대하고 나서였으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4~5년 전이다. 내가 제대하자 누군가 단톡방에 초대했는데 고등학교 동창회 방이었다. 동창회 때 만나서 전화번호를 교환했고 그 뒤에도 가끔만난적은 있지만, 결국 각자 갈 길이 바쁘다는 이유로 연락이 뜸해졌었다.
사실 이렇게까지 친하게 굴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아니다. 근데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다. 김서아를 만났다는 것만으로 이미 심장이 쿵쾅거리고 현기증이 날 정도니까.
나는 무심한 척 스마트폰을 무의미하게 터치했다.
“그래, 오랜만이네. 너 차 샀냐?”
“응! 차 산지는 꽤 오래 됐지. 한 2년 됐나?”
“무슨 일 하는데?”
“그냥 이런저런 일. 히히. 너는 취직준비 한다면서 잘 돼가고 있어?”
“말도 마라. 지금 청년 취업난이다 뭐다 해서 뽑아주는 데는커녕 뽑는다는 델 찾기조차 힘들다.”
“후유~ 그렇구나. 내 친구들도 다 난리라. 근데 너 예전보다 키가 더 큰거 같다? 턱도 좀 샤프해진거 같고.”
“운동하고 있어서 그런가?”
“오, 운동~ 나도 운동하는데 필라테스.”
그간의 근황을 얘기하면서 잔뜩 애교를 부리는게 퍽 귀엽게 느껴졌다. 성격 참 좋다. 내 치부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농담할때도 조심조심. 일부러 대화의 주체를 내 쪽으로 돌려서 하나하나 다 들어주면서 리액션까지 해준다.
음식이 나오고 술이 몇잔 돌기 시작했다. 얼굴이 상기되고 분위기도 어느덧 후끈 달아올랐다.
김서아는 딱 달라붙는회색 원피스 위에 재킷을 입고 있었는데 더워졌는지 재킷을 벗었다.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겉옷을 벗으니까 몸매가 좋은게 확실히 티가 난다. 봉긋한 가슴과 모래시계처럼 잘록한 허리라인. 유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뜨거워진 사타구니에 확 기름을 끼얹는 오프숄더까지 완벽하게 느껴졌다.
남자 앞에서 무방비한 모습을 보이고 섹시해보이고 싶어하면 그게 시그널이지, 뭐가 시그널이겠는가. 확 허리를 껴안고키스를 갈겨버릴까. 아니지.일단 마음을 좀 들쑤셔 볼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득 김서아가 먼저 말을 꺼냈다.
“하, 나 요즘 되게 힘들다?”
지금까지 내 위주로 대화를 풀던 김서아가 오랜만에 자기 얘기를 꺼냈다.
“왜, 왜 힘든데?”
내 물음에 그녀는 우물쭈물거리면서 쉽사리 말을 꺼내지 않았다. 꼭 숨겨놓은 비밀이라도 되는 듯이.
“말 해봐. 내가 도와줄 수 있는거면 도와줄게.”
“하, 진짜.이런 얘기 잘 안하거든. 왜냐면 사람들이 자꾸 오해를 해서.”
“무슨 오해?”
“있잖아. 너가 진짜 친한 친구고 전부터 알고 지냈으니까 날 잘 알거 아니야?”
“응...”
그녀는 이번에도 뜸을 조금 들였다. 그런데 입을 여는 순간부터는 여태까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내비췄다.
“내가 요즘 보험일을 하거든. 하아,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애들이 꼭 오해를 해서. 아무래도 영업이니까 쉬쉬하면서 이제 나 안 만나려고 하더라고.”
아, 어쩐지. 관자놀이쪽이 아프더라. 김서아가 테이블에 앉을 때, 벤츠 로고가 달린 차키를 올려놓을 때부터 감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래퍼토리가 딱 나한테 영업걸려는 사이즈네.
‘이 미친년이. 어디서 개수작이야?’
*
“진짜 고마워. 근데 이건 나를 위한 게 아니라 너를 위한 거야. 알고 있지?”
결국 계약서에 서명까지 받은 김서아는 운전석에 앉아서 “빠잉”하고 손을 흔들었다.
꼭 그렇게 다 가져야만 했냐? 알거지인 나한테 3만원짜리 5만원짜리 그 보험 팔아서 너한테 조금이라도 이득이된다는 거냐고.
그런데 그걸 다 알면서 계약서에 서명한 내 인생도 레전드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혹시나 한번 안 벌려줄까 하는 그마음. 어떻게 보면 나도 참 나쁜 새끼지.
나는 왁스로 딱딱해진 머릿결을 마구 헝클어대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나는 이럴 땐, 아까 못 다했던 딸딸이 생각이나. 그거라도 안 하면 내가 못 견딜거 같으니까. 누가 그랬지. AV는 인류가 만든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라고.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위해 만들어진 1/2 인류 평화의 상징.
밤거리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다. 술 취해서 고꾸라지거나 전봇대를 잡고 씨름을 하는 남자. 마치 내 소유라는 듯이여자 허리에 손을 얹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 모텔 앞에서 옥신각신하는 풋내나는 커플.
입 밖으로 담배 연기를 내뿜으면서 내 존재 이유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중학교 이후에 그만뒀다고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찾아온 김서아처럼 갑작스레 솟구쳐올랐다.
돈은 분명 나한테 빌어먹고 어디 가서 잘생기고 돈 많은 남자한테 가랑이를 벌려주고 있겠지. 그래, 나는 개미새끼다. 조금만 엉덩이 흔들면 없는 돈까지 내어주는 그런.
중학생 때부터 나랑 같이 놀아제꼈던 민찬이 녀석은 유명 플랫폼 여자 BJ랑 과속을 해서 빠르게 결혼을 했다. 영준이는 워낙 잘난 탓에 인스타 DM이 하루라도 쉴 날이 없어서 밤상대를 고르는 처지고. 어렸을 때 그렇게 애들 때리고 괴롭히던 태훈이 녀석은 비트코인으로 대박나서 건물주가 되더니 내후년 쯤에 모델 여자친구랑 결혼한다더라.
거리에서 돌멩이나 걷어차고 있는 내 인생이 더럽게 비참해졌다.
자기계발은 쥐뿔도 없이 야동이나 쳐보고 있으니까 이렇게 된 것도 맞다. 세상을 원망하기 전에 애초부터 세상은 나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근데 시팔. 이 상황에 무슨 명언이 들려오든 다 개소리로 들리지. 내 인생이 좆같은데. 앞으로 2개월만 더 있으면 서른이고 아무것도 이룬게 없다.
비틀거리며 걷다가 어느새 한강까지 왔다. 신도림에서 목동쪽으로 넘어가는 다리였던가. 인도가 참 좆같이 나 있는게 꼭 내 인생을 보는 것만 같다.
‘담배를 지금 몇 개피째 피고 있는 거지?’
나는 난간에 기대서 한참 밑에 떨어져 있는 한강물을 봤다. 넘실대는 한강물은 들어가보지 않았어도 차갑게 느껴졌다. 이대로 떨어지면 무조건 사망이다.
“푸흐... 푸하하하하.”
자살충동? 왜 나는 이 상황에서도 그런게 느껴지지 않을까. 누군가는 아무 이유없이 한강물을 보다가도 자살충동을 느낀다고 하는데 다 개소리같다. 살아야지. 존나 아득바득 살긴 살아야지. 밤새도록 일하고 아침에 소주를 마셔야만 잠을 청할 수 있는 인생이어도 아득바득 살아야 하는거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자살만큼 뻘한 짓거리도 없다는 걸. 그리고 나보다 더 심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도 많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민찬이 녀석 와이프 BJ한다고 했었지. BJ들이 원래 다 그렇게 예쁜가? 하, 씹알 부럽다. 그 새끼는 일부러 콘돔도 안끼고 안에다 싸질렀을 거야. 지금도 둘째 낳으려고 뜨밤을 보내고 있겠지.’
실성한 듯 킥킥거리고 있는데 흐릿해진 시야에 누군가 보였다. 시야의 한쪽 귀퉁이에 어떤 여자의 머릿결이 휘날리기에 바라봤더니 키가 나만큼 큰 한 여자가 다리 난간에서 서 있었다.
?
말 그대로 벙쪄서 쳐다보고 있는데 그 여자가 난간 안쪽이 아니라 바깥쪽에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소리쳤다.
“이봐요! 위험해요!”
내 목소리를 듣고 내쪽을 향해 고개를 꺾는다. 눈동자에 우수가 가득한 그녀는 나를 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무슨 뜻인지는 당연히 모르겠고, 일단 말려야겠다는 생각에 그녀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거기 가만히...”
내가 말을 이으려는데.
슥-
거짓말처럼 여자의 몸이 기울어지더니 이내 사라졌다.
“허억.”
기겁을 하고 한강 밑을 바라봤다. 첨벙하는 소리가 들렸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됐다.
‘미친. 미친. 미친.’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들이 겹쳤다. 높이는 그렇게 높지 않다. 떨어진다고 해도 정신만 차리면 수영을 해서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잘은 모르겠다. 평소에 한강에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지 생각해본적도 없다. 그저 나한테 왜 이런 일이 닥쳤는지 참 애석할 따름이다.
그리고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0.5초간 수많은 생각을 한 후에 주저없이 코트를 벗고 몸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