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아가씨와 번뇌의 호위기사-115화 (115/122)

00115  8. 삶, 삶, 삶  =========================================================================

장인의 도시 바너.

수도 크래파.

오래된 가구에 흐르는 품격처럼 점잖은 역사를 자랑하는 이 도시엔 언제나 장인들과 그 제자들이 넘쳐났다. 어지간해선 군인이란 존재가 대거 모여들 일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크래파 대광장에 어마어마한 수의 군인들이 집결해 있다.

이들은 바로 륀체르 사파이어의 사병들이다. 연녹색 군복을 갖춰 입은 그들은 곧 출정 예정이다.

‘대륙이 꿈꾼 날’ 이후, 권력자들의 전쟁은 오직 각자가 가진 군대의 결투로만 판결이 날 분위기다. 하여 륀체르는 사병을 움직이기로 했다. 홀디네가 마력을 쓸 수 없으며, 다른 모든 마력이 깃든 것들도 힘이 사라졌다는 보고를 받은 륀체르는 이때야말로 자기 사병들이 훈련한 것들을 전부 뽐내야 할 적기라고 여겼다.

륀체르는 가장 먼저 포르투바를 암살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그리고 자신은 황궁을 치려고 사병들을 이곳에 집결하였다.

군인들 앞에 선 륀체르는 원래 직업이 군인이었다 해도 될 정도로 위엄이 넘쳐흘렀다. 흑마에 올라탄 그가 검을 들어 보이며 모두에게 외쳤다.

“모두 들어라! 마나의 인을 관리하지 못한 황제는 이미 제국 정부를 이끌어갈 의미와 자격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다. 어디 그 죄뿐인가? 그는 기갑체 공정 독점이라는 사익을 취하려고 바너를 건드려 제국 경제를 어지럽힌 죄까지 있다. 이는 마땅히 우리 제국민이 엄벌로써 다스려야만 한다. 자아! 다들 생명의 역광(북쪽 강의 이름)을 건너 할데바인부터 휩쓸어 버리자! 할데바인 다음엔 황도 로귀하르트다!”

“와아아아아!”

수많은 군인이 내지르는 함성은 크래파 광장을 부수어버릴 듯했다.

제국을 위한 강직한 충성심보다는 부담스러운 의무감으로 모인 제국 군대와 달리, 사파이어 군대는 오직 돈을 향한 욕망으로 모인 집단이고, 륀체르가 모든 금권을 쏟아 부은 결과 지금 그의 군대 사기는 제국 군대보다 훨씬 높다고 자부할 수 있다. 륀체르는 난생처음으로 직접 전투에 나서는 지휘관이 되어 앞장섰다.

“자! 가자고! 건방진 황족 녀석들을 아주 처참하게 짓밟아주마!”

뿔피리가 세 번 울리고, 군인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우중충한 빛을 띠는 겨울 하늘이 앞으로 다가올 황가의 운명을 알려주는 듯하다.

***

얼음 도시 시귀르.

륀체르가 제공해준 마리의 거처.

‘대륙이 꿈꾼 날’ 이후 겨우 닷새가 지났다. 마력이 사라진 세상은 마법영상구를 이용할 수 없고, 각종 스크롤이나 마약 같은 마력이 깃든 물건을 이용할 수도 없다. 텔레포트 홀 같은 시설도 마찬가지.

마력이 쓰였던 모든 것에, 이제는 인간의 순수한 힘이 필요하다. 제국의 심장인 황도 소식을 들으려면, 무조건 황도에 사람을 보내야만 들을 수 있는 것이다.

황도에서 멀리 떨어진 시귀르는 당연히 고요하다. 마리는 황궁의 소식도, 호위기사의 소식도 듣지 못했다. 마력이 사라져 흉흉한 분위기가 감도는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사파이어 재단에서 전달해주는 잡다한 소식만 수동적으로 받고 있다.

세상 소식에 어두운 것이 답답하고 한곳에 있기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그녀는 한계에 다다랐다.

하여, 그녀는 짐을 꾸렸다. 부피가 작고 값비싼 물건을 가방에 챙겼다. 그리고 이제는 쓸 수 없어 종잇조각이 된 스크롤은 버리고 외투 한 벌, 겨울 장화, 봄 구두를 챙겼다.

아침 식사를 가져온 사용인이 그녀의 모습을 보고 난처해 했다. 왠지 이 아가씨가 외출하는 일만은 왠지 막아야 할 것 같다. 마스터 륀체르 사파이어로부터 따로 보고받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저런 가녀린 여자가 함부로 돌아다니기에는 위험한 시기이니 말이다.

“어딜 가시는지요?”

“알려줄 이유가 있을까?”

“물론 제가 들을 필요는 없겠지요. 무엇 때문에 나가시려는지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여길 떠나시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흐응. 세상이 어수선한 건 나도 안다고. 아니까 이렇게 철두철미하게 준비하는 거 아니야?”

마리가 외투의 단추를 열어 보였다. 그러자 외투 속 차림이 드러났다.

지금 마리는 남자처럼 바지를 입고 있다. 바지 뿐 아니라 상의도 남성용 셔츠다. 그러고 보니 머리에도 모자를 쓰고 있다. 기다란 머리카락을 모두 가리는 털모자.

‘남장하고 밖을 떠돌 예정인가?’

물론 남자의 행색으로 돌아다니는 게 아름다운 아가씨의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것보다 훨씬 안전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사용인은 마리가 이곳을 떠나지 않았으면 했다.

‘흐음. 이 고집 세 보이는 아가씨를 어떻게 말린담?’

일단 식사가 든 쟁반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쟁반의 찻잔만 들어 마리에게 건넸다. 찻잔에서는 과일 차의 달콤한 향기가 솟아 나왔다.

“그럼 가실 땐 가시더라도 이걸 좀 마시세요. 몸이 따뜻해질 겁니다. 향도 참 좋고요.”

마침 밖 날씨가 매우 쌀쌀하다. 마리가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순간.

사용인의 손이 미끄러져 마리의 옷에 뜨거운 찻물이 흘러내렸다. 찻물은 옷을 적시고 맨살에도 닿았다. 놀란 마리가 팔짝 뛰었다.

“앗, 뜨거!”

“어마맛! 이를 어째!”

사용인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잔에 남은 한 방울까지 모두 마리의 옷에 퍼붓고 있다. 마리는 젖은 외투와 옷을 벗으며 속상한 듯 얼굴을 찌푸렸다. 사용인은 재빠르게 그녀의 외투와 셔츠를 가지고 밖으로 나가며 친절하게 말했다.

“기다리세요! 금방 빨아서 말려 갖다 드릴게요!”

순 거짓말이다. 외투는 어딘가에 쏙 감춰질 것이다.

마리도 사용인의 표정에서 그 속셈을 느꼈다. 문이 닫히고, 마리는 찌푸렸던 얼굴에서 금세 히죽 웃는 얼굴로 변했다.

“흥! 내가 그거 아니면 다른 옷은 없을 줄 알고?”

그녀가 버려둔 짐에서 새 외투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문이 또 열렸다. 마리는 들어온 이가 사용인인 줄 알고 들으란 듯이 중얼거렸다.

“세탁 따윈 할 필요 없다고. 난 여길 떠날 거야.”

“…… 떠나긴 어딜 떠나십니까?”

익숙한 중저음.

마리의 손이 멈췄다. 그녀는 천천히 뒤돌아보았다. 닷새 전에 헤어지고 소식이 없던 호위기사가 지금 이 같은 공간에, 아주 말끔한 모습으로 서 있다. 헤어졌던 당시와 똑같은 복장, 그런데 눈이 검다. 원래처럼, 맑은 검은색이다.

“하이너?”

하이너가 마리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말했다.

“이제 마력 따윈 모두 사라졌단 말입니다.”

“알아, 아는데….”

“만약, 지금 떠나셔서 저와 길이 엇갈리기라도 하시면 어쩌시려고요?”

“왜 이제 오는 거야! 너 찾으러 가려는 거였다고!”

마리는 하이너의 목을 끌어안았다. 하이너를 만나려고 길을 나서려 했는데, 하이너가 나타나 준 이 현실이 기적 같아서 그의 목을 몇 번이나 문지른다. 거울 표면처럼 부드럽고 오래된 나무보다 단단한 이 목, 이 온기 가득한 살이 얼마나 반가운지!

하이너는 말없이 그녀의 등을 쓰다듬었다. 찻물에 옷을 버려 달랑 가슴 속옷만 입고 있는 그녀의 상체 곳곳에 호위기사의 크고 따뜻한 손이 천천히 머무른다. 닷새 만에 만난 아가씨의 살결이 반가운 건 그도 마찬가지다.

“저를 찾으려 하시다니요. 호위기사가 괜히 호위기사입니까? 때가 되면 아가씨께 돌아오는 게 당연한데. 그나저나…….”

하이너는 잠시 마리의 몸을 떼 냈다. 그리고 그녀의 이마를 가리는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눈동자를 지긋하게 보았다. 암흑지형에서 있었던 일이 하나하나 되새겨졌다.

“아가씨께선 분명 그러셨지요. 가을이 간다는 둥, 화끈하게 즐길 수 있는 시기가 지나간다는 둥, 제가 욕구만 풀 수 있다면 무슨 짓을 해도 좋을 것 같다는 둥, 마음에도 없는 소릴 하셨으니…….”

마리는 암흑지형에서 한 말을 떠올리곤 긴장한 얼굴로 침을 꿀꺽 삼켰다. 당시엔 호위기사를 잔뜩 화나게 해서 원래의 까칠한 성격을 되돌리고 싶었다. 음습한 마기가 들끓는 장소에서 가장 자극하는 말을 하면 호위기사의 본래 성질이 나올 것 같아 그런 말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호위기사는 그때의 일이 아주 기분이 나빴던 모양이다.

“이제는 보복을 좀 받으셔야겠습니다.”

“보복?”

“호위기사에게 월급도 제대로 주지 않으시면서 속을 박박 긁으셨으니, 벌을 받으셔야겠지요.”

“하이너, 저기! 월급 운운하는 건 예전 같아서 듣기 좋은데, 벌이라니 무슨……!”

하이너는 마리를 순식간에 들어 올렸다. 보복과 벌을 말하면서도 그의 표정은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그는 아가씨의 몸을 인형처럼 가볍게 다루며 침대로 데려갔다.

지금부터 아가씨에게 드릴 대가는 지독할 것이다. 그동안 참고 참아야 했던, 온갖 억눌린 욕망을 한꺼번에 터트리는 것으로 벌을 줄 것이기에 아가씨는 단단히 각오하셔야 할 것이다.

아가씨도 그걸 느꼈는지 침대에서 뒤로 슬그슬금 물러났다. 생글생글 웃으려 애쓰지만, 어째 겁을 먹으신 얼굴. 좀처럼 보기 힘든 표정이다.

하이너는 눈을 더욱 가늘게 뜨며 웃었다.

“하이너, 오늘따라 굉장히 무서운 거 알아? 드래곤일 때보다 더 무섭다고……!”

하이너는 대답하지 않고 그녀의 가녀린 발목을 붙잡아 더는 뒤로 도망가지 못하게 했다. 어차피 아가씨께 더 도망갈 공간 따위 없다. 마침 옷을 반쯤 벗고 계시니 참 편하다. 무례한 두 손이 아가씨의 속옷을 단번에 벗겨 내렸다.

“엇!”

“아가씨….”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꽃이 눈앞에 있다. 어떻게 하면 그 꽃이 활짝 피는지 너무나 잘 아는 하이너는 고민하지 않고 바로 그곳에 얼굴을 묻었다. 혀가 은밀하고 섬세한 춤을 춘다. 그런데 그 움직임은 결국, 가장 무자비한 애무가 되었다.

“아아…… 읏!”

마리가 호위기사의 머리를 붙잡고 가녀린 사지를 파들파들 떨었다. 표정만 보자면 부끄러워하고 싫어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절대로 호위기사를 밀어내지 않는 몸짓.

그 몸짓은 호위기사를 웃게 했다.

그러나 웃는 것도 잠시, 곧 그의 입술은 다시 꼿꼿한 혀를 빼내 아가씨의 은밀한 감각을 부추겼다. 살결에 가려졌던 작은 구슬이 한껏 달아올라서 빨갛게 부풀어 고개를 내민다. 아래에서 흘리는 농밀한 체액을 핥던 호위기사는 그 젖은 혀로 구슬을 건드리다가 한꺼번에 힘주어 빨아들였다.

“아아!”

하이너의 몸이 바짝 흥분했다. 순수하게 아가씨의 몸에 흥분할 수 있는 게 대체 얼마 만일까? 아주 오랜만에 돌아온 이런 은밀한 시간에, 그동안 쌓였던 불만이 흥분에 취한 목소리로 모조리 쏟아져 나왔다.

“하아. 당신은… 마셔도 마셔도 저를 목마르게 하는 여자입니다.”

“그, 읏, 그런데 이젠… 앗! 저주는? 읏, 앙!”

“…… 흡마귀의 저주? 세계의 비밀? 다 꺼지라 그러십시오.”

“정말 괜찮은 거야? 견딜 수 있어?”

“내가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당신을 향한 목마름이었습니다. 당신을 마시고 마셔도 취할 수 없었던 현실이었으니까.”

“읏, 아앙!”

“지금부터 당신을 원 없이 취하고, 가질 거야.”

한껏 녹진해진 살 틈으로 기다란 손가락이 뱀처럼 찾아들었다. 그 뱀은 저를 꽉 죈 내부가 답답하다는 듯 난폭하게 움직였다. 마리는 전율했다.

“으읏! 아, 안 돼!”

안 된다고 하시면서도 그곳은 꽉 물고 끊어버릴 듯 죈다. 하이너가 흥분 어린 숨을 뱉으며 잠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마리의 귓가에 키스를 몇 번이고 했다.

“언젠가 그러셨지요. 창녀이자 애인이 되어주시겠다고, 이제 그런 말은 필요 없습니다. 다른 것으로 욕구를 해결하란 말도 더는 듣지 않겠습니다. 제가 정리해 드리지요. 당신은 내 거예요. 창녀도 애인도 아닌 내 소유물이 되어주셔야…….”

그는 말을 잠시 끊으며 제 것을 드러냈다. 아가씨의 앞에서 당당히 발기한 그것이 위협적인 기운을 뿜어낸다.

하이너는 마리를 눕혔다.

“준비되셨지요?”

마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이너에게 따로 대답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대답이 무엇이든 간에 그는 쌓아두었던 정염을 터뜨릴 작정이다.

“하이너….”

마리는 얌전하다. 가녀린 두 다리가 호위기사의 어깨에 올라가고, 젖은 틈새에 딱딱하게 선 것이 꽉 들어차 움직임이 시작되어도, 그녀는 얌전해 보였다. 그러나 호위기사의 것을 받아들이는 안쪽은 그 어느 때보다 격렬히 맥동했다. 결합부에서 질척질척 음란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흐읏… 읏! 아!”

하이너가 어깨에 걸친 가느다란 발목을 양손으로 쓰다듬으며 눈을 감았다. 마치 따스하고 축축한 살결을 잠시 그대로 느끼고 싶어 하는 듯.

“후우…….”

그의 허리가 잠시 멈추나 싶더니 다시 거세게 움직였다.

“굉장해…… 이거 진짜 미칠 것 같군요.”

“하아, 읏, 하앙!”

“그거 아십니까? 내 아래서, 내가 이끄는 몸짓으로, 내 것이 되어 신음하는 당신을 보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아.”

“아, 아, 아아!”

하이너는 마리의 상체를 일으켜 안고서 또 허리를 움직였다. 한껏 높아진 숨소리로 쾌감을 표현하는 아가씨의 머리를 감싸고 한참 동안 기계처럼, 그것도 한 사람의 몸을 파괴하려 작정한 무시무시한 기계처럼 허리를 움직였다.

“흐윽, 으!”

깊게 치고 들어올 때마다 마리의 시야가 통째로 백색에 물든다. 차라리 고통이라 말할 수 있는 쾌감에 허덕이면서 마리는 문득 두려움을 느꼈다. 집착 어린 호위기사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갈퀴처럼 긁어댔다.

“당신은 내 거야! 나도 당신 것이고! 그러니 다시는 다른 것으로 욕구를 해소하란 말 따윈 하지 마!”

“아아, 하이너! 읏!”

“이젠 나를 진짜 연인으로 인정해 달란 말입니다!”

“아! 지, 진짜 연인…… 진짜… 어쩌지?”

하이너는 끊임없이 그녀의 몸을 갈구하며 대답했다.

“뭘 말입니까.”

“하아, 아! 마, 마…….”

마음도, 몸도, 이 남자가 중심이 된다. 진짜 연인으로 인정해 달라는 말이 이리도 무섭게 느껴질 수가. 이 남자에게 휘둘려 한몸이 되고 그가 일방적으로 선사하는 쾌락에 빠지자, 그제야 깨달았다. 암흑지형에서 하이너와 헤어졌던 닷새 전부터, 아니, 하이너가 번뇌에 괴로워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니, 어쩌면 훨씬 그 이전부터…… 이 여행의 중심이 자기 자신이 아닌 호위기사가 되는 느낌, 그런 묘한 느낌이 마리는 두려웠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하이너 없이는 이만큼 오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 자기 자신은 그저 치기 어린 인간에다 몸만 먼저 나서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것 같아 견딜 수 없다.

마리는 한껏 고조된 쾌감 속에서 겨우 정신을 차리며 두 손을 뻗었다. 그리고 커다란 호위기사의 몸을 껴안았다. 속에 담아두었던 말이 나왔다.

“하아, 아! 미안해! 알잖니? 읏…! 난 누구의 것이 되진 못해! 그런 성질이 안 된다고! 내가 잘못했어! 무모하게 여행하고 고생만 시켜서, 읏……! 아! 이제 너는 내 호위기사를 하지 않아도 돼!”

예상도 하지 못한 말은 하이너를 화나게 했다. 그는 갑자기 몸짓을 멈추다가, 마리를 뒤돌아 엎드리게 했다. 달아오른 작은 엉덩이를 가득 들어 올리고, 그 갈라진 틈새에 자신을 거칠게 박아 넣었다. 아가씨의 입에서 거친 신음이 짧게 터져 나왔다.

“으읏!”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마력이 없어지니 날 버리겠단 겁니까? 세상에서 마력이 사라졌으니, 호위기사 놈도 별 볼 일 없어졌다고 버리시려고?”

“아, 그게 아니라…!”

하이너는 더욱 성이 나서 그녀를 밀어붙였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후우…… 잘 들어요. 나는 두려웠어. 드래곤이 아닌 평범한 인간인 채로 당신을 제대로 지켜낼 수 있을까 두려웠다고.”

솔직해진 감정만큼이나, 몸짓도 적나라해졌다.

마리는 위기를 느꼈다. 절정을 코앞에 둔 하이너의 몸짓을 얼른 중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 아아! 하이너, 이제 안에는 절대…!”

마력이 사라지고, 마력으로 인한 피임 효과도 사라진 지금, 너무 위험하다. 이미 삽입한 채로 이러는 것부터 선을 넘은 짓이 아닌가? 이제 더는 곤란하다. 자신의 안에서 절정을 맞이하게 둘 수는 없었다.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이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만둬 달라는 말도 나오지 않는다.

그의 성기가 작살이 된 것 같고, 그를 절대 거부할 수 없을 것 같다.

“아, 아! 어떻게 해! 아!”

하이너가 그녀의 허리를 더욱 세게 붙들고 절정을 향해 달렸다.

“그러니 나는 죽을 때까지 당신 곁에서 당신을 지키는 것을 증명해 보이면서 살겠어. 후우, 이건 당신의 호위기사로 있겠다는 말이 아니야, 당신의 연인, 진짜 연인이 되겠단 말입니다. 그러니 당신은 나를 내쳐서도, 내게서 도망가서도 안 돼. 절대…… 안 됩니다. 아……!”

그의 입에서 새하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잔뜩 수축한 살결 속에 뜨겁고 진한 체액이 번졌다. 동시에 절정에 이른 마리가 온몸을 떨었다.

곧, 하이너의 커다란 몸이 마리의 가녀린 등을 깔고 쓰러졌다.

“하아…….”

하이너는 아가씨가 무거워할까 봐 금세 그 가녀린 몸을 돌려 눕혔다.

“눈을 떠. 나를 보십시오.”

마리가 쾌감에 눈물을 흘리던 눈을 천천히 떴다. 하이너의 눈을 보기가 두려웠다. 그의 검은 눈동자 속에 무서운 집착과 소유욕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틀린 생각이다.

한없이 검고 투명한 눈동자는 세상에서 가장 나약한 두려움을 안고 있다. 그 눈이, 당신이 없으면 안 된다고 애원한다.

“얼른 대답하세요.”

“하아, 하… 대체 무슨…….”

“나의 평생 연인이 되어주겠다고.”

그 눈에, 마리는 자기가 지금껏 했던 생각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깨달았다. 자신은 몸도 마음도 이 남자가 중심이 되는 걸 경계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삶이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 두려움을 만드는 건 철저히 자기 하나만 생각하는 이기심이다.

자신과 달리, 이 남자의 눈은 그 반대다. 오직 하나의 감정만 말한다. 오직 순정, 그것만 외친다.

아가씨의 중심에 자신이 없다고 항의하는 눈.

아가씨를 위해 여기까지 왔는데, 아가씨가 자신을 쳐 내려 해서 두렵고 겁을 먹은 표정.

“어쩜 이렇게 미아 같은 얼굴을 하는 거야, 하이너….”

하이너는 떼를 쓴다고 욕먹어도 좋았다.

“내가 여행에 따라가 줬으니, 이젠 당신이 갚을 차례잖아.”

마리가 눈을 감았다. 당신이 갚을 차례라니…… 도저히 이 말을 듣고, 그를 거부할 수 없다.

그럼. 갚다, 마다.

새하얀 열 개의 손가락이 호위기사의 반듯한 이마에 닿았다. 그리고 그 이마에, 촉촉한 입술도 닿았다.

“아가씨…?”

“이제 아가씨라고 부르지 마.”

“예?”

“마리라고 부르렴. 그리고 나 미리니시네 루 오를린. 여기서 맹세할게. 너의 진짜 애인이 되어주기로. 하이너 그로스의 평생 연인이 되어주기로!”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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