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아가씨와 번뇌의 호위기사-98화 (98/122)

00098  7. 악의 발화  =========================================================================

마황의 다리를 박은 검은 수직으로 올라갔다. 늙은 근육은 고깃덩이처럼 썰리고 힘줄은 가느다란 식물 줄기처럼 잘렸다. 그 속절없는 덩어리 속에 둘러싸였던 뼈도 기괴한 소리를 내며 중단이 되려는 찰나.

“허윽!”

당하고만 있을 마황이 아니다.

‘배신인가?’

그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급격히 회복 마법을 쓰고 헤세에게 공격을 시도했다.

파아아아앗!

평범한 마법사도 아니고 마황이므로 그의 공격은 엄청나다. 전격 마법 전문인 그는 일절 스크롤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강한 전류를 일으켜 공격할 줄 안다. 하여, 그 공격을 받은 헤세의 몸은 마땅히 잿개비가 되어야 했다.

“뭐…?”

하지만 곳곳에 걸린 후슈킨의 주술과 마법사들의 재빠른 보호 덕분에 헤그의 몸은 상하지 않는다. 물론, 이 안전함도 공격받는 헤그의 마법 방어력이 제국 최고의 수준이니 가능한 것이다. 그가 황태자에게 받은 마검이 마나의 인에서 자유롭고, 그 덕분에 헤그의 강한 검기도 유지되어 헤그의 몸을 다중으로 보호하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공격이 먹히지 않자 마황은 얼굴로 욕지기를 표현했다. 그 사이 공격해야 할 대상을 잃은 전류는 검을 타고 마황에게 되돌아갔고, 그 힘은 마황이 언제나 자기의 몸을 보호하려고 두르던 마력 보호막마저 파괴했다. 보호막이 파괴되고 마황의 몸에 전류가 흐르는 소리가 났다.

푸쉬이이이!

헤세의 공격은 그런 마력 보호막에는 구애되지 않는다. 헤세의 검은 곧바로 마황의 심장을 노렸고, 악에 받친 마황이 급한 대로 즉흥 방어막을 두르며 외쳤다.

“감히 내게……!”

이번 계기로 마황은 새로운 검황 헤세 레 지괴르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존재감이 크지 않아 새 검황이 오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는데, 지금 하는 행동과 방어력을 보니 아무래도 재야에 묻혀 살던 인물이 아닌 듯하다.

‘헤그인가? 그럴지도!’

마황은 몸에 착용한 대용 스크롤의 힘을 빌려 공격을 시도했다. 평소에는 거추장스러운 장신구 취급을 하던 대용 스크롤의 힘을 자급히 불러야 할 정도로 그의 사정은 아슬아슬하다.

물론 마황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마력 완전체, 즉 자신의 드래곤화를 통해 헤세를 공격할 수 있을 것이나, 아직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파아아아앗!

“윽!”

마황의 스크롤 공격은 먹혔고, 헤세의 몸은 멀리 튕겼다. 단, 마황의 몸을 노리던 마검은 여전히 스크롤 공격에 휘둘리지 않고 공격을 계속 이어갔다.

챙! 채애애앵! 챙!

마황이 그 검을 열심히 피하는 사이, 후슈킨은 헤세를 보호하려고 장신구 스크롤을 이용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넓은 창문이 가루가 되듯 부서졌다. 파앗! 파괴 소리와 함께 대포알처럼 한 사람이 튕겨 들어왔다.

모두의 시선이 그 난입자에게로 향했다. 마황과 다투던 헤세 역시 이 갑작스럽고도 과격한 방문자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창문을 망가뜨리고 등장한 그는 언뜻 보기엔 건장한 체격의 평범한 인간이다. 검은 머리카락의 청년인데 어쩐지 표정이 심상치 않다. 눈동자가 새하얀 게 마치 사악한 마기에 물든 것처럼 보인다. 그 눈동자가 너무 이질적이라 헤세는 그를 알아보지 못 할 뻔했다.

‘낯이 익군. 그래. 그 미치광이 여자의 기사라던……?’

헤세는 불현듯 기억이 났다. 저 남자는 마리니시네를 호위하던 기사다.

그 기사가 어째서 지금 이 장소에 온 것인지? 물론 그 미치광이 여자가 마황을 제거하고자 야심을 품은 적은 있다. 그 여자가 당시 힘을 합치면 어떻겠냐고 물었을 때 자신은 거절했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은 그 여자의 편이 아닌 황태자의 편에서 마황을 제거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 여자는 그 여자 나름대로 호위기사를 보내 마황 제거 작업을 수행 중인가 보다.

‘무모하군. 단신으로 마황에 맞서 싸울 생각이었나?’

헤세가 그렇게 생각하며 검을 휘두를 때, 후슈킨이 외쳤다.

“저 자는 강력한 마기를 지녔다!”

그 사이 마황은 하이너에게 눈을 떼지 않으며 서서히 변신을 시도했다. 마황의 몸은 점차 금빛으로 변해가고 사지도 파충류처럼 변이되었으며 크기도 커졌다. 그는 하이너에게서 느껴지는 강력한 기운에 이미 이 암살 시도가 평범한 건 아니라고 눈치챘다. 헤세와 마탑의 이인자가 함께 시도하는 암살보다 이 검은 머리 불청객이 뿜어내는 마력이 앞으로 더 무서운 암살 시도가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 중이다.

‘당황스럽군!’

마황은 엄청난 고통을 인내하여 순식간에 전류가 흐르는 금색 드래곤으로 변하여 건물 밖으로 달아났다.

그 탓에 헤세의 마검은 공격 대상을 잃게 되었으며, 후슈킨의 지원 마법도 중단되었다.

후슈킨은 하늘로 날아가는 마황을 보며 사태를 살폈다.

‘뭐지? 마황보다 더 큰 마력이라니?’

마력의 일인자라 불리던 그가 바로 젊은이와 헤세를 죽이지 않고 달아났다는 것은 무얼 뜻하는가. 그것은 갑자기 난입한 젊은이의 마력이 마황을 두려워 도망치게 할 정도로 강하단 의미다. 이미 마법사 후슈킨을 포함한 마탑의 마법사은 온몸으로, 아니, 모든 곳에 흐르는 공기로 그걸 느끼고 있다.

하이너는 금색 드래곤의 모습을 보더니 재빨리 드래곤화를 시도했다. 검은 드래곤이 야수처럼 하늘을 향해 뻗어 날았다. 금색 드래곤은 검은 드래곤에게 금세 따라잡혔고, 하늘에선 최강 마력생물 간의 싸움이라는 대 장관이 펼쳐졌다.

파아아아앗!

펑! 퍼퍼퍼퍼펑!

강한 전류의 빛줄기가 새파란 하늘에 뿌리를 치올리듯 퍼지고, 폭죽처럼 연기가 터져 그 전류의 불빛을 감싸는 듯하다. 금색 드래곤이 전격 위주로 공격을 펼치며 이따금 검은 드래곤의 시야를 가리는 반면, 검은 드래곤은 금색 드래곤을 어딘가로 몰며 단지 방어만 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런데도 금색 드래곤의 몸 여기저기는 거대한 삼지창이 갈긴 듯 혈흔이 생겨났다. 검은 드래곤의 의지가 금색 드래곤의 몸에 해를 가하는 증거!

피 튀기는 공중전 도중, 마황이 먼저 물었다.

「웬 놈이냐!」

그러자 마황을 당황케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오를린의 평범한 청년이라고만 해두죠.」

마황보다 강력한 마력을 가진 자, 오만하게 공격을 시도하는 자치고는 지나치게 정중한 대답이다.

마황은 기가 차서 물었다.

「무슨 이유로 내게 공격을 하는 거지?」

아니, 그 전에 어째서 이런 괴마력을 지니고서도 여태 대륙에서 조용히 살아왔는지, 마황은 그거부터 궁금했다.

하지만 부정적인 대답만 돌아올 뿐.

「사연이 복잡합니다. 죄송하지만, 설명은 드릴 수 없군요. 그럼.」

줄곧 방어만 펼치고 의지의 힘으로 간접 공격만 하던 검은 드래곤이 갑자기 태세를 달리하여 무시무시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전류를 막아낼 암석 공격부터 시작하여 전류를 흡수하는 암흑 공격까지, 검은 드래곤의 공격은 검은 드래곤 자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강하고 뛰어났다.

그러자 저 먼 마탑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후슈킨이 한결 시름을 놓은 얼굴을 했다.

“저 검은 드래곤… 일부러 호수 쪽으로 가서 공격하는군.”

이른바 사람들에게 피해를 덜 끼치는 곳에서 전투를 펼치는 전략이리라. 후슈킨으로서는 헤세의 돌발 행동에 당황한 터였고 헤세와 마황의 대결에서 헤세의 승리를 장담하지 못할 지경이었는데, 갑자기 와 준 젊은이 아니, 검은 드래곤의 도움이 반갑기 짝이 없다. 게다가 그 검은 드래곤이 험악하게 생긴 모습과 달리 황도 사람들에게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게 호수에서 전투하려 하니 황도에 사는 한 사람으로선 그저 감사할 뿐이다.

하이너 역시 후슈킨이 예측하는 그대로,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금색 드래곤을 호수로 유인해 싸우고자 했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전격 마법은 물 주변에서 더욱 강해진다. 금색 드래곤도 그걸 계산하고 순순히 검은 드래곤이 모는 대로 호수로 간 것이다. 한순간 호수의 물이 하늘에 치솟아 올라 두 드래곤을 가리는 거대한 전류의 장막이 되었다. 전류의 장막은 무형의 흉기가 되어 하이너를 공격했다.

‘이런!’

장막 안에서 하이너는 당황했다. 마력으로는 마황을 압도하고 있지만, 사방에서 전격공격이 들어올 것 같은 눈치에 고도를 더욱 상향하며 달아났다. 그 사이 마황은 하이너에게 공격을 퍼부으며 마탑의 마법사들에게 욕지기를 퍼부었다. 한 집단의 수장이 의문의 드래곤에게 노려지고 다투는 상황인데도 그 부하란 것들은 한참 전부터 도우러 오지 않는다. 헤세와 싸울 때부터 느꼈지만, 이건 명백한 배신이고 그는 이 배신의 의미를 알 것 같다.

아무래도 황제 혹은 황태자에 의해 주도된 암살 계획이다. 집단적으로 마황을 호위하지 않는 것이 그 증거다.

파아아아아앗!

전류는 방향성을 띠고 검은 드래곤의 꼬리를 잡았다. 그러나 검은 드래곤은 공격을 받는 즉시 회복을 해내는, 그야말로 역사적으로 누구도 할 수 없는 마법을 쓰고 있다. 그 뛰어난 마력은 검은 드래곤의 내부에서 하이너가 아닌 다른 자아가 휘두르는 힘이다.

하이너는 마황에게 암석의 공격을 퍼부으며 내부의 인격에게 물었다.

‘어째서 날 돕지?’

실상 이건 우문이라 할 수 있다. 슈테반의 의식이 온몸에 흘러들어와 슈테반의 삶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자신에게 이런 질문은 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도 친절한 슈테반은 다시 한 번 알려주듯 대답을 내놓았다.

‘흐…… 마탑의 인간들은 재수 없으니까.’

‘아, 넌 그랬지.’

하이너는 슈테반이 후슈킨 가문에서 버려진 아이였다는 걸 뒤늦게 되새겼다. 슈테반이 의식은 하이너에게 한 가지를 부탁했다.

‘흐흐…… 이봐, 마황를 죽인 후에 후슈킨도 죽여줬으면 좋겠군.

하이너에게서 암석 공격을 받은 마황의 공격은 한층 약해졌다. 그 사이 하이너는 한결 편하게 움직이며 슈테반의 자아에 물었다.

‘죽여줬으면 좋겠다니. 지금처럼 스스로 내 몸을 움직여 그를 죽이면 되지 않나?’

그러자 슈테반이 가당찮다는 듯 대꾸했다.

‘지금처럼 네 몸을 내가 움직인다고? 흐흐흐…… 웃기는 소리를 하는군, 그래. 너는 마황을 흡수하고 나면 그의 힘과 이성적 절제력을 통해 내 저주를 붕괴시키고 나 역시 없앨 심산 아니던가?’

하이너는 픽 비웃었다.

‘성공했을 때의 이야기지. 실패하면 나는…….’

마황의 의식으로 슈테반의 의식과 저주를 파멸하려고 지금 이렇게 고군분투하지만, 승리 후엔 장담할 수 없다. 슈테반의 저주를 없애지 못하면 자신은 마력의 피에 굶주린 역대 최악의 흡마귀가 될 것이고, 온 황도 마법사들의 마력을 흡수하려 들 것이다.

그것은 곧 폭주.

하이너는 폭주하게 된 후의 일을 생각하니 몸서리가 쳐졌다. 아가씨를 만나지 못하고 괴물로 전락하는 현실을 맞고 싶지 않다.

그런데 슈테반은 하이너의 그런 마음을 훤히 꿰뚫었다.

‘흐흐…… 이봐, 실패할 생각일랑 말라고. 그렇게 되면 날 먹은 의미가 없지 않나?’

슈테반은 하이너를 응원했다.

하이너는 잠깐이지만 슈테반이 마치 자신의 편이 된 듯한 착각 했다.

그래. 천공의 구름을 휘저으며 격렬히 싸우는 이때, 상념에 젖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하이너는 전격 공격을 거의 하지 못하는 마황에게 날릴 최후의 일격을 생각해냈다.

그런데 생각과 동시에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검은 드래곤의 온몸에서 하얀 촉수가 뻗어 나오더니 금색 드래곤의 약해진 전류를 대뜸 삼켜버리는 게 아닌가. 그것도 모자라 하얀 촉수는 금색 드래곤의 온몸에 붙어 그의 모든 힘, 마기, 의식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이 현상은 곧 하이너의 승리를 의미하리라

슈테반이 경이에 차서 감탄했다.

‘제국 최초 아니, 대륙 최초로 마황을 이긴 자의 출현이군.’

그것은 곧 마탑의 사람들이라면 무조건 경멸하고 증오하던 슈테반의 오랜 염원이기도 했다. 슈테반은 하이너의 힘이 더욱 강해지도록 도왔고, 그 결과 하늘을 휘젓던 두 드래곤은 호수 깊숙이 잠겼다. 그들이 물에 잠기기 전에 하늘에선 금색 드래곤의 괴로운 울부짖음이 들렸다.

그것을 멀리서 지켜보든 후슈킨이 중얼거렸다.

“검은 드래곤의…… 승리겠지요?”

헤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의 부하에게 고갯짓했다. 그러자 마황 암살 작업에 동원했던 이들은 철수했고, 오늘 두 드래곤의 싸움은 곧바로 황태자에게 알려졌다.

***

호수 속은 바다처럼 검푸르다. 검은 드래곤은 금색 드래곤의 마기를 흡수하면서 그를 종잇조각처럼 만들어버렸다. 마황의 모든 힘을 앗아버리겠다고 결심하니, 그 결심만큼이나 모든 일이 이뤄졌다.

승리의 순간이겠지. 하지만 승리할수록 초조해져만 간다. 흥분의 극에 다다른 하이너는 어딘가에 있을 아가씨께 들으란 듯 중얼거렸다.

「의지의 힘은…… 있군요.」

그러나 의지의 힘이 진짜 있다는 건 이제부터 증명해야 할 일이다.

하이너의 온몸에 마황의 의식이 스미기 시작했고, 하이너는 그 의식과 싸워 반드시 이겨만 한다.

꼭 이겨야만, 아가씨를 만날 때 편히 웃을 수 있으리라.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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