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아가씨와 번뇌의 호위기사-96화 (96/122)

00096  7. 악의 발화  =========================================================================

한여름인데도 바람이 스산한 소리를 내며 불었다.

마리는 마리아를 일으키면서도 하늘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

구름 너머로 모습을 감추었던 하이너는 어떻게 되었을까.

거대한 드래곤은 구름을 지나치면서 강력한 마기의 덩어리가 되어 천공에 녹아내렸다. 인간에서 드래곤으로, 드래곤에서 하늘 그 자체가 되는 기분은 어떠할까. 하이너는 단 한마디로 대답할 것이다.

세상을 아우르는 느낌이라고.

그가 그러한 경이로움에 도취한 사이, 슈테반의 모든 것 또한 구름처럼 하이너에게 스며들었다. 하이너는 슈테반의 모든 것을 직접 체험한 듯 느껴야 했다. 슈테반의 탄생과 삶 그리고 드래곤에게 먹히기 전까지의 기억 전부가 마기의 덩어리가 되어 하이너에게 녹아들었다. 그 현상은 이른바 슈테반의 기를 흡수한 후유증이라 할 수 있다.

슈테반 뷔야크는 마법 명문 후슈킨 가문의 아이였다. 그러나 어미의 부정한 관계로 태어난 데다가 갓난아이부터 마력조절이 되지 않아 갖은 말썽을 일으켰고, 그 때문에 그의 어미는 늘 불안증에 시달려야 했다. 그녀는 후슈킨 가문의 건강하던 하녀가 갑자기 죽거나, 집안의 우물이 모조리 증발하거나, 늦봄 마당의 식물들이 모조리 말라죽었을 때 그 범인이 자기 아들이라고 여겼다.

‘너는 내 죄다.’

어미는 그 말을 버릇처럼 했다. 그녀는 남몰래 가슴 졸이며 그를 키우다가 지쳐 버렸고, 급기야 아이를 숲에 버렸다.

아이는 숲의 동물들 혹은 마력생물들에게 먹힐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뷔야크라는 성을 가진 한 늙은 마법사가 순례 도중 슈테반을 발견했고, 그렇게 슈테반은 새로운 성을 얻고서 마법사 노인에게 거두어졌다.

부모이자 스승 역할을 맡은 마법사 노인은 썩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어린 슈테반이 마력 자제가 되지 않아 여러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눈치 챈 그는 슈테반에게 일단 마력 결박을 걸어두어 아이 주변을 안전하게 했다. 그 후에는 평범한 아이처럼 키우는 듯했다.

하지만 슈테반이 여섯 살이 된 무렵부터, 노인은 슈테반을 마치 노예처럼 부려 먹었다. 세탁, 물 긷기, 청소, 음식 만들기 등 자잘한 가사는 모두 슈테반에게 맡겼고, 마법 실험 재료가 필요하면 그 재료가 어떤 위험한 곳에 있든지 간에 무조건 슈테반에게 ‘구해오라!’고 심부름을 시켰으며, 때로는 슈테반을 마법 실험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또한, 그 노인은 ‘사춘기는 마법사들에게 성가신 것’이라며 슈테반이 사춘기를 맞이할 즈음엔 생식의 능력을 없애는 만행도 저질렀다. 그 시절은 그야말로 슈테반에겐 참을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어린 시절의 슈테반은 단 한 번도 또래 아이들처럼 뛰어놀 시간이 없었고, 실험 후유증으로 인해 언제나 몸이 좋지 않았다. 그의 음산한 성격은 그때부터 만들어졌다.

어느덧 시간은 흐르고 슈테반은 청년이 되었다. 그동안 스승 몰래 마법을 공부해온 슈테반은 자신에게 마력 결박이 걸려있단 걸 알았고, 그날 바로 마력 결박을 풀었다. 그런 다음 스승의 마력을 모조리 흡수한 뒤 스승의 온몸을 난도질해 죽였다. 그러지 않으면 언젠가는 스승의 먹이로 소모될 것 같은 공포 때문에 견딜 수 없었다.

끝없는 마력 사냥은 그런 증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집을 떠난 슈테반은 루앙의 곳곳을 돌아다녔다. 돌아다니면서 약한 마력생물의 마기를 흡수하거나 아니면 마법사들의 마기를 조금씩 빨아들이는 방식으로 자신의 마력을 키웠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게, 자신이 다른 마법사들보다 마력의 흡수가 굉장히 빠른 편이고, 남들이 눈치채지도 못할 만큼 은밀하게 흡수를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마기를 흡수하면서 마법사들의 삶과 지식도 흡수했고, 그러다 보니 그는 어느 순간 루앙에서 대현자 혹은 지도자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물론, 그때부터 마탑의 견제가 시작된 것은 당연. 마탑의 이인자 후슈킨은 자신의 가문에서 루앙의 대현자라 불리는 마력 괴물이 나왔다는 것에 경악하며, 최대한 완곡한 내용의 전언을 슈테반에게 보냈다.

가능하면 조용히 지내달라는 것, 그리고 괜스레 힘을 과시하여 제국을 어지럽게 만드는 일은 자제해 달라는 것.

슈테반은 그 전언을 본가에서 보낸 협박으로 여겼다. 그는 그런 전언을 보낸 후슈킨을 증오했고, 후슈킨이 몸담은 마탑의 수장 마황도 이겨서 없앨 거라고 결심했다.

그는 루앙의 최고가 된 후에도 마력 사냥을 멈추지 않았다. 마도사 순례 역시 마력 사냥을 목적으로 떠났다. 마력 사냥을 하기엔 마법사를 먹는 게 가장 좋지만, 루앙의 우두머리가 된 후라 같은 마법사의 마력을 먹는 것은 상황이 마뜩 잖았다. 괜스레 도시 전체를 불안하게 하고 적으로 만들 이유는 없으니 말이다.

마탑이 있는 황도에 가야 했다.

하지만 루앙을 떠난 그는 바로 황도에 가는 것은 자제했다. 제국 외곽에서 힘을 모은 뒤에 황도에 갈 생각이었다. 일단 극동 지역 달의 바다에서 휴양하며 마력생물들을 잡아먹었다. 그 뒤 북쪽으로 가서 오슬의 수인족 중 먹을 만한 마력이 있는지를 살폈다. 예전에 흡수한 지식에는 수인족 중에서도 쓸 만한 마력이 있다는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인족 중에는 그다지 탐나는 마력이 없었다. 게다가 수인족은 언제나 로젠플라드 신성군과 전투를 벌이느라 분위기도 어수선했다.

그는 더욱 북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얼음 도시 시귀르에서 빙귀의 휴야를 찾아갔다. 그곳은 마력이 깃든 유령들이 모인다는 곳으로, 심령 마법을 통해 대규모 사냥을 하기 좋았다. 그는 유령들을 사냥하며 마력의 목마름을 해소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그는 수많은 마법사의 지식을 흡수했지만, 그 지식이 대부분 잠든 채로 의식의 표면에 등장하지 않았고, 그 탓에 유령의 마력이 지니는 저주를 알지 못했다. 처음엔 유령의 마력도 쓸모가 있을 거로 생각하고 모조리 먹어치웠지만, 마력을 탐하면 탐할수록 더욱 마력에 굶주린, 마치 아귀 같은 상태가 되었다. 훗날 마법사들의 지식을 의식 표면에 띄워 그 굶주린 상태의 원인을 알아본 결과, 유령의 저주란 것이 밝혀졌고 그는 절망했다.

유령처럼 떠돌던 그는 또 무작정 북쪽으로 향했다. 그러다 며칠 뒤, 위험지역이라 알려진 영원의 꿈 근처에 다다랐다. 그곳은 암흑지형에 점점 침식당해 불안정한 곳이었다. 게다가 빙귀의 휴야에서보다 더욱 엄청난 마력을 지닌 유령들이 득시글댔다.

예전 같으면 슈테반은 그 유령들의 마력을 모조리 먹어치웠을 테지만, 마력을 먹으면 먹을수록 더욱 목말라지는 증상에 사냥을 일절 하지 못했다. 대신 그는 유령들에게 조언을 구하였다.

「아아. 어찌하면 이 목마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그러자 유령들은 비웃었다. 그를 절망케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없지. 만약에 네가 황도의 위선자(마탑의 마법사 귀족 무리)들을 모조리 먹어치워 그들의 모든 것을 흡수한다면 또 몰라도.」

슈테반은 앞이 막막했다. 마탑의 마황을 이기고자 마력 사냥을 시작했는데, 마력에 더욱 목이 마른 저주에 걸려버리고, 그 저주를 풀기 위해선 마탑의 마법사들을 전부 먹어치워야 한다니.

유령들은 절망의 끝에 다다른 슈테반에게 조언했다.

「지금부터 부지런히 마력을 먹어치워라. 절대로 유령의 마력은 먹지 마라. 가능하면 인간, 그것도 오래 수행한 마법사의 마기가 좋겠지. 아니면 강한 마력생물의 마기도 좋아. 저주에서 벗어나 지고의 마력을 얻게 된다면 너는 먼 훗날, 암흑 지형이 온 대륙을 뒤덮어도 살아남을 수 있겠지.」

그러자 다른 유령들이 끼어들었다.

「그 여러 가지 지식을 흡수하고도 저주에 걸린 꼴을 보니 아주 불가능할 테지만 말이야! 하하하!」

이에 슈테반은 발끈했다. 저주에 걸린 것도 화가 나는데 유령들의 조롱이라니. 이성을 잃은 슈테반의 유령 학살이 시작되었다. 그는 유령들을 먹으면 먹을수록 저주가 더 심해진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모든 유령을 먹어치울 기세로 달려들었다.

「흐흐! 저주 따위!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상관없다고! 으하하하하!」

급기야는 영혼이 피폐에 물들 지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는 영혼들의 역공에 의식을 잃었다. 의식을 잃기 전만 해도 자신이 차원의 소용돌이로 빠져 들어간다고 느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그곳은 차원의 소용돌이가 아니라 야울의 어느 시골이었다.

야울은 황태자 비오르틴의 자치령으로 쉽사리 건드려선 안 될 곳. 슈테반은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여 굶주림을 외면하고 서둘러 거대 호수 요호를 지나 서쪽 동한으로 갔다……(중략).

긴 여행 아니, 긴 마력 사냥은 피곤한 법이었다. 그는 잠시 쉴 겸 자신의 본거지인 루앙에 되돌아가기로 했다. 되돌아가는 길, 루앙과 오를린의 접경에서 우연히 드래콘 소녀를 발견했다. 그는 그녀의 마력을 반쯤 먹어치웠다.

그리고 나머지는 축제 때 제물 의식을 위해 남겨두었다…….

기억이 거기까지 다다랐을 때 하이너는 혼란을 느꼈다. 자신이 슈테반인지 아니면 마리 아가씨의 충실한 호위기사인지 헷갈렸다. 그런 와중에 마리아를 노린 슈테반의 악의가 인지되었고, 그것은 다시 하이너를 분노하게 했다. 분노 덕분에 하이너는 겨우 자신의 자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기의 덩어리가 되어 세상을 내려다보는 느낌. 그 경이로움에 잠시나마 분노를 달래며 자아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낙하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마치 대지가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느낌이었다.

***

정신을 차린 하이너는 눈을 뜨며 몸을 일으켰다. 인간의 몸으로 일어나는 기분이 가뿐하지만, 어쩐지 이 가뿐함이 기분이 좋지 않다.

눈앞에는 호수가 있다. 평범한 호수는 아니다. 새빨간 물결이 인상적인 이 호수는 피의 호수라 불리는 루앙의 명소. 즉, 이곳은 여전히 루앙이라는 이야기.

호수가 붉은 것은 이곳에만 있다는 특유의 미생물 때문이다. 호수의 핏빛을 본 하이너는 돌연 급격히 허기를 느꼈다.

슈테반의 기운이 그를 조종하는 것일까?

“그아아아아……!”

인간이면서도 마치 드래곤인 양 울부짖는다.

그러다 한참 후, 하이너는 호숫가의 마력생물들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웠다. 미미한 마력을 가진 곤충부터 시작해 마법 약의 재료로 쓰이는 풀과 꽃, 토끼처럼 자그마한 생물 그 모든 것을 뜯어 먹었다. 사람이 없으니 망정이지, 혹시나 마력을 지닌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조차 사지가 뜯겨 죽임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슈테반의 기운은 하이너의 자아를 내리눌러댔다.

포식의 시간이 끝나고 하이너의 입가에는 흙과 풀물이 묻어 있다. 그리고 호수보다 더 붉디붉은 피도 주르륵 흘러내렸다. 기분 나쁜 포만감을 느끼며 그는 원래 자신의 자아를 일깨우려 애썼다. 하이너. 하이너 그로스. 오를린의 청년이자 마리니시네 아가씨의 충실한 기사. 그 정체성을 몇 번이고 되뇌는 순간, 갑자기 몸의 내부에서 다른 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흐흐…… 정의로운 기사 씨.」

자신을 부르는 이는 아마도 슈테반의 자아일 것이다. 하지만 하이너는 그 사실을 믿고 싶지 않다. 하이너는 괜히 다시 물었다. 내부에서 말을 거는 이가 슈테반이 아니길 바라며.

“누구지?”

대답이 돌아왔다.

「슈테반. 슈테반 뷔야크. 그 누구보다 네가 나를 가장 잘 알 텐데? 흐흐…….」

하이너는 침묵했다. 침묵으로써 슈테반과의 대화를 단절하고 싶다. 그러나 대화는 단절되지 않을 분위기다.

「하나 묻지. 나에게 도전한 건가, 아니면 정의감에 사로잡혀 그 드래콘을 구하려 한 건가.」

“처음부터, 도전할 생각은 없었다.”

「아하. 그래. 정의의 사도 씨. 드래콘 아가씨를 살리니 기분이 어떤가? 기쁘고 즐거운가? 보람차고 뿌듯해서 미칠 것 같은가?」

하이너의 미간이 심하게 찌푸려졌다.

「정의의 사도 흉내도 상황을 봐 가면서 하는 거라고. 알겠나?」

“닥쳐라!”

하이너는 슈테반에게 조롱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

슈테반은 고맙다는 듯 굴었다.

「그나저나 참 다행이지…… 너도 알지 않나? 내가 늘 갈증으로 괴로웠단 걸. 늘 목이 말랐다. 부모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 내 멋대로 할 수 없었던 마력 조절을 향한 열망, 그리고 누구도 넘보지 못할 강한 힘…… 하지만 이제 자유군. 그 모든 것에 집착하지 않아도 되니까.」

“자유?”

「그렇다. 이렇게 영혼이 되어서야 평화를 느껴. 더는 살육을 저지르지 않아도 되니 말이야. 이게 자유가 아니고 대체 뭔가.」

그 말인즉슨, 그가 저지르던 살육의 굴레, 그가 느끼던 모든 굶주림이 드래곤으로 옮겨갔음을 뜻한다.

슈테반에게서 저주 같은 말이 나왔다.

「정의로운 드래곤 기사 씨. 그대는 영원히 목마르게 될 거다. 영원히. 그게 내가 주는 선물이다. 으흐흐흐…….」

슈테반이 사악한 웃음을 전할수록 그 반동으로 하이너는 점점 자신의 자아를 오롯이 의식 가운데로 옮길 수 있었다. 그는 한 순간 우두커니 서서 눈을 질끈 감고 있는 힘을 다해 몸속을 떠도는 슈테반의 목소리를 지웠다. 아니, 그의 자아 전부를 최대한 지워내려 애썼다. 그랬더니 슈테반의 목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을까? 정말 그가 영영 사라졌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싫다…….”

하이너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점점 호수로 돌진했다. 풍덩! 하고 온몸을 호수에 내던지고 한참 동안 침잠했다.

그가 원한 것은 단 하나.

온몸에 깃든 슈테반의 망령에서 벗어나고 그의 저주 또한 무효로 만드는 것. 만약에 이 목마른 저주를 해결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좋은 건 하나에, 안 좋은 건 전부다.

우선, 좋은 것은 아가씨가 원하는 마황 제거 작업을 쉽게 할 수 있다는 것. 원래부터 막강한 드래곤의 마력에, 루앙의 대현자의 마력까지 흡수한 덕분에 마황을 대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딱 거기까진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다음은? 마황이라는 커다란 먹이를 먹어도 이 저주받은 몸은 더 큰 마력을 먹을 수 있게 해달라고 아우성칠 것이다. 그리고 대륙의 모든 마력생물의 씨는 마르겠지. 아가씨에 의한 대륙 정복이 아니라 자신에 의한 대륙 정복 아니, 자신에 의한 대륙 파괴임이 분명해질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맹세코 그런 상황을 맞이하길 원하지 않는다.

하이너는 버릇처럼 아가씨의 말을 떠올렸다.

「기적의 재료가 뭔지 알아?」

「예?」

「믿음. 그리고 능력. 그것만 있으면 되지.」

지금부터 자신이 해야 하는 것은, 몸속에 녹은 슈테반의 저주를 오직 의지의 힘으로만 지워내는 것이다.

그는 아주 오랫동안 물 속 깊은 곳에서 나오지 않았고, 그 덕분에 호수에 녹은 모든 산소가 그의 호흡으로 소진되었다.

그리고 그가 호수 표면으로 고개를 내밀었을 땐 호수 주변 모든 동식물이 생명력을 잃고 널브러졌다. 그가 슈테반의 기운을 없애려 애쓴 나머지 그 파괴력이 주변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하지만 결국…….

슈테반을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이봐. 나는 한낱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고. 날 없애고 저주에서 벗어나려면 그깟 의지의 힘 따윈 통하지 않아. 차라리 나와 비슷한 마력을 가진 자를 흡수하는 게 더 빠를 거야. 이를테면 마탑의 역겨운 놈들 말이지.」

하이너는 물 밖으로 힘없이 걸어 나왔다. 그리고 달 아래 붉은 물결을 보며 중얼거렸다.

“때론 아가씨의 무한 긍정이 통하지 않을 때도 있군요.”

아직 여름인데, 벌써 가을이 온 느낌이다.

이젠 어디로 가야 할까?

아가씨껜 갈 수 없다. 만약 그런다면 아가씨와 함께 있을 마리아를 먹어치울 것이 분명하기에. 지금도 호수의 마력생물들을 먹어치우는데, 마리아를 보면 먹어치우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잖은가. 게다가 루네의 마법사들도 먹어치워 버리겠지. 그리고 그건 가히 폭주라고 할 수 있겠지…….

아가씨께 너무나 가고 싶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갈 수 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아가씨를 최대한 빨리 볼 방법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마황을 흡수해야겠어.’

폭주가 걱정되긴 하지만, 그 방법 외엔 마땅한 게 없다. 마탑의 책임자이자 귀족인 마황은 슈테반보다 훨씬 절제된 이성의 소유자일 것이고, 그 이성이 폭주를 막아 주리라. 지금으로선 그런 실낱같은 것에 기대를 거는 수밖에.

순간이동을 하기로 했다.

목적지는 마황이 있는 황도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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