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2 7. 악의 발화 =========================================================================
단언한 그는 반쯤 드러난 풍만한 가슴에서 가장 도드라진 분홍색 부분을 꺼내 단숨에 삼켰다. 그러자 마리의 입에서 달뜬 숨이 짧게 터져 나왔다. 달콤한 입술과 혀에 몇 번이나 녹진하게 굴려지니 가슴에 피가 잔뜩 모이면서 도드라진 부분이 바짝 섰다.
아가씨의 그런 반응만으로도 하이너는 흥분했다.
아니.
흥분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달콤한 살이다. 이렇게 금세 반응하는 살덩인데 내가 흥분하지 않을 리 없단 말이다.’
그는 마리의 다른 쪽 가슴도 같은 방식으로 자극해 주었다. 자극을 주면서 자신 또한 자극받길, 그래서 진짜로 흥분하길 원했다.
“하, 읏… 하이너. 하이너.”
두 가슴의 정점이 동시에 빨리자 마리는 온몸을 뒤틀며 야릇한 소리를 흘렸다. 그 소리에 하이너가 거친 숨을 내쉬며 다른 부위에 입맞춤을 시도했다. 그녀가 어깨를 움츠리면 하이너는 그녀의 어깨에 입 맞췄고, 그녀가 두 팔로 호위기사의 머리를 감싸면 하이너는 그녀의 겨드랑이에 입 맞췄다. 그녀가 두 손으로 호위기사의 머리를 아래쪽으로 밀면 하이너는 그녀의 은밀한 곳을 입 맞추었다. 그리고 어젯밤처럼 집요하게 혀를 놀려 기어코 달콤한 꿀을 흘리게 하였다.
어젯밤보다 더욱 간드러진 소리가 들렸다.
“하응… 아…….”
흠뻑 젖어 벌름거리는 살결을 보고 하이너가 미간을 심하게 찌푸렸다. 평소 같으면 그의 그런 표정은 흥분의 증거라 할 수 있을 테지만, 오늘은 다르다. 하이너는 조금의 반응도 하지 않는 자기 성기에 당황했다.
‘뭐냐!’
“하아, 하이너, 어서….”
이미 한 번 작은 절정에 다다른 아가씨가 재촉했다. 하이너는 짐짓 흥분한 척하며 그녀의 눈을 다정한 손짓으로 감겼다.
“왜 이렇게 조급하십니까. 어제보다 더 오랫동안 달궈놓을 작정인데.”
“읏, 응….”
“좀 얌전하게 기다릴 줄도 알아야지.”
조바심을 숨긴 하이너는 좀 더 격한 몸짓을 했다. 혀와 입술만 사용하던 그는 이로 아가씨의 몸 여기저길 깨물어 버렸다. 아가씨의 신음에서 은근한 고통이 배어났다. 그게 귓가에 자극적으로 스며들었다.
“아앗, 읏! 아프잖아!”
“죄송합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는 아가씨의 살결을 좀 더 오랫동안 깨물었다.
“아얏, 읏…….”
아가씨가 평범한 흥분으로 뱉는 호흡은 말 그대로 평범하다. 자극이 일정해지면 더 큰 자극을 바라는 게 인간의 심리 아닐까. 하이너는 아가씨의 소리를 더 크게 만들어 자신이 더 크게 자극받길 원했다. 부지불식간에 가학성애의 경계에 다다른 그가 아가씨의 가슴을 잇자국이 나도록 깨물었다.
그러자 여태 나온 소리와는 다른, 명백한 고통의 반응만이 나왔다.
“악!”
그 소리에 하이너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 죄송합니다.”
마리는 애써 웃었다. 화를 내는 것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 호위기사의 표정에서 꾸중 듣는 아이와 같은 기분을 보았기에.
그녀는 하이너의 머리카락을 헤집으며 어미처럼 자애롭게 속삭였다.
“뭐가 문제니. 하다 보면 거칠어질 수도 있는 거지, 뭐.”
“아가씨….”
하이너의 얼굴이 잠시 흐려졌다.
아가씨는 이따금 호위기사의 성기가 닿을 때 그게 축 처져 있다는 것을 느끼고도 아무런 생각이 없으실까? 아니면 아무런 생각이 없는 척하시는 건지. 평소완 다른 성기는 도무지 일어날 기미가 없다.
오기가 붙은 하이너는 대뜸 마리의 젖은 살결 안으로 손가락을 두 개나 찔러 넣었다.
“이걸, 후우, 좋아하셨죠?”
“으읏!”
“꽉 무시는군요.”
“아, 아아….”
손가락질이 점점 규칙적으로 변했고 젖은 소리가 음탕하게 났다. 마리는 호위기사의 손가락을 꽉 물고 놓아주지 않으려 했다. 보통 이렇게 하면 호위기사의 호흡이 거칠어지면서 금세 그의 성기가 안으로 돌진하듯 들어와야 하는데, 지금으로썬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다.
“후우, 흐으.”
“좋으시죠?”
“으응, 읏!”
“아가씨가 좋으니 저도 좋습니다….”
거친 숨을 토해낸 마리가 호위기사의 앞머리를 모두 걷어냈다. 그리고 그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그의 검은 눈동자엔 수심이 가득하다. 원래라면 잔뜩 흥분해야 할 호위기사가 그러질 않는다. 아무리 봐도 이 눈은 흥분한 눈이 아니다.
이 눈은…… 욕망에 절은 눈이라기보다는, 욕망 아닌 다른 뭔가를 바라고 갈구하는 눈이다.
‘이 눈은….’
그녀는 알 수 있다. 호위기사는 예전에도 이렇게 애쓰는 듯한 눈빛을 한 적이 있지. 트리아노네에 있는 토끼수인의 몸 안에서 기갑체 열쇠를 빼내야 했던 그때. 그곳으로 가기 위해 순간이동이라는 마법을 써야만 했던 바로 그때.
「기적의 재료가 뭔지 알아?」
「예?」
「믿음. 그리고 능력. 그것만 있으면 되지.」
「언제나 그런 속 편한 말씀만 하시죠.」
오직 의지의 힘으로 순간이동을 해야 했을 때, 호위기사는 그것을 비웃으면서도 결국 응해주었다. 그래서 순수한 의지의 힘으로써 먼 거리를 순간이동 하는 것에 성공했다.
호위기사는 지금도 그런 기적을 바라고 있다. 오직 의지의 힘으로만 신체의 흥분을 끌어올리려고 아가씨 몰래 소리 없는 발악을 하는 중이다.
이 얼마나 외로운 자신과의 싸움인지.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결국, 그만큼 흥분하기가 어렵고 난처하단 말 아닌가.
억지는 싫다. 오직 자신의 기쁨을 위해 호위기사가 일방적으로 거짓된 흥분을 끌어올리려 하는 것이 마리는 마뜩잖았다.
‘흐음, 우리 기사님의 자존심이 다치지 않아야 할 텐데 말이지.’
연기의 시간이 되었다. 호위기사를 무안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적절한 핑계를 내세워야 할 연기의 시간.
호위기사의 눈을 뚫어지게 보던 마리는 생글생글 웃었다. 그러더니 때마침 깜빡 잊은 것이 있다는 듯 호위기사의 어깨를 손으로 밀고 일어났다.
“미안! 생각해 보니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아!”
“……예?”
“으음. 내가 아까 정보지를 봤잖아? 글쎄 오늘이 루앙의 우두머리가 마도사 순례를 마치고 돌아오기 하루 전이라네. 그가 돌아오면 루네 시내는 축제로 떠들썩해질 거야. 우리는 그때를 이용해 그의 정보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이왕이면 축제가 시작되기 전에 밖에 나가보는 게 좋겠지.”
마리가 일어나서 정화를 부탁했다. 하이너는 정화마법을 둘러주면서 짐짓 심각한 척 대꾸했다.
“우두머리라면 대현자라고 불리는 슈테반 뷔야크 말씀입니까?”
“그래. 슈테반 어쩌고 그런 이름이더라고. 하지만 이걸 알아야 해. 알려진 정보, 누구나 아는 정보만 알고 그에게 접근해선 안 된단다.”
“누구나 아는 정보라… 듣자하니 대현자라는 이름은 장식일 뿐이고 미친 짓을 많이 저지르고 다닌다던데. 그가 순례한 지역의 마력생물 중 강력한 마력생물들은 한 번쯤 그에게 몹쓸 짓을 당했다고.”
“그래. 인간으로 태어났으면서 마력생물들을 탐하고 다니는 또라이지. 마계의 흡혈귀라나 뭐라나. 어쨌든 그러니까 더욱 신중해야 해. 우리는 그의 진실을 알 필요가 있다고. 내 로브 좀 주겠니?”
하이너는 기꺼이 아가씨의 여름용 로브를 집어 주었다. 그리고 자신에게도 정화를 걸었다. 마리가 화장을 시작하면서 서두르는 체 했다.
“서로 욕정에 눈이 멀어 목적을 잊었구나. 가끔 그런 생각하지 않니? 우리는 너무 사이가 좋아. 너무 말이지. 달콤한 시간도 좋지만 이 여행의 의미를 잊어선 안 돼. 아무렴.”
“그럼요.”
하이너는 외출복으로 갈아입으며 잠시 이를 꽉 깨물었다.
아가씨에겐 들리지 않는, 아주 작은 욕지기가 나왔다.
“젠장….”
어째서 몸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까. 아가씨의 연인이면서, 어째서 이 몸은 그것과는 반대로 움직이는지. 답답함은 여전히 가슴을 옭아맨다. 다가올 가을이 성가시기 짝이 없다.
그는 아가씨를 뒤따라 나서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 슈테반인지 뭔지 하는 마법사 놈을 만나면 이 빌어먹을 몸 좀 어떻게 해달라고 해야겠군.’
***
마리아는 어젯밤 하늘을 나는 도중에 익숙한 목소리-루돌프의 목소리-를 들은 듯했으나, 무시했다. 그녀는 누군가의 말에 대답해줄 기분이 아니었다.
지금 그녀는 오를린 북쪽의 소용돌이 산을 지나 서쪽으로 향했다. 서쪽에는 루앙과 할데바인의 접경지 노릇을 하는 커다란 강줄기가 있는데, 그곳에서 지친 몸을 쉬고 물을 실컷 마실 작정이다.
며칠 동안 힘들었다. 아가씨로부터 ‘버림받은’ 처지로 인한 상심과 기사님을 향한 멈출 수 없는 연정으로 제 몸을 돌보지도 못했다. 얼마나 굶었는지 이젠 투명화도 불가능하고 하늘을 날지도 못한다. 그저 평범한 말이나 된 듯 숲을 걸어야만 했다.
강줄기가 가까워지자 드래콘 소녀는 소용돌이 숲 자락에 몸을 숨긴 채 인간체로 변했다. 이렇게 몸체를 줄여 움직이는 게 얼마 남지 않은 기력을 아끼는 방법이다.
태양이 하늘 한중간에 걸린 낮인데도 소용돌이 숲은 매우 빽빽하여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다. 징그러울 정도로 강력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여름 식물들이 서로 뒤엉켜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런 어둠 속에서 마리아에게 달려드는 하등 마력생물이 많다. 여름의 강력한 생명력은 식물뿐 아니라 그런 동물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곤 한다. 아마도 그들은 그녀의 약해진 기운을 느끼고 해코지를 하러 오는 게 분명하다. 약한 마력생물이 강한 마력생물-드래콘-의 몸을 파먹으면 마력을 빼앗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뜯고 그녀의 뽀얀 살 또한 개미처럼 파먹었다.
하지만 마리아는 내버려 두었다. 지금 그녀에겐 이 귀찮은 생물들을 일일이 쳐낼 힘조차 없다. 어차피 그냥 두어도 나중에 물을 좀 마시고 굶주린 배를 채우면 몸은 알아서 회복되기 마련이다. 그러면 이 징그러운 생물들도 떨어져 나갈 테지.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 강줄기가 보였다. 숲에 햇볕이 스며들기도 했다. 햇볕에 약한 일부 마력생물들은 그녀의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날카로운 무언가가…….
슈슈슈슈슉! 파앗!
날카로운 그것은 그녀의 어깨에 깊이 박혔다. 별 모양의 수리검. 그녀에게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
그녀는 무심코 인간의 비명을 질렀다. 놀란 그녀가 숨을 거칠게 내쉬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공격자가 보였다. 차림을 보아하니 인간이다. 검은 로브 밖으로 새하얗고 기다란 머리카락이 삐져나와 있다. 그것을 보면 노인이 아닌가 해도…… 체격을 보아하니 노인 같진 않다. 허리는 꼿꼿하고 각져 드러난 어깨는 제법 넓다. 흔한 건장한 젊은이의 몸이다.
마리아는 공격자가 인간인 것에 조금 안도했다. 자기보다 강력한 마력생물보다야 인간이 만만한 편이니까. 그녀는 땅에 주저앉아 바들바들 떨었다. 어깨에선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공격자의 목소리가 숲에 음산하게 울렸다.
“흐흐… 기력이 떨어진 드래콘이군.”
공격자의 목소리는 녹슨 못이 땅에 긁히는 소리처럼 탁했다.
“흐…… 약한 놈은 내 타입이 아니지만…… 흐흐흐…….”
그자는 점점 마리아에게 다가갔다. 그럴수록 마리아는 그자의 얼굴을 확실히 보게 되었다. 하얗고 곧은 머리카락도 흔하지 않더니, 흰자위밖에 없는 그의 눈은 너무나 기괴하여 마력생물 마리아에게도 공포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아아…….”
마리아는 두려움에 질린 소리만 냈다. 가뜩이나 힘이 없는데, 그런 상태에서도 온 힘을 쥐어짜 내 그를 공격하려고 했지만 도무지 공격이 먹히질 않는다.
그가 하얗고 기다란 손가락을 뻗쳐 마리아에게 가져갔다. 마리아는 다시 한 번 그에게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으으아아….”
마리아가 지금 느끼는 공포는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공포나 다름없다. 작년 가을 소용돌이 산에서 기사님에게 사냥당할 때 느꼈던 공포보다 훨씬 크다. 이것은 대관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마리아는 그자의 정체를 파악했다.
‘인간이 아니야!’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인간이 아니다. 공격자는 드래곤인 기사님보다 강력한 마력을 다루는 마력생물체임이 분명하다.
그자의 손이 마리아의 머리에 닿았다. 진줏빛 머리카락을 천천히 쓰다듬던 손은 어느샌가 마리아의 어깨에 박힌 수리검을 빼냈다. 마리아가 고통에 또다시 비명을 질렀다.
“아악!”
그자는 수리검에 묻은 마리아의 피를 맛있게 핥아 먹었다. 그뿐만 아니라 마리아의 어깨에 묻은 피도 모조리 빨아먹었다. 마리아는 반항하려 해도 반항할 힘이 없었다. 그의 차가운 혓바닥은 오랫동안 마리아의 어깨를 괴롭혔다. 쇳소리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흐히히, 맛있어…….”
피를 모조리 빨고 그는 제 입술을 혀로 슥 훑었다.
갑자기 마리아의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겁에 질린 마리아에게 그가 놀리듯 말했다.
“너어… 지금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그렇지? 네 멋대로 공격할 수도 없어서 막 놀라고, 응? 흐흐흐…… 대개…… 나를 보고 그런 반응을 보이더라고. 그런데…… 나는 그런 반응이 이젠 지루하더라, 흐흐흘…….”
그는 강력한 마법으로 순식간에 마리아를 잠재웠다. 사지가 축 늘어진 마리아는 허공에 뜬 채로 그의 뒤를 따라가는 꼴이 되었다. 그는 마치 강아지를 줄에 꿰어 질질 끌고 다니는 사람처럼 굴며 혼잣말했다.
“하지만 넌 반반하게 생긴 게 좀 덜 지루할 것 같아, 키키킥…….”
그는 후드를 완전히 벗었다. 그러자 새하얀 머리카락이 더욱 풍성하게 드러났다. 어두운 숲에서 그의 머리카락은 특이하게도 발광한다. 게다가 머리카락뿐 아니다. 눈동자도 마찬가지. 마리아는 그의 눈을 보고 흰자위밖에 없다고 여겼지만, 그의 눈동자는 사실 미약한 상앗빛으로 빛나고 있다. 그것은 마치 세상의 모든 마기를 응축한 보석과 같다.
“실컷 빨아줄게…… 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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