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3 6. 돋아난 날개, 몰락하는 별 =========================================================================
성황 암살 사건으로 제국이 발칵 뒤집혔다. 로젠플라드교에 억압당해왔던 이들은 ‘드디어 신이 제대로 된 심판을 하였다!’며 기뻐했고, 이와는 반대로 자신을 독실한 로젠플라드 신자라 자처하는 이들은 신의 대리인 성황의 죽음을 통탄해 마지않았다. 신자들은 성황파를 살해한 헤그 레 지괴르를 악마라 욕하고 그의 부대 루빈을 악마의 부대라고 비난하며 전원 소멸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교계에 거센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이때, 정작 황태자는 한 시름 놓게 되었다. 혹자들은 황태자의 친우가 할데바인, 성황파 등 주요 적을 황태자 대신 제거해주었기에 황태자가 편해졌다고 하면서도, 앞으로는 로젠플라드 신자들이라는 거대 집단이란 숙제가 남았다고 걱정했지만, 원래 주축이 사라진 것들은 금세 와해되기 십상이므로 황태자는 조금도 심려하지 않았다.
그는 차분하게 다른 종교를 위한 정책을 펴면서 자신의 방패를 만들었다. 그의 종교 정책엔 종족, 지역 차별이 없으니 여러 종교가 두 손을 들고 환영했고 그것은 로젠플라드 신도를 무너뜨리는 최고의 무기가 되었다.
그사이 과거 친 할데바인 파를 자처하던 이들이 한둘 씩 황태자의 편에 서기 시작했다. 할데바인이 죽은 당시에만 해도 지괴르 대령에게 쓴맛을 보여준다고 하던 그들은 성황파 암살 사건을 계기로 크게 달라졌다. 그들도 권력의 축이 변하고 있음을 드디어 느낀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할데바인 대공의 조카인 황후와 그녀가 낳았던 어린 황자를 마지막 남은 희망, 권력유지를 위한 도구로 여겨왔으나, 그마저도 여의찮게 되었다. 바너에서부터 떠돌기 시작한 제작자 불명의 영상, 거기에 담긴 황후의 부정한 모습이 원인이었다. 제국민들은 황후를 폐위해야 한다고 소리 높였고 심지어 황후의 치마폭에 놀아난 황제 역시 이젠 물러나야 할 때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친 할데바인 파가 입장을 바꾸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황제는 황태자가 서서히 힘을 얻어갈수록 자신이 물러나야 할 때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황후가 낳은 황자를 폐위하지 않는 조건으로 황제 자리를 황태자에게 물려주겠노라 했고, 그에 관한 작업을 시작했다. 이에 황태자는 이제야 황권다운 황권이 자리 잡을 것 같아 만족했다.
황태자의 권력이 서서히 정립된 덕분에 루빈과 지괴르 대령의 처벌도 이례적으로 가벼운 것에 그쳤다. 루빈은 야울로 귀속되어 비로소 다시 고향을 지키게 되었고, 지괴르 대령은 감옥에 재수감되는 것에 그쳤다. 여론은 ‘할데바인과 신성 정부가 오죽 못났으면 군인이 나서서 그런 짓을 저질렀겠느냐?’며 대령의 편을 들어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여론은 여론이고, 군사 재판에선 이야기가 달라질지도 모른다. 군인은 무슨 일이 있어도 오직 최고 지휘관의 명령에만 따라 움직여야 하는데, 지괴르 대령은 어떤 명령도 받지 않았으면서 독단으로 움직였고 그것은 중죄로 여겨져야 함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 점에 관한 처벌을 가볍게 한다면 앞으로의 군 기강에도 문제가 생기리라.
사람들은 황태자가 아무리 황권다운 황권을 갖추게 되었다고 해도 친우를 비호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여겼고, 황태자도 그 점을 고심하는지 군사 재판 일정이 이런저런 핑계로 자꾸만 늦춰졌다.
그사이 마리 일행은 오를린에 몰래 다녀가고 바너에도 가는 등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황후의 부정한 영상을 륀체르 사파이어 측에 대리 판매해 큰돈을 거머쥐게 되었고, 그 돈은 단 한 푼도 남지 않고 모조리 쓰였다.
돈은 바너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루돌프에게도 조금 돌아갔고, 특별한 가방을 사는 데도 쓰였다. 그 가방은 어떤 물건이라도 다 들어간다는 무한의 가방인데, 그러면서도 무게는 아주 가벼워서 일행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들이 다음에 산 것은 무기다. 마법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는 하이너와 마리아와 달리, 마리는 누군가를 공격하려면 언제나 스크롤의 힘을 빌려야 했다. 그 때문인지 마리는 자신에게 늘 멋진 지팡이가 필요하다고 했다. 호위기사는 특별히 누군가를 공격할 일도 없는 아가씨가 그런 무기를 손에 쥐는 것을 처음에는 못마땅하게 여기며 ‘마력 방어가 되는 망토나 사시라.’고 조언하였으나, 고집불통 마리는 ‘방어라면 훌륭한 기사가 있으니 괜찮고 그 지팡이를 꼭 사야 한다.’고 우겼다.
지팡이를 손에 넣은 그녀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바로 헤그가 있는 감옥이었다.
***
사막 야울.
사자의 무덤.
무더운 밤, 건조한 모래바람 사이로 굉장한 마기가 흘러들어왔다. 그 마기의 주인공이 드래곤이란 것을 아는 것은 드래곤의 기에 약한 동물들 외엔 별로 없으리라.
이곳은 루빈의 북쪽을 지키는 부대가 주둔한 곳으로, 지하 감옥엔 헤그가 수감 중이다. 황태자는 친우가 황도 감옥보다 자신의 관할 지역 감옥에서 재판을 기다리는 게 더 편하다고 판단해 이곳에 가게 했다.
예전처럼 헤그에게 모진 고문은 가해지지 않는다. 감옥 전체를 지키는 이들은 모두 헤그의 부하들이었고, 그들은 지극정성을 다 해 옛 지휘관을 모셨다. 황태자 대리인은 헤그에게 사치스럽다 할 정도로 많은 혜택-의복, 음식, 때론 창녀-을 주었고 헤그는 저택에서 지낼 때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누리고 지냈다. 곧 치러질 군사 재판만 아니라면 그의 일상은 완벽한 휴식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평화로웠다.
오늘도 그는 사막의 모래를 빻아 만든 물감으로 그림에 열중이었다. 그의 손에 들린 붓은 마치 오랫동안 그림에 몸담은 자의 손처럼 능숙했다. 일평생 그림이란 걸 그려본 적 없던 그의 솜씨치고는 굉장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리는 족족 심기가 불편해졌다. 누구를 그려도 자꾸만 약혼녀의 얼굴이 되어가는 것만 같다. 모래로 만들어진 물감의 특성상 표현할 수 있는 색이 황색 계열뿐인데도 도무지 황색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림 속 인물의 눈동자를 응시하면 사괴탄의 음울한 청색 눈동자가 보이는 듯했고, 쇄골의 목걸이를 보고 있으면 자신이 약혼 전에 선물한 푸른 보석이 보이는 듯했다. 그런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아 화판을 몇 번이나 엎어버렸다.
감옥 안의 공기가 제법 후텁지근해졌다. 대륙 최북단인 지역의 지하 공기가 이러하다는 건 여름이 온다는 증거.
그가 새로운 그림에 열중하는 그때, 누군가가 후텁지근한 공기에 상큼한 향기를 뿜어내며 감옥에 침입했다. 침입에 앞서 감옥 관리자들은 이미 모두 잠이 든 상태. 헤그는 이런 방식으로 감옥에 오는 이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는 중얼거림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미치광이 아가씨군.”
등 뒤에서 꽃 같은 향기와 함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어째서 나를 미치광이라 부르는 거죠?”
헤그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형체는 볼 수 없지만, 그림자가 그녀의 존재를 증명해주고 있다. 기다랗게 찰랑거리는 머리카락, 풍성한 드레스, 한 손에 든 기다란 지팡이. 그림자로 보면 날씬한 마녀라도 찾아온 것 같지만, 헤그는 방문자가 마리니시네임을 알았다. 마리는 헤그에게 공격이라도 할 듯 지팡이를 장난스럽게 휘둘렀다.
“숙녀에게 그런 말은 실례라고요! 이얏! 얏!”
그녀의 익살에 헤그의 입가가 씩 올라갔다. 그의 손에서 붓이 내려갔다.
“미치광이를 미치광이라고 부르지, 그럼 뭐라고 부르지?”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한층 더 생기 어린 꽃처럼 화사하게 미소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앞으로는 대 마법사 마리니시네라고 불러줘요.”
헤그는 어쩐지 그녀가 우스웠다.
“마력이 있긴 있는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이 지팡이가 내 명성을 만들어줄 거라고요!”
“도구를 지나치게 믿는군.”
헤그가 감옥 한 편에 앉자, 마리가 그의 옆에 나란히 앉아서 뒤늦게야 안부 인사를 했다.
“잘 지냈어요? 황궁 감옥에서보단 얼굴이 더 나아진 것 같은데?”
헤그는 깔끔하게 면도 된 턱을 만지작거렸다.
“보다시피 예술가 행세하면서 잘 지내고 있지.”
마리의 시선은 그가 그린 그림들에 향했다.
“싸움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그림도 제법 잘 그리는군요. 페이르메르(예술의 신이자 가장 완벽한 용모를 지닌 자. 신화에 의하면 미의 남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의 작품이라 해도 믿겠어.”
“과찬이군.”
그림을 다 구경한 마리가 정말 묻고 싶은 것을 물었다.
“당신, 어째서 그때 도망가지 않았죠?”
바람에 누운 풀처럼 기력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글쎄.”
여러 가지 추측이 날아들었다.
“당신이 도망가버리면 당신 부하들이 전원 소멸형을 당할까 봐?”
“그런 걸 염려할 정도로 부하를 사랑하는 마음은 없는데.”
“당신이 도망가버리면 황태자의 처지가 난처해질까 봐?”
“그만큼의 우정이라 할 수도 없고.”
마리는 여기저기 흩어진 화판과 종이를 보며 알 것 같단 미소를 흘렸다. 이런 어두침침한 곳에서 마법광구 하나 달랑 켜놓고 죽은 약혼자의 모습만 진탕 그려대는 그에겐 감옥이든 아니든 세상 모든 곳이 지옥이나 마찬가지겠지. 도망이 의미가 없으니 가지 않은 것일 뿐.
마리는 그를 가느다란 눈으로 흘기듯 보다가 씩 웃었다.
헤그가 마리에게로 고개를 천천히 돌릴 때였다.
갑자기 마리는 그의 다리 사이에 손을 가져갔다. 헤그의 고개가 멈춰버렸다.
“……?”
그는 천천히 제 바지춤을 내려다보았다. 새하얀 손이 남자의 중심을 뱀처럼 감싸며 어루만지고 있었다. 헤그는 천천히 시선을 올려 마리를 보았다. 마리의 고개가 숫자를 세는 듯 끄덕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스물하나.
그녀는 헤그의 중심에서 손을 떼고 팩 토라진 얼굴을 했다.
“뭐야! 실망이네!”
헤그는 흥미롭다는 듯 그녀를 보았다.
“무엇이 실망이지?”
“보통 열을 세기 전까진 서던데. 남자란 족속들이 말이죠.”
“…….”
“혹시 성황을 죽이면 내가 자준다고 한 거 기억나요?”
“그랬던가.”
“이거 봐. 기억도 못 해. 사실은 날 안고 싶지도 않은 거였어.”
“안길 생각이나 있었나?”
“그건 당신의 반응에 따라 다르다고요! 왠지 당신처럼 반응이 없으면 더욱 욕구가 솟지만…… 뭐, 어쨌든 이건 이거대로 찝찝하군요.”
“찝찝할 게 대관절 뭔가.”
“흐으음. 당신이 아무런 대가도 없이 내 부탁을 들어준 것 같아서 말이죠. 빚지는 기분은 싫은데.”
헤그는 담담히 시선을 내려 제가 그린 그림들을 보았다. 빚지는 기분…이라. 하는 행동으로 봐서는 얼마든지 빚을 지고 살아도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은데 희한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리가 만질 땐 별 반응이 없다가 이제야 서서히 몸이 반응하는 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며칠 전 황태자 대리인 측에서 보낸 창녀를 그냥 돌려보낸 것이 실수인 듯하다. 헤그는 끓어오르는 열기를 성가신 감각으로 취급하며 이를 악물었다.
마리는 헤그에게 성황을 죽인 것의 보답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얼 원해요? 보답할 수 있는 선에서 보답하고 싶은데. 이번에도 탈주를 도와줄까요? 당신, 군사 재판 잘못 되면 죽을 수도 있다는데. 죽는 건 차라리 좋지. 영혼 소멸형까지 당할 수도 있다고요.”
헤그는 자기가 그녀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엉뚱한 말들만 나왔다.
“사 년 전으로 되돌려주겠나?”
“무엇을요?”
“시간.”
“불가능하군요.”
“그럼 그녀를 살려줄 수는?”
“불가능해요.”
“그럼 내 기억을 지워주는 건?”
“어째서 그렇게 불가능한 것만 묻죠?”
제아무리 모든 것이 가능하단 것처럼 구는 마리라도 불가능한 건 존재했고, 그런 것만 골라 묻는 헤그가 그녀는 미웠다.
“혹시 일부러 그러는 건가요?”
“알았다면 그만 가보는 것도 좋아.”
헤그는 벽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마리는 심통이 난 눈으로 그를 보았다. 처음으로 이런 감옥 같은 장소가 그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한 남자! 오직 사랑하는 이가 다시 살아나기만을 바라는 바보 같은 자! 이 자에겐 살아가는 의미라곤 오직 벌, 그것도 자기가 자신을 괴롭히는 벌밖에 없어 보인다. 무엇이 그렇게 벌 받을 일인지. 사랑하는 여자를 잃어야 하는 게 그리도 자괴할 일인가?
사괴탄을 소멸시킨 것이나 다름없는 마리는 헤그의 이런 행동들이 몹시 불편했다.
“당신, 혹시 죽지 못해 사나요?”
“…….”
침묵은 긍정의 대답이 되었다.
조심스러운 제안이 나왔다.
“그렇다면 내가 죽여줄 수도 있는데.”
“죽음? 그녀의 영혼마저 사라진 지금 내가 죽어선 또 뭘 하지?”
마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 답이 없는 인간이군요.”
마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지팡이를 잠시 매만졌다. 그러더니 그 지팡이로 헤그가 그린 그림들을 모조리 순간 발화시켰다. 눈 깜짝할 사이에 모조리 재가 되어버린 그림들에 헤그가 쓴웃음 지었고, 마리는 가슴 속에서 뭔가를 꺼내 그에게 던졌다.
“이건 내 드래콘의 인이에요.”
“이걸 어째서 내게 주지?”
“내겐 이제 드래콘은 필요 없으니 당신에게 주겠어요. 성황을 죽인 대가라고 해둬요. 어쨌든 그것으로 탈주를 할 때든 도피 생활을 할 때든 유용할 거예요. 탈주할 마음이 없다면 버려도 좋아요. 그래도 이왕이면 나쁜 놈들 손에 들어가지 않게 드래콘 그 아이에게 직접 전해줬으면 좋겠네요. 그럼 난 이만.”
마리는 감옥에서 걸어나가다가 문득 뒤돌아보았다. 그리고 조언을 해주었다.
“고작 스무 살. 당신은 과거에 연연하는 데 시간을 쓰기엔 너무 젊어요. 이런 어두침침한 일에 시간을 쓸 바엔 차라리 내 일행이 되는 걸 권하죠. 어차피 죽어도 의미 없을 몸이라면 좋은 일에 쓰는 것도 괜찮지 않나?”
***
감옥 밖, 지상에선 그녀의 호위기사와 드래콘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리가 굴종의 인을 헤그에게 주었다고 해도, 헤그가 그것을 쓸 의지가 없으니 마리아는 여전히 마리에게 종속되어 있었다. 마리는 자신의 주인이 형식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정말 바뀔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었다.
“아가씨.”
“응, 하이너.”
“그자는 그것(굴종의 인)을 받았습니까?”
“받았지만 쓸 것 같진 않더군.”
그들은 무더운 모래바람을 가로질러 남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감옥이 보이지 않는 지점까지 다다르면 하늘을 날아 마법의 땅 루앙에 갈 예정이다.
마리가 갑자기 궁금한 것을 물었다.
“하이너.”
“예.”
“너는 내가 죽음 아니, 영혼마저 소멸이 돼 버리면 어떻게 할 거야?”
하이너는 그런 질문을 하는 아가씨를 이해할 수 없었다.
드래콘 마리아 그로스도 마리를 이해하지 못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죽는 것도 끔찍한데 영혼마저 사라진다니. 환생의 여지도 없는 일은 끔찍하다. 주인은 어째서 자신이 영혼마저 소멸되는 일을 상상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마리아는 어쩐지 앞으로 나올 기사님의 대답이 기대된다.
호위기사가 까칠한 대답을 내놓았다.
“쓸데없는 질문 하지 마십시오.”
“말해봐. 대답이 듣고 싶어.”
“아가씨의 비싼 물건들을 모조리 팔아 월급을 되찾겠습니다만.”
“어머! 농담은 싫다!”
“진담입니다만.”
“진짜?”
하이너는 잠시 말이 없었다. 아가씨의 육체는 물론이오, 영혼마저 소멸한다면? 과연 자신이 살아가는 의미가 있으려나? 하나뿐인 가족인 마르틴이 하늘로 간 후, 자신에겐 의지할 사람이라곤 오직 아가씨밖에 없다. 아가씨께서 세상을 뜬다면 아마 자신도 아가씨를 따라 갈지도 모르겠다.
아니지. 따라 간다 해도 아가씨의 영혼이 소멸되었으니 만나지 못할 텐데.
살든 죽든 모두 지옥이려나?
“아가씨의 영혼이 소멸된다 해도…… 저야 살아가겠지요.”
“흐음.”
“하루하루를 지옥처럼 여기면서 말입니다.”
마리는 어깨를 떨며 외쳤다.
“오우! 끔찍하군! 나는 절대 소멸당하지 말아야지! 무슨 일이 있어도!”
사막의 모래바람이 지옥의 유황불처럼 뜨겁게 불어 그들의 머리카락에 섞였다. 하이너의 마지막 말을 들은 마리아의 얼굴에 깊은 그늘이 졌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