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아가씨와 번뇌의 호위기사-81화 (81/122)

00081  6. 돋아난 날개, 몰락하는 별  =========================================================================

마리아는 낭패한 기분으로 중령을 떠났다. 트리아노네. 황도에 있는 황후의 봄 별장. 하필이면 열쇠가 있는 장소가 그곳이라니. 이곳 로젠플라드에서 거기까지 가자니 너무 멀어서 답이 보이지 않는다. 가능하면 최대한 빠르게 사괴티오르의 열쇠를 지괴르 대령에게 건네줘야 한다. 순간 이동 스크롤을 이용하면 좋은데 그런 고가의 물건이 지금 당장 있을 리도 없고, 대관절 어떻게 열쇠를 찾으러 간다? 아가씨께서도 열쇠가 그리 먼 곳에 있을 거라고는 미처 염두에 두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 순간 마리아가 생각해낸 것은 하이너 아니, 드래곤 기사님이었다. 현재 드래곤 기사님은 열기 조절, 투명화, 치료, 최면 마법 등을 어느 정도 숙지한 상태다. 그러나 순간 이동은 과연 어떠할까? 기사님은 장거리 이동할 때가 되면 순간 이동보다는 하늘을 나는 쪽을 택했기에 지금으로선 가능할지 장담할 수 없다.

그래도 마리아는 일단 전언이나 보내보기로 했다.

‘주무시나요?’

***

그 시각, 거처에서 명상에 잠겼던 하이너는 마리아의 전언을 듣고 눈을 떴다.

‘주무시나요?’

‘안 잔다. 무슨 일이지?’

‘저, 그게…….’

‘뜸 들이지 말고 말해봐라.’

‘혹시 순간 이동 마법 가능하신가요?’

마리아는 사정을 자세하게 이야기해주었다.

하이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듣고 보니, 매우 급한 일이다.

순간 이동이라는 고급 마법을 이용하여 황도에 있는 트리아노네에 갈 것, 가서 뱀 수인의 배를 갈라 마력기갑체의 열쇠를 찾을 것.

그리고 그것을 헤그 레 지괴르 대령에게 전달할 것.

‘어려운 요청이라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만.’

마리아는 만약 하이너가 그 일을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륀체르와 텔레파시 채널을 공유 중이니 그에게 금전적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다. 륀체르 정도면 이동 스크롤과 사람을 쓰는 데 그리 어렵지 않을 테고 아가씨께서도 아마 그 방식을 택하셨을 것이니까.

‘마리아.’

‘예.’

‘내가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아무래도 사파이어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편이 좋….’

‘그건 안 된다!’

하이너는 그 꼴만은 보기 싫었다. 곧 죽는 한이 있어도 가슴 변태의 도움 따윈 다시 받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와 엮이는 것 자체가 무조건 싫다.

‘내가 방법을 찾아보마.’

그는 마리아와 통신을 단절하고 급한 대로 예전에 사두었던 마법 총서를 펴들었다. 드래곤이 가진 마력을 체계적으로 쓰기 위해선 교과서가 필요했고, 그래서 사둔 책이다. 지난 시간 동안 투명화, 정화 마법 등을 배울 때 아주 유용하게 썼다. 이제는 여기서 가장 어렵다는 순간 이동 마법을 아주 제대로, 그것도 매우 빨리 배워야 할 때다. 목차를 훑던 그가 한때 기사도를 수련하던 자답지 않게 욕지기를 뱉었다.

“젠장, 이런 걸 단 몇 분 만에 배우는 게 가능했으면 내가 지금 고집쟁이 아가씨를 따라다니는 기사가 아니라 제국학술원 수석이 되어있겠지!”

처음 보는 희한한 마법 공식들이 눈을 핑핑 돌게 했다. 가장 어렵다는 최면을 배울 때도 지금처럼 머리가 어지럽진 않았다.

“불가능해. 이건 못한단 말이다!”

기적은 없는 걸까.

역시나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그것뿐인가? 가진 거라고는 돈과 얄미운 주둥이밖에 없는 가슴 변태의 도움을 청해야……. 하이너가 그런 생각을 하며 혀를 차는 그때였다.

한참을 달게 자던 마리가 눈을 비비며 일어나 졸음이 가득 밴 목소리를 냈다.

“하으음, 하이너?”

“왜 깨셨습니까?”

“꿈에서 누가 자꾸 불가능하다고 해서… 혹시 하이너가 중얼거린 거야?”

하이너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니……지…… 않습니다.”

심상찮음을 느낀 마리가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호위기사는 두꺼운 책 한 권-마법서-를 들고 있었다. 목차를 보니 순간 이동을 배울 참인 듯하다. 마리는 호위기사의 어두운 표정에 걱정스럽게 물었다.

“무슨 사정인지 말해줄래?”

하이너는 마리아에게 들은 사정을 말했고, 마리는 푸하!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하이너는 그 웃음이 기분이 나빴다. 누구는 진지하게 임하려 하는데 웃기나 하시다니.

“웃음이 나옵니까?”

“그럼 울어?”

“쯧, 언제나 명령을 내리는 쪽은 그렇게 속이 편하시겠지요.”

“난 명령내린 적 없는데? 좀 해달라고 애교를 부렸을 뿐이지.”

“그거나, 그거나.”

“어쨌든 우리 기사님께서 순간 이동을 매우 하고 싶으신가 보군?”

“그럼 아가씨는 뭐 다른 좋은 방법이라도 있단 말씀입니까? 아. 혹시 바너에 사는 괴짜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라면 차라리 입 밖으로 꺼내시지 않는 게 좋겠군요.”

“호오. 질투야?”

하이너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마리는 그의 손에 든 책을 빼앗아 방 저쪽으로 던지더니 그와 마주 앉았다. 그리고 그의 두 손을 마주 잡았다. 하이너가 예의 가칠한 표정으로 물었다.

“뭡니까.”

마리는 생글생글 웃으며 뜬금없이 질문했다.

“기적의 재료가 뭔지 알아?”

“예?”

“믿음. 그리고 능력. 그것만 있으면 되지.”

“언제나 그런 속 편한 말씀만 하시죠.”

마리는 하이너의 빈정거리는 말이 너무하다는 듯 서운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더니 두 손으로 그의 얼굴을 잡았다. 아가씨와 마주 보는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호위기사는 얼굴을 붉혔다. 마리가 속삭였다.

“우리 드래곤 기사님은 뭐든지 의지로 만사를 해결해왔지. 정식 기사가 아니어도 내 기사가 되겠다는 의지 하나로 정말 기사가 되었고, 나를 충실히 지키겠단 의지 하나로 지금까지 날 무사히 지내게 해줬어. 열기 조절 마법을 배운 것, 드래곤으로 변신할 때 고통이 줄어든 것, 최면 마법을 빠른 시간에 배운 것, 마법서를 보기 위해 마나어를 단시간에 배운 것 전부가 의지의 힘이었어. 너의 의지는 드래곤 급이라고!”

하이너는 그 중에서 세 개는 틀렸다고 말하고 싶었다. 아가씨의 기사가 되겠다는 의지 하나로 호위기사가 된 것은 맞지만, 아직 정식 기사 작위는 없다. 또한, 아가씨를 충실히 지키겠다는 의지로 이 여행에 따라온 게 아니라 어쩌다 보니 휘말린 것일 뿐! 게다가 드래곤으로 변신할 때 고통이 줄어든 것도 의지의 힘이 아니라 아가씨를 안심하시게 하려고 지어낸 거짓말일 뿐!

그런데 아가씨께서는 그 모든 것을 의지의 힘으로 여기시며…….

또한, 당신의 말을 믿으라 하신다.

“저딴 책을 쓴 자들은 마법에 관해 떠들기만 좋아할 뿐, 마법 전체를 다 알지는 못해. 그랬다면 그들은 진즉 차원의 균열 비밀을 밝혀서 책을 내고도 남았겠지. 대관절 자기들이 너처럼 드래곤이 되어본 적도 없으면서 어떻게 마법을 다 안다고 지껄일 수 있는 거야? 책은 믿지 말고, 네 의지를 믿으렴. 나의 기사님. 나의 드래곤.”

그러니까 의지로 순간 이동을 하라, 그런 말?

“아가씨는 혹시 아십니까?”

“응?”

“아가씨께서 그런 말씀을 하실 때마다 제가 얼마나 아가씨를…….”

패고 싶은지.

하지만 마리는 그의 속마음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 모르는 건지 갑자기 서로의 입술이 닿을 듯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눈을 천천히 감으며 몽롱하게 속삭였다.

“복잡한 공식 따윈 잊고 네 의지에다 명령해봐. 나는 트리아노네로 순간 이동 할 수 있다. 나는 트리아노네로 성공적으로 순간 이동하여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성공하고 나면 아가씨의 뜨거운 키스를 받을 것이다…… 자, 어서 따라 해.”

하이너는 그런 아가씨의 손에서 벗어나려 했다.

“따라 하라니요, 이런 바보 같은….”

“따라 해보라니까. 나 하이너는 트리아노네로 순간 이동 할 수 있다. 나 하이너 그로스는 트리아노네로 순간 이동하여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성공하고 나면 아가씨의 뜨거운 키스를 받을 것이다…….”

“아가씨…….”

하이너는 아가씨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보았다. 아가씨는 어쩌면 아직도 꿈을 꾸시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아주 동화 같은 꿈을.

동화책 같은 말을 한다고 그 동화가 현실이 될 수는 없는데.

“어서.”

“젠장!”

그래. 밑져야 본전. 하이너는 아가씨가 시키는 대로 하기로 했다. 어차피 순간 이동이 불가능해질 테고, 그러면 그 실수한 것만큼 아가씨도 부끄러워서 자기 말이 경솔했음을 좀 느끼실 테지.

하이너가 그런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잡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마리가 그의 입술에 살짝 키스하며 마법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키스를 받았으니 하이너는 성공한다. 반드시.”

“……!”

“자. 무서우면 나와 같이 이동하는 거야. 차원의 균열에 몸이 낀다 해도 너와 단둘이라면 난 무섭지 않거든.”

“정말이지 소름 돋아서 원….”

말은 그렇게 하지만 하이너는 이미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나 하이너는 트리아노네로 간다. 나 하이너 그로스는 아가씨와 함께 트리아노네로 가고 만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이동해버리면 안 되겠지. 트리아노네의 사람들에게 모습을 들키면 곤란하니까. 좋다.

나 하이너 그로스는 지금부터 약 오 초 후…… 아가씨와 단둘이 투명화한 채로 트리아노네에 간다, 가 있다.

그가 기적을 바라며 아가씨의 달콤한 입술을 더욱 세게 문질렀다. 만약 오 초 후에 기적이 통하지 않으면, 아가씨의 입술과 간사한 혀를 깨물어버리는 벌을 줄 생각이다. 그런 못된 마음을 담아 한 키스가 점점 짙어지고, 그의 혀가 마리의 부드러운 혀에 달콤하게 엉켜 들었다. 마리의 호흡은 거칠어지고 드래곤 기사의 온몸은 뜨거워졌다.

그리고 일순간 그들 주위에서 백색 빛이 번쩍이더니, 아주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

황도 로귀하르트.

황후의 봄 별장 트리아노네.

아침이 완전히 밝기 전, 황후는 시종을 대동하지 않고 혼자 뜰에 나갔다. 수인들도 잠들어 있고 가득 핀 꽃과 식물들도 잠든 것 같은 이곳에 혼자서만 아직 잠을 이루지 못한 한 남자가 있었다.

턱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르고 널찍한 어깨를 가진 그는 바로 뜰을 돌보는 정원사이다.

“새벽까지도 안 오시기에 오늘은 못 만날 줄 알았습니다. 에리네.”

정원사는 황제도 잘 부르지 않는 황후의 진짜 이름을 부르며 그녀의 젖가슴에 입술을 가져갔다. 시중들이 볼 때는 순하고 얌전한 정원사였다가 황후와 단둘이만 있을 때면 그는 늘 한 마리 난폭한 짐승으로 돌변한다. 여자의 기분을 맞춰주고 여자의 몸을 쾌락으로 이끄는 데는 가히 따를 자가 없었고, 그렇다 보니 황후는 성적으로 시들한 황제보다 정원사와의 잠자리를 더 즐길 때가 많았다.

“늙은이(황제)가 늦게야 나가지 뭔가. 아, 나의 귀여운 늑대. 얼른 아 치마 속으로 들어가렴….”

정원사는 황후 에리네의 잠옷 안으로 들어가 그녀의 가장 예민한 부분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쾌락에 젖어든 황후는 점점 뒷걸음치며 뜰의 탁자 위에 올라 누웠고, 정원사는 그녀의 다리를 벌려 자신을 밀어 넣었다.

“후후, 오늘은 우리가 수인들의 잠을 깨워보자. 앗! 아아!”

“헉, 허억….”

숨죽인 것만큼이나 격렬한 정사에 널찍한 탁자가 흔들렸다. 황후는 정원사가 주는 짜릿한 쾌감에 허덕이면서도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잠시 후 정원사는 귀를 찌르는 여자의 소리에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에리네. 소리가 너무 큽니다만.”

“읏, 무슨 말이야?”

에리네는 만에 하나 시종들이 들을까 절대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정원사는 분명 여자의 소리를 들었고, 그게 황후의 목소리가 아니란 것에 매우 놀라 잠시 몸을 뗐다. 몸이 한창 달아오른 황후가 그에게 손짓했다.

“뭐하니? 이리 오렴….”

그런데 그 순간, 정원사는 바닥을 보면서 입을 크게 벌리고 비명을 지르려 했다. 그러다가 소리를 도로 삼켰다.

“저, 전하!”

놀란 황후가 그의 시선을 따라 바닥을 보았다.

바닥에는 뱀 수인 한 마리가 배가 찢긴 채 죽어 있었다.

황후는 한숨을 쉬었다.

“휴, 난 또 뭐라고. 그깟 짐승 한 마리 죽은 거로 너도 참….”

황후는 다시 정원사를 안으려다가 뭔가 이상하여 고개를 다시 뒤로 돌렸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뱀 수인에게서 나온 피가 뜰 저 안쪽까지 이어져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황후는 뜰 안 모든 수인이 죽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뱀 수인을 제외한 모든 수인이 외상없이 죽은 것으로 보아, 위협적인 기(氣)에 의한 소행임이 분명하다고 황후는 생각했다.

***

플래티르콘의 날개.

마리 일행의 거처.

“휴우. 거봐. 내 말대로 하니까 정말 기적이 일어나지?”

마리는 순간 이동에 성공한 하이너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그를 자랑스러워했다. 그사이 하이너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하고 있었다.

순간 이동에 성공할 줄이야! 그것도 그런 터무니 없는 방식으로! 의지의 힘은 정말 가능한 것이었다. 아니, 이 드래곤의 의지 그 자체가 기적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아가씨와 함께 트리아노네로 투명한 모습으로 순간 이동 한 것도 모자라 뱀 수인의 배에서 필요한 물건-사괴티르콘을 조종할 수 있는 열쇠-을 빼 오고, 뜻하지 않은 수확하기도 했다.

하이너는 그 수확의 증거, 즉 황후와 정원사의 밀회 현장이 약 3초간 찍힌 마법영상구 링클을 마리에게 보였다. 마리가 활짝 웃으며 손뼉을 쳤다.

“와아! 우리 하이너는 불가능한 게 없네? 우리 이거, 륀체르에게든 황태자에게든 아무한테나 팔아서 용돈 하자!”

============================ 작품 후기 ============================

하이너야 나 로또 번호 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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