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아가씨와 번뇌의 호위기사-72화 (72/122)

00072  5. 눈꽃 샹들리에가 그대 침실을 빛낼 때   =========================================================================

그 시각, 별장 후원.

할데바인의 정예 호위병 중 마법을 쓰는 자들은 별장 가득 감도는 특수한 마력을 느꼈다. 그 마력의 기운을 뿜어내는 이가 누구인지, 그들로서는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강력한 마력을 소유한 누군가가 별장에 침입하여 제힘을 숨기는데 어째 숨기는 기술이 노련하지 못하다.

그렇다면 적어도 황제 휘하 마황의 사람들은 아니라는 뜻.

“이상해. 정말 이상하단 말이지.”

“그렇지? 나도 그걸 느껴.”

“그래… 딱히 ‘이거다!’ 하고 말할 순 없지만, 뭔가 찝찝해. 이곳은 찝찝하다고.”

“그나저나 대공께 알려야 할까?”

“미쳤어? 융통성 있게 굴어. 알린다고 해도 우리가 잡지 못하면 모가지란 말이다.”

이런 때일수록 자신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나, 자꾸만 임무에서 회피하고 싶어진다. 지난 몇 년 동안 대공이 이동하는 곳은 그 어디든 따라와 지켜왔고 위험한 일도 몇 번이나 무사히 헤쳐나갔다. 하지만 오늘처럼 강력한 마력을 가진 이가 숨은 경우는 없었고 마병사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

별들이 반짝이는 것이 불길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제발 별일 일어나지 않으면 좋으련만.”

그런데 이 기운,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해도 특별하다. 황궁 마법사들과 맞먹는 실력의 자기들이 찾아내지 못할 정도라면, 설마…… 드래곤?

“그럴 리 없지.”

“응? 뭐가?”

“아닐세. 아무것도.”

***

헤그 레 지괴르는 자정이 넘어서야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원래 새하얀 그의 얼굴은 지금 먹구름에 침착당한 듯 어두워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리 하루 이상을 자지 못했다. 성도에서 부대일로 바쁜 중에 황도의 축성제 행사가 있었고, 축성제에 참가한 후 황태자와 석찬 시간을 가졌다. 그 후에는 황궁 음악회가 있었고 다시 이어지는 황태자와의 음주 시간, 그리고 조금도 쉬지 못하고 할데바인과 약속이 잡혀버린 것이다. 낯빛이 어두워질 정도로 심신이 지치는 것도 당연하리라.

이번 축성제엔 잡음이 많았다. 경사스러운 행사를 앞두고, 야울 궁에서 황태자비를 모시는 시녀가 잔인하게 살해당한 것이다. 용의자는 오슬 총독 프리드리히 측의 사람으로 지목되었다. 시녀의 전 남편인 프리드리히가 두려움에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말이 있다. 과거 그의 바람기 때문에 이혼녀가 되어야 했던 시녀가 앙심을 품고 오슬 총독의 자리를 넘본다는 말이 떠돌았고, 프리드리히는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기 전에 미리 손을 썼다는 이야기. 물론 프리드리히는 아직 범인이 아닌 용의자일 뿐이고, 저렇게 떠도는 말도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야울 궁 안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궁의 주인인 황태자는 몹시 불편해한다. 시녀가 죽임을 당한 사건은 시녀가 지척에서 시중들던 성손(聖孫)을 품은 황태자비 또한 위험한 처지라는 것을 대외적으로 시사하는 일이고, 그것은 결국 황태자를 향한 도발이나 다름없다. 재판만으로도 황태자의 이름이 충분히 먹칠이 되었는데 또다시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니 이제는 잠자코 당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황태자는 궁인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 또한 강하게 부정했다. 그는 용의자로 지목된 오슬 총독을 구금하는 것에 강경히 반대하며 ‘마탑의 마법사들을 불러 사건을 제대로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태자는 믿었다. 오슬 총독을 용의자로 모는 짓은 할데바인의 수작일 뿐이고, 실제 시녀를 죽인 이는 할데바인일 것이라고. 그리고 죽인 이유는 아마도 시녀를 통해 불거져 나올 수 있는 반역 의혹을 잠재우기 위한 것일 터.

‘조만간 야울 궁을 싹 청소해야겠어.’

황태자는 친우인 헤그에게 우스갯소리로 말했지만, 그것을 정말 우스갯소리에 머물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는 또 하나 우스갯소리를 흘렸다.

‘널 이 궁에 붙잡아둘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하고 싶어.’

그것은 야울 궁 경비를 맡을 사람이 자신의 친우였으면 하고 바라는 말이다.

헤그는 그런 황태자에게 웃고 말았다. 마력기갑 부대 수장이 전쟁터가 아닌 궁을 지킨다는 것은 아무리 농담이라 해도 어불성설이다.

‘제가 전하의 궁을 지키는 개가 되었으면 한다니. 그러다 제게 물리시면 어찌하시려고 그러십니까.’

그러자 황태자는 기꺼이 대답했다.

‘차라리 네 손에 죽을 거라면 기분이 더럽진 않겠지.’

헤그를 향한 황태자의 신뢰는 그토록 깊다. 그는 헤그에게 술잔을 바치며 간곡히 부탁하기도 했다.

‘야울 궁을 지켜달란 의미가 아니야. 제국을 지키고, 나아가서 이 대륙을 지켜달라는 말이야.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주지. 황금의 땅(할데바인 영지)을 달라면 그걸 너에게 줄게. 검황의 자릴 달라면 당장 내일이라도 황의회에 안건을 내겠어. 네가 달라는 건 무엇이든 줄 테니……지금의 평온을 지키자.’

헤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제의를 거절하는 것은 아니었다.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뭐랄까.

황태자만큼 제국을 지키고자 하는 데 열의도 없고 개인적인 야심마저 없는 상태라 친우의 고양된 기분에 맞장구 쳐주기 싫을 뿐.

황태자도 헤그의 그런 상태를 잘 알기에 웃으며 ‘좀 더 야심을 가지는 게 좋다.’고 했지만, 아쉽게도 헤그에겐 야심을 붙잡아 둘 구심력이 없다. 아버지 세이든이 마검이 되고 사랑하던 약혼녀 사괴탄마저 그 마검과 소멸하여 곁에 아무도 남지 않은 그에겐 살아가는 의미라곤 없다. 친우인 황태자는 ‘오히려 그러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대가 잡념에 휘둘리지 않고 빠르게 출세할 수 있다.’고 하지만, 정작 헤그 본인은 오르면 오를수록 거대한 공허함만 느꼈다.

이 공허함은 채울 수 없지만, 채운다 해도 조금도 기쁘지 않을 것 같다.

헤그는 지금 할데바인 별장의 응접실에서 대공을 만나고 있다.

“로샤타르트의 농장엔 가끔 대륙에선 볼 수 없는 열매들이 불쑥 나타난다지. 무슨 차원의 균열인지 뭔지에선가 나온다던가? 그 열매들이 제법 맛은 훌륭하다더군. 이 술은 그 열매로 술을 담가 시귀르(빙하 지역)에서 오랫동안 숙성한 거라네. 참고로, 황궁에선 구경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귀하지. 하하. 흠. 향이 참 좋군.”

할데바인은 헤그의 잔이 텅 비기가 무섭게 다시 술을 채워 넣었다. 이미 궁에서 술을 실컷 마시고 온 헤그이지만, 할데바인이 따르는 술을 아무리 마셔도 도무지 취하지 않는다. 그리고 할데바인이 극찬하는 향도 느끼지 못했다.

할데바인은 헤그가 이미 취했다고 생각하고선 본론을 꺼냈다.

“이보게. 지괴르.”

“예.”

“오랜 시간 동안 살아오면서 달라진 것이 하나 있네. 과거에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참고 인내하며 때를 기다렸다면 이제는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나 할까. 하여 이렇게 자네에게 말하는 것이네만…….”

헤그는 곧 들을 말을 예상한다는 듯 싱긋 웃었다. 루빈이 신성 정부에 귀속된 후로 할데바인은 자주 접근해왔고, 그때부터 헤그는 이런 시간이 오리란 걸 예측했다. 오늘처럼 황태자비 시녀 살해 사건이 일어난 어수선한 날이 반역을 모의하기엔 적기에다 또 이 노인에겐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둘러가는 길엔 취미가 없는 헤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제게 무엇을 약속하실 수 있습니까?”

몇 단계는 건너뛰고 나오는 태도에 할데바인의 눈에 이채가 스몄다.

“말이 쉬워서 좋군.”

할데바인은 지금껏 내던 목소리보다 더욱 작은 목소리를 냈다.

“신성 정부 군권의 전부를 넘기지. 검황의 자리 또한.”

“아.”

헤그는 피식 웃고 싶은 걸 참아야 했다. 어차피 저쪽에서 내미는 수가 저것뿐이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다. 기대하고 온 것은 아니지만, 무릇 인간이란 기대한 것에서 벗어나는 상황을 맞이하면 없던 흥미도 생기는 법이었다.

그런데 고작 검황의 자리라. 저쪽은 검황 자리를 약속하는 게 무슨 큰 수라도 되는 양 말하는데, 어차피 그 자리는 결국 지금과 다르지 않다. 황권 아래 권력 중 하나일 뿐이고 마황보다도 지위가 낮다. 그것은 한때 검황의 아들이었던 자신이 제일 잘 안다.

뭐, 물론 이십 대에 차지하기엔 탐나는 자리이긴 하지만…….

야심 없는 헤그는 고요한 미소로 대답을 회피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조건이 제시되었다.

“리데바인의 주인이 되는 것도 한 번쯤 생각해 보게나.”

할데바인의 수도인 리데바인의 주인이 되라는 말은 결국 할데바인 영지를 넘기겠다는 말이다. 그리고 할데바인 영주인 자신은 더 높은 지역의 주인, 즉 황도 로귀하르트의 주인이 되겠다는 말. 반역자의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라 볼 수 있다.

이미 황태자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주겠다고 약속받은 상황인 헤그에게 할데바인의 조건이 달콤하게 들릴 리는 없다.

그런데도 헤그는 사뭇 달콤한 제안을 받은 양 대답했다.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저에게 과분한 것을 약속하시는군요. 신권, 군권을 장악하고 황금의 땅이라 불리는 대지의 주인이 되는 것이라… 너무 꿈 같아서 도무지 현실적인 가능성이 보이지 않습니다.”

“가능한지 아닌지는 자네에게 달려있네만.”

헤그는 빈 잔에 다시 따라지는 술을 보았다. 취한 것은 저쪽인지 술이 흘러넘쳤다. 탁자를 적시는 황금빛 액체가 주체할 수 없는 욕망과 같다. 헤그는 구역질이 올라왔지만, 그 술잔을 기꺼이 마셨다. 입가로 술이 잔뜩 흘러내렸다.

“어찌할 텐가. 자네가 가진 열쇠를 내게 주겠나?”

헤그는 턱을 손등으로 천천히 닦으며 대답을 내놓았다.

“그럼 제가 가능성을 증명해 보이면 되겠습니까?”

***

「그럼 제가 가능성을 증명해 보이면 되겠습니까?」

헤그가 거기까지 말할 때, 할데바인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닫고 실내를 가림막으로 가려버렸다. 아마도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갈 것이다.

그 때문에 창밖 테라스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던 하이너는 마법영상구 촬영을 중단해야 했다. 기껏 자신의 기운을 숨기고 잠입했더니 여기서 멈춰야 한다니.

하지만 괜찮다. 헤그가 말한 딱 그 부분까지, 반역의 증거로 쓰기엔 충분하니까.

하이너는 투명화한 몸 그대로 테라스 기둥을 타고 내려와 별장의 가로수 쪽으로 걸어갔다. 가로수의 그늘로만 다녀야 그림자가 들키지 않는다. 투명화한 그의 몸이 안전하다 해도 그림자가 누군가에게 목격되기라도 하면 일이 귀찮아진다.

별장을 벗어난 그는 인근 숲에서 드래곤으로 변신했다. 아가씨가 계시는 야울로 가려면 이런 변신은 필수. 텔레포트 홀을 이용하면 흔적이 남고 이동 스크롤은 너무나 고가이기에 이런 변신이 여러모로 낫다.

드래곤으로의 변신은 늘 그렇듯 고통을 수반했다. 그아아아…… 하고 나오는 소리도 참아야 해서인지 고통이 배로 느껴지는 것만 같다. 살갗이 수포가 되어 팽창하더니 비늘로 변했고, 척추는 찢어지는 느낌에 떨다가 어느샌가 거대한 꼬리를 땅에 드리웠다. 이런 고통이 전염되어 혹시 주변마저 고통에 떨게 하는 것일까? 땅이 흔들리는 것 같고 앙상한 나뭇가지들도 바람에 괴기스러운 춤을 추었다.

그러나 하이너에겐 다행스럽게도, 이 소동이 별장을 지키는 할데바인의 병사들의 시선을 끌진 않은 듯하다. 별장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아니면 이곳의 기현상을 외면할 정도로 별장에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한 건……?

어쨌든 변신을 마쳤으니 이젠 야울로 날아가야 할 때다.

흑회색의 드래곤은 투명화까지 마친 다음에야 검푸른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이번 작전 때문에 몇 번이나 드래곤으로서 하늘을 날았는데 날 때마다 온몸이 투명한 자신을 보니 마치 하늘과 하나가 된 기분이다. 대낮에 날면서 지상을 내려다볼 때는 마치 자신의 세상 그 자체가 된,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신이 된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다.

황도의 중남부에 있는 할데바인의 별장에서 야울 북쪽까지는 꽤 먼 거리다. 그래도 최대한 이 밤이 가기 전에 아가씨를 만나고 싶어서 전속력을 다했다. 다행히도 투명화한 상태에서 드래곤의 빠르기는 더욱 높아졌다.

북반구의 라인햐르가 보이는 지점까지 왔을 때, 이미 새벽이 밝아왔다. 남청색 하늘에 드리운 청록빛깔의 라인햐르는 드래곤으로 변신할 때 느낀 고통과 긴 시간 날아온 피곤함을 모두 잊히게 할 만큼 아름답고 신비롭다. 이대로 아가씨를 등에 태우고 라인햐르에 닿을 듯 높이 날면 좋을 텐데.

아, 그러면 정말…… 좋을 텐데.

‘내일 밤에 해드려야지.’

아가씨만 생각하면 드래곤으로 변할 때의 고통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다.

들뜬 마음으로 날아가다 보니 드디어 륀체르의 야울 별장이 보였다. 유백색 사암으로 높게 지어진 방형 건물의 중심은 유리 천장이 덮여 있으나 내부가 보이진 않는다. 아마도 내부에선 유리 천장을 통해 하늘의 라인햐르를 볼 수 있게끔 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아가씨는 이미 저 천장을 통해 하늘을 보셨는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발광 현상에 아가씨는 얼마나 낭만에 젖으셨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데도 가슴이 설레었다.

그는 모래바람을 휘날리며 고요히 착지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변신, 고통. 이번에도 역시나 소리를 참았다. 잠들어 계실지도 모르는 아가씨를 드래곤의 포효로 깨우긴 싫었다. 그건 아가씨에게도 폐가 되는 일이고, 또한 일행에게도 폐가 되는 짓이다.

변신을 마친 그의 옷은 군데군데 찢겨 있다. 다행히 마법영상구에 들어갈 링클은 주머니에 안전히 보관되었다. 경비병들이 그를 보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투명화한 드래곤이 인간으로 변신 후에 모습을 드러내었고, 그 모습은 경비병들에겐 마치 순간 이동처럼 보였을 것이다.

“뭐지? 손님이 오기로 하긴 했는데 뭔가 범상치 않군?”

“우리가 신경 쓸 일은 없지. 암호나 제대로 말하는지 보자고.”

암호가 어긋날 시엔 보안 문제가 걸려있으니 방문자를 잡아야만 한다. 아니면 그 자리에서 사살도 가능하다.

하이너는 ‘아아.’하고 자기 목소리를 점검했다. 조금 기운이 없긴 하나 제대로 발음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발음은 지금부터 아주 중요하다. 그는 경비병들에게 다가가 륀체르가 설정해둔 암호를 말했다.

“유.”

“…….”

“방.”

“통과.”

경비병들은 문을 열어주었다. 하이너는 아무리 생각해도 한심하기 짝이 없는 암호에 넌더리를 치며 입구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저 먼 복도 끝에서 서로 눈이 마주친 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눈이 마주치기가 무섭게 벽 뒤로 몸을 쏙 숨겨버렸다.

드래콘 마리아 그로스이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하이너의 발걸음 소리가 소녀의 가슴을 쿵쿵 뛰게 한다. 소녀는 도망갈 것처럼 벽 뒤로 모습을 숨겼지만, 끝까지 도망치진 않는다.

안내인의 안내를 받은 하이너가 벽을 돌아서 마리아를 보았다. 그는 안내인을 따라 륀체르의 침실로 가려다가, 불현듯 뭔가 생각한 것인지 멈춰 섰다.

마리아의 가슴이 더욱 세게 쿵쿵 뛰었다.

“지금 일어난 건가?”

마리아는 하이너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이너가 빙긋 웃으며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저번에는 경황이 없어 말하지 못했다만.”

갑작스러운 말에 마리아가 고개를 들었다. 시붉게 괴이한 광채를 내던 그녀의 눈이 하이너의 검은 눈동자를 볼 때는 아련하고 순한 토끼의 눈이 되었다.

하이너는 마치 예전 동생 마르틴을 대할 때처럼 따스한 눈길로 그녀를 보았다.

“…… 언제나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내가 해야 할 일, 내가 하지 못하는 일, 모두 알아서 척척 해주는 네가 있어 든든할 때가 많아. 너를 사냥한 것은 기대 이상으로 행운이었어.”

마리아의 눈이 그렁그렁해졌고 하이너가 커다란 손을 내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맙구나. 마리아 그로스.”

두세 번 쓰다듬은 손은 금세 떨어졌고, 하이너는 륀체르의 침실로 다시 걸어갔다.

마리아는 그가 침실로 들어가기 직전까지, 그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녁 맛나게 드세요. 저는 매운 돼지 갈비찜을 먹을 예정입니다. 하하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