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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아가씨와 번뇌의 호위기사-57화 (57/122)

00057  5. 눈꽃 샹들리에가 그대 침실을 빛낼 때   =========================================================================

황후의 별장 트리아노네의 지하는 지옥 그 자체였다. 꽃이 피고 귀여운 수인들이 노니는 천국 같은 풍경의 지상과는 달리 이곳은 음습하고 지저분하고, 게다가 끔찍한 비명도 끊이질 않았다. 왜냐하면 이곳은 할데바인을 매장하기 위해 음모를 꾸민 반 할데바인 파의 첩자들이 잡혀 와 고문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트리아노네의 주인인 황후는 맨 처음 그런 잔혹한 곳을 자기 별장 아래 두길 원치 않았다. 그러나 할데바인 대공은 황후의 별장 외엔 마땅한 장소가 없다고 여겼다. 끔찍한 용도의 감옥을 다른 곳에 두면 세간의 눈에 띄어 잡음이 생길 수 있었다. 횃불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으니 황족의 일원이 머무는 곳에 이러한 장소를 두어야만 가장 안심할 수 있었다.

국혼이 있기 사흘 전이었다. 그때 황태자비의 하녀인 렌은 이곳에 억울하게 잡혀 왔다.

그전까지만 해도 렌은 로테 아가씨가 드디어 황태자비가 된다고 기뻐했다. 이제 자기도 황궁 시녀가 된다고 기뻐해 마지않았다. 황궁에 자주 오는 귀족들과 혼처를 알아볼 수도 있고 오를린에서보다 더욱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늘 들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궁부에서 사람이 찾아와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씌우는 게 아닌가.

황태자비가 되실 분의 향수에 독성의 액체를 탄 게 바로 네 짓이냐?……고. 그 황당무계한 물음에 렌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로테 아가씨가 별스럽게 향수를 자주 바꾼 건 사실이고, 그 하녀로서 매번 다른 향수를 구하느라 힘들었던 것 또한 사실이지만, 맹세코 단 한 번도 그런 몹쓸 짓은 한 적은 없었다. 로테 아가씨가 무사히 황태자비가 되는 거야말로 자신의 영광인데 어째서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을까!

그래서 당당하게 말했다. 자신은 로테 아가씨의 친자매나 다름없는 사람이고 또한, 하녀로서 단 한 번도 성실히 임하지 않은 적 없다고. 아가씨께 나쁜 마음을 품은 적 또한 없었으며 당신들이 말하는 독을 어디서 구하는지조차도 모른다고. 그런 자신이 어찌 그런 짓을 할 수 있겠느냐고. 그러니 어서 로테 아가씨를 만나게 해달라고. 아가씨는 자기 말을 들어주실 거라고.

그러나 내궁부 사람들은 그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 이후 렌은 이곳으로 끌려왔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내궁부. 황후가 관장하는 기관. 하지만 황후의 숙부인 할데바인 대공이 휘두르는 기관이라 봐도 무방한 곳. 자신은 그 적들이 씌운 누명에 속수무책 휩쓸려 갇힌 것이다.

견디기 힘든 심문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감옥 관리자들은 끝도 없이 사람을 고문했다. 교묘하게도 육체적으로 뚜렷한 증거가 남는 것은 아니다. 잠을 자지 못하게 하거나, 물을 마시지 못하게 하고, 소금물로 배를 채우게 하는 것. 그리고 그런 고문은 차라리 양호한 수준이었다. 렌은 때로는 개미가 가득 들어간 수프를 먹어야 했다. 잔악한 그들은 그런 식으로 사람을 괴롭히며 ‘네가 황태자비의 향수에 몹쓸 독을 섞었다고 자백해라!’고 강요했다.

지독한 고문을 견딜 수 없어서 렌은 결국, 거짓을 말했다. 제가 황태자비가 쓰시는 향수에 정신을 이상하게 하는 독을 섞었다고 자백 아닌 자백을 해버렸다.

그 후에는 고문이 멈추어서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느 날부터 고문보다 더 끔찍한 일들이 시작되었다. 감옥 하급 관리자들이 저들끼리 낄낄거리며 작당을 하더니 능욕을 시작했다. 렌은 밤낮없이 그들과 몸을 섞어야만 했다.

렌은 차라리 죽고만 싶었다. 언니 엔처럼 오를린에 남았다면 이런 모진 일도 당하지 않았을 테지. 괜히 로테 아가씨를 따라 황궁으로 왔기에 이런 수모를 겪는다.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고, 이런 몸으로 오를린에 갈 수도 없다고 생각하니 그저 죽고만 싶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그날도 눈을 뜨자마자 관리자들에게 괴롭힘을 당해야 했다. 그들은 행위를 하면서도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을 했다. 이러다가 임신이 되는 거 아니냐며, 그러면 그냥 죽이고 위에는 이 여자가 자살했다고 하면 그만이라고. 소름끼치는 그 말을 들은 렌은 혀를 꽉 깨물고 죽을까 했다.

그때 갑자기 감옥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관리자 두 명과 새로운 ‘죄인’ 하나. 끌려들어 온 죄인은 남자인데 갓 스무 살을 넘긴 듯 젊어 보였다.

관리자들이 말했다.

“자, 이제 이 녀석 작업 시작하자고.”

렌은 그들이 말하는 ‘작업’이 거짓 자백을 받아내는 것임을 직감했다.

위기를 느낀 청년은 목숨을 구걸했다.

“살려만 주세요! 제발 목숨만 구해주세요!”

“네가 하는 말에 따라 달렸지, 그건.”

청년은 오를린 토박이의 억양을 썼다. 그가 고향에서 왔음을 안 렌은 그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으아아아악! 아아악!”

잔인한 고문이 이어졌다. 관리자들은 청년의 고개를 더러운 물통에 처박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 다음엔 청년의 몸을 천장에 매달아서 매질했다. 때로는 그 상태로 채찍질도 했다. 나중에는 청년의 열 손톱 사이를 못으로 하나하나 찌르기도 했다.

렌이 초반에 받은 고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일들이었다. 청년은 자기 죄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무조건 용서를 빌었다.

“잘못했습니다! 뭔진 몰라도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저를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으아아악!”

손톱 고문이 끝난 뒤에 관리자들은 인두를 불에 지졌다. 벌겋게 달궈진 인두는 청년의 눈앞에 들이밀렸다. 관리자들이 청년에게 물었다.

“자자. 솔직하게만 말하면 돼. ‘그라토’ 자네가 오를린의 마리니시네와 난잡하게 놀았던 것이 사실이지?”

렌은 알 수 있었다. 그라토라는 이름을 가진 저 청년은 반드시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해주어야 하리라. 진실이 뭐가 됐든 간에 그들이 원하는 답을 주어야만 저 뜨거운 인두를 피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순진한 시골 청년은 잔뜩 겁을 먹고서 진실만 말할 뿐이었다.

“하늘에 맹세코 그런 적 없습니다! 저는 절대 아가씨와 그렇고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어요! 무, 물론, 저는 아가씨만 보면 가슴이 떨리긴 했습니다. 잠시나마 주제를 모르고 연정을 품긴 했습니다만, 소심해서 절대 다가가지도 못하던 그런…… 아아아아악!”

그라토의 눈에 인두가 처박혔고, 감옥 가득 비명이 울려 퍼졌다. 렌은 눈을 질끈 감으며 두 귀를 막았다. 두 귀를 막아도 그라토의 울먹이는 소리는 더욱 크게 들렸다. 지독한 고통에 그라토가 조금씩 달라졌다. 고문에 질린 그는 점점 마리니시네를 험담하기 시작했다.

“용서해주십시오, 저는 절대 그런 적이 없습니다. 마리니시네 그 마녀가 워낙 방탕한 여자라 온갖 남자들과 추문을 뿌린 건 사실이었어요! 하지만 저만큼은 절대 그녀와 잔 적이 없습니다!”

“머리가 나쁘군.”

관리자들은 그라토의 뺨에 인두를 갖다 대었다. 그러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답답하단 듯 설명했다.

“네가 해야 할 말은 그게 아니라고. 알겠어? 자, 다시 생각해보고…… 다시 대답해봐. 네가 마리니시네와 추잡하게 즐긴 게 맞지? 너를 포함한 여러 남자와 여자가 그 마녀와 로젠플라드의 교리를 어기는 그런 더러운 짓거리를 했지 않았느냔 말이야!”

결국, 기나긴 심문에 지친 그라토는 ‘마리니시네 아가씨와 추잡하고 난잡한, 그야말로 입에도 담지 못할 정도로 심한 짓들을 했다!’고 거짓을 말했으며, 그에 신이 난 관리자들은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퍼부었다.

망나니 마리니시네는 자기와는 다르게 평소 행실이 정숙하고 평판이 좋은 동생 로테아르카를 질투했다 하던데 그게 사실이냐?

마리니시네가 동생을 매장해버리고 자기가 동생인 것처럼 속여 황태자비 후보가 되었다는데 그게 사실이냐?

그 말인 즉, 지금 궁에 있는 여자는 그 마녀라는 말이냐?

그런 여자가 황태자비가 되었는데, 과연 그녀가 국모가 될 품격을 갖췄다고 생각하느냐?

그라토는 그 모든 질문에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해주었다. 잔혹한 심문에 지친 그라토에겐 무엇이 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고통스러운 시간만 멈출 수 있다면 어떤 거짓도 진실인 듯 말해줄 생각이었다.

거듭된 질문에 급기야 그라토는 ‘그 더럽고 미친 여자는 황궁의 치욕이다!’고 외치기까지 했다.

하하하하! 관리자들이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어떤 관리자는 손뼉을 치기도 했다. 그러한 소리들이 렌에겐 소름끼치도록 무섭게 들렸다.

‘마리 아가씨를 어쩌면 좋담!’

갑자기 관리자 하나가 렌에게 다가왔다. 렌은 뒷걸음질 쳤지만 도망갈 곳은 없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모두 들었느냐?”

렌은 관리자의 눈을 마주하지 못한 채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고 대답하거나 부정하면 자기 목숨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자꾸만 진실을 왜곡하는 질문들이 몰아쳤다.

“너도 마리니시네가 로테아르카를 질투했단 것에 동의하느냐?”

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관리자가 야비한 웃음을 흘리며 쐐기를 박듯 물었다.

“그 마녀 같은 여자가 동생으로 위장해 입궁했다는 것도? 지금 황태자비가 즉 그 여자라는 것 또한?”

렌은 눈을 감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더욱 난잡한 질문이 날아들었다.

“너도 그라토와 황태자비가 그런 난잡한 일을 할 때…… 함께 했느냐?”

렌은 그 말의 의미를 알 수 없어 고개를 돌려 관리자를 보았다. 관리자가 렌의 뺨을 만지며 물었다.

“너도 함께 즐겼느냔 말이다!”

관리자는 렌의 뺨을 만지던 손을 제 주머니로 가져가 단도를 꺼냈다. 단도는 렌의 눈을 노리렸다. 대답에 따라서 렌은 한쪽 눈을 잃을지도 모른다.

겁에 질린 렌은 기계처럼 대답했다.

“……예. 예…… 저도, 함께 했습니다. 함께…… 했어요!”

“그들과 함께했다고?”

“예!… 저도 그들과 즐겼습니다! 저도 그들과 같이 즐겼단 말입니다! 그들이 그러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했어요!”

관리자는 뒤돌아서며 마지막 말을 전했다.

“좋다. 그럼 그것을 며칠 뒤 열릴 재판에서 증언하도록. 네 목숨과 자유는 네 태도와 진실 된 대답에 달렸단 걸 명심해라.”

관리자들이 떠나고 감옥엔 그라토의 희미한 신음만 나왔다. 렌은 무릎에 고개를 파묻으며 숨죽여 울었다. 울면서 자기를 놓아버렸다. 로테의 하녀였던 자신을 완전히 버리고 말았다.

‘역시 그 변덕스러운 시골뜨기 년이 문제야! 아무것도 믿을 게 없는 주제에 황족이 되려 한 것부터가 악이라고! 이제 나도 어쩔 수 없어! 나도 어쩔 수가 없다고!’

***

네히트.

실렌틴 광산.

륀체르는 ‘홀디네 본’이 소유한 여관에서 자그마한 연회를 열기로 했다. 삐친 드래곤 기사를 달랠 겸 마리와 재미있게 놀 생각이었다. 물론 그는 폐가에서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 있을 루돌프와 마리아 역시 외면하지 않았다. 그가 언제나 마리와 연결될 수 있는 이유는 마리아의 텔레파시 덕분이 아닌가. 마리아에게도 호의를 표시하고 싶은 그는 얼른 즐기러 오라며 초대 메시지를 보냈다.

마리아는 나지막이 한숨 쉬었다. 드래콘으로서 인간들이 먹고 마시는 자리에는 통 흥미가 없고 그래서 끼고 싶은 마음도 없다. 하지만 륀체르 사파이어는 아가씨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 아가씨의 종자인 자신이 그의 말을 거절할 수는 없는 법이다.

마리아는 공부에 열중한 루돌프의 등 뒤로 다가가 잠시 입 주위의 근육을 씰룩였다. 그러더니 대뜸 인간의 언어를 썼다.

“루돌프.”

루돌프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책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그녀의 목소리도 느끼지 못했다.

마리아는 다시 한 번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봐요. 루돌프.”

그제야 루돌프는 뭔가가 이상하단 걸 느꼈다. 아니, 이상한 정도가 아니다.

‘뭐지? 누가 말을 하네? 누가…… 맙소사. 설마 마리아 누나가? 뭐? 마리아 누나가 말을 해? 사람의 말을?’

루돌프는 손에서 책을 떨어뜨렸다. 난생처음 이 과묵한 드래콘의 인간체 목소리를 들은 듯하다. 소년은 너무 얼떨떨한 나머지 입을 벌리고 눈 또한 휘둥그레 떴다. 마리아는 예의 그 선홍빛 눈동자를 꼼짝도 하지 않으며 인형처럼 중얼거릴 뿐이다.

“루돌프. 륀체르 사파이어 길드장이 우리를 초대했어요. 얼른 가요.”

당황한 소년에게서 대답은 미처 나오지 않았다. 마리아는 뒤돌아서 밖으로 나가며 중얼거렸다.

“서둘러야 해요.”

루돌프는 지금껏 살면서 단 한 번도 사람의 목소리를 뭔가에 비유해본 적 없다. 그러나 이 순간만큼은 없는 문학적 재능을 짜내서라도 그녀의 목소리를 뭔가에 비유하고 싶었다.

“얼어버린 호수 위에 달이 구르면 저런 목소리를 낼까? 한여름 장미에 태양 빛 알갱이가 부서질 때 저런 소리가 나올까? 너무…… 너무 아름다워! 어째서 마리아 누나는 그간 저 예쁜 목소리를 숨긴 거야?”

소년의 심장이 뛰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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