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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아가씨와 번뇌의 호위기사-45화 (45/122)

00045  5. 눈꽃 샹들리에가 그대 침실을 빛낼 때   =========================================================================

그런데 그 발작은 아주 달콤한 것이었다. 아가씨의 야속한 입술을 막아버리고 부드러운 살결의 감촉에만 집중하니 하이너는 살 것 같았다. 아가씨 역시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 날씨가 춥기 때문일까. 오히려 품으로 더 파고들며 키스에 응하는 것 같다. 한참을 그렇게 키스를 나누다가 아가씨가 살짝 눈이 풀려서 고개를 떼어냈다.

하이너는 놀리듯 말했다.

“아주 매미처럼 착 붙어 안기시던데.”

마리는 아예 두 팔로 하이너의 목을 끌어안으며 대꾸했다.

“흐응, 추워서 그런 것뿐이야. 어째서 온기 마법을 약하게 두른 거냐고.”

“그야 세게 두르면 이 집을 가리는 눈들이 녹으니까요. 그리고…….”

도발적으로 목을 감는 아가씨의 표정이 어쩐지 유혹하는 것만 같다. 졸리는 사슴처럼 나른히 깔린 눈 하며, 살짝 벌어진 입술. 하이너는 다시 키스하려고 고개를 갸울며 속삭였다.

“온기 마법 대신 더 뜨거워지는 법이 있잖습니까. 그게 뭔지 알고 계시잖습니까…….”

“으음….”

“이제부터… 허락해주시겠죠?”

마리는 그의 입술을 다시 찾는 것으로 허락을 표시했다. 하이너는 아가씨의 등을 어루만지며 입맞춤 했다. 갈수록 짙어지는 입맞춤에 한껏 흥분된 하이너는 아가씨를 한쪽 벽으로 밀어붙였다. 아가씨의 몸을 가뿐히 들어 올려 풍만한 가슴이 눈앞에 오도록 한 뒤, 달콤한 향기가 나는 앙가슴 사이에 그는 고개를 파묻고 수없이 비볐다.

살갗과 살갗을 가리는 털옷이 성가시다. 왜 아직 자신은 열기 조절 마법밖에 못하는 걸까. 이대로 옷을 다 없애버리는 마법은 불가능한지? 마음이 점점 조급해진 그는 자기 외투를 짚더미 위에 올려놓고 그 위에다 아가씨를 눕혔다. 한겨울에 더욱 짙은 향을 내는 달콤한 목덜미에 입 맞추기 시작하자, 아가씨가 그 간지러운 감촉에 몸을 움찔움찔 떨면서 중얼거렸다.

“아아, 한순간에 이 옷들이 모조리 사라져버렸으면 얼마나 편할까!”

하이너는 잠시 멈칫했다.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자신이 한 생각과 똑같은 생각을 하는 아가씨가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그래. 자신이 유치했다. 이런 사소한 것에도 마음이 서로 같을 진데 이 관계에 서투른 의심 따윈 말자. 한낱 쇠붙이(유방 반지) 따위에 연연하진 말잔 말이다. 그는 그녀의 목덜미와 앙가슴만으로는 흥분을 달래기 부족하여 그녀의 어깨를 덮는 옷을 내리며 빨았다. 마치 달콤한 꿀을 핥듯 어깨를 한참 동안 먹었다. 그러다 입술이 점점 가슴으로 향했다.

“저기, 루돌프가 올지도 모른다고.”

“오면 오는 거지요.”

하이너는 괜한 말을 하는 아가씨가 아가씨답지 않아 꾸짖듯 살결을 살짝 깨물었다. 가슴 언저리에 작은 잇자국이 생기는 감각이 더할 수 없이 야릇하여 마리의 몸은 살짝 비틀렸다. 호위 기사는 이제 희고 기다란 팔에 입 맞추었다. 가녀린 팔등을 흘러내린 그의 입술이 노린 것은…… 문제의 반지였다.

‘역시나 싫어.’

그는 입술로 기어이 그 반지를 빼버리려는 생각이었으나 실패했다. 마리가 반지 낀 손을 들어 하이너의 머리를 어루만졌기 때문이다.

“이제 혀는 아프지 않아?”

하이너는 그녀의 입술을 다시 찾고 거세게 혀를 놀림으로써 대답을 대신 했다. 그의 손은 도망간 아가씨의 손을 붙들어 다시 제 입술 앞으로 가져오고 있었다. 그리고 아가씨의 손에 입 맞추는 척하며 다시 반지를 빼내려고 했다.

마리는 그런 그를 살짝 흘겨보았다.

“너 진짜….”

하이너는 이제 노골적으로 손을 뻗어 반지를 빼려 했다. 낮고 갈라진 그의 음성이 마리의 귓가에 왠지 아이의 칭얼거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저와 키스 다 하고 나서 그때 다시 끼면 되잖습니까….”

물론 다시 껴야겠다는 생각조차도 하지 못하게끔 그녀의 정신을 흩트리고 싶고, 흩트릴 작정이다.

마리는 호위기사의 고집이 생각보다 세다고 처음으로 느꼈다. 하지만 못 이기는 척이라도, 반지를 빼주는 것은 왠지 지는 기분이다. 그녀의 반지 낀 손이 호위기사의 손에서 벗어나 그의 가슴팍을 매만졌다. 탄탄한 가슴 가운데를 살살 간질이자 호위기사의 입에서 옅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마리가 그 표정을 느긋이 감상하며 물었다.

“이런 걸 하는 데 반지가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아. 안 그래?”

그녀는 그의 젖꼭지를 비틀었다.

“읏!”

“안 그러냐고?”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그녀의 손은 호위기사의 다리 사이로 향했다. 언제나 능숙한 손이다. 가장 예민한 선단을 나비의 날개 잡듯 살며시 쥐었다가 은근한 압박을 주었다. 그러다 다시 살며시 쥐고 다시 세게 잡고 그것을 반복한다. 손의 속도가 빨라지니 하이너는 머리가 새하얘지는 기분에 이를 꽉 다물고 눈을 감았다.

반칙이다. 아가씨의 손이 닿자마자 커져버린 성기도 반칙이지만, 아가씨가 이런 식의 자극을 주면서 반지 이야기를 묻어버리는 것도 명백히 반칙이었다.

‘하여간 이 아가씨는….’

그렇게 몇 초가 지났을까. 그는 검은 눈동자를 드러내며 야릇한 소리를 흘려댔다.

“하, 아가씨… 읏…… 으!”

마리는 짓궂은 눈으로 하이너의 눈을 감상했다. 쾌감에 쉽게 흐트러지는 검은 눈동자에 그녀는 빠져들 것만 같았다.

“어쩜 이리 예쁘니, 우리 호위 기사는. 응?”

손짓은 더더욱 빨라졌다. 어느샌가 하이너가 눕고 아가씨가 그 위에서 쾌락의 풀무질을 하는 자세로 변했다. 하이너의 거친 호흡은 곧 아가씨의 차분한 입술 속에서 어지럽게 휘저어졌다. 서로의 입술과 서로의 몸 그 어느 곳도 꽉 닿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우르르르릉!

갑자기 집 벽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강한 흔들림은 아니었지만,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마리가 키스를 멈추고 몸을 일으켰다.

“뭐지?”

하이너는 곧바로 옷을 껴입고 밖으로 나갔다.

눈더미를 헤치고 나가서 본 것은 새하얀 설원일 뿐이었다. 뒤따라 나온 마리가 목도리를 목에 칭칭 휘감으며 물었다.

“무슨 소리였어? 뭔데?”

하이너는 잠시 눈을 감았다. 흥분으로 인해 인간의 감각에 취하다 보니 드래곤의 발달한 감각을 사용하는 것에 잠시 소홀했다. 그는 심호흡하고 다시 사방을 둘러보았다. 모든 감각을 집중하고 보니 저 먼 곳 어디선가 금속성의 기운이 느껴졌다.

또한, 콧속을 알큰하게 하는 어떤 냄새까지.

“아가씨는 여기 계십시오!”

하이너는 수상한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달려갔다. 헐벗은 나뭇가지와 눈꽃 더미 사이에서 대형 사고가 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여행자용 기갑체, 아마도 멀쩡했으면 작은 드래콘 모양의 기갑체였을 것이 엉망으로 부서져 있었다. 추락한 게 분명했다. 다행히 커다란 나무에 떨어져 충격을 덜 받았지만, 기갑체 안에 있던 물건들은 모두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수상한 냄새가 나는 이유도 바로 그 물건들이 부서져 내용물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웬 술 냄새가…….”

하이너는 엉망진창 속에서 한 사람을 발견했다. 기갑체를 조종하던 사람이 분명했다. 그는 나뭇가지가 뒤엉키고 눈꽃이 핀 곳에 떨어져 부상이 그리 심하지 않았다. 다만 사지를 꿈틀거리는 게 딱해 보였다. 적어도 하이너보다 서너 살은 많아 보이는 청년이었다.

“루돌프!”

하이너는 쓰러진 부상자를 치료하기 위해 서둘러 루돌프를 불렀다.

***

오를린.

한스 레 하인첼의 밀주 제조실 뒤편 큰 마당.

“아이고, 허리야… 이거 원. 서른 살이 되기도 전에 허리부터 맛 가게 생겼네.”

한스는 대량의 누룩을 상자에 담으며 불평했다. 종자이자 조수인 루돌프가 가출했어도 한스는 혼자서 나름대로 잘 해나갔다. 낮에는 주로 본 직업인 약사의 일에 충실했고, 밤에는 마법 연구와 밀주 제조를 열심히 하였다. 일손이 부족해져서 몸이 더 힘들고 곁에 함께 하는 사람이 사라지니 적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새로 조수를 구하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자신의 비합법적 일들에 기밀유지를 하려면 지금처럼 쭉 혼자인 편이 좋다.

게다가 만약 입이 무거운 사람을 구한다고 해도, 그 사람과 끝까지 함께하리란 보장이 없다.

그리고 혹시 아는가? 어린 루돌프가 험한 세상에 시달려 금세 돌아와 줄지도. 그렇게 되면 사람을 구한 것은 말짱 헛일이 되고 말 것이다. 한스는 내심 루돌프가 돌아와 주기를 바랐다.

오늘 한스의 밀주 제조장엔 사람이 하나 와 있었다. 스물세 살 훤칠한 키의 청년은 배달원으로 곧 결혼식을 앞두었다. 결혼식 자금을 모은다고 밤이고 낮이고 매일 열심히 일하면서 각지의 특산물을 사서 약혼자에게 바치고, 또 약혼자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자기도 뿌듯해 하는 게 낙인, 그런 자였다.

배달원의 이번 임무는 늘 그렇듯 오를린의 영주에게서 받은 것이다. 오를린 영주는 밀주업자 한스 레 하인첼의 누룩을 사들여 로샤타르트에서 비싸게 팔 계획이었다. 이에 배달원은 그 누룩을 로샤타르트까지 가져가는 일을 맡았다.

어째서 한 영지를 책임지는 영주가 불법 밀주업자와 거래를 하느냐. 일종의 영지 생리였다. 주된 수입원이라곤 농산물과 시답잖은 공예품이 전부인 오를린은 불과 오십 년 전만 해도 영지민들이 굶어 죽어버리는 일이 예사인 몹시 빈곤한 지역이었다. 이에 전 영주가 비합법적인 일에 손대어 영지의 경제에 수혈을 시작했고, 현재 오를린은 그나마 사람 사는 곳처럼 될 수 있었다. (또한, 영주의 사병도 늘릴 수 있었다 한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설사 영주의 비합법적인 사업을 안다고 해도 그것에 손가락질하는 영지민들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공연히 드러내놓고 할 성질의 일도 아니다 보니, 배달원은 언제나 이동에 조심 또 조심해야 했다. 배달할 때 운송용 기갑체가 아닌 여행자용 기갑체를 이용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이놈의 허리가 진짜 맛이 갔나?”

배달원은 자기가 타고 온 여행용 기갑체의 먼지를 닦아내다가 한스의 엄살을 듣곤 피식 웃었다. 그러곤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것은 바로 루앙의 깃발이었다. 루앙 출신 사람이 기갑체를 타고 여행하는 듯이 보여야 다른 영지민들의 눈을 속일 수 있다.

‘흐음, 매일 루앙 깃발을 달고 다니는 것도 의심 사기 좋은데. 영주님께서는 다른 깃발을 주실 센스도 없단 말이지.’

배달원은 기갑체 정리를 끝내고 한스의 일을 도왔다. 두 남자가 손을 합치니 누룩 상자가 금세 기갑체 안에 가득 쌓였다. 배달원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제조장을 한 번 슥 둘러보았다.

뭔가 이상했다. 여기 올 때 늘 보이던 꼬마가 보이지 않았다. 배달원은 한스가 내민 서류에 사인하며 물었다.

“그 꼬마는 어디 갔어요?”

한스는 사인이 끝난 서류를 받아들고 배달원의 이동용 기갑체 연료통을 보며 대답했다.

“우리 꼬맹이 내가 말실수해서 가출했지. 그나저나 이거, 이거….”

연료통의 수위가 아슬아슬하다. 로샤타르트까지 가려면 조금 더 연료를 채우고 가는 게 좋다. 걱정된 한스는 배달원에게 조언했다.

“영주께 연료비 좀 더 받아내. 이래선 사고 난다고.”

“받았어요.”

“그런데 왜 채우지 않아?”

“젊은이라면 자고로 긴장감을 즐겨야 하지 않습니까?”

배달원은 유쾌하게 웃으며 한스의 팔을 툭 쳤다.

사실은 정말 긴장감을 즐기고자 연료를 채우지 않은 건 아니다. 연료비를 아껴 결혼자금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청혼 반지를 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걸 사실대로 말했다간 이 한스 레 하인첼이라는 작자에게서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한스는 기분이 좋으면 상냥하다가도 자기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들었을 땐 사납게 돌변하고 마니까. 그것이 설사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한스는 매우 불만인 듯 인상을 구겼다.

“긴장감을 즐기고 나발이고, 연료 채우라니까. 위험해.”

“위험한지 아닌지는 다음 임무 때 밝혀지겠죠. 그럼 저는 이만!”

한스가 끝까지 말렸지만, 배달원은 무시하고 기갑체에 몸을 실었다. 곧 그것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드래콘 모양의 기갑체는 서쪽으로 유유히 비행했다. 아마도 네히트의 실렌틴 광산을 지나 바너와 할데바인의 접경을 이루는 생명의 역광이라는 강줄기를 지나쳐, 로샤타르트의 수도에 다다르겠지.

단…… 연료가 받쳐주는 한까지만 말이다.

만약에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연료가 떨어져 버린다면…….

“영주도 미쳤어! 두 번은 나누어 옮겨야 하는 것을 한 번에 다 가라고? 하여간 영주나 저놈이나…… 젠장! 신경 끄자. 나랑 무슨 상관이람!”

한스는 만사 생각하기 귀찮다는 듯 뒤돌아섰다.

그리고 약 두 시간 뒤, 배달원의 기갑체는 실렌틴 광산에서 추락하고 말았다. 원인은 연료 부족 때문이 아니었다.

과잉적재, 그게 문제였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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