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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아가씨와 번뇌의 호위기사-40화 (40/122)

00040  4. 가볍게 빛나는 보석은 없다  =========================================================================

장인의 도시 바너.

수도 크래파.

대 여관 침묵의 장.

의사는 하이너를 치료하고 루돌프는 그 곁에서 성실하고 침착하게 치료를 도왔다. 이 소년의 솜씨는 어찌나 훌륭한지 의사를 따라온 노련한 조수도 다 감탄할 정도였다. 하긴. 어릴 적부터 마법 약 공부를 해왔고 의학에도 관심이 있었던 루돌프와 이제 막 반 년 차 병아리인 조수를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소년 덕분에 제법 이른 시간에 치료를 마친 의사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소년을 칭찬했다.

“의학 공부를 한다고? 과연 손도 빠르고 눈치도 빠르고 참 탐나는 녀석이로군. 공부를 멈추지만 않는다면 바너에서 가장 훌륭한 의사가 될지도 모르겠군.”

“과, 과찬을…….”

루돌프는 얼굴이 발그레해져선 머리를 긁적였다.

“이건 내 명함과 내 병원 약도다. 내 밑에서 일할 생각이 있으면 오너라.”

“감사합니다!”

루돌프는 의사에게 명함을 받아들어 가방에 넣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는 지금, 마리아 누나가 없다는 게 참 아쉬웠다. 마리아 누나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면 딱 좋을 것 같은데!

의사는 외투를 갈아입고 나갈 준비를 마쳤다. 그의 조수도 짐 정리를 마치고 따라 일어났다.

“자, 그럼 우리는 환자의 안정을 위해 이만 가봐야겠군.”

의사가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자, 마침 복도 의자에 대기하던 마리가 벌떡 일어났다. 호위 기사를 볼 생각에 격앙된 그녀는 의사와 눈이 마주치자 차분해지려 애쓰며 잠시 의사에게서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귀족 아가씨가 아닌 평민 와트프라우어 부인으로서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치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 그쪽이 와트프라우어 부인인가요? 부군께서는 지금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아, 혹시 면회하면 안 되는지요?”

“그건 아닙니다만, 으흠. 예를 들면…… 부군을 자극할 수 있는 행동, 울음이나, 몸을 흔들고 소리를 친다든가…… 예, 뭐 그런.”

의사가 대충 말을 줄이자 마리는 알아듣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떠나자 마리는 곧바로 침대에 가서 하이너의 손을 만졌다.

“오, 내 가여운 기사…….”

잘생긴 얼굴에 흉한 상처가 생겨버렸다. 다친 눈에선 회복이 진행되지만, 마리의 눈에는 가슴을 쓰라리게 하는 모습일 뿐이었다.

“누가 눈을 이 따위로 만든 건지, 으휴!”

의사가 마법술을 이용했는지 하이너의 몸 전체에서 푸르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저급 마법 정도는 숙지해둔 마리는 그 푸른 기운이 몸속에 들어온 나쁜 균과 싸우는 증거란 걸 알 수 있었다.

“어찌 됐든, 얼른 나아야 할 텐데.”

듣자하니 날카로운 마검에 눈이 찔린 것 같다고 했다. 자칫 뇌마저 손상될 뻔했다던데, 얼마나 아팠을까! 눈뿐만 아니라 손등, 발목에 보이는 크고 작은 흉터를 보니 그 고생을 알 것 같았다. 대륙 정복 여행을 하면서 그 어떤 일이 생겨도 꿋꿋하리라 생각했지만, 가장 아끼는 사람이 이렇게 다치는 것을 보니 마음이 흔들렸다. 차라리 드래곤으로 변신할 줄 아는 사람이 호위 기사가 아니라 자신이 되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뭐가 이리 가렵지?”

눈이 가려워 손등으로 훔치는데, 알고 보니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호위 기사를 보고 딱하단 생각을 하면서 그만 울어버린 것이다!

마리는 눈물이 나온 참에 조금 더 이 감정에 몰입해 보기로 했다.

와트프라우어 씨의 부인으로서.

“흑흑! 여보! 이대로 죽으면 안 돼요! 눈을 떠요! 이렇게 가버리시면 나와 아이들과 뽀삐는 어쩌라고요…… 으흑흑!”

의사가 환자의 안정을 부탁했기에 그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크진 않아도 환자의 깊고 오랜 잠을 깨우기엔 충분했다.

하이너는 고통이 스민 잠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눈을 천천히 떴다.

“아가씨?”

눈앞에 그토록 원하던 사람이 있었다. 그토록 보고 싶던 여인이 있었다. 기뻤다. 그녀의 찰랑거리는 금발을 보니 밖에서 얼어버린 마음이 따스하게 녹았다. 그녀의 깜빡이는 청록색 눈을 보니 기운이 솟았다. 아아, 나의 아가씨. 이 현실이 믿을 수 없어서 자신의 두 눈을 만졌다. 이 두 눈으로 아가씨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단 사실이 아주 행복했다.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스며들자, 아가씨가 그것을 보더니 눈물을 흘리면서도 너스레를 떨기 시작했다.

“어머! 여보! 소생하셨군요! 아아, 정말 다행이야…….”

“하하,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와트프라우어 부인을 연기하는 아가씨를 보고 하이너는 못 말린다는 듯 웃었다. 그는 한 손을 뻗어 감히 아가씨의 뒤통수를 감쌌다.

“아가씨….”

이대로 아가씨와 입 맞출 생각이었다. 사괴탄을 없애러 가기 전이었던가? 아가씨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려고 했을 때 륀체르의 방해를 받아 몹시 짜증 났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의 기분을 지금 이 시간에 격렬한 입맞춤으로 모조리 풀 생각이었다. 심장보다 더욱 격렬해진 입술이 아가씨의 입술에 돌진했다.

“하이너, 괜찮… 읍!”

마주치는 호위 기사의 입술 때문에 마리는 괜찮으냐는 말도 다 하지 못했다. 환자의 몸으로 달려드는 기세가 짐승처럼 위험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니! 황홀함과 짜릿함이 온몸에 번졌다. 아팠던 마음도 조금이나마 낫는 듯했다.

마리의 혀가 하이너의 혀를 힘 있게 휘감으려 할 때였다.

“으윽!”

하이너가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 마리가 입술을 떼고 물었다.

“어디 아파? 눈에 통증이 온 거야?”

“으, 그게 아니라.”

“아니면, 어디가 아픈데?”

“사실은…….”

하이너는 혀가 아픈 이유를 말하기 어려웠다. 괴지의 마검 제조장에서 사괴탄과 키스하다가 생겨난 상처임을 어찌 아가씨께 말할 수 있을까. 아가씨가 아무리 털털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이라 해도 실망하실 게 뻔하다. 비록 사괴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상황이었다고 해도 말하기 싫었다.

“어디가 아프냐고, 하이너?”

“음, 그게…….”

괜스레 의사를 탓했다. 의사가 눈과 머리, 사지 여기저기에 난 상처는 빠른 회복을 할 수 있게끔 조치를 해놓았으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인 혀는 내버려 둔 것에 몹시 아쉬웠다.

‘몸을 고치려면 다 고치란 말이다!’

마리는 왠지 하이너가 곤란해 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디가 아프고 왜 아프기에 이유를 말하지 못하고 이런 표정을 지을까? 장난기가 도졌다. 그녀의 손이 하이너의 성기 부분을 꽉 움켜쥐었다.

자극을 받은 하이너의 눈이 커졌다. 마리가 배시시 웃으며 심술궂게 물었다.

“설마 고작 키스로 여기가 아플 정도로 부풀어 오른 거야, 응? 그래서 그런 표정 하는 거지, 응?”

“아, 아가씨.”

“아직은 말랑말랑하네, 어디 보자. 이렇게 조물조물 만지면…….”

“경망스럽게 숙녀분께서 이 무슨 짓입니…… 으!”

힘없던 아랫도리가 아가씨의 손길에 점차 부피를 키워갔다. 대관절 이게 얼마 만에 느끼는 흥분인지 모르겠다. 당장에라도 아가씨를 뜨겁게 안고 싶었다. 가능하면 키스를 자연스럽게 피하면서 움직여야 했다. 아가씨를 안고 침대에 눕혔다.

“아가씨….”

마리는 한 손으로는 하이너의 아랫도리를 만지작거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의 목을 끌어와 다시 입 맞추려 했다. 하이너는 피하지 않고 키스하면서 최대한 혀를 쓰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아가씨가 어찌나 열정적인지 자꾸만 혀를 강하게 휘감아왔다. 그녀의 뾰족한 혀끝이 하이너의 혀 부위 중 하필이면 사괴탄에게 깨물린 부분만 거침없이 콕콕 찌르고 있었다.

‘으으.’

하이너는 혀가 아릿하여 또 소리가 나올 것 같았으나 꾹 참았다. 꾹 참으면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키스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아가씨의 혀도 조심스럽게 삼키려 했다. 그러다 문득 다른 곳에 입 맞추면 되겠거니 하고서 아가씨의 목에 입술을 파묻었다. 오랜만에 맡는 아가씨의 새콤달콤한 향기가 천연 치료제가 된 듯했다. 혀의 고통도 다 잊을 수 있는 것 같았다.

“아아, 하이너.”

마리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그의 머리를 품에 안았다. 가슴 깊숙이 이 남자의 고개가 파묻히는 느낌이 좋았다. 수염이 자라 가슴을 까칠하게 쓰는 느낌, 몸에서 나는 치료약 냄새도 좋았다. 다시 키스하고 싶어 고개를 당기는데 이 남자는 가벼운 입맞춤만 쪽 하더니 한쪽 가슴을 입에 물어버렸다.

“으, 하이너. 바로 그러는 것도 좋지만, 아직은 키스를 좀 더 하고 싶어.”

열정적인 아가씨는 힘 있게 호위기사의 머리를 당겨 키스했다.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키스에 하이너가 결국엔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 다른 곳을 다쳐도 엄살을 부리지 않았지만, 찢어진 혀에 끊임없이 자극을 받으니 아파서 견딜 수 없었다.

“읏, 으윽. 아! 아! 아가씨!”

심상치 않은 소리에 그제야 마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이너?”

혀가 너무 아프다 보니 엄청나게 매운 것을 먹은 것처럼 숨을 거칠게 쉰다. 입 속에 바람을 넣어 볼을 부풀리기도 한다. 미간은 있는 대로 찌푸려지고 살짝 벌린 입술 사이에선 고통의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런 호위기사의 반응에 마리는 갑자기 그의 입을 벌렸다.

“혀 내밀어 봐. 빨리.”

“안 됩니다.”

“얼른.”

“안 됩… 으으!”

마리는 손가락으로 하이너의 혀를 꺼냈다. 붉은 혀 가운데를 누가 세게 깨물어버린 모양인지 아주 깊은 상처가 나 있었다.

마리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이거 뭐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런 상처를 어떻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어?”

하이너는 끄응 앓다가 마지못해 변명했다.

“그러니까 이건 제가…… 괴지에서…… 마검들 없앨 때 생긴 상처입니다.”

마리는 이해할 수 없었다. 마검들이 대체 어떻게 공격했기에 사람 혀가 이렇게 깨물린 것처럼 다칠 수 있을까? 그녀는 하이너가 거짓말한다고 생각했다.

하이너는 미심쩍어하는 아가씨에게 최대한 그럴듯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검들의 공격에 정신이 없는 와중에, 기합을 넣는다고 입을 벌리다가 단도 하나가 입에 들어온 줄도 모르고… 그때 생긴 상처입니다.”

“웃기지 마! 그게 곧이곧대로 들릴 것 같아? 마검이 이런 곳에 상처를 낼 리 없어! 이건 마치, 마치…….”

하이너는 마리의 노려보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시선을 피하면 거짓말을 들킬 것 같았다. 그런데 시선을 피하지 않는 것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마리는 그를 오래 알아왔기에 그의 표정을 잘 읽을 수 있었다. 호위 기사가 슬그머니 아랫입술을 깨문다는 것은, 불안하고 초조해 한다는 걸 뜻했다.

그녀는 한 쪽 눈썹을 올리며 진실을 찔렀다.

“혹시 누군가와 입 맞추다 생긴 상처 아니야?”

“큽!”

하이너는 먹은 것도 없는데 사레들릴 것 같았다. 마리가 하이너의 코를 꼬집으며 미소와 함께 눈을 흘겼다.

“혹시 누군가에게 강제로 입 맞추려다가 혀가 깨물린 건 아니겠지?”

“당치도 않습니다!”

“자아아… 그럼, 괴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서 설명해보실까?”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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