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1 4. 가볍게 빛나는 보석은 없다 =========================================================================
사실 하이너는 륀체르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주먹을 한 방 날리고 싶었다. 륀체르라는 저 교활한 녀석은 아가씨께 사괴탄에 관한 정보를 알아오라고 지시하며 이런 모임을 추천해줬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놓고 자기가 이 모임에 오다니?
사실은 사괴탄에 관한 정보는 이미 제 손에 쥐고 있는 것 아닌가? 그간 명색이 정보 제공자였으면서 말이다.
…… 결국엔 이런 모임은 그저 아가씨를 만나기 위한 륀체르의 작은 핑계에 불과할 뿐이리라.
‘하여간 계집애 같이 생겨선 마음에 안 드는군.’
그렇지 않아도 그동안 쓸데없는 일로 아가씨를 영원의 봄에 오라 가라 부른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쪼르르 달려가는 아가씨 또한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런 귀찮은 일까지 만들어 아가씨를 만나려고 하다니, 남자가 되어서 만나고 싶으면 솔직하게 만나고 싶다고 해야 하지 이런 핑계로 만나는 건 다 뭔가?
아무래도 륀체르의 저러한 유치함 속에는 엉큼한 욕심이 도사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게 밉다고 시비를 거는 것은 귀찮고 성가신 일. 지금 보내는 눈빛만으로도 륀체르에게 경고하기엔 충분했다.
‘가야겠군.’
여기까지 달려온 수고가 있으니 사람들과 적당히 어울리는 척하면서 식사나 하고 있었지만, 배를 두둑이 채운 지금은 더는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생각을 마친 하이너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여태 함께 대화하던 이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늘 즐거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사람들은 모임에 처음 나타난 검은 수염의 청년(하이너)이 벌써 헤어지려 하자 서운했다. 이 청년 덕분에 적당히 분위기가 띄워졌는데 이렇게 보내긴 싫었다. 게다가 청년은 바너에 나타난 드래곤에 관해 우스갯소리도 잘했다.
‘정의의 드래곤에게 누가 피로 해소제라도 줘야 할 것 같지 않습니까? 아마도 사람들이 너무 기대해서 그 드래곤도 피곤할 게 분명해요. 참 그렇죠, 드래곤도 지금 한창때일 거라 연애할 시간은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마치 당장 무대에 서서 좌중을 웃겨도 될 전문화자 같았다. 게다가 이 청년 덕분에 화젯거리가 풍부해진 것도 좋았다. 청년은 검을 수집하여 자랑만 할 줄 아는 다른 자들과 달리 정말 검을 다룰 줄 알았고, 동양의 검술에 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자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잡아도 떠나려 하니,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청년을 포기해야 했다. 대신에 다음에도 자주 만났으면 좋겠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하이너는 이곳에 다시 올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며 뒤돌아섰다.
하이너가 식당을 나가려는 낌새에 륀체르는 뒤따라 나섰다. 그는 언젠가 하이너가 여관 숙박부에 거짓으로 쓴 이름을 부르는 장난도 쳤다.
“이여어! 와트프라우어 씨가 여긴 웬일인가?”
‘와트프라우어 씨 좋아하네.’
하이너는 자기를 아는 체하는 이의 목소리를 가능하면 무시하고 싶었다. 그의 걸음은 더욱더 빨라졌다. 그럴수록 륀체르는 싱긋 웃으며 더욱 빨리 뒤쫓아 갔다.
‘젠장!’
하이너는 결국, 식당 입구 계단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뒤돌아보지 않은 채로 무뚝뚝하게 물었다.
“왜 따라옵니까?”
잘 벼린 검처럼 날이 잔뜩 선 목소리였다. 마치 시비 걸면 죽여 버리겠단 경고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그런데도 륀체르는 느긋한 미소를 지으며 하이너의 어깨에 손을 가져다 댔다. 곱게 자란 아가씨 손처럼 희고 가느다란 손이 하이너의 탄탄한 어깨를 톡톡 두 번 두드렸다.
“으음, 자네를 따라가면 와트프라우어 부인 아니, 그러니까 자네 아가씨 마리니시네 양, 아니, 내가 고용한 숙녀분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아닌가?”
하이너는 비웃으며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글쎄요. 아가씨는 당신과 만날 시간이 없을 것 같습니다만.”
“오호, 어째서?”
“바쁘신 분이니까요.”
“내가 알기엔 그렇지 않은데? 아, 물론 자네 아가씨가 우리 영원의 봄에 들른다고 바쁘긴 했지.”
순간 하이너의 어금니가 꽉 깨물어졌다. 그런 미묘한 변화에 륀체르는 즐거워하며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자네는 언제부터 아가씨의 시간을 관리하는 사람이 되었지? 꼭 하인 같구만. 원래 호위 기사가 아니었던가?”
륀체르는 괜스레 나이 든 사람들의 권위적인 말투를 사용하며 열 살이나 어린 하이너의 심리를 꾹꾹 눌러보고 있었다. 하이너는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여겼지만, 륀체르가 꼭 하나 알아야 할 것이 있어야 할 것 같아 똑똑히 이야기해주었다.
“호위 기사 맞습니다. 다만 ‘사적으로 좀 더 가까운’ 기사, 쯤 되겠죠. 어쨌든 더는 따라오지 마십시오.”
그러나 륀체르는 무시하고 하이너와 나란히 서서 걸으며 그의 옆모습을 슬쩍 보았다. 이 스무 살의 호위 기사란 자의 표정엔 남모를 자부심과 건방기가 묻어나 있었다. ‘사적으로 가까운’이라는 표현을 말할 때부터 특히 그랬다. 륀체르는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그래 봐야 호위 기사가 호위 기사지. 아, 참. 자네 말이야. 마침 할 말이 있었네.”
“……?”
륀체르는 주위를 살피며 한결 줄어든 목소리로 속삭였다.
“작전 말이지. 박제 공장을 그런 식으로 불 질러 버리는 건 너무 경솔한 행동이지 않았나 싶네만?”
악당 소탕 작전에 관한 말이 나오자 하이너의 걸음이 다시 멈추었다. 지난번에 인간 박제품을 만드는 자들을 죽여 버린 적이 있다. 그들은 아름다운 사람이라면 성별과 나이를 막론하고 잡아다가 박제로 만들어 파는 미친 장인들이었고, 하이너는 그런 자들이 일하는 공장 역시 처참하게 때려 부수고 불 질러 버렸다.
그런데 그 일이 경솔한 행동이라니?
륀체르의 계산적인 목소리가 귀를 자꾸만 자극했다.
“때론 정의감보다 현실감이 더 앞서야 할 때도 있는 법이네.”
“현실감? 앉아서 정보나 주고 지시만 내리는 당신이 현실감을 말합니까?”
그땐 작전도 작전이지만, 그와는 별개로 악당들에 분노가 치솟아 그렇게라도 파괴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이것은 기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공부한 표면적인 정의감, 어릴 때부터 주입된 평범한 정의감과는 다른 감정이었다.
동생 마르틴의 병간호를 오랫동안 하면서 인간 생명의 소중함을 느꼈다. 아픈 사람에겐 숨을 쉴 수 있는 하루하루가 모두 소중하단 걸 깨달았고, 그러므로 아프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역시 값진 것이라고 느꼈다. 아니, 그것은 단편적인 느낌에 그친 게 아니라 살이 느끼고 뼈에 사무치는 체득이었다.
그런 밑바탕이 때문인지 죄 없는 사람을 박제품으로 만드는 놈들에 대한 분노가 크면 컸지 절대 줄어들 수는 없었다. 그런 분노가 현실과 타협하거나 인내할 성질의 것이란 생각도 당연히 들지 않았다.
“이봐, 앉아서 정보만 주는 내 일이 쉬워 보이는가? 그 정보를 얻는 것에도 어마어마한 위험이 따른다고.”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녀석들을 죽이고 녀석들의 건물을 불지를 때의 분노가 다시 온몸을 잠식하는 것만 같아 하이너는 잠시 숨을 골라야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륀체르의 시비는 멈추지 않았다.
“나는 장인이기도 하지만 장사꾼이기도 하지.”
“장사꾼? 그래서 박제품을 더 비싼 가격에 팔기라도 하려 했습니까?”
되묻는 하이너의 눈빛에 흉흉한 살기가 어려 있었다. 끝도 없이 검은 눈동자가 살기를 뿜으니 마치 저승의 사자의 눈 같았다.
그런 눈동자에 륀체르의 사파이어 같은 눈동자가 마주했다. 다른 견해를 가지고 서로를 마주 보는 두 남자의 눈빛은 금방이라도 강렬한 불꽃을 터뜨릴 것 같았다.
“그 박제품을 팔아 이익을 취하려고 했느냐고 묻잖습니까?”
“오, 그 끔찍한 것들을 팔다니… 말도 안 되지! 그거 빼고 다른 걸 말하는 거야. 나는 장인과 장사꾼이라는 두 직업의 종합 대리인으로 바너를 ‘운영’하고 있으니 항상 득과 실을 따질 수밖에 없지. 자네가 불태워버린 그 공장은 건물 자체로 봤을 땐 제법 유서가 깊어. 새로 건축하기도 어렵고 말이지. 그런 건물의 자재나 기계 또한 한두 푼 하는 게 아니었어. 무슨 말인지 알겠나? 박제품을 만드는 녀석들이 죄악이라고 그 녀석들이 쓴 시설이나 도구마저 죄악은 아니란 말이네.”
“역시. 결국엔 당신이 꿀꺽할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깝다는 말을 줄여서 하는군.”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나는 단지 자네가 다음부턴 그런 무식한 방법은 쓰지 말고 조금 더 생각이란 걸 하…….”
“난 네놈의 하인이 아니야!”
하이너는 소리를 지르며 륀체르의 멱살을 잡았다.
하지만 륀체르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이 호위 기사 아니, 이 드래곤의 나이 이제 고작 스무 살. 드래곤으로 치면 스무 살은 아기나 마찬가지다. 인간으로 쳐도 한창 치기 어린 나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어린 수컷이 이토록 포악하게 나오는 것은 충분히 예상하고도 남은 일이었다.
“이런 이런. 물론 자네는 내 하인이 아니지.”
륀체르는 말을 하다가 잠시 멈추곤, 멱살을 잡은 하이너의 손을 떼어냈다. 그리고 제 의복이 구겨진 걸 바르게 정리하고 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하인이니 주인이니 하는 관계는 싫더군. 일방적으로 부리고 일방적으로 종속당하는 삶만큼 억울하고 추한 게 어디 있나? 모든 인간관계는 주고받는 것이 맞아떨어져야 아름다운 법이지. 난 한 번도 자네를 내 하인이라 생각한 적이 없어. 자네는 작전 한 건당 2000 자일의 급여를 받는 피고용인이라 할 수 있지. 일종의…… 그래. 보수를 받고 정의를 행하는 용사님. 절대 내 하인이라 할 수 없는 관계지. 아무래도 자신을 하인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자네 같은데, 그렇지 않은가?”
하이너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아가씨가 말해줘서 알고는 있다. 륀체르 덕분에 침묵의 장에서 신변 보호를 받으며 묵을 수 있었고, 작전 건당 2000 자일의 급여를 받을 수 있었으며, 작전 규모당 많게는 5000 자일 적게는 500 자일의 특별 수당까지 받을 수 있었다.
그러한 돈이 모두 아가씨의 여행 자금, 그리고 루돌프의 급여로 이용됐다. 아가씨는 대륙 정복을 위해선 돈이 많아야 한다고 말씀하시지, 루돌프는 값비싼 드래곤 링클을 사서 제 주인이자 스승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목적이 있지, 제아무리 자신이 돈에 욕심이 없는 호위기사라고 해도 다른 사람들의 사연을 외면할 수는 없는 법이다. 아가씨와 루돌프가 생판 남이면 몰라도 말이다. 그랬기에 륀체르에게서 돈을 받는 게 기분 나쁘더라도 기를 쓰며 반대할 수는 없었다.
‘재수 없는 녀석!’
하이너는 륀체르와 더는 말을 섞고 싶지 않아 다시 조용히 길을 걸었다. 륀체르의 말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자고로 피고용인은 고용인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어. 그러니 다음 작전엔 그런 무식한 파괴는 일삼지 말게. 알겠나?”
“…….”
“대답?”
“…….”
“대답? 음?”
그때였다. 갑자기 그들의 주변에 달콤하고 상큼한 향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한 여인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여인은 이런 겨울에 입기엔 너무 추워 보이는 짧은 드레스를 입었는데, 그 디자인이 훌륭한 몸매를 관능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 차림만으로도 행인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데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과 물결치는 금발, 빨간 입술은 모든 이들의 시선을 아예 훔쳐버리고 있었다.
하이너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아가씨…….”
그녀, 마리를 본 륀체르의 눈은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마리는 륀체르를 흘겨보며 쏘아붙였다.
“내 기사에게 감히 겁도 없이 대답을 재촉하는군?”
그녀는 감히 드래곤에게 대답을 하라 마라 요구하는 륀체르의 건방짐을 조소했다. 륀체르는 어깨를 으쓱이며 느긋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녀의 가명을 부르며 인사했다.
“와트프라우어 부인, 모임에 지각을 하시다니요?”
“지각? 마치 나를 기다린 것처럼 말하네?”
“뭐, 그렇다고 봐야 하지.”
“어째서?”
“그야 이 모임 주최자가 나니까?”
순간 마리가 볼을 부풀리며 화난 표정을 했다. 륀체르의 입가가 씩 올라갔다.
‘화난 표정도 어찌 저리 귀엽지?’
마리가 륀체르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륀체르를 죽일 듯이 노려본 그녀는 그의 다리 가운데를 무릎으로 사정없이 차버렸다.
“으윽!”
하필이면 그런 곳을 공격하다니, 어째서……. 지켜보는 하이너마저도 그 고통을 느끼는 듯 얼굴을 살짝 구겼다.
‘하여간 아가씨는…… 그렇게 정숙하지 못한 행동은 하지 말라고 말렸는데.’
륀체르는 마리에게 어째서 이런 짓을 하느냐고 따지는 듯 보았고, 마리는 그런 륀체르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고약한 길드장 같으니. 자기도 모임에 갈 거면 얼마든지 사괴탄의 정보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단 말이잖아? 그런데 꼭 나를 시켜 가보라 해야겠어?”
륀체르는 고통이 얼른 잠잠해지길 빌며 겨우 변명했다.
“그야 와트프라우어 부인께서 미인계를 쓰셔야 나보다 더 정보를 잘 얻어갈 거라 생각했기에…….”
“뭐?”
“…… 는 거짓말이고.”
륀체르는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히죽 웃었다. 아직도 다리 사이에 얼얼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그는 이 순간만큼은 제 음흉한 속내를 굳이 감추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바깥에서 널 만나는 것도 괜찮잖아?”
순간 하이너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마리의 대답 또한 그의 얼굴을 더욱 싸늘하게 만들었다.
“풉, 하여간 99.9점짜리 얼굴은 알아서.”
‘아가씨는 진짜!’
하이너는 이 순간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함께 여행해준다면 애인이 되어준다던 아가씨가 아니었던가? 물론 그걸 정말 믿은 건 아니었고 그런 말을 보상으로 여행을 시작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가씨가 이렇게 다른 남자와 농담을 주고받는 것은 불쾌한 일이다. 상대가 괜찮은 남자라면 몰라도!
륀체르는 마리의 대꾸가 99.9점짜리 센스라고 감탄하며 솔직하게 말했다.
“오늘 밤 어때? 나랑, 응?”
마리는 뭐 나쁘지 않단 식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길드장 당신이 사괴탄에 관한 정보를 알아온다면야.”
륀체르는 고민하지 않고 바로 답했다.
“아, 그건 걱정하지 마. 사실 나한테 다 있거든. 사괴탄 그자의 공장은 괴지(사람이 살지 않는 암흑의 구역)에 있지.”
결국, 사괴탄의 정보를 다 알고 있으면서 이러한 모임을 꾸민 것이 기정사실로 드러나고 있었다. 마리는 또 한 번 륀체르의 다리 가운데를 발로 찼고, 륀체르는 고통에 욕지기를 뱉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오늘 밤을 기대하는 욕망을 숨기지 않았다.
“으…… 이 포악한 년. 어쨌든 정보 줬잖아…… 이대로 나랑 어디 좋은 데 갈까?”
“놀러 간단 말은 취소.”
마리는 그를 지나쳐 하이너의 팔짱을 꼈다. 하이너의 얼굴이 화를 내는 것도, 부끄러운 것도 아닌 모호한 느낌으로 붉어졌다. 마리가 하이너와 함께 뒤돌아서며 륀체르에게 말했다.
“생각해보니 애인과 밤을 함께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륀체르는 그 애인이 하이너라는 것을 짐작하고도 남았지만, 모른 척하고 싶었다.
“애인? 누군데? 나보다 잘난 놈인가?”
이렇게 물어서 호위 기사란 녀석의 자존심을 한 번 깔아뭉개는 것도 재미있으니까.
그런데 마리가 잠시 걸음을 멈추곤 뒤돌아보며 륀체르를 내려다보았다. 어쩐지 신랄해 보이는 미소가 그녀의 얼굴에 스쳐 지나갔다.
“현재까진 썩 잘난 녀석은 아니야. 인간으로 치자면 아직 뭐랄까, 아기거든. 하지만…….”
마리는 하이너를 얼굴을 올려다보며 눈을 빛냈다.
“내 애인은 훗날 길드장 당신보다 크게 될 녀석인 건 분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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