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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아가씨와 번뇌의 호위기사-30화 (30/122)

00030  4. 가볍게 빛나는 보석은 없다  =========================================================================

“네가?”

하이너는 침묵의 장에 상주한 정보상에게 찾아갔다. 마리가 그를 쪼르르 쫓아갔다.

“정보를 사려고 합니다.”

“말해보시오.”

“크래파 지역 검 동호회 모임 장소와 시간.”

“흐음.”

정보상은 바너에 떠도는 정보를 거의 파악했고, 신문에 나돌아다니는 드래곤의 인간변신체 즉 하이너의 모습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하이너가 마스크와 모자로 모습을 가려서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마침 딱 하나 들어온 정보가 있소만, 가격이…….”

흥정이 시도되었으나, 하이너는 단칼에 거부했다.

“실상 이런 정보는 정보 축에도 들지 않지. 내가 마음만 먹으면 크래파 광장 게시판에 가서도 얻을 수 있는 정보 아닙니까? 거기까지 가는 게 몹시 귀찮아서 그러니 1자일로 합시다.”

“으흠…….”

정보상은 탐탁지 않았지만, 하이너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어서 못 이기는 척하고 정보를 넘겼다. 1자일이라면 크래파 광장 게시판까지 마차로 세 번은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비용이었다.

마리는 그런 호위 기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나한테 말해달라고 하면 되지. 왜?’

마리는 하이너에게 따지려고 다가갔다. 그러나 정보를 얻은 하이너는 아가씨와는 말도 섞기 싫다는 뒤 돌아보지 않고 침묵의 장을 나섰다.

기분이 상한 마리는 볼을 잔뜩 부풀리며 팩 돌아섰다.

‘흥! 너 같은 무뚝뚝한 남자가 가서 정보를 얻으려 하면 그자들이 퍽 잘 가르쳐주겠다!…… 몰래 따라가 볼까?’

마리는 마리아를 불러 같이 나가기로 했다.

***

그 시각 마리아는 루돌프와 함께 여관 측에서 제공한 간식을 먹었다. 마리아는 언젠가 주인 아가씨와 함께 영원의 봄에서 고급 과자를 대접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경험한 쿠키 맛에 반하여 이렇게 종종 인간의 간식을 즐기게 되었다.

루돌프는 과자를 오도독 오도독 씹고 삼키는 마리아를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

“배고팠나 봐요? 많이 드세요.”

“…….”

‘정말 보면 볼수록 귀여운 누나네.’

루돌프는 선홍빛 무서운 눈동자의 마리아 그로스를 처음에는 이상하고 특이하다고 느꼈으나 이레 동안 함께 지내다 보니 그녀의 성격이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점점 마음을 열었다. 소년은 마리아에게 가장 맛이 좋은 쿠키를 골라 건네며 수다를 떨어댔다.

화젯거리는 주로 고향의 이야기였다. 스승과 함께 있을 땐 입도 꿈쩍하지 않던 이 소년은 희한하게도 마리아 그로스라는 미소녀의 앞에서는 수다쟁이로 변하곤 했다.

“오를린에도 종종 눈꽃이 피곤하거든요. 눈꽃 씨앗이 하늘에서 내리는 걸 본 적이 있어요? 그건 정말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워요. 신이 세상에 요정가루를 뿌린 것 같다니까요. 저기, 언제… 언제 한 번 고향으로 함께 돌아가는 날이 온다면 꼭 같이 보고 싶…….”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마리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인 아가씨 마리가 함께 밖에 나가자고 메시지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루돌프는 혹여 자기 수다가 마리아에게 너무 지겹게 들린 건 아닌가 걱정했다.

“앗, 죄송해요! 제 이야기가 지루하죠?”

마리아는 예의 그 인형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어디 가세요?”

“…….”

“이제 간식은 다 먹은 거예요?”

“…….”

마리아는 언제나 그렇듯 침묵했다. 루돌프는 그녀에게서 대답 듣는 것을 금세 포기했다. 하긴, 이 누나가 언제 사람의 말을 한 적이 있었던가. 악당 소탕 작전을 하는 위급한 상황에도 대화다운 대화를 해본 적이 없다. 언제나 소년 자신만 일방적으로 수다를 떨어댔다. 루돌프는 객실 밖으로 나가는 마리아의 뒷모습을 아쉬움이 가득한 눈으로 보았다.

‘나도 누나 따라가고 싶은데. 에이, 됐다. 그냥 책이나 봐야지.’

최근 기사님의 상처를 아물게 해준다고 약학, 의학 다방면의 공부를 했다. 이 공부는 매우 중요하다. 악당 소탕 작전에 참가하고 기사님의 몸을 고쳐주면 아가씨께서 꽤 많은 급여를 주셨기 때문이다. (정의로운 일에 참가하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애당초 이 여행의 목적이 무엇인가. 드래곤 링클을 사서 스승님께 되돌려주는 것! 그러기 위해서라면 돈 모으기는 필수다! 루돌프는 이 모임의 일원으로 지내면서 앞으로 드래곤 링클을 살 정도로 큰돈을 벌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다른 허드렛일보다 큰돈을 버는 건 사실이라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먼 훗날을 위해서라도 의학은 배워두는 것이 좋아 부지런히 공부할 생각이었다.

기초 의학서를 펴들던 루돌프는 문득 고향의 스승님 한스 레 하인첼을 떠올렸다. 술과 사람을 좋아하는 스승님은 여전히 오를린에서 밤마다 주정뱅이들과 어울려 지낼 게 분명하리라.

‘잘 계시나….’

***

바너의 수도 크래파.

영원의 봄.

흰 눈이 가득 내려앉은 지금 영원의 봄은 늘 그래 왔듯 인조 식물로 화려한 색깔을 자랑했다. 륀체르는 어젯밤 인조 식물 곳곳에 그윽한 자연의 향기를 내는 향수를 뿌리고 먼지를 닦는 등 원예(?) 활동을 하다가 잠들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챙 모자를 쓰고 여행자 차림으로 크래파의 밤거리를 다니면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살피고 겸사겸사 창녀들 가슴 만지며 노는 것을 일과의 마지막으로 했다.

그런데 이젠 달라졌다. 최근, 그러니까 오를린에서 어여쁘고 입이 거친 아가씨가 온 뒤로는 말이다. 저녁마다 아가씨와 비밀 정원에서 티타임을 즐기거나 영원의 봄 곳곳을 구경하게 해주며 이런저런 정보를 주고 대화 나누는 것에 재미가 붙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알게 된 게 있었다. 오를린 출신 금발 아가씨 마리니시네의 진정한 모습에 관하여!

처음에는 백치에다 무능하고 말괄량이일 뿐만 아니라 바람둥이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인상이 달라졌다. 가끔 얕은 지식수준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그 모습이 ‘일부러 연기하는 건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유식함을 자랑할 때가 있었다. 특히 점성술, 천문학, 마법, 연금술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그러했다. 그리고 아주 무능력한 것도 아니었다. 뒷조사를 시킨 사람에게 전해 듣기론, 악질 장인 길드 건물을 박살 내고 강간범 패거리를 벌하고 인신매매를 하는 이들을 혼내주는 등 모든 작전에서 그녀의 소소한 공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게다가 시골 아가씨 출신이 무려 드래곤을 호위 기사로 부리고 있으니 그 자체로 대단하지 않은가? 그 내막이야 어찌 된 것인지 알 수 없어도 가장 강력한 힘을 휘두르는 생물을 종으로 부리는 것은 인정해줘야 할 점이다. 듣자하니 드래곤이자 호위 기사의 성격이 보통 까칠한 게 아니라던데 말이다.

여러모로 그녀가 충실히 해준 덕택에 지금 바너는 대외적으로 ‘드래곤에게 시달리는 힘든 도시’로 알려졌다. 그 결과 자신은 황태자가 지시한 작전-오슬의 수인족을 움직여 로젠플라드를 침략하는 것-을 못한다고 하소연하듯 배짱을 부릴 수 있었고, 정치적으로 곤란한 입장에서 벗어날 수도 있었다. 게다가 바너의 인간쓰레기도 청소하고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정말이지 마리니시네는 얼굴만 예쁜 게 아니라 능력까지 출중하여 미워할 구석이 없다. 기분파인 줄 알았는데 작전이 시작되면 계획에 따라 차분하게 움직일 줄 알았고, 떠도는 말처럼 바람둥이 같지도 않다. 자기 외모에 관해 하늘을 찌를 듯 자신감이 넘치고 그 미모를 미인계로 이용할 줄은 알지만, 특별히 남자들을 따로 후리거나 가지고 노는 것을 본 적은 없었으니 말이다. 물론 이 모든 평가가 단 이렛날 동안의 작전으로 파악된 것이라 조금 성급하단 느낌은 지울 수 없겠지.

중요한 건, 보면 볼수록 이 여자를 더 알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는 것이었다.

륀체르는 잠에서 깨어난 직후 내내 마리의 생각을 하며 히죽 웃었다. 그러다가 그가 여자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을 퍼부었다.

“빨고 싶은 가슴이라니까.”

인간을 평가하는 무수한 명예로운 말 중 하필이면 그러한 음탕한 말을 골라 쓴 륀체르는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집사에게 외출을 준비하라고 일렀다.

이번 외출은 검 동호회에 가기 위한 것이다. 이에 집사는 인조 플래티르콘(가장 강한 금속) 검을 챙겼다. 인조가 아닌 진검-플래티르콘 소재-또한 륀체르에게 차고 넘쳤지만, 그러한 검은 밤거리에 가지고 가려면 위험하다.

검을 챙기는 집사에게 갑자기 륀체르가 하나 더 지시했다.

“하나 더 챙겨.”

“예?”

“숙녀용으로.”

숙녀용 검을 하나 챙기라? 집사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오늘 마스터는 검 동호회 모임을 자기 소유의 식당에서 치르게 예약해두었다. 검 동호회엔 관심도 없는 사람이 갑자기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런 데다가 숙녀용 검을 준비하라는 것은…….

‘후후. 마스터께서 마리니시네 양에게 푹 빠지셨나 보군. 분명 그제도 어제도 만나셔놓고 오늘 이런 모임까지 주최하여 그 핑계로 또 만나시려고 하다니.’

검 동호회 모임은 명색만 그러할 뿐 필시 마스터의 청춘사업 장이 될 것이 분명했다. 검이 없는 마리니시네 아가씨에게 빌려주며 이런 저런 이야기꽃을 피우시겠지……. 그렇게 생각한 집사는 륀체르가 소유한 검 중 숙녀가 들고 다니기에 가볍고 좋은 디자인의 검을 골라 준비했다.

륀체르는 마차에 몸을 싣고 모임 장소에 갔다. 영원의 락(㦡)이라 이름 붙인 그 식당은 저녁 시간에 화려한 무대가 펼쳐지는 것으로 유명했다. 식당의 중앙 무대에서는 황도의 유명한 가수들이 와서 공연하는 일이 많았고, 때로는 음악을 곁들인 연극이 펼쳐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 이곳은 륀체르의 지시로 다른 공연단이나 손님을 받지 않고 검 동호회 사람들만 입장할 수 있다.

륀체르가 도착하기 전부터 그곳은 모든 준비가 철저히 되어있었다. 차분하고 세련된 음악이 흘렀고, 테이블 가득 일급 요리와 훌륭한 술들이 가득 찼다. 식당 가운데는 검술 대련을 위한 무대로 꾸며져 있었는데, 이는 실제로 대련을 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모임의 분위기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륀체르가 한눈에 보기에도 모임 회원 중 실제 대련 능력을 갖춘 이들은 많아 보이지 않았다. 하나같이 사치스러운 졸부의 차림을 하고선 수집물을 자랑하는 목적으로만 온 게 눈에 보일 정도이니…….

그런데 회원들 또한 륀체르를 그와 비슷한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그들은 바너의 실세란 자의 외모를 단번에 알아보고 저마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저기 우리 모임의 새로운 물주께서 오시는군.”

“갑자기 가입한 이유가 뭐지?”

“모르지. 어쨌거나 여자보다 예쁘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네. 바너를 삼킨 이라면 조금 더 독사 같이 생겼을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야.”

“얼굴만 예쁜가. 저 몸을 보라지. 남자 몸이 뭐 저리 날씬해? 저래서 검이나 제대로 들… 헉! 저것 좀 봐! 세상에! 저건 플래티르콘으로 만들어진 검집 아닌가? 그렇다면 검도 플래티르콘으로 만들었단 건데 저 무거운 걸 어찌 저리 가볍게 들지?”

회원들은 륀체르가 보기보다 힘이 좋은가보다 하고 있었지만, 실상 륀체르가 가지고 온 플래티르콘 검은 조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인조 검이었다. 륀체르는 장중의 회원들에게 정중히 인사하며 미소를 가장한 조소를 흘렸다.

‘명색이 검을 좋아한단 이들이 진짜랑 가짜도 구분하지 못하지? 얼간이들이라니까. 하지만 뭐… 상관없지.’

오늘 이 모임의 목적은 검에 관한 담소가 아니라 오를린의 마리니시네와의 담소였다. 회원들은 그저 들러리에 불과할 뿐이었다. 비밀 정원이나 영원의 봄에서 작전을 핑계로 대화를 하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한 번쯤은 이렇게 밖에서 그녀를 만날 핑계도 있어야 했다.

륀체르는 그녀가 올 때까지 여러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다. 개중엔 검 장인(장인조차도 플래티르콘 검이 가짜란 걸 알아보지 못했다.)도 있었는데, 검 장인은 바너의 리더 격인 륀체르를 붙잡고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아, 요새 정말 죽을 맛이지 말입니다…….”

검 장인의 주요 수입원은 장난감 검으로, 평범한 장난감 검은 아니었다. 그것은 값비싼 보석과 경량화 마법을 건 귀금속으로 만들었고 사는 사람도 주로 귀족들이었다. 귀족들이 그런 사치스러운 검을 사는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애완 인간으로 키우는 자그마한 인간-오슬의 수인족과 인간의 혼혈아-에게 장식도 하고 장난감도 줄 겸 그 고가의 검을 사 갔던 것이다. 일종의 귀족들에게만 부는 유행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바너에 드래곤이 나타나 애완 인간 공장을 불 질러버린 사건이 일어나버렸고, 그 결과 애완 인간 공급이 줄어들어 자연스럽게 장난감 검의 수요도 줄어들게 될 거란 예상이 나돌았다.

그러하다 보니 검 장인의 입장에선 갑자기 나타나 바너를 휘젓는 드래곤이 얄미운 존재가 아닐 수 없으리라. 검 장인은 륀체르에게 바너의 책임자나 마찬가지인 당신이 뭔가 수단을 취해야 할 거라며 우는소리를 해댔다. 지금 드래곤을 견제하고자 황도에서 마력기갑 부대원을 고작 두 명만 지원했는데, 그 두 명으로는 생색내기일 뿐이라며 부대 전원을 지원 요청해야한다고, 그렇게 해서라도 드래곤을 물리쳐야 한다며 열을 냈다.

조용히 듣던 륀체르는 정색하며 대답을 시작했다.

“이거, 이거, 도무지 장인인지 저질 상인인지 모를 발언을 하시는군요. 오히려 저는 당신과 달리 드래곤의 행보에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만…. 바너에서 몹쓸 놈들을 없애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드는 것은 훗날 바너의 상업 발전과도 이어지는 길이니까요. 또 그게 제국의 발전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제아무리 바너 장인, 수공예인들의 상업을 보호해야 하는 입장라고는 하나 인간의 길을 저버린 자들과의 거래까지 보호해야 할 의무는 없지요. 애완 인간이나 키우는 귀족들과의 거래는 예전부터 지양하려 그 방법을 모색 중에 있었습니다. 그러니 정 앞으로 매출이 걱정되신다면 다른 검을 만드는 데 주력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검 장인의 얼굴은 똥을 맞은 듯 굳어졌지만, 무려 바너의 영주보다 실 권력이 강한 륀체르의 앞이라서 입도 벙끗할 수 없었다. 대신 속으로만 구시렁거릴 뿐이었다.

‘흥! 제 아비가 얼마나 인간 같지도 않은 자들과 거래하고 모의하여 바너를 장악했는지 빤히 알면서 정의를 운운하는군. 제 놈도 역겨운 귀족 놈들과 거래는 더 많이 했으면서 말이지! 뭐, 하긴…… 자기도 어쩔 수 없으려나.’

큰 모임이 아니라서 슬쩍 말해봤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런 사소한 모임에서는 말이 더 쉽게 새어나가는 법이었다. 속으로는 얼마나 더러운 생각을 하든 겉으로는 깨끗하고 정의로워 보여야 하는 게 륀체르와 같은 이들의 역할 아닐까. 륀체르가 겉으로는 저렇게 굴어도 곧 드래곤을 몰아낼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며 검 장인은 자리를 먼저 파했다.

그렇게 모임이 약 한 시간 정도 이어지고 있었다. 마음에도 없는 자들과 말을 나눠야 하는 륀체르는 슬슬 지겨워졌다.

‘아니, 이 아가씨는 왜 아직 안 오는 거야?’

원래라면 한 시간 전에 와야 할 마리가 오지 않으니 무슨 일인가 싶었다. 갑자기 작전이 생겨 드래곤과 나선 건가? 아니면 이곳에 오는 중에 무슨 사고라도 당했나? 아니면 갑자기 백치 지수가 높아져 모임을 가야 한단 사실을 새까맣게 잊은 건……?

기다리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는 하인에게 시켜 그녀의 소식을 알아오게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직전, 저 구석의 한 남자에게 눈이 갔다. 건장한 체격에 점잖은 재킷을 입고서 사람들과 대화하는 남자인데, 짙은 눈썹과 수염이 인상적이었다. 수염만 아니면 더 젊어 보이고 반듯해 보이는 외모이거늘….

륀체르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만. 어디서 많이 봤는데?’

저 남자를 어디서 봤는가 하고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다 우연히 남자와 눈이 마주쳤고, 남자는 륀체르를 향해 눈인사했다. 그런데 눈인사가 비틀린 웃음으로 보이는 것은 착각일까? 느낌이 썩 좋지가 않았다. 금방이라도 눈빛으로 사람을 찔러죽일 것 같은 살기가 어려 보였다.

‘……아!’

뒤늦게야 륀체르는 남자의 정체를 기억해냈다. 바너의 신문에 몇 번 얼굴이 알려진 자, 바너의 악당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자, 오를린의 아가씨가 데리고 다니는 충실한 호위 기사…….

‘드래곤!’

륀체르의 노골적인 시선이 불편한 하이너는 매서운 눈빛으로 경고하고 있었다.

아는 체 해봐야 피차 좋을 것 없어, 라고.

============================ 작품 후기 ============================

허헛! 윈디 님 후원 쿠폰 감사합니다! 이 글을 봐주시고 추천해주시고 코멘트 달아주시는 분들도 모두 감사합니다! 제가 모 출판사에 중단편 원고를 내야 할 게 있어 당분간은 일일연재가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양해바랄게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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