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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아가씨와 번뇌의 호위기사-29화 (29/122)

00029  4. 가볍게 빛나는 보석은 없다  =========================================================================

“예?”

“간택은 처음부터 의미 없는 거 아니겠나.”

모든 것은 짜고 치기 위해 시작된 것이다. 간악한 할데바인이 제 일족의 여자를 황태자비로 올리려 할 때부터, 또한 자신이 오를린의 말괄량이 아가씨를 반려로 삼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간택연회는 피차 무의미했다.

비오르틴은 로테에게 몸조심을 당부하고 그곳을 떠났다. 내일 이곳에 황의가 들를 것이란 말도 빼놓지 않았다.

들뜬 로테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달거리가 없었어. 종종 늦긴 했지만….’

거듭된 정사로 몹시 피곤했으나 잠자지 않고 고향의 부모님께 편지를 썼다. 먼저, 드래곤을 타고 하늘로 날아 가버린 언니에 관해 유감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 자기가 드디어 황도에 온 목적이 달성되었다는 말로써 간택전의 결론을 암시했다. 곧 황도 구경을 하시게 될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황의에게 확실한 진단을 받기 전까진 이 편지를 고향에 보내지 않을 테지만, 지금 당장 들뜬 기분을 가라앉히는 덴 이런 글쓰기가 최고였다.

다 적고 나서는 렌에게 편지를 전했다. 그리고 따로 지시했다.

“오늘 쓴 향수, 몇 병 더 구해와. 구입처를 확실히 알아오면 더 좋고.”

어째서인지 렌이 난색을 보였다.

“왜 그러지?”

“그게요, 향수를 더 구해오는 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또한, 구입처도 알 수 없고요. 이런 말씀을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뭐라고? 설마…… 저번에 향수를 훔쳐서라도 구해오라고 했다고 진짜로 남의 향수를 훔쳤던 거니? 그래서 그런 거야?”

렌은 펄펄 뛰며 손사래 쳤다.

“그럴 리가요! 아가씨의 명예를 걸고 맹세코 그런 불명예스러운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어째서 감히 내게 불가능을 말하지?”

로테의 태도는 이미 황태자비가 된 듯 오만했다. 렌은 겨우 입을 뗐다.

“그야 오늘 아가씨께서 쓰신 향수가 바로 마리 아가씨께서 선물하신 향수이기 때문입니다.”

“언니가 줬다고? 언니가… 언니가 내게 언제 그런 선물을 주었지?”

렌은 동생이란 사람이 어찌 이리 무심할 수 있나 싶었다.

“황도로 떠나시기 전날 밤에 마리니시네 아가씨께서 주머니에 담아 주셨잖아요. 그때 분명 제가 보여드렸는데…….”

로테는 기억을 겨우 더듬었다. 황도로 떠나기 전날 밤이라. 그때 분명 가족, 친척들이 모두 모여 배웅과 이별의 말들을 주고받고 하였다. 모두 ‘로테 너는 황태자비가 될 것이고 또한, 제국의 황후도 될 것이다!’고 축복하였고 개중에 몇 명은 황도의 온갖 신기한 물건들을 부탁하기도 하는 등 시끌벅적했다. 그런 분위기에 애물단지 쌍둥이 언니의 술주정이 귀에 제대로 들릴 리는 없었다.

‘가만, 그랬지. 그날 언니가 술을 진탕 마시면서 내게 줄 거라곤 자기가 아끼던 물건밖에 없다고 하며 주머니 하나를 건넸지.’

솔직히 만지기도 싫은 낡고 지저분한 주머니였다. 주머니 안에 뭐가 들었는지도 관심이 없었다. 아마도 그 주머니 속에 오늘 쓴 향수가 들어있었던 모양이었다. 렌은 향수에 까다로운 아가씨 때문에 여기저기서 향수를 빌리고 빌리다 지쳐서 그 향수를 건넸을 테고.

참. 잊고 있었다. 당시 언니가 어떤 말을 했지…….

로테는 그 말이 떠올라 싸늘한 표정을 했다. 홑몸이 아닐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화를 내거나 분노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갑자기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니 혈압이 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못된 언니! 뭐? 배웅은 앞날이 밝은 사람한테만 하고 싶다고? 아무리 내가 자기 선물을 무시했다고 해도 그런 악담은 하는 거 아니잖아? 그러니 드래곤이 물어 가버리는 거야!’

회상에 회상을 거듭하다 보니 언니에 관한 씁쓸한 기억만 떠올랐다.

그러는 사이 하녀 렌은 여전히 곤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아주 작은 병에 들어있고 재료나 제조자도 표시되지 않은 향수라서 다시 구해오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아가씨께서 꼭 구해야 하신다면 제가 오를린에 전갈을 보내 마리 아가씨의 방을 샅샅이 뒤져달라고 해서…….”

“아, 됐어.”

로테는 잠이나 자기로 했다. 고향에 사람을 보내 언니 방을 뒤적거리는 유난을 떨면서까지 향수를 가지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까지 애쓰면서 황태자의 환심을 사야 할 이유도 이젠 사라지지 않았는가.

‘뭐가 걱정이야? 내 뱃속엔 비오르틴의 씨가 있다고!’

로테는 복중의 아이를 위해 최대한 심신을 안정할 수 있는 침향을 피우라고 지시하곤 잠이 들었다.

***

장인의 도시 바너.

수도 크래파.

대(大) 여관 침묵의 장.

하이너는 스무 살 평생을 살면서 요즘처럼 과로한 적이 없었다. 기사 시험을 준비한다고 검술을 연마할 때, 오를린 동양 무술 모임의 극기 훈련을 할 때, 동생의 병간호를 할 때, 아가씨가 사고를 쳐서 그 뒷수습을 한다고 여기저기 바삐 돌아다녔을 때 한 고생도 지금 고생에 비하면 모두 새 발의 피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바너의 악당들을 소탕하는 일.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물론 녀석들에 관한 정보를 얻는 건 쉬웠다. 정보는 륀체르가 전해주기도 했고, 아가씨께서 미인계를 이용하여 밤거리의 정보상들에게서 빼 오기도 했다. 작전 후 몸에 난 상처는 루돌프가 치료해주어서 편했다. 다들 곁에서 손을 합치니 전혀 힘들 게 없었다.

문제는 드래곤으로 변하여 작전지에 침투했을 때였다. 단지 머릿속으로는 덩치 큰 드래곤이 화염을 내뿜어 악당들을 통구이로 만드는 빤한 그림을 그렸지만, 실제 작전에선 공격 범위와 대상에 관해 엄청난 주의와 세심함이 요구되었기에 통구이가 불가능했다. 마구잡이로 공격해버리면 죄 없는 사람들마저 피해를 볼 위험이 있었다.

그런 이유로 본 작전 시에 아가씨와 루돌프를 투입했다. 자신이 작전지에 인간의 모습으로 침투해 녀석들을 골라잡아서 혼쭐을 내면, 그사이 마리와 루돌프는 죄 없는 사람 혹은 피해자를 선별해 마리아 그로스의 등에 태우거나 도망을 가게 했다.

그 뒤엔 건물에다가 악질 중의 악질, 정말 지상에서 사라져야 할 최악의 놈들만 따로 남겨두었다. 그리고 드래곤으로 변신하여 하늘로 떠올랐다. 드래곤으로서의 연기를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고성을 지르고 날갯짓을 몇 번을 하다가 건물 전체에 화염을 내뿜어 모두 파괴해 버렸다.

그러면 바너의 시민들은 그 모습을 마법영상구에 담아 제국 곳곳에 퍼뜨렸다. 그것으로 바너가 드래곤에 의해 쑥대밭이 된다는 증거는 만들어지는 셈이었다. 륀체르의 주문도 해결하고 바너를 정화하는 것 또한…….

그런 식으로 단 이렛날 만에 많은 일을 해냈다. 바너 전 지역의 인신매매단과 결탁한 경관청 간부가 운영하는 기예단 건물을 박살 내버렸고, 미남, 미녀로 박제품을 만들어 귀족들에게 파는 잔인한 장인들의 공동 작업실 또한 박살 내버렸다. 구원해준다며 여자들을 겁탈한 몹쓸 종교의 녀석들도 혼내주었다. 인간과 오슬의 수인족 사이에서 혼혈 아이를 낳게 하여 애완 인간으로 파는 놈들의 공장 또한 다시는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부수어버렸다.

그 덕분에 당분간은 악질의 놈들이 다시 활개를 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놈들에게 물건을 사간 귀족 놈들도 겁을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걸로 정의가 확립된 것일까?

하이너는 자신할 수 없었다. 작전을 마치고 륀체르가 제공한 장소인 침묵의 장에서 몸을 치료하고 휴식하다 보면 끝도 없는 찝찝한 기분에 시달려야 했다. 오늘 일 중 실수는 없었나? 죽을 만큼 죄지은 사람이 아닌데도 죽여버린 건 아닐까? 애당초 사람이 사람을 죽음으로써 단죄하는 게 옳은가?……. 그뿐만 아니라 변신 시에 수반되는 어마어마한 고통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아 괴로웠다.

물론 이런 속내를 드러내거나 누굴(가령 아가씨를) 원망하진 않았다. 작전을 시작하기 전에는 아가씨께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며 싫은 척했으나, 한 번 하기로 한 이상 그런 구시렁거리는 짓은 꼴사나웠다. 그래서 회의감이 들 때마다 루돌프에게 수면제를 빌려 잠을 자곤 했다.

어제도 초저녁 작전 후에 약을 먹고 잠이 들었다. 깨어나 보니 아침이었다. 침실은 루돌프와 함께 쓰고 있었는데 루돌프는 곁에 없고 아가씨가 있었다. 아가씨는 검은 가발을 쓰고 입술을 새빨갛게 칠해놓았다. 게다가 입은 옷은 이런 겨울엔 입기 불편해 보이는 짧은 길이의 관능적인 드레스였다.

어디 가려는 걸까. 설마 또 저런 차림으로 바너의 정보상들이 우글거리는 곳에 가서 미인계를 써 못된 놈들의 정보를 사오려는 것일까? 자꾸 미인계만 쓰면 오를린 영주님의 귀에 들어가게 될 거라고 그렇게 주의를 드렸는데…….

그런데 무엇이 그리 찾고 싶은지, 아가씨는 서랍 여기저기를 여닫고 있었다.

하이너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그의 턱에 난 수염만큼이나 까칠한 말투로 물었다.

“아침부터 뭘 찾길래 이리 시끄럽게 하십니까?”

“으응, 일어났어?”

“일어났으니 이렇게 묻잖습니까.”

“아침마다 까칠하네, 하이너는… 아니, 요새는 밤낮으로 까칠한 건가?”

하이너는 잠시 얼굴을 붉혔다. 티 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아가씨도 요사이 호위 기사의 번뇌를 눈치챈 모양이었다. 화제를 돌릴 필요가 있었다.

“뭘 찾으시느냐고 물었습니다만.”

“마리티오르.”

마리티오르는 하이너가 기사 시험을 준비할 때부터 소유한 검의 이름이었다. 검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황제 아니면 영웅담의 용사나 고명한 기사들만의 취미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시골 기사 연습생에 불과했던 하이너가 그 자신의 검에 구태여 이름을 붙인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오직 하이너 형제만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형, 이게 형이 쓸 검이야? 아주 멋지다! 제복을 입고 이 검을 휘두를 형 모습이 벌써 기대돼! 내가 이 검의 이름을 붙여줄게! 마리티오르! 마리를 지키는 강철이란 뜻이야! 어때? 어울리지?’

마르틴은 영주님의 첫째 따님인 마리니시네 아가씨를 좋아하는 형을 은근슬쩍 놀린다고 그렇게 말했다. 당시만 해도 하이너는 형을 놀리면 못 쓴다고 했지만…….

마르틴의 죽음 이후, 마르틴이 지은 검명은 그대로 사용되었다. 어차피 그 후에 하이너가 정말로 마리의 호위 기사가 되었으니 퍽 어울리지 않는가.

마리를 지키는 강철이란 이름을 붙였지만, 그 검을 쓸 일은 별로 없었다. 실상 오를린에선 늘 시답잖은 일들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곳 바너에 와선 몹쓸 놈들을 혼내준다고 종종 쓰긴 했지만.

그런 검을 지금 아가씨께서 찾고 있었다. 왜? 어디에 쓰려고? 검은 함부로 휘두르면 안 되는 물건인데?

…… 하지만 그런 의문보다 더 앞선 의문이 있었다.

하이너는 헛기침을 몇 번 어색하게 하다가 물었다.

“저기, 아가씨. 누가 가르쳐줬습니까?”

“응, 뭐가?”

“제… 검의 이름…… 말입니다.”

그러자 마리는 청록색 눈을 깜빡이며 무슨 당연한 질문을 하느냐는 듯 되받아쳤다.

“그야 네 검이니까? 아니야?”

“예?”

“너는 나의 호위 기사잖아? 나를 지키는 사람이니까, 네 검 또한 나를 지키는 데 쓰는 거고. 그래서 내가 마음대로 마리티오르(마리를 지키는 강철)라고 부른 건데? 왜?”

하이너는 정말 아가씨다운 발상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발상이 정답이라 기분이 묘해졌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마리는 하이너의 곁에 앉아서 불만인 양 물었다.

“혹시 내가 지은 검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아니면 검 이름이 원래 따로 있었던 거야?”

“따로 있기는요.”

“마리티오르라는 검명, 참 마음에 들지? 응?”

“…….”

“응응?”

마음에 들고 말 것도 없이 처음부터 마리티오르라는 이름이 있었다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는 게 영 쑥스러운 하이너는 고개를 딴 데로 돌리며 대답을 피했다. 마리는 그런 호위 기사를 보며 재미있다는 듯 웃다가 다시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사이 하이너는 침대 매트 아래로 손을 내리고 있었다. 최근 검을 자주 쓰면서 검과 한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잘 때도 이렇게 곁에 두고 잤다. 아가씨가 원하시니 검을 드려야겠는데, 그 전에 이유는 알아야 했다.

“제 검으로는 뭘 하실 생각입니까?”

“응. 정보를 사러 가는 데 필요해.”

하이너는 기가 차서 마리를 보았다. 정보를 사러 가려면 돈이나 미인계가 필요하지, 어째서 남의 검이 필요한가? 륀체르가 돈을 안 주나? 그래서 남의 검을 팔아 써야 할 정도인가?

“아가씨! 기사의 검을 멋대로 팔려고 하시다니요. 제정신입니까?”

“앙? 팔다니? 그럴 생각 없는데?”

“그럼 어째서 정보를 사러 가는 데 제 검이 필요한 겁니까?”

마리는 이유를 설명했다.

오늘 얻어야 할 정보는 마검 제조장인 사괴탄에 관한 정보다. 사괴탄은 평소 검 쓰는 데 능력이 뛰어난 자의 영혼을 빼내어 제가 만드는 검에 강제로 봉인해버린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 소문은 단지 소문에 그치는 게 아니었다. 이미 ‘마검 제조장인’이란 호칭이 사실을 말해주지 않는가? 그가 제조한 검이 지능을 가지고 사람을 벤다는 제보가 바너를 포함 제국 전역에서 속출했다.

그러한 이유로 륀체르는 마리에게 사괴탄과 사괴탄의 제조장을 없애라고 부탁해두었다. 마리는 일단 검 동호회부터 다니면서 검을 좀 다룬다 하는 이들과 어울려 지내며 사괴탄의 꼬리를 밟을 예정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검을 지니고 가는 것은 필수라 할 수 있었다.

사정을 들은 하이너는 마리티오르를 빼내지 않고 더욱 깊숙이 넣었다. 지금 들은 이유라면 절대 마리티오르를 빌려줄 수 없었다.

“미안하지만 빌려드릴 순 없을 것 같군요.”

“어째서?”

어째서냐고? 정녕 몰라서 묻는가? 사괴탄이라는 무시무시한 작자의 정보를 그런 식으로 확인한다는 것부터가 틀렸다. 일단 검 동호회엔 검을 잘 쓰는 이들이 오지 않는다. 그것은 시골 오를린에서도 마찬가지고 이런 장인의 도시 바너에서도 마찬가지다. 검에 능력이 있는 자들이 있다면 황도 로귀하르트에서 정식 기사나 병사가 될 테지, 뭐하러 이런 장인의 도시에 있겠는가? 아마도 검 동호회에서는 비싼 검을 과시하려는 졸부들 아니면 그저 수집이 취미인 자들만 모여들 뿐일 것이다.

…… 물론 비싼 검을 과시하려는 졸부들에게서 마검에 관한 정보를 얻고 덩달아 사괴탄의 정보도 얻을 수 있겠지만…….

하이너는 그럴 가능성을 생각하기 싫었다.

그냥 싫었다.

하이너는 아가씨의 딱 붙는 드레스를 못마땅한 듯 보았다.

‘남자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에서 저런 야한 차림으로 가다니, 제정신인가? 아무리 미인계가 효과적이라 하지만 아가씨께서는 너무 위기감이 없군.’

만에 하나 흉흉한 심보를 가진 녀석이 어디 데리고 가서 나쁜 짓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니 절대로 마리티오르를 빌려줄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딴 정보 수집 작전을 세울 시간에 황도에 가서 제국 기사들을 상대로 수소문하는 게 훨씬 빠르고 낫다고 큰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일이 커질 것 같아서 참았다.

그런 마음도 모르고 마리는 호위 기사의 앞으로 쫑쫑 걸어와 연달아 물어댔다.

“어째서 안 빌려주는데? 응?”

‘안 빌려주는 게 아니라 못 빌려주는 거라고, 이 답답한 아가씨야!’

“왜 대답을 안 해? 내가 검 상하게 할까 봐 겁나서 안 주는 거야?”

‘검이 상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위험에 처할지도 모른다고!’

“자꾸 이런 식으로 치사하게 나올 거야?”

마리는 끝까지 대답하지 않는 호위 기사가 답답하여 돌아서며 외쳤다.

“흥! 주기 싫으면 그만두라지! 네가 빌려주든 말든 나는 동호회에 나가서 그들과 어울릴 필요가 있다고. 정보가 나온다는 가능성을 무시할 순 없잖아?”

하이너는 이럴 때만 세심해지는 아가씨가 미웠다.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퍽 큰 가능성이겠습니다……, 그래서 뭘 들고 가실 겁니까? 과도? 손톱칼? 눈썹칼?”

“검은 내 친구 륀체르에게도 차고 넘쳤어!”

그 순간 하이너는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불쾌감에 휩싸여 눈이 돌아가는 걸 느꼈다. 그는 마리의 손목을 거칠게 잡았다. 비웃음이 머물렀던 그의 눈빛은 돌연 사납게 변해버렸다.

“놔! 영원의 봄에 갈 거야!”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뭐?”

하이너는 마리티오르를 빼 들고 침대 밖으로 나가 거울 앞에 섰다. 변복이 시작되었다. 그는 외출할 때처럼 마스크와 모자, 재킷을 갖춰 입었다. 대체 어딜 가려고 그러는 걸까. 마리는 마리티오르를 검집에 넣는 그에게 물었다.

“뭐해?”

하이너가 모자를 더욱 깊이 쓰고 객실을 나서며 대답했다.

“검 동호회, 제가 갑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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