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8 4. 가볍게 빛나는 보석은 없다 =========================================================================
두개골이 깨진 건 아닐까 하는 염려가 들 정도로 너무 아팠다. 머리 위에서 종달새들이 별사탕을 뿌리며 뱅글뱅글 도는 것 같았지만, 지금 이렇게 해롱거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아가씨께서 위험에 처했으니 구해줘야 한다.
“앙, 하이너! 아! 아!”
루돌프는 비틀거리며 침대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다.
“아가씨를 구해야…!”
소년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는 그때였다. 마리아가 소년의 옷자락을 잡았다. 루돌프는 자기의 길을 막는 마리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놔요! 어째서……?”
어째서 막는 걸까. 마리니시네 아가씨의 우는 듯 혹은 앓는 듯한 소리가 자꾸 들려서 너무 불안한데, 이 진줏빛 머리카락의 누나는 어떤 동요도 하지 않는다. 대관절 밖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무슨 위기가 닥쳤는지, 궁금하지도 않은 건가? 마리아는 나가지 말라고 고개만 가로젓고 있을 뿐이었다.
루돌프는 속이 타서 설명했다.
“저기 지금 마리니시네 아가씨께서 저런 소리를 내시는데…….”
마리아는 낮게 한숨 쉬더니 다시 한 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절대 루돌프를 놔주지 않겠다는 듯 옷자락을 더욱 세게 잡았다.
“아가씨를 구해야 하는데…….”
마리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마리아는 연속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미간을 팰 정도로 인상을 찌푸리며 노려보았다. 사람의 눈이 아닌 듯 시붉은 빛을 발하는 눈동자를 마주한 루돌프는 그만 얼어버렸다.
‘이 누나, 좀 이상해. 아니! 많이 이상해!’
“그, 그냥 잘게요. 놔 주세요.”
그제야 마리아는 옷자락을 놓아주었다. 루돌프는 몹시 찜찜한 기분으로 다시 사다리를 올라탔다. 위험한 사건이 일어나는 것 같은데 붉은 눈동자의 누나 때문에 겁을 먹고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이 상황이 싫다. 여전히 바깥에선 자꾸만 알 수 없는 신음이 새어들어 왔다.
“으아앙…… 더 위에, 아앗…… 아아!”
침대에 누운 루돌프의 표정이 더욱 심각해졌다. 마리니시네 아가씨는 대체 뭘 하시는 걸까. 어딜 다치신 걸까. 설마하니 기사님이 괴롭히시는 건가? 착하고 정의로운 기사님이 다른 사람을, 그것도 모시는 아가씨를 때리실 리는 없어!
“앙, 아아! 앗!”
하지만… 역시나 지금 저 소리는 아가씨께서 아파하는 소리잖아. 안 돼. 기사님이 아가씨께 그래서는 안 되는데. 정말이지 어른들의 일은 참 알 수가 없어. 신분이 낮은 기사님께서 아가씨를 저리 대하시다니…….
소년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신음이 작게 줄어들 즈음에야 하품했다. 기사님을 치료하느라 며칠 신경을 많이 쓴 탓일까. 결국에는 잠을 이기지 못해 꿈나라로 갔다.
***
황도 로귀하르트.
황태자의 야울 궁.
밤하늘을 수놓은 화려한 환형 마법들이 이제는 한층 줄어들었다. 궁 관현악단이 밤낮으로 연주하는 곡들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거대한 홀에 매일 같이 등장하던 사람들도 발걸음이 뜸해 썰렁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연회 기간을 장식하던 그 모든 것들이 사라지니 황태자비 간택연회의 무용함과 무의미함을 알리는 듯했다.
황태자의 눈을 사로잡고 더불어 이 간택 연회를 종료시킨 것이나 다름없는 존재, 오를린의 아가씨 로테의 침실에선 지금 뜨거운 정사가 한창이었다. 꽤 많은 날 동안 황태자에게서 쾌락을 배우고 알아간 로테는 지금 연신 달콤한 신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아, 전하….”
로테는 품에 안긴 남자의 암갈색 머리카락을 헤집으며 온몸이 짜릿하게 저리는 기분을 느꼈다. 비오르틴은 꽃향기에 취한 나비처럼 로테의 목을 음미했다.
오늘 그는 평소와 달랐다. 왠지 모르게 짓궂고 거친 방식으로 그녀를 안던 것과 달리 오늘은 안달이 나고 애틋해 하는 사람처럼 굴었다. 정말 좋아해서 어쩌질 못하겠다는 듯이 지극한 감정을 보였다.
그런 변화에 로테가 의아해하는 것도 잠시, 곧 이유가 밝혀졌다.
비오르틴이 로테의 어깨와 가슴 언저리에 뺨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너는 향수를 쓰지 않는 편이 좋아. 지금처럼 이렇게 아무것도 쓰지 않도록 해.”
“전하….”
로테는 사실 향수를 쓰지 않는 게 아니었다. 렌에게 얻어오게 한 향수를 쓰고 있었다. 그 향수는 성분도, 재료의 원산지도 알 수 없었다. 달콤하고 상큼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풋내가 나는 게 조금 정제되지 않은 거친 느낌이었다. 깊은 산골짜기나 들판 야생화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그런 향이었다.
아마도 황태자의 취향이 그런 것이리라. 그간 온갖 향수로 황태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애썼던 로테는 비로소 화살로 과녁을 맞힌 느낌이었다.
‘렌에게 그 향수를 더 가져오라고 해야겠어!’
비오르틴은 향기에 취해 그녀의 드레스 속으로 파고들었다. 실오라기 하나 가리지 않은 은밀한 부위를 마주한 비오르틴의 음울한 회색 눈동자에 붉은 정염이 일었다. 침소에서든 연회장에서든 속옷을 입지 말라고 지시한 적이 있었다. 과연 지시대로 잘 따라주고 있었다.
그는 살 오른 허벅지를 양쪽으로 벌렸다. 그리고 홀린 듯이 사타구니 안쪽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보드라운 수풀에 코를 묻고 혀끝에 힘을 주어 습한 살결을 몇 번이고 핥았다. 드레스 너머로 로테의 손이 내려와 감히 그의 머리를 붙잡고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아아, 전하…!”
참을 수 없이 짜릿한 느낌에 몸을 떠는 것도 잠시, 갑자기 불쑥 침범한 살덩이에 로테가 숨을 급히 들이마셨다. 몸 안을 휘젓고 간질간질한 쾌감을 선사하는 게 황태자의 기다란 손가락이란 것을 안 그녀는 자지러지기 시작했다.
“전하, 그렇게 하시면 너무, 앗… 읏, 응!”
비오르틴은 그녀의 쾌감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만족을 위해 움직였다. 코로는 중독성 있는 이 여인의 무향(無香)을 흠뻑 들이마시고, 혀로는 벌게진 살구슬을 힘주어 꾹꾹 눌렀으며, 입술로는 얇은 꽃술에 키스했다. 손가락은 끊임없이 내벽을 괴롭혀 로테를 울먹이게 했다.
그녀가 절정에 다다르자 비오르틴의 얼굴이 흠뻑 젖었다. 자신 또한 강하게 흥분해버린 그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로테의 두 다리를 벌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아!”
“걸리적거리는군.”
그는 평소 같으면 치맛자락이 여자의 얼굴을 가리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마구 움직였을 것이다,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치맛자락을 신경질적으로 내렸다. 그리고 땀으로 젖은 로테의 머리카락을 치우고 그녀의 얼굴을 꿰뚫듯 내려다보며 허리를 처박아댔다. 다른 때보다 로테의 감도가 더욱 좋은 듯했다.
“윽, 아, 앙! 아, 전하! 앗!”
처음엔 어리숙하고 부끄러워만 하던 그녀가 이제는 적극적으로 쾌락을 좇을 줄 알았다. 비오르틴의 눈에 제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 두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으면서 어떻게든 그를 더 삼키려고 애를 썼다.
“흐우… 하아.”
그녀의 안은 남자를 쉼 없이 조이고 빨아들이고 있었다. 비오르틴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며 낮게 욕지기를 뱉다가 갑자기 몸을 빼냈다. 연달아 치닫던 쾌감이 뚝 끊기자 로테가 아쉬움의 탄성을 흘렸고, 비오르틴은 그 반응에 한쪽 입가를 올려 웃었다.
“안달 내지 마라. 더 좋은 걸 줄 테니.”
곧 로테의 몸이 뒤로 돌려졌다. 짐승처럼 엎드린 채 삽입당한로테의 엉덩이는 부르르 떨고 있었다. 이런 자세는 가장 수치스럽지만 가장 잘 느끼는 자세였다. 이미 비오르틴도 그 사실을 아는 듯했다. 그는 거침없이 제 것을 찔러 넣으며 로테의 쾌감점을 연신 자극해댔다.
“아, 아앙… 아, 아!”
유혹하는 듯 소리를 높이며 엉덩이를 조금씩 흔드는 모습에서 더는 시골 출신 영애의 새침함이나 정숙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반응이 비오르틴은 너무나 좋았다. 솔직하게 쾌락에 충실한 모습은 가식과 연기로 가득 찬 황궁에서는 더욱 눈에 띄고 값진 법이었다. 그는 보드라운 엉덩이를 세게 붙잡고 피를 낼 듯이 손톱을 깊게 새겨 넣으며 끊임없이 자신을 처박아댔다. 마치 발정하여 미쳐버린 짐승과 같은 모습이었다.
“윽, 좋군… 더 흔들어. 어서!”
그러기를 얼마쯤 지났을까. 수컷의 희뿌연 액체가 몇 방울 새어 나와 접합부를 적셨다. 그는 거칠게 숨을 고르며 로테의 등을 껴안았다. 그리고 로테의 가슴을 주물러대면서 절정을 참았다.
“후우.”
지금 이런 느낌이 좋았다. 여인의 안에 자신을 찔러 넣은 채, 쾌감을 쏟아내다 말고, 이렇게 참고 참으며 조임을 받는 느낌이 사정하는 것보다 훨씬 좋았다. 그는 자극이 세지 않게 천천히 움직이면서 로테의 귀를 이로 짓씹어 물었다.
“좋아….”
로테는 전율했다.
“하아, 저도, 저도 좋습니다. 전하… 아, 아아…….”
“전하라 부르지 말고 이름을 불러.”
“전하….”
“얼른.”
비오르틴은 로테의 가슴을 거칠게 움켜잡으며 보챘다. 그제야 로테는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비오르틴…….”
“크흐하!”
비오르틴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다시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 움직임에 맞춰 엉덩이를 들썩이는 로테가 마음에 들었다. 몸의 정이 마음의 정을 만드는 것일까? 아니. 이 경우는 반대다.
어린 시절, 오를린에서 만난 말괄량이 아가씨에게 마음의 정부터 들어버렸다. 이렇게 스무 살에 재회해서 상황에 쫓기듯 안았지만, 안는 시간이 자주 생기면서 다시 과거의 그때처럼 사이가 좋아지는 것 같다.
비오르틴의 손가락이 그녀의 입술 사이로 들어갔다.
“다시 불러봐, 내 이름.”
“전하….”
“얼른.”
“비오르틴…….”
비오르틴은 로테의 배를 커다란 손으로 감싸며 서로 한몸이 될 듯 거세게 부딪쳤다. 끅끅거리는 로테의 신음에서 더는 전하라는 호칭은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몇 번이나 황태자의 이름을 불렀고, 황태자 또한 로테의 이름을 불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비오르틴은 뜨거운 절정을 맞이했다. 그는 로테의 어깨에 이를 박아 넣으며 거칠고 진한 쾌감의 여운을 느끼다가 그 여운이 한풀 꺾일 때쯤 그녀의 뺨에 키스했다.
“아, 아, 하아…… 로테, 오늘처럼만 해.”
로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이 순간 떠올린 것은 렌에게 받은 향수였다. 앞으로 계속 사용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전하도 오늘처럼만 해주시면 좋겠어요.”
“하하하….”
또한 황태자의 취향이 얌전하고 조용한 여자가 아니라는 결론이 났다. 그는 연회장에서든 침대에서든 오늘처럼 솔직하게 표현하는 여자를 좋아한다. 로테는 과감히 손을 뒤로 뻗어 황태자의 목을 어루만졌다. 만족스러운 정사를 치러준 황태자를 칭찬하는 듯한 몸짓이었다. 그러자 황태자가 그녀의 목덜미 여기저기에 부드러운 키스를 시작했다. 이런 후희도 전에는 하지 않았던 행동이었다. 로테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간지럽습니다.”
그러자 비오르틴의 입술이 느려졌다. 그는 로테가 간지럽지 않게, 그러면서도 더욱 잘 느낄 수 있도록 혀를 지그시 누르며 그녀의 등 여기저기에 키스했다. 로테는 신기했다. 사랑이 흘러넘친단 느낌을 이토록 야한 순간에도 느낄 수 있는지? 그간 황태자가 거친 정사를 해왔던 것도 모두 사랑 때문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런 시간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너무… 좋아요.”
비오르틴은 호흡을 차분히 돌려놓기가 무섭게 다시 그녀의 안으로 파고들었다. 이번에는 처음보다 더욱 달콤한 분위기였다. 그는 로테의 얼굴을 돌려 입술에 키스하면서 천천히 제 것을 박아 넣으며 오랫동안 살결을 음미했다. 만개한 꽃이 향기를 뿜어내듯 침실 가득 야한 향으로 가득 찼다. 질척이는 소리와 키스하는 소리가 어지러이 떠돌며 그들은 수없이 하나가 되고 몇 번이나 동시에 쾌감을 맞이했다.
“…… 마음에 들었어.”
“저도요, 비오르틴.”
한참 후 그들은 한 욕조에 몸을 담그고 휴식했다. 기력과 체액을 너무나 많이 빼버린 탓일까. 비오르틴은 목이 마르다 했고, 로테는 밖에서 기다리는 렌에게 차를 준비하게 했다.
이윽고 렌은 그들에게 은은한 풀향이 나는 차를 한 잔씩 올렸다. 렌이 물러가기도 전에 비오르틴은 그 차를 입에 갖다 대었다. 딱 마시기 좋은 온도의 차를 한 모금 삼키려 했다가 그것을 로테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생각은 곧 행동이 되었다. 차를 머금은 그가 로테의 입술을 찾았다. 그 광경을 안 보는 척하면서도 흘끔 목격한 렌의 얼굴은 발갛게 물들고 말았다.
‘전하께선 정말이지 아가씨를 무척 좋아하시나 봐.’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황태자에게서 차를 받아 마시려던 로테가 갑자기 한 손으로 입을 막기 시작했다.
“우욱!”
자리에서 물러나려던 렌의 걸음이 멈추었다. 그녀를 사랑스럽게 지켜보던 황태자의 표정도 그대로 굳어버렸다.
“욱…… 죄송합니다. 그만 차향이 역하여.”
비오르틴은 렌에게 어찌 이런 몹쓸 차를 가져왔느냐고 호통치려고 했다. 그러려다가 갑자기 어떤 생각이 들었다.
“너…….”
이 헛구역질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렌 또한 황태자와 같은 생각인지 감동하여 손뼉을 치고 있었다.
“아가씨!”
언제나 음울해 보이던 황태자의 회색 눈동자에 형형한 빛이 스미기 시작했다. 그는 로테의 뺨을 만지며 그녀를 자랑스럽다는 듯 보았다.
“이제 의미 없는 연회는 그만둬도 되겠군.”
============================ 작품 후기 ============================
선작, 코멘트, 추천, 쿠폰 모두 감사합니다! 어느새 1권 분량을 썼더군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