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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아가씨와 번뇌의 호위기사-18화 (18/122)

00018  4. 가볍게 빛나는 보석은 없다  =========================================================================

로귀하르트 제국 황도 로귀하르트.

황태자의 야울 궁.

시각 마법을 드리운 하늘엔 형형색색의 도형들이 꽃들을 피웠고, 궁정 관현악단은 밤낮으로 화려하고 경쾌한 음악을 연주하여 흥을 돋우었다. 연회장에는 언제나 싱싱한 과일과 갓 만든 음식들과 귀한 술들이 가득했고, 가운데 무대에는 늘 재주꾼들의 묘기 부리기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 화려한 연회 분위기가 싸늘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어째서일까.

홀을 채우는 사람 수가 부족했다.

황태자비 간택연회가 한창인 지금 이를 즐기는 사람은 몇몇 무리로 한정되었다. 그중 할데바인 일족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연회장에 모습을 절대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황태자에 대한 반감을 표시했다.

황태자 비오르틴이 오를린의 로테아르카에게 노골적인 호의를 보이고 그녀와 동침하였단 말이 나도는 탓에 할데바인 일족의 콧대가 크게 꺾이고 말았다. 귀족 권력의 핵심인 그들이 조용하니 연회 분위기가 싸늘해진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친 할데바인 영지인 로젠플라드, 로샤타르트, 루앙에서 온 사람들은 이름만 거창하게 황태자비 후보의 일족이라 되어 있지만, 실은 그 핑계로 입궁하여 교역과 정치에서 실익을 취하려는 게 진짜 목적이었다. 적당히 들러리 노릇이나 하면서 먹이를 취해가려던 이들은 저들을 도와줄 할데바인 일족이 연회장에 나오기는커녕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소모적인 행동을 삼가고 조용히 사태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게 아니면 성격 급한 몇몇 이들끼리 뭉쳐 벌써 영지로 돌아가 버렸다.

결국, 매일 연회장에 등장하는 무리는 비오르틴이 선택한 후보인 로테아르카의 고향 사람들-오를린 일족, 오를린 출신 대상인, 귀족-이 주축을 이루었다. 물론 그들 외에도 두 무리가 더 있었다. 바로 제국이 지배하는 동양의 땅, 식민지 서한. 서한의 일족은 황태자비 자리를 노린 게 아니라 단지 공물의 성격으로 황태자비 후보 몇몇을 데리고 와 있었다. 그리고 ‘짐승들’이라고 비하 받는 불리는 수인족 오슬의 일족도 연회에 자리했다. 그저 궁정 연회의 시끌벅적한 구색 맞추기를 위해 나온다든가 마법 선진화된 황도 문물을 이참에 실컷 즐겨보자 하는 거지 근성으로 나오는 게 대부분이었다.

시골뜨기 오를린 사람들은 황족의 일족이 된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오를린이 바너보다 큰 도시가 될 거야!’, ‘오를린에서도 황실 정예 호위 마법사들이 파견 될 거야!’ 와 같은 뜬구름을 잡는 게 일상이었지만, 오랜 지배 생활을 받아 눈치가 백 단인 서한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황태자를 걱정하고 있었다. 물론 이 걱정은 그저 걱정에 그칠 뿐이었다. 서한인들은 황태자를 위한답시고 직접 나서서 일을 추진한다든가 가령 할데바인에 맞서서 함께 싸워줄 생각은 없었다. 제국의 오랜 식민 지배를 받은 그들은 그저 누구의 편에 붙는 게 좋은가 하는 저울질만 한창이었다.

“어젯밤에도 사자(황태자 비오르틴의 별명, 원래는 야울의 겁 없는 사자로 불린다.)가 촌뜨기(로테아르카)의 침소에 들렀다는군. 정말이지 다른 여자에겐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니까.”

“그렇잖아도 시녀들이 진정한 황실 로맨스가 꽃 피었다고 수선을 피워댑디다……, 그런데 할데바인 대공이 쥐죽은 듯 조용히 있는 게 이상하지 않소?”

“정말 조용히 있는 것일까? 황제가 연회에는 나오지도 않고 매일 로젠플라드 성회에 가서 기도하며 벌벌 떠는 것 좀 보라고. 할데바인이 뒤로는 무슨 협박을 하고 있다는 증거지. 어린 사자에게 자존심을 다쳤는데 대공이 가만히 있을 리가.”

“대체 사자는 겁이 없는 건지, 아니면 뭔가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가 보오?”

“푸하. 미인 아내를 얻을 수만 있다면야 그거 자체가 사내의 겁을 앗아가 버리지.”

“허, 이보시오. 모르는 소리 마시오. 그런 건 범부에 한해서란 말이지. 사자의 자리는 그리 가볍지 않단 걸 모르오? 힘을 키울 방법을 생각해도 모자랄 시간에 시골 여자에 정신을 놓는 건 한 제국을 다스릴 남자의 그릇이 아니지 않소?”

“그럼 제국을 다스릴 그릇이 아닌가 보지. 아, 이런 발언은 좀 위험하군. 그런데 수다는 여기까지 해야겠군. 촌뜨기 중 하나가 우릴 흘겨보고 있어.”

렌은 본의 아니게 서한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촌뜨기 중 하나’로 불리고야 말았다. 그녀는 키득거리는 서한인들에게 괜스레 주눅이 들어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왠지 도망치는 것 같은 이 느낌이 불쾌했다. 자신은 언젠간 황태자비의 시녀가 될 사람인데!

‘제국의 지배나 받는 저열한 족속들이 무례하단 말이지. 감히 날 보고 촌뜨기라고 해?’

렌은 구시렁거리며 로테아르카의 거처로 갔다.

최근 그곳은 거의 황태자 비오르틴과 로테의 정사의 장이 되어버렸다.

비오르틴은 연회 시작일 이후 거의 매일 밤 로테를 안으러 왔다. 하루의 일과처럼 되어버린 정사에 로테는 그가 단 하루만 오지 않아도 신경이 쓰였다. 무엇이 문제인가, 혹여 자기가 아름답지 못한 구석이 있었던가, 아니면 혹시 무슨 잘못을 하였나 하고 좌불안석할 정도였다. 그러다가 비오르틴이 다음 날 밤에 와서 아무렇지도 않게 손길을 뻗치면 그런 불안감이 다 무엇이냐는 듯 그에게 몸을 맡겼다.

그런 아가씨를 볼 때마다 렌은 불안했다. 뒷배가 없는 아가씨는 몸과 미모 그리고 행동으로써만 황태자의 환심을 사야 한다. 그러하니 황태자에게 순종적으로 구는 것을 어느 정도 이해했지만, 때론 이 연회의 마지막에 이르러 황태자비는 결국 로테 아가씨가 아니라 할데바인의 딸이 되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불길한 상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훗날 ‘로테아르카는 그저 순종적인 성 노예일 뿐이었다!’라는 말이 떠돌면 아가씨도 아가씨지만 자신이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어쩌지? 인간은 참 간사해. 벌써 이 생활에 적응해 버렸어. 정말이지 이 호화로운 궁을 떠나기가 싫어진다니까……. 그 때문이라도 아가씨는 반드시 황족이 되어야만 해!’

로테의 거처 입구엔 붉은 휘장이 사라져 있었다. 그것은 비오르틴이 정사를 끝내고 제 침소로 돌아갔다는 걸 의미했다. 렌은 안으로 들어가 시중을 들기 위해 그녀를 불렀다.

“아가씨, 주무셔요?”

침대를 가리는 두꺼운 커튼을 조심스럽게 걷자, 아가씨께서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끼는 게 보였다. 오늘은 또 황태자에게 무슨 소리를 들어서 저러시나. 저번처럼 황태자의 잠자리나 언행이 감당할 수 없으리만큼 거칠었던가. 추측하며 조심스럽게 아가씨의 어깨를 만졌다.

“아가씨?”

“에에 으으 아이으…….”

“고개를 들고 말씀하셔야 제가 알아듣죠.”

렌이 로테의 몸을 돌려 눕히자 눈물범벅의 얼굴이 드러났다. 로테는 쌍둥이 언니보다 더 친자매 같은 렌을 보고 바로 푸념했다.

“으흑, 대체 무슨 향기를 원하는 거냐고, 그 남자는!”

그제야 렌은 로테가 무엇 때문에 우는지 알 것 같았다.

향수.

최근 로테를 가장 괴롭히는 물건이었다. 황태자가 라일락 향수를 싫어한다는 이유로 장미 향수로 바꾼 적이 있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또 팬지 향수로 바꾸었다. 그러나 너무 달콤하기만 할 뿐 상큼한 느낌이 없는 것 같아 운향계 향수로 바꾸었고, 그것을 쓰자 그 다음날 황태자가 침소에 들리지 않았다. 로테는 향수를 또 다시 바꾸었다. 며칠 전엔 상쾌한 향기로 바꿔보자며 박하향을 쓰다가 엊그제에는 성숙한 매력을 느끼게 한다며 중년 노인들이나 쓴다는 온갖 나무 향으로 바꾸어보기까지 했다.

이쯤 되니 렌은 향기가 문제가 아니라 향수를 매일 바꿔대는 로테의 성격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까지 들었다.

하지만 자기가 로테라 한다 해도 황태자의 반응 하나하나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을까? 황태자비가 될 것인가 말 것인가 운명이 걸린 중요한 시기에 말이다.

렌은 조심스럽게 권유해 보았다.

“한 번쯤은 향수를 쓰지 않으시는 게 어떨까요?”

로테는 그게 말이냐 드래콘이냐 따지는 듯 펄펄 뛰었다.

“모르는 소리! 궁의 모든 여자가 뛰어난 장인의 향수를 쓰는데 어떻게 나만 안 쓸 수가 있어?”

렌은 로테가 황도의 유행에 너무 따른다고 생각했다. 그런 아가씨를 보고 있자면 의식도 하지 못하는 사이에 표정이 찌푸리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이상하게 되고 말았다.

“뭐지, 렌. 그 표정은?”

“그러니까 아가씨. 다들 뛰어난 장인의 향수를 쓰는 건 마찬가지라 이겁니다. 하지만 전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시라고요, 지겹지 않을까요? 코도 휴식을 취해야 하는 법인데.”

“그럴 수도 있겠지. 그래도 내 생각은 그게 아니야. 전하께서 내가 선택한 향수를 싫어하시는 데엔 분명 다른 이유가 있어.”

렌은 로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른 이유라니요?”

로테는 눈물을 훔치며 허공을 보았다. 분명 시선이 허공을 향했으나 그 눈동자는 누구를 노려보는 듯 미움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런 게 있어.”

시중이나 드는 렌과 같은 하녀에겐 해당하는 바 없지만, 각 영지와 주요 인물들, 정치, 경제, 문화에 대해 어느 정도 식견을 갖춘 로테에겐 향수 하나에 깃든 적들의 유치한 모의가 눈에 보이고 느껴지는 법이었다.

‘유치한 할데바인 족속들!’

이 모든 건 그들의 음모다.

본래 궁의 손님이 기존에 소유하던 물건을 가지고 입궁 생활을 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궁에서 지내다가 필요한 물건이 있어서 그것을 안으로 들이려 하면 관리인의 감시를 반드시 거쳐야만 한다.

제아무리 장인이 만든 질 좋은 향수가 들어온다고 해도 그것을 도중에 누군가가 바꿔치기하지 않으리란 법이 어디 있을까.

그러니까 궁의 권력을 장악한 할데바인 일족들이 말이다.

자신이 아무리 바너나 로샤타르트의 유명한 장인들의 향수를 주문했다 하여도, 그 향수가 싸구려 향수로 바뀔 수도 있다. 그 향수에 정신을 불안 초조하게 만드는 약이나 육체를 망가뜨리는 약이 섞였을 수도 있었다. 교묘하게 위장해버리면 ‘촌뜨기’ 자신으로서는 대관절 그 간악한 증거를 잡아낼 방도가 없었다.

‘분명 그들의 짓일 거야!’

이렇다 할 물증이 없다뿐이지 심증은 있다. 궁에 들어온 뒤로 몸이 편해지긴 했으나 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불안 초조하다. 그 어떤 일에도 잘 울지 않다가 오늘처럼 갑자기 눈물을 쏟은 것도 그 증거가 아닌가.

어쩌면 렌의 말대로 밖에서 들여온 향수를 쓰지 않아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향수가 꼭 밖에서 들여와야만 한다는 법이 있나?

“향수를 빼앗아.”

“예?”

“연회장에 가서 주정뱅이 여자들의 향수를 빼앗으란 말이야.”

궁으로 향수를 들여오는 데 문제가 있다면 궁 안에서 향수를 찾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었다.

“지금 저더러 도둑질하시라는 말씀……?”

로테는 지금 같아선 도둑질을 시켜서라도 황태자가 만족하는 향기를 갖고 싶었다. 출세에 눈이 멀어 미친 거라고? 천만에. 황태자가 향기에 너무 집착하기에 이런 것뿐이었다.

비오르틴은 첫날밤부터 ‘오를린의 향수가 형편없다.’고 말했고, ‘바람이 칼보다 더 강하다.’는 말도 했다. 칼은 향기를 자르지 못하지만 바람은 가능하단 게 그 이유였다. 그 후로도 ‘네 진짜 향기를 내보라.’거나 ‘너와 어울리는 향기를 쓰도록 하라.’거나 ‘원래 쓰던 싸구려 향수라도 좋으니 그걸 써보라.’는 등 향기에 집착하는 말들을 많이 했다. 향수든 무엇이든 그가 신경 쓰는 아주 사소한 부분이라도 제대로 만족시켜야만 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바보. 표현을 좀 알아들으라고. 적당히 친해진 뒤 빌리는 식으로 하란 말이지. 물론 말이 새어가지 않게 조심해야 하는 건 당연하고. 그게 궁정인의 기본이니까.”

렌은 난감한 표정이었다.

“빌리라… 고요?”

“그래. 그동안 친해진 여자들이 꽤 생겼다면서? 서한의 동양 정취 가득한 향도 좋고, 오슬의 야생화 향기도 좋아. 뭐든 모아 놔. 개중에 쓸 만한 게 있겠지. 그나저나 공기가 탁하군. 환기하도록 해.”

“예, 아가씨.”

렌은 창문을 열었다. 환기를 마치면 잠 시중을 들 생각이었다. 정사로 인해 더러워진 침구를 갈고, 따뜻한 수건으로 아가씨의 몸을 닦고, 아가씨의 헝클어진 머리 손질을 한 뒤, 화장품을 발라주고, 침향을 피워 재우는 등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창문이 열리자 로테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콧물을 훌쩍였다. 하늘에서 소리 없이 터지는 환형의 폭죽이 새까만 밤 바탕에 그 밝기와 색채가 더욱 선명해졌다. 곧 잠 시중을 받으며 자야 할 테지만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황태자를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그렇다. 향기에 집착하는 점도 의아했는데 그것보다 더 궁금증을 일으키는 게 하나 있었다.

‘과거의 나를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군단 말이지….’

황태자는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눈을 하면서도 종종 ‘과거의 너는 어떠했느냐?’고 묻곤 한다.

그럴 때면 별로 할 말이 없었다. 당신의 신부가 되기 위해 미모를 더욱 가꾸었고 혹시나 아버지가 황도에 갔다가 돌아오면 궁의 유행에 대해 시시콜콜 묻기 좋아했고, 궁정에서나 춘다는 온갖 춤을 유별나게 연습했으며, 귀족들 간의 권력 다툼을 여러 경로로 공부하며 황태자비로 살아남아야 할 방법을 예습하였다…… 와 같은 속이 훤히 보이는 대답을 할 수는 없잖은가.

그래서 기껏 나온 대답이란 게 산과 들판을 뛰어다니며 심신을 단련했고, 그러다 개구쟁이 소리를 들어서 독서와 악기 연습, 꽃 가꾸기 등에 취미를 붙이게 되었으며, 혼기가 지나고 나서는 영지의 오갈 곳 없는 가여운 아이들을 돌보아주었다는 적당한 거짓말들뿐이었다.

물론 그런 이야기를 할 때면 황태자는 지루해하는 기색이었다.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다른 여자가 아닌 오직 자신에게만 이토록 관심을 둔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노릇 아닌가.

“시트를 갈았습니다. 이제 몸을 깨끗이 해야겠어요. 아가씨. 오늘은 날이 추우니 탕 목욕은 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로테는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렌에게 몸을 맡겼다. 아름다운 몸에 흉한 멍들이 가득 있었다. 렌은 곤란한 얼굴로 한숨 쉬었다. 황태자의 과격한 정사 취향이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지만, 드레스를 입었을 때도 보이는 목덜미와 같은 부분에는 좀 자중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전하께선 대체 아가씨를 괴롭히시는 거야, 뭐하는 거야? 이건 체면의 문제도 되는데.’

넓은 방 한쪽엔 수조가 있었다. 언제나 뜨거운 습기를 내뿜어 가습기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식수 외 용도의 물을 공급하는 것으로, 황태자가 직접 내려준 방에만 있는 귀한 시설이었다. 그곳에서 물을 퍼 담아온 렌은 수건을 뜨겁게 적셔 로테의 몸 곳곳을 닦아주었다.

“아아, 좋군.”

“시원하시지요?”

“역시 렌이 최고야.”

신분이나 역할에 관해 큰 지각이 없고 그저 장난치기만을 좋아하는 어릴 적엔 서로의 몸을 닦아주곤 했지만, 열 살 이후부터 로테는 오로지 시중받는 것에만 익숙해졌다. 십 년 이상 몸을 맡겨온 이의 손이다 보니 언제나 편안하고 치유가 되는 느낌이다. 옷을 벗은 그대로 잠이 스륵 들려는 찰나, 갑자기 렌이 연회에서 들은 이야기를 기억하고 입을 열었다.

“저기 아가씨?”

“…… 응?”

“오늘 연회에 포르투바란 작자의 무리가 나타났는데요.”

“아, 매일 연회에 나타나 내 험담을 한다는 작자들?”

“이런 말씀을 드리긴 좀 그렇지만… 아가씨에 대해, 저기 그러니까 아가씨의 오를린 영지에서의 생활에 대해 말들이 많습니다.”

로테는 잠이 달아다는 걸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를린의 로테아르카에 대해 험담하길 좋아하는 작자들은 없는 말을 지어내는 데 천재인 수준으로 못된 짓을 일삼아왔다. 이번엔 또 무슨 소문을 퍼뜨렸을까. 백치에 말괄량이에 바람둥이라는 것까진 참았는데…….

“나보고 또 뭐라고들 하는데?”

“이런 말씀드리기 좀 그렇지만….”

“뜸 들이지 마!”

“드래곤에 사주하여 쌍둥이 언니를 없애버리고 그 언니 대신 황태자비 후보가 되었다는 가짜 후보란 소문이…… 예, 그런 소문들입니다.”

============================ 작품 후기 ============================

큰 애 작은 애 이야기 오가는 게 정신 사납진 않으시려나 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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