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6 4. 가볍게 빛나는 보석은 없다 =========================================================================
그런데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방안이 수증기가 가득 찬 것처럼 희뿌예지고 있었다. 욕실문을 통해서 나온 수증기가 이토록 안개처럼 희뿌옇고 따스하게 하지는 못할 텐데? 지금 곁에 마법을 사용하는 마리아 그로스가 있는 것도 아니고 대체 누가 이런 조화를 부리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하이너, 지금 공기 좀 이상하지 않아?”
공기를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자 초보 헤츨링(수분 열기 조절 마법 1급 마스터) 하이너는 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기껏 입은 외출복을 한 겹 한 겹 벗어냈다. 결코, 절대, 맹세코 아가씨와의 은밀한 일을 기대해서 벗는 게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이제부터 받을 마사지를 기대하고 준비하는 것뿐이었다.
혹시, 만에 하나, 천만분의 일의 확률로 아가씨의 마사지하는 손길이 이상야릇하게 변한다 해도 걱정은 없다. 그런 흥분에 휘말리지 않을 바위 같은 마음가짐이 되어 있고 행여나 아가씨의 손길이 그런 단단한 마음가짐을 부술 듯 음란하게 변한다 해도 뭐 어떤가. 아무리 흥분해도 체온 조절만 잘하면 등이 아프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러면 드래곤으로 변하는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럼 받아보겠습니다. 아가씨의 마사지.”
속옷 한 장만 걸치고서 침대에 엎드린 하이너를 보며 마리는 호오! 하고 작은 탄성을 질렀다. 수증기로 시야가 자욱한 때에 검은 머리카락을 등으로 길게 늘어뜨린 채 탄탄한 뒤태를 보이는 호위 기사의 몸은 여심을 홀리는 매력이 줄줄 흘러넘쳐 혼자 보기 아까웠다. 마리는 그 곁에 앉아 그의 머리카락을 걷어내고 목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너는 머리카락이 기적적으로 빨리 마르는 편이구나. 부러워.”
“으음.”
마리의 고운 손은 하이너의 넓고 탄탄한 어깨를 부드럽게 마찰하였다. 차갑고 단단한 살이 쇠와 같아 아무리 꾹꾹 눌러도 끄떡도 하지 않았다. 마리는 놀랐다.
“어쩜 이리 살이 단단하기도 한지.”
그리고 걱정도 약간 됐다. 이런 단단한 살과 비교해 자기 손길이 약하다고 하더라고 그게 연속적인 자극 즉, 흥분이 된다면….
“등은 어때? 아프지 않아?”
마리는 하이너의 어깨를 마사지 할 때 손을 참새의 종종 뛰는 발처럼 경쾌하게 움직여 두드렸다. 피식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대답이 돌아왔다.
“전혀 아프지 않습니다.”
두 손은 양 어깨로 뻗어 팔을 주무르고 팔꿈치를 꽉 죄다가 마지막엔 손등에 머물러 손가락 하나하나를 쭉 잡아 당겨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손바닥을 넓게 펴 골반을 따스하게 주무르고 있었다.
“드래콘 위에서 허리가 많이 아팠지?”
“뭡니까? 제가 노인도 아닌데. 그 편안한 안장 위에서 아플 리 있겠습니까?”
“하지만 잠든 내 등을 받쳐준다고 자세가 불편했을 텐데.”
두 손은 이제 엉덩이를 밀가루 반죽처럼 주물렀다. 속옷에 가려진 튼실한 가죽처럼 구김 없는 살을 힘주어 주무르다 보니 숨이 벅찼다. 그래도 어떻게든 제대로 마사지를 하여 차가운 호위 기사의 몸을 따스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후우, 이제 허벅지를 해볼까!”
마리는 자리를 옮겨 하이너의 한쪽 허벅지를 꽉꽉 주무르길 반복했다. 씻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방안을 가득 채우는 후텁지근한 수증기 때문인지 이마에 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어깨로 땀을 닦아내었다.
“허벅지가 너무 커서 하나만 주무르기도 벅차네. 헥헥.”
힘이 부친 아가씨의 숨소리가 귀엽게 들려 하이너는 웃고 말았다. 그런데 다른 쪽 허벅지로 손길이 옮겨갈 때쯤.
“헤헥… 헤에… 하아…….”
그 숨소리가 야릇하게 들리는 건 착각일까. 아가씨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본래 여자의 숨소리는 남자의 가슴에 불을 지피는 법이었다. 그것도 아가씨와 같은 미녀의 숨소리라면 더욱더.
“후우, 하아…….”
“아가씨, 부탁드리는데 그 입 좀 다무십시오.”
자꾸 들으니 아랫도리만 열기가 가득 차 아플 지경이었다.
그러나 마리는 그 말을 못들은 듯 종아리로 손길을 옮기고 있었다.
“하, 하아… 이 튼실한 종아리 좀 봐.”
“제발 그 입 좀… 아아.”
두 손이 종아리를 타고 내려 양 발목을 부드럽게 죄자 하이너는 느른한 숨소리를 뱉으며 만족을 표시했다.
그러나 마사지를 해주는 입장에선 전혀 만족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마리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상해. 전심전력으로 마사지를 해줘도 왜 계속 차가운 거야? 이제 돌아누워 볼래?”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던 하이너는 잠시 당황했다.
“아가씨, 그게….”
“응?”
“돌아눕기가 좀 그렇습니다만.”
“어째서?”
하이너는 신체 이상 증상-발기-을 설명하기가 무안하여 끄응 앓았다. 아가씨의 손길에 흥분한 자신을 모른 척, 애꿎은 핑계를 떠올리고 있었다.
‘여행하면서 방광을 비워둘 여유가 없었지. 그 때문일 뿐이다.’
눈치가 빠른 마리가 그의 등을 찰싹 치며 호호 웃었다.
“아이, 뭐. 흥분해서 텐트라도 친 거야? 그 나이엔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같은 나이면서 그런 말을 하는 아가씨의 모습이 하이너는 웃겼다. 마리가 억지로 몸을 돌아 눕히려 하자 하이너는 얼굴을 붉히며 순순히 돌아누워 주었다. 정말 마사지만 밤새도록 충실히 받으려 했는데 눈치 없이 일어선 성기가 야속했다.
그의 ‘텐트’를 본 마리는 히죽 웃으며 농담했다.
“호오. 오늘은 네 몸 중에서 이쪽만 드래곤이 되려나.”
“놀리지 마십시오!”
“어머! 놀리다니? 엄연히 칭찬인 걸.”
“누가 그런 칭찬 바란…… 으으.”
마리는 하이너의 몸 위로 올라타면서 목을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잔뜩 긴장한 호위 기사의 얼굴을 바로 위에서 감상하는 게 재미있었다.
“마사지하기엔 이런 자세가 편한 것 같아.”
“아가씨만 편하면 답니까?”
“흐응, 넌 대체 어디가 그렇게 불편한데?”
그런데 갑자기 마리의 몸을 감싼 수건이 힘없이 풀렸다. 그 탓에 그녀의 나신이 그대로 드러났다. 몽롱한 수증기 속에서 복숭앗빛을 반짝이는 몹시 아름다운 몸이었다. 금빛 머리칼에서 흘러내린 물이 풍만한 가슴 곡선을 타고 아랫배로 은밀하게 흘러내리는 것도 매혹적이었다.
하이너가 넋을 놓고 본다고 호흡을 멈추었을 때, 마리는 제 몸을 보고 너스레를 떨어댔다.
“어머, 몰라! 99.9 점짜리 가슴이 답답하다고 수건을 내쳐버리는군.”
그녀의 엉덩이와 하이너의 배 사이에 경계로 있던 수건 자락도 바닥에 흘러내리고 있었다.
‘뭐지, 이 싸구려 성애 소설 같은 상황 전개는?’
하이너는 이런 상황을 조소하고 있었으나 하체가 더욱 불끈 솟아오르는 증상에 대해선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가 흔들리는 풍만한 가슴을 보기가 민망하여 고개를 딴 데로 돌리자, 마리는 너무 노골적인가 혼잣말하며 수건을 집어 들었다. 역시 마사지를 하는 동안은 이 아름답고도 매혹적인 몸을 가리는 게 호위 기사를 위해서도 좋을 것 같아서 몸을 가릴 생각이었는데…….
사실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불끈불끈 하는 호위 기사의 복근이 그녀의 고간에 은밀한 자극을 가하고 있었다.
그래. 진정한 마사지라면 살과 살이 실오라기 하나 방해하지 않은 상태에서 순수하게 맞대어져야 좋다. 합리화한 그녀는 수건을 도로 내려버리고 하이너의 턱을 만지작거렸다. 황금빛 아미 아래 청록색 눈동자가 묘한 욕망을 웃음으로 녹여 빛내며 호위 기사를 유혹했다.
“이봐아, 하이너.”
“예?”
“다른 부위를 마사지해보는 건 어떨까?”
“…… 다른 부위라니요?”
마리는 하이너의 얼굴로 점점 다가갔다.
“가령 이 잘생긴 귓바퀴라든가.”
“예?…… 허읏!”
폭신하고 촉촉하게 귀를 감싸는 입술의 감촉이라니! 놀란 하이너는 희미한 신음을 흘렸다. 귓바퀴를 누군가에게 이런 식으로 접촉 당하는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 살면서 가장 신경 쓰지 않은 부위가 이토록 예민한 줄 누가 알았겠는가. 눈을 지그시 감은 그는 귓바퀴에서 턱, 턱에서 목덜미로 이어지는 입술의 느낌에 허우적거리다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팔을 파르르 떨었다.
‘젠장, 미치겠군.’
아가씨의 호흡과 접촉이 무슨 마법이나 된 듯 정신을 흩트리고 있었다.
‘잡고 싶다.’
가녀린 허리를 꽉 잡고 눕힌 뒤 충동이 이끄는 대로 날뛰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리드하는 대로 기다리기만 해도 기회(?)는 올지 모른단 생각에 그저 숨을 고르며 눈을 다시 뜰뿐이었다. 목 여기저기를 새가 모이 쪼듯 키스한 마리는 그와 눈 마주치고선 조금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아아, 말만 차가운 줄 알았더니 어쩜 이 살결마저 차가운 남자. 그런데도 어떻게 여기만 뜨거울 수 있는 거지?”
그녀의 손이 그의 몸에서 유일하게 뜨거운 부분을 속옷째로 쥐고 흔들며 꾸짖듯 물었다. 하이너는 마리가 성기를 장난스럽게 흔들 때마다 곤혹스러웠다. 마치 성기가 몸의 중심 펌프, 즉 심장으로 변한 것만 같았다. 그쪽에서 퍼지는 열기가 다른 몸까지 뜨겁게 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열 조절 주문을 걸어야 했다.
‘절대로 열이 온몸에 퍼져선 안 된다. 그러면 또 등이 아플 테고, 그렇게 되면 그 빌어먹을 드래곤이 될 테지.’
이런 와중에도 마리는 그의 속을 모르고 거듭 묻고 있었다.
“대답해 봐, 응? 어째서 여기만 이렇게 불처럼 뜨거울 수 있는 거야?”
“젠장.”
“욕?”
“아닙니다… 그냥. 살다 보니 거기만 뜨거워지는 날도 오더군요. 그런데 아가씨.”
“응?”
“마사지는 끝입니까?”
그 말은 마사지를 더 하지 않느냐는 재촉이나 마찬가지였다. 곧 죽어도 더 해달란 보챔을 하지 못하는 하이너는 그런 식으로 마리의 의사를 묻고 있었다.
당연히 마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정도로 마사지가 끝이라니. 그렇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아, 귓바퀴와 목덜미는 너무 예민한 것 같으니 차라리 여길 마사지할까 해.”
마리는 그렇게 말하면서 정작 가장 예민한 부위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가슴, 그것도 가운데를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물론 손이 아닌 입술을 사용함은 당연했다.
“맙소사, 읏… 그런 곳이 더 예민하단 걸… 아아, 알면서 그러시는 겁니까?”
“흐응….”
차디찬 가슴에 닿는 뜨거운 입김은 귓바퀴에 머물렀을 때보다 더욱 강렬하게 하이너의 정신을 흩트렸다. 단단히 힘을 준 혀와 입술이 희미한 색깔의 편평한 돌기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희롱하자 그는 몽환적인 착각에 빠져들었다. 방안을 장악한 수증기가 음란의 요정이 되어 천장을 빙글빙글 돌며 자신을 희롱하는 것 같았다. 어때? 수컷인 네가 이런 때에 흥분하고 발정하지 않고서 배기겠어? 하고 놀리듯.
흐흐흣, 헤헤… 하는 마리의 요정 같은 나른하고 부드러운 웃음소리는 그러한 꿈결 같은 착각에 불을 지피는 셈이었다.
“후우, 아가씨….”
“더 예민한 데를 마사지해볼까.”
마리는 속옷에 몸을 숨긴 채 위용을 과시하는 남성기로 고개를 내려 그것을 한 손으로 잡고 위아래로 훑었다. 슥, 스윽, 스윽 하는 소리가 감질을 냈다. 그것만으로도 굉장한 자극이라 하이너의 허리는 부들부들 떨리고야 말았다. 거친 숨을 고르며 정욕에 일그러지는 지금 이 표정이 아가씨에게 혹시 놀림감이 되는 건 아닐까? 그는 눈을 꼭 감고 어금니를 꽉 깨물며 표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다.
그가 그러면 그럴수록 마리는 더욱 그를 괴롭히고 싶었다.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속옷을 끌어내렸다. 물 향을 상큼하게 풍기는 남성기가 단단하게 튕기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한 성기의 끝을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슬슬 문지르며 입술을 댈 듯 가까이 가져갔다. 성기 끝에 맺힌 물방울에 웃음이 나왔다.
“또 뭔가를 질질 흘리네, 우리 하이너?”
“기분 탓입…….”
하이너는 말을 마저 마치지 못했다. 예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결국, 아가씨의 입술 속에 성기가 속절없이 삼켜져 버렸다. 입 밖으로 나오는 소리는 남자로서 내기 민망한 신음들뿐이었다.
“하읏……!”
마리는 하이너가 흘리는 맑고 투명한 액을 혀끝으로 스으윽 핥았다. 이질적인 맛이 혀 안에 서서히 감돌자 그것을 더 분석해보고 싶단 생각 아니 충동이 일었다. 거침없이 거세게 빨아들였다.
진정한 마사지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 작품 후기 ============================
캐릭터들의 진도는 굉장히 빠르고 그에 비해 이야기 전체의 전개는 굉장히 느리지만, 이 이야기는 어쨌거나 판타지(+로맨스) 모험물임을 다시 한 번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100편씩 모일 때 이용권 끊어서 보는 것도 좋으실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