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2 3. 꽃은 제단 아래로도 뿌리를 내린다 =========================================================================
분명 어린 시절 오를린에서 본 금발 소녀의 성격을 떠올리면 이런 발을 가질 수 없을 진데. 그 소녀는 들짐승처럼 산과 들을 뛰어다니는 걸 좋아했다.
비오르틴은 로테의 여린 발을 터트려버릴 듯 세게 움켜잡고 이죽거렸다.
“제발, 뭐? 설마 그렇게 아프단 표정 하면 멈출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얌전히 있어주면 좋겠단 말은 제대로 느끼란 뜻이지. 의미도 없는 반항을 하란 게 아니야.”
그는 천천히 로테의 몸 위로 올라가 바지를 끌어내렸다. 반쯤 발기한 짙은 색의 성기가 나왔다. 우아하고 품격 넘치는 복장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날 것 그대로의 야성을 띠고 있었다. 그것은 주저 없이 로테의 몸 안으로 가기 위해 꺼떡거렸다. 순결한 그곳은 조금도 젖지 않은 채 붉어 있었다. 침입자를 원치 않는 듯 잔뜩 긴장하여 떨리는 살결을 보는 남자의 하체에 피가 가득 쏠렸다. 그 균열에다 성기의 끝을 수없이 문지르며 감질을 만들었다.
로테는 방사를 모르는 건 아니나 처음이라 겁을 먹지 않을 수 없었다. 의도하지 않아도 몸이 황태자의 흉측한 물건에서 자꾸만 도망가려 했다.
“전하! 아직은….”
“음? 그렇게 입술을 벌리고 있으면 위험한데.”
마음 같아서는 예쁘기만 하고 아둔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저 입술에다 제 것을 쑤셔 박아 완전히 발기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왠지 그건 궁의 창녀 같은 시녀들에게 하는 행동과 다를 바가 없단 생각이 들었다. 이 여자가 크게 보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제 몸을 바치는 창녀와 똑같단 건 사실이나 처음부터 그렇게 대하는 건 자신에게 남은 미미한 측은지심이 용서하지 않았다.
“후우, 젖을 줄을 모르는군.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이 여자의 몸에 제 씨를 심는 게 목적이다. 그리고 아들이든 딸이든 뭐라도 생기는 게 좋겠지. 어차피 황후가 될 몸이라면 조금 일찍 황손을 가져도 괜찮지 않은가. 역겨운 할데바인 일족이 저들의 종교 로젠플라드를 제국교-그 어떤 생명도 신성하게 여긴다는-로 만들었으니, 국혼 전에 황손이 들어서서 그것이 법도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해도 제 입장에선 떳떳하게 내세울 말이 있었다.
‘로젠플라드의 붉은 핏방울은 생명의 고귀함을 상징한다지 않습니까?’ 라고.
이 여자도 그러한 계산쯤은 할 줄 아는지 거부의 몸짓을 멈추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확실히 처음으로 남자를 받을 여자다웠다. 촌구석에서 스물이란 나이까지 순결을 지켜왔을 것을 생각하면 그저 웃음이 나왔지만, 슬슬 웃고만 있을 때가 아니었다.
연하디연한 살을 가르고 안을 꿰뚫었다.
“…… 아!”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급하게 들어온 성기에 로테는 고통보다 더 큰 두려움을 느꼈다. 나른히 눈 뜬 황태자는 이 상황이 뭐가 그리 우스운지 픽 웃고 있었다. 로테가 허벅지를 바들바들 떨며 황태자의 등을 가녀린 두 팔로 감쌌다. 당분간은 움직이지 말아달란 부탁이었다.
그러나 비오르틴은 그럴 생각이 없었기에 그녀의 팔에서 벗어났다. 좁은 살을 가득 메우고 곧 허리를 흔들어댈 이쪽도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그는 성기를 더욱 깊숙이 박아 넣으며 로테의 신음을 평가했다.
“후우, 그렇게 소리 지르면 모두에게 과시하는 꼴이잖아.”
로테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런데도 소리는 계속 나왔다.
“으읏… 흐으.”
“아, 아직 과시는 아닌가?”
위태로운 권력의 흐름 속에서 아직 확실한 입지를 다지지 못한 자신을 조소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 입지란 것도 손이 귀한 황실에서 황손이 생긴다면 단연코 최강이 될 것이었다. 섣부른 상상 속에 빠져서 자기만족을 하는 취미는 없지만 생각만 해도 몸이 고양되고 있었다. 남자를 모르는 살 틈에다 무자비하게 허리 짓을 해나갔다.
“흐읍…… 흐, 하!”
로테는 아무리 입술을 세게 깨물어도 터지는 소리에 제 입을 막아버렸다. 그러자 출렁이는 가슴 위로 그림자가 덮쳤다. 열심히 허리를 쳐대는 비오르틴은 두 손으로 로테의 가슴을 아주 잠깐 지그시 압박하다가 손가락을 뻗어 로테의 가느다란 팔뚝을 낚아챘다. 입 가리는 일 따위는 하지 못하게 하는 행위였다.
“흐음, 흐. 소리 내도록 해.”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였다. 로테는 어딘가 일그러진 황태자의 심사를 느꼈지만, 깊게 파고들고 싶진 않았다. 황태자가 오를린 여자의 몸에 제 씨를 심고자 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니 당장은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아래를 찢는 듯한 고통도 미래를 생각하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 터져 나오는 흐린 신음에서 울먹임이 사라졌다.
“후읏, 하!”
로테는 황태자의 얼굴에서 감정은 사라지고 순수하게 욕정만 남았단 걸 느꼈다.
그런 인간과 살을 맞대는 게 왠지 오싹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리 애정보다 야심이 앞선 관계이지만 로테는 춤을 출 때부터 황태자에게 두근거림을 느끼고 있었기에 황태자의 무감정한 행동에 거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다시 가느다란 두 팔을 뻗어 감히 황태자를 안아보았다. 이런 자세를 해야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고, 그것은 아직은 소심하다 할 수 있는 시골 숙녀의 기분을 나름대로 안심시키는 일이었다.
큭, 하고 로테에게 안긴 비오르틴은 웃었다. 원해서 껴안든 그게 아니든 이렇게 밀착하는 것을 보니 더욱 뜨거운 열기가 필요하다 말하는 것 같았다. 기꺼이 아주 뜨겁고 진득한 것을 듬뿍 주입해 배부터 뜨겁게 만들어줄 작정이었다. 그녀의 목을 껴안고 짐승처럼 허리를 흔들었다.
짙은 라일락 향기가 두 사람이 피워내는 열기에 금세 흐려졌다.
***
오를린 영지 소용돌이 산.
새벽까지도 종유석 끄트머리에선 물방울들이 반짝이며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똑똑똑 하는 물의 맑은소리에 하이너는 잠에서 깨어났다. 개운한 장소에서 잔 게 아니지만 개운한 느낌이었다. 후각, 시각, 촉각 모든 감각이 인간의 것이니 자는 동안 드래곤화가 멋대로 진행된 적은 없는 듯했다.
아가씨가 누운 곳으로 자연스럽게 고개가 돌아갔다. 개를 사랑해 마지않는 주인이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개가 잘 자고 있는지부터 확인하는 행동과 같다고 해야 할까. 주종관계가 뒤바뀐 것 같지만 달리 설명할 말도 없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혼자 누워 있어야 할 아가씨의 곁에 진줏빛 아름다운 머리칼의 소녀도 함께 누워 있었다. 아가씨보다 네다섯 살은 어려 보이는 소녀였다. 아가씨는 그 소녀를 쿠션처럼 대하듯 팔과 다리를 걸치고 잘 자고 있었다.
‘저 여자애는 누구지… 아직도 꿈인가.’
꿈이라면 어떤 무의식의 반영인지. 혹시 제게 미(美)숙녀와 미(美)소녀를 함께 데리고 대륙 여행을 떠날 욕구가 있었는지 자신에게 물었다.
그러다가 눈을 다시 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꿈이 분명했다. 이런 위험한 소용돌이 산 동굴에 저런 가녀린 소녀가 올 리 없었다. 아무렴, 아무렴, 하다가 다시 눈을 떴다.
진줏빛 머리칼의 소녀가 보이지 않았다.
‘꿈이었군.’
일어나서 짐정리를 시작했다. 무려 2000 자일이나 주고 샀다는 비싼 대륙 지도부터 챙기고 옷가지와 싸구려 스크롤, 화장품, 아가씨의 장신구 등을 모아 널따란 면포에 돌돌 말았다. 그리고 대륙 공용 화폐는 덜렁거리는 아가씨에게 맡기는 대신 제 상의 안쪽에 넣었다. 이렇게 하니 훨씬 안심이었다.
잠든 드래콘의 등 위에 짐을 얹으려 올리다가 도로 내려두었다.
‘아직 자는데 무겁게 해선 안 되지.’
강한 생물이라 짐을 무거워할 것 같진 않지만, 잠을 방해하긴 싫었다. 그래서 그 곁에 두기로 했다.
아직 마리는 포근한 숨소리를 내면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 드래곤의 기를 내뿜어 주위 위험한 생물을 물리치는 호위 기사 덕분에 위험하진 않지만 그래도 눈으로 보기에는 으스스하고 기괴한 장소인데, 이런 곳에서 저리 곤히 자는 아가씨의 무신경함이 부럽기를 넘어서 아주 존경스러울 지경이었다. 아가씨의 몸 위에 옷가지 몇 개를 덮어주었다. 드래콘이 내뿜는 온기에 충분히 따스하다 하더라도 왠지 그렇게 더 덮어주고 싶었다.
그러자 아가씨가 나른한 숨소리를 내며 애벌레처럼 옷가지 안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하이너의 입가가 흐뭇하게 올라갔다.
‘정말이지 당신이란 사람이 가진 거라곤 예쁜 금발과 귀여움뿐이군.’
하이너는 문득 이런 생각이 팔불출 같음을 깨닫곤 헛기침했다. 그러다가 머리 위 종유석을 올려다보았다. 거듭 생각건대 정말 보석처럼 빛나서 아름다운 광물이었다. 그러나 땅에 닿은 모든 것을 꿰뚫을 듯 뾰족한 몸들이 기괴하여 마음에 들지 않았다. 툭 떨어져 내려 아가씨의 몸에 상처라도 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아니 들 수 없었다. 절대로 오늘 밤에는 이곳에서 자고 싶진 않았다.
드래콘 마리아 그로스의 곁에 앉아서 아가씨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아가씨가 잠에서 깨어나면 이 동굴을 나가자고 할 생각이었다.
***
마리와 하이너가 드래콘의 등에 올라 소용돌이 산을 빠져나왔을 땐 이미 해가 중천에 걸려 있었다. 드래콘 마리아 그로스는 드래곤에 견줘도 될 만한 빠르기로 네히트로 향했다. 네히트엔 그 지역 주민들이 은광산이라 부르는 광맥 실렌틴이 있는데, 실상 은보다 다른 잡금속이 많이 난다는 소문이 있었다. 네히트가 빈곤한 영지이고 그래서 아무런 힘이 없어 오를린과 통합된 것으로 봤을 때 그 소문은 신빙성이 있었다.
그런 실렌틴에도 나름대로 사람이 거주하고 있었다. 실렌틴 광맥의 오랜 영혼이라 불리는 광부들과 그들의 가족, 그리고 광물을 노리는 잡다한 괴물을 물리치기 위해 고용된 저급 마법사들이 바로 거주민들이었다. 이미 그들에게도 오를린 영주 저택의 드래곤 사건이 퍼졌을지도 몰랐다.
마리는 그들의 시선을 괜스레 끄는 걸 꺼려해 마리아 그로스에게 그들의 집단 주거지와는 반대쪽 산에다가 내려달라고 명령했다. 하이너도 그 생각에 이견은 없었다.
그런데 어째 마리의 태도가 이상했다. 오를린 영주 저택을 지나오면서부터 미묘하게 썰렁한 농담과 잡담이 많아졌다. 그리고 웃기지도 않는데 웃음소리를 키웠다. 호위 기사로서 나름대로 오래 일해 봤다고 자부하는 하이너는 아가씨의 그러한 태도가 순전히 아가씨 본인의 마음을 감추기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 마음이란 가령 후회나 서글픈 감정이 아닐지.
“참, 우리 영지 사람들은 대관절 하늘을 올려다볼 줄 모르는군! 대낮에 이렇게 당당히 하늘을 날고 있어도 누구 하나 우리를 발견한 사람이 없어. 아무리 겨울이라고 하지만 너무 집에만 콕 박혀있는 거 아니야? 집에 대체 무슨 꿀을 숨겨놓았을까!”
아가씨가 저러는 이유는 순전히 오를린 영주 저택 곳곳에 드리워진 흰 깃발 때문이었다. 흰 깃발. 그것은 추모를 위한 깃발로 해석할 수 있다. 오를린 영주가 제 딸의 죽음을 널리 알리는 의미였다.
죽지도 않은 사람을 죽었다고 하다니.
하이너는 영주의 입장을 어렴풋하게나마 파악하고 있었다. 영주는 차녀 로테아르카와 같이 계산적인 사람이었다. 아마도 드래곤에게 잡혀가 버린 딸을 구할지 말지 궁금해 하는 영지민들의 시선을 부담스러워 했을 것이다. 거금을 내고 딸을 데려와도 영지 재정을 혹사하는 무능력한 영주로 낙인찍힐 것이고, 그렇다고 드래곤에게 잡혀가 버린 딸의 구출을 나 몰라라 해도 윤리적으로 비정한 아비의 낙인이 찍힐 것이다. 어느 낙인도 원하지 않는 영주는 흰 깃발을 드리워 딸을 죽었다고 알리는 것으로 영지민들의 시선에서 해방된 것이었다.
흰 깃발은 영주의 저택에서만 휘날리는 게 아니었다. 저택 주변 영주민들의 주택에도 상당수 볼 수 있었다. 그 어느 낙인도 찍히지 않은 영주는 영지민들의 동정의 대상이 되어 부담을 덜겠지만, 멀쩡히 살아있는 딸은 어쩌란 말일까.
물론 아가씨가 잘못하긴 했다. 아버지의 저택을 훼손하고 호위 기사를 멋대로 드래곤으로 만들어버렸으니! 그러나 백번 아가씨가 잘못했다 하더라도 아가씨를 죽은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영주님이 너무한단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자식이 길을 벗어나면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하는 게 부모의 의무이거늘, 사람이 아닌 망자로 만들어버리는 게 대체 뭔가. 귀족이란 작자들은 다 이런가? 당사자가 아닌 제삼자인 자신도 섭섭할 지경인데 아가씨는 얼마나 상심하셨을지.
하이너는 한심하고 딱하단 눈으로 마리를 보았다. 그러게 왜 대륙 여행 따위를 꿈꾸었느냐고 질타하는 시선이었다.
마리는 들뜬 척 어딘가로 폴짝폴짝 뛰어다니고 있었다. 원래부터 얌전한 몸가짐과는 거리가 먼 숙녀였지만, 이런 산에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는 것을 보니 쓴웃음이 아니 나올 수 없었다.
“아가씨는 뭐가 그리 살판이 납니까?”
마리가 뛰어간 곳은 실렌틴 광산의 유적이라 불리는 크고 널찍한 바위였다. 고대에도 이곳의 광맥이 중하여 많은 의식을 행한 게 분명했다. 마리아 그로스 몸체의 세 배나 되는 널찍한 바위 위에선 무희가 춤을 추는 것도 가능했을 테고 짐승이 제물로 도륙 나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마리는 비스듬히 경사진 면을 따라 바위 위에 올라가 드러누웠다. 눈부신 하늘을 보니 자기를 서운하게 한 흰 깃발 생각도 다 잊혔다. 그녀가 하이너를 향해 돌아누우며 말했다.
“오늘 밤엔 마리아 그로스의 등에서 하늘을 날며 자는 게 어떨까?”
“어딘가에 떨어져 몸이 박살이 나고 싶은 게지요?”
“어머! 하이너가 날 떨어지지 않게 잘 잡아주겠지.”
“저런. 제가 아가씨를 밀어뜨릴지도 모른단 가능성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으시는군요.”
마리는 부모님께 꾸중을 들은 아이처럼 얼굴을 시무룩하게 만들었다. 하이너는 그 표정이 너무나 아이 같다고 생각했는데, 내심 아가씨의 그런 반응에 작은 쾌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럼 오늘 밤은 숙소를 정해야겠구나.”
하이너는 실없는 농담을 그만두고 진지하게 대답해주었다.
“숙소를 정하려면 여기서 식사를 하면서 쉬다가 오늘 밤중으로 네히트를 지나 바너(장인의 도시)로 가야겠군요.”
“나 간식.”
“여기 드십시오.”
하이너는 짐을 뒤적거려 마른 빵 하나를 마리에게 주었다. 그리고 물통을 빼내 개울물을 퍼다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쯤 되니 자기가 호위 기사인지 하녀 앤인지 혼란스러워졌다.
마리는 마른 빵을 반으로 부서뜨려 하이너에게 내밀었다. 둘은 한참을 말없이 빵을 우물거렸다.
자신의 처지를 되새겨본 마리가 중얼거렸다.
“여행 첫날부터 현실을 알아가나 봐.”
하이너는 ‘어련하시겠습니까!’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눈물 콧물 흘리며 딸을 찾아야 할 아버지는 딸이 죽었다고 했으니. 게다가 귀한 음식만 먹고 자라온 아가씨가 마른 빵으로 만족할 리 없었다. 하지만 이 말을 그대로 내뱉으며 이죽거렸다간 제아무리 하하 호호 하는 아가씨라 할지라도 결국 울음을 터트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하이너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마리는 우물거리던 빵을 다 삼키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 다시 생각해도 마리아 그로스를 타고 자는 건 미친 짓이야.”
“… 아무렴, 그렇고말고요.”
“마리아를 타고 밤하늘을 날면 낭만을 얻는 대신 다른 걸 포기해야 하지. 씻을 수 없고 피부 관리를 하지도 못해. 옷을 갈아입기도 불편할 테고.”
“아무렴, 그렇고말고요.”
“게다가 하이너의 씻고 나온 멋진 몸을 감상할 수 없잖아?”
“아무렴, 그렇…….”
기계적으로 답하던 하이너의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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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