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1 3. 꽃은 제단 아래로도 뿌리를 내린다 =========================================================================
로테는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아래에서 위로 찬찬히 그리고 노골적으로 훑어보는 황태자는 연회장에서의 호의적이고 다감한 태도와는 상당히 거리를 두고 있었다. 마치 눈앞의 여자를 희귀한 짐승 보듯 하는 아이처럼 호기심 가득하고 짓궂은 분위기였다. 그 내면에는 정욕이라는 은밀한 욕구가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정욕이 확실하다.
‘나를 그저 창부로 보는 거야?’
자존심이 상하지만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고 따질 주제도 되지 않는다.
황태자는 오를린에서 온 초상화 하나만 보고서 초상화 속 주인공을 황태자비 후보에 들이겠다고 선언했다. 네히트를 오를린의 부속 영지로 통합시켜 오를린의 번영에 힘써주기도 했다. 여덟 명의 후보 중에 직접 고른 여자는 오를린의 로테아르카 뿐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도는 지금, 이 남자가 원하는 것을 이뤄주는 게 좋은 것 아닐까.
아마도, 잠자리.
다른 걸 원할 거란 생각은 할 수 없다. 이 남자와 함께 춤을 췄을 때부터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몸을 줘 버리고, 자신 또한 황태자비가 되면 그만이다.
‘급했나보군. 달랑 초상화 하나만 보고서 그동안 몸이 달아있었단 말인가? 하하. 이거 정말 예쁘게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해야겠어.’
궁의 모든 눈과 귀와 집중된 이때, 그가 이리 온 것은 분명 파격이고 할데바인 대공에 대한 도발이며 나에 대한 욕망이겠지. 그래. 까짓 격식이 다 무슨 소용이야? 이 남자가 나를 원하는데. 절대로 이 밤을 헛되이 보내선 안 된다…….
로테는 연기의 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황태자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척 최대한 서툴고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세련되고 화려한-때론 방탕하단 말이 떠도는- 궁정 여인들의 분위기와는 거리를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여덟 명의 후보 중 가장 화려한 외모로 가장 숙맥처럼 구는 게 이 남자에겐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언니와 달라 남성과 교제 한 번 하지 않았어도 이런 식으로 순진함을 꾸미며 유혹할 줄은 알았다.
“폐하, 무슨 말씀인지….”
계산하면서 그녀는 떠듬떠듬 말을 이어갔다.
“일단 제대로 인사를 다시 하겠습니다. 로테아르카 루 오를린, 황태자 전하를 뵙….”
“거추장스러운 건 다 집어치우라고 했지?”
로테는 고개를 숙이는 도중 굳고 말았다. 황태자의 목소리엔 격식과 입장을 내던진 것을 넘어 묘하게 신경질이 묻어나 있었다. 당황하여 살짝 고개를 들어 황태자의 얼굴을 살피는데 그의 음울한 회색 눈이 말하고 있었다.
오라고.
어쩐지 폭압적으로 느껴지는 눈빛에 그만 소름이 돋았다. 이미 계산을 단절해버리고 황태자를 향해 한걸음 내디디고 있었다. 자꾸만 다리가 덜덜 떨렸다. 궁 생활과 황태자란 존재가 낯설어서 그런 것일 뿐이라고 최대한 심장을 안심시키려 애썼다.
그 순간, 팔이 잡아당겨 졌다.
“전하!”
로테의 풍성한 잠옷 자락이 사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작은 먼지를 일으켰다. 그 사이 그녀의 호흡은 멈춰버렸다. 단 한 번도 남자의 가슴 위에 얼굴을 파묻어 본 적이 없어 당황한 나머지 바동거리지도 못하고 그대로 굳어 있었다. 황태자는 이 몸을 가벼운 쿠션쯤으로 여기듯 쉽게 제 몸 위로 올렸다. 호리호리한 체격과 달리 황태자의 힘은 제법 센 편이었다. 너무나 짧은 시간에 이런 자세가 되었지만, 머릿속엔 이미 팟하고 불꽃이 터졌다.
‘시작된 거야! 이 남자와 나의 밤이!’
그녀는 천천히 황태자의 얼굴과 마주했다. 거친 리드에 겁먹고 놀라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순진한 표정을 부러 내세운 건 두말할 것도 없었다. 이미 황태자는 그녀의 얼굴을 샅샅이 살펴보고 있었다.
“이리도 밝은 얼굴로 그런 표정을 지어선 쓰나.”
찰랑거리는 금발이 세상에서 가장 가느다란 실처럼 고왔다. 하늘과 숲의 색을 한데 섞어 번져놓은 듯한 청록색의 눈도 아름다웠다. 낮게 속삭이는 앳된 목소리 또한 어린 날 마주한 꼬마 숙녀를 추억하게 하듯 감미로웠다.
그러나 조금 전부터 풍기는 향기, 그저 달콤하기만 해 머리가 아픈 이 향기만은 왠지 거부감이 들었다.
‘분명 이런 단순한 향기가 아니었는데.’
황태자의 미간은 이미 굳어져 있었다.
“오를린의 향수는 형편없군.”
“저, 전하?”
무섭고도 설레는 명령이 로테에게 떨어졌다.
“입 맞춰봐.”
로테는 멀뚱히 황태자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얼른 이 이상한 자세에서 벗어나고 싶단 기분과 아직은 입 맞춰선 곤란하단 계산이 겹치고 있었다. 숙녀의 의도된 머뭇거림을 마주한 황태자는 눈을 일그러뜨렸다. 이런 상황에 와서 얌전한 척도 정도껏 해야 한다. 그런 경고를 건네고 있건만 이 시골 출신 아가씨는 인지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황태자 아니, 비오르틴이 한 손을 뻗어 로테의 뒤통수를 만졌다. 보드라운 비단실 같은 머리카락을 짐승의 갈기처럼 거칠게 움켜잡고 머리를 끌어당겨 거세게 입술을 부딪쳤다. 놀란 로테가 작은 신음을 흘렸다. 이런 식으로 생의 첫 입맞춤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무례하단 소리를 각오하고 황태자의 몸을 살짝 밀쳤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무의미한 저항은 길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비오르틴은 피식거렸다. 곧 로테의 뒤통수를 감싼 손을 서서히 아래로 내려 등을 쓰다듬다가 그녀의 몸 전체를 가볍게 침대에 눕혔다. 그 사이 그녀의 입술만 탐했을 뿐 결코 혀를 넣거나 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로테는 굉장히 깊은 입맞춤을 받은 것처럼 정신이 혼미했다.
비오르틴은 그녀의 옆에 앉아 왼손을 까딱였다. 그의 소매 안에서 단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보통의 단검보다 훨씬 작은, 하지만 무늬만큼은 그 어떤 것보다 정교하여 인상적인 물건이었다.
‘맙소사! 저걸로 뭘 하려는 거야?’
흉기를 본 로테의 숨이 멎었다. 이제껏 거짓으로 놀라움을 연기했다면 지금은 진짜로 놀라고 있었다.
황태자는 그녀의 두려움은 안중에도 없는 듯 무표정했다. 갑자기 그가 창문을 보았다. 두꺼운 커튼으로 가려진 창문에선 바람이 절대 통하지 않았다. 그가 다시 로테에게로 시선을 내리며 낮은 목소리를 뱉었다.
“때론 바람이 더 강한 것 같지 않아?”
“…… 예?”
“향기를 검으로 벨 수 없는 게 안타까워서 말이지.”
단검 끝이 향한 곳은 그녀의 어깨였다. 트득, 트득 하고 죄 없는 옷감이 찢겼다. 궁에서 입기 위해 비싸게 사들인 옷감으로 공들여 만든 잠옷이었다. 황태자는 마치 이 잠옷이 라일락 향기를 뿜어내는 몹쓸 물건이라 여기는 듯 화풀이를 하는 것 같았다.
‘라일락 향을 싫어하는가? 내일 당장 렌에게 말해 향수를 바꿔야겠어.’
비오르틴은 로테의 가녀리고 새하얀 어깨를 보았다.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허리에서 아래로 이어지는 부피감 있는 둔부와 허벅지가 마음에 들었다. 향이 뭐가 어떻든 이 몸만은 흠잡을 곳이 없었다.
“부부로 오랫동안 지내려면 무엇보다 잠자리가 만족스러워야 한다지. 실제로 그래. 온건한 부부 관계는 어떤 불의도 일으키지 않지. 평범한 가정이든, 황가든. 그리고…….”
반쯤 드러난 여인의 싱싱한 몸은 갓 스무 살이 된 사내의 정욕에 불을 지피기에 충분했다.
“너는 몇 번을 안아도 질리지 않을 몸으로 보여. 그것만으로도 내 아내가 되기엔 충분해.”
칼끝은 로테의 가장 은밀한 부분을 벗기려 시도했다. 그러다 갑자기 멈추었다. 가장 기대되는 작품은 맨 마지막에 보는 법이었다. 비오르틴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또 다시 왼손을 까딱거렸고 순식간에 그의 소매 사이로 단검이 모습을 감춰버렸다.
로테는 이런 방식으로 옷을 찢어 벗기는 황태자에게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기분 나쁜 공포가 아니라 홀리고 빠져들어 자신이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그런 달콤하고 짜릿한 공포였다. 한때 언니가 거칠고 과격한 행동이 멋진 행동인 줄 알고 오해하며 사는 시골 놈팡이들에 관해 수다를 떤 적이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그런 남자들이 유치한 얼간이 같다고 비웃었다. 그러나 황태자의 이러한 행동은 전혀 한심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차갑고 음울한 외모에서 감도는 특유의 매력 때문일까. 아니면 열여섯 어린 나이에 소드마스터와 박빙의 검 승부를 펼쳤단 소문 때문일까. 아니면 황태자란 자리 자체가 주는 위엄 때문일까!
‘뭐가 됐든 상관없어! 아내가 되기 충분하다고 하잖아! 이 간택의 주인공은 결국 나란 말이라고!’
아찔해진 정신을 다잡고 그녀는 여전히 처연해 보일 정도로 순진함을 내세웠다.
“두렵습니다만, 전하께서 그러하시다면 저는 기꺼이….”
“네 의견은 필요 없다.”
비오르틴은 로테의 가녀린 어깨로 고개를 숙였다. 보드라운 살결의 담박한 맛을 확인한 후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기분 나쁜 라일락 향기보다 몸의 온기가 더 강하게 콧속으로 들어와 좋았다.
꽃향기 따위가 아닌 사람의 냄새를 원했다. 언젠가 오를린에서 본 금발 소녀의 생동감 넘치는 체온을 원했다. 겨드랑이와 가슴이 이어지는 살결에 코를 박고 입술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입맞춤보다 훨씬 격정적인 느낌에 로테의 몸은 점점 뜨거워졌다. 어둡지만 미색이 짙은 그의 얼굴, 단정한 입술 사이로 연한 체리 같은 젖꼭지가 모습을 감추자 소름이 돋았다.
“전하, 그런 데를… 아!”
비오르틴은 핥으면 핥을수록 단단해지는 과실의 반응을 느끼며 웃었다. 고작 젖꼭지 한 번 문 것 가지고 큰일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놀라는 그녀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과연 오를린의 딸은 훌륭한 배우다. 이 여자가 보이는 반응 그 어디에도 정염을 느낄 줄 아는 여자의 설렘과 기대는 없었다. 한껏 붉힌 얼굴을 떨리는 두 손으로 감싸는 모양새는 누가 봐도 자신이 처녀라 말하는 듯 겁에 질려 있었고 순진해 보였다. 입에 문 작디작고 단단한 과실을 깊이 빨아들이다 빼내고 반대쪽 과실을 노렸다. 젖꼭지를 물고 말하는 비오르틴의 얼굴도 시체 빛에서 점점 열기가 퍼진 붉은색이 되어갔다.
“이쪽이 더 빨리 단단해지는군. 알고 있나? 역겨운 꽃냄새를 풍기는 것보다 아무런 맛도 나지 않는 이 살덩이가 음…… 더 매력적인 거.”
“아아, 전하…….”
“좀 더 맛봐주지.”
스무 살이라는 나이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비오르틴의 목소리는 점잖았고, 그 말은 오만했으며, 표정은 엄중했다. 기묘하게도 그 모든 분위기가 음란함을 만들고 있었다. 포식자 같은 탐욕스러운 혀 놀림과 그에 비해 부드러운 손짓으로 가슴을 수없이 희롱당한 로테는 온몸이 녹진하게 녹아내리는 걸 느꼈다. 시야가 몽롱해지고 호흡이 거칠어졌다. 두려움과 야릇함에 입 밖으로 자꾸만 이상한 소리가 나올 것 같아 아랫입술을 한껏 깨물었다.
‘이런 게 남녀의 밤이라니…!’
가슴 언저리를 전부 맛본 비오르틴은 왼손으로 로테의 가녀린 목을 조일 듯 말 듯 장난을 치며 점점 고개를 내렸다. 흉하게 찢긴 화려한 잠옷이 로테의 몸을 완전히 벗어났다. 수동적인 여인의 옷을 벗기는 것만큼 성가신 건 없다고 생각하며 비오르틴은 그녀의 팬티를 이로 끌어내렸다.
“전하! 무슨!”
달아나려는 로테의 골반이 꽉 잡혔다.
“쉬이. 여태 느끼던 대로 얌전히 있어주면 좋겠는데.”
비오르틴은 그녀의 팬티를 아예 손으로 벗겨 내렸다. 보기 좋게 살이 오른 허벅지와 가느다란 종아리가 무력하게 떨리기만 했다. 비오르틴은 그녀의 사타구니에 뺨을 비볐다. 뜨거운 물에 몸을 씻고 녹인 지 얼마 되지 않은 살결은 솜털처럼 폭신하고 부드러웠다. 따뜻함을 넘어 뜨겁다 말할 수 있는 체온도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짙은 라일락 향기를 풍기는 상체와 달리 하체가 온전히 사람의 냄새만 내고 있었다. 그 점이 가장 좋았다. 사타구니 안쪽 살을 혀끝으로 지그시 긋다가 키스했다. 다리 이곳저곳에 꽃잎처럼 붉은 흔적을 만들다가 발까지 내려왔다. 백옥처럼 새하얗고 유리처럼 매끄러운 발이었다. 긴 시간의 황도행을 겪었음에도 고단함을 모르는 고운 발이었다. 좁은 발볼을 이와 손으로 마구 깨물고 주무르니 금방이라도 핏물이 번질 듯 붉어졌다. 괴로워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아, 전하… 제발…….”
울 것 같은 얼굴로 이런 일이 익숙지 않다 부르짖는 로테를 볼수록 비오르틴의 깨무는 힘은 과격해졌다. 정욕 가운데 이미 고개를 든 가학심을 주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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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콘 설정에 대해선 전개를 통해 보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