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능 귀족 여체 하렘-192화 (192/199)

 완결 후 - 외전 C(1)

동방의 대국.

그것을 다스리는 어린 왕, 류협 대왕.

그는 오늘따라 크게 당황해하고 있었다. 익숙지 않은 왕포를 몸에 걸치고 막 사춘기가 지났을 얼굴을 한 그 소년은 언제나 딱딱한 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기에 평소라면 웃음소리 한 번 듣기 힘든 삶을 살았지만 그날은 좀 달랐던 것이다.

사절단이 돌아온 순간 분위기가 바뀐다. 연신 소란을 떨고 있던 늙은이들이, 왕을 억압하던 자들이, 하나같이 기쁜 표정을 하면서 대륙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하며, 아주 좋은 소식만을 가져다주고 왔으니 모두들 긴장이 풀리고 기쁜 표정이 되고 만다.

어린 왕이 왕위에 오른 순간 나타난 서방의 대륙. 언제나 강렬한 해류로 다가갈 수도 없던 땅이었지만 저쪽에서 접촉해온 것도 모자라 압도적인 국력을 과시해왔기에 소란을 떨고 있던 늙은이들. 덕분에 언제나 어두운 표정이었던 류협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큰 사건이 터지겠거니 하며 또 불길한 오오라를 풍겨댔지만 의외로 일이 잘 풀리고 말았다.

‘저들이 저렇게 좋아하는 표정을 본 건 내가 왕이 되고 나서 처음이다. 저쪽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렇게나 즐거웠던 건가?’

그렇기에 그들의 보고는 전혀 머리에 들어가질 않았다. 새로운 기술이라던가, 대륙의 넓이라던가, 그들의 행태라던가, 전혀 궁금한 게 아니었고. 그나마 흥미가 끌린 건 드래곤이나 땅을 달리는 철의 마차에 관한 것 정도다. 이상하게 딱딱한 그들과 달리 그쪽은 상당히 진보적인 성격이며 왕에게 알려선 안 되는 것도 여럿 숨기고 있음이 확실했다.

그들은 왕이 여럿 있는 것과 그것을 총괄해서 다스리는 자가 따로 있다며 설명했고. 아이에 관한 이야기는 자주 했지만 에키시에 관한 이야기는 극명하게 숨기면서 「상종해서는 안 될 자」라고 표현했다. 그 말에 류협은 의아했으나 깊게 물어보지는 않고 그저 그들의 행보에 관해서만 다행스럽게 받아들였다.

‘다행히 우호적인 모양이야.’

우호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수준의 선물들이 쏟아져 나온다. 재화는 물론이요 약간 상스러워 보일 수 있는 미술품도 왕의 연령대를 고려해서 예술의 향기가 짙게 나오는 것으로 엄선해서 보내왔다.

거기에…

“류협 님? 류협 님?”

“아, 아아, 뭡니까?”

“제일 중요한 이야기가 남았습니다.”

“제일 중요한 이야기? 이미 충분히 들은 거 같은데 아직도 뭐가 더 있습니까?”

“네, 그게…”

우호의 증거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런 말과 동시에 왕이 앉아있는 곳 바로 앞으로 다른 사절단과 함께 한 여자가 또각또각 아름답게 걸어들어왔다.

‘아.’

그 자태에, 류협의 눈이 고정돼, 입으로 반응하지 못했다. 그저 옆에서 들리는 늙은이의 목소리만 귀에 들어왔다.

“우호의 증거로… 저쪽 나라의 공주님께서 잠시 여기에 머무르기로 하셨습니다…”

“공주, 님?”

“네, 저렇게 보여도 류협 님보다 고작 두 살 차이 나시는 분… 그래서…”

그 뒤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뭐라 설명하면서 이유를 대어도 류협은 얼빠진 목소리만 낼 뿐이었다. 나이차가 거의 없는 것치고는 류협보다 훨씬 더 큰 키에 이국적인 갈색 피부는 물론이고 검은 머리카락은 포니테일로 예쁘게 땋은 데다가 큰 허벅지가 강조되는 몸에 딱 달라붙는 복장을 하고 있다.

공주라기보다는 여전사다. 타이트한 검은 옷으로 상의와 하의를 대용하고 있으니 몸의 라인이 그대로 드러난다. 현대로 치자면 달리기 선수나 강가 주위를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을 건강한 여자가 연상된다. 복장이 전혀 공주님 같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그 특유의 오오라라는 게 있었기에 누구 하나 그 복장이나 그녀의 핏줄을 의심하는 자는 없었다.

‘저게, 옆 나라의, 공주…’

정말로 비슷한 나이대인가 싶을 정도의 색기. 건강한 몸에 짙은 눈썹 사이로 흘러나오는 음탕함에 류협의 마음이 들뜬다.

“류협 님.”

“아, 아아아… 크흠…”

옆에서 언질을 줄 정도로 얼굴이 새빨갛게 돼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혈기 넘치는 소년에게 이국의 여성은 성적 대상 그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고. 류협은 자기 자신의 천박함에 실망하며 급히 인사를 했다.

“어, 어서 오시게, 먼 길 오느라 고생했네. 나는 류협, 이 땅을 다스리는 대왕. 이번에 여기까지 발길을 옮겨준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네.”

“………………”

‘아, 너무 건방졌나? 역시 평소대로 할걸 그랬어!’

류협의 환대에 입을 다무는 공주. 타국에서 온 손님께 너무 당당히 나선 게 아닌지 고민하는 류협. 그러나 실수한 건 아닌지 늙은이들은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고 손님 또한 금방 눈웃음 지어줬다.

“환대 감사합니다. 저는 카울·수가르의 딸 카라·수가르. 현 페티시 왕의 막내딸이며 이번엔 아버지와 어머니의 의향에 따라 동방의 정취를 맛보기 위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앞으로 자주 보게 될 테니 부디 좋은 관계가 되길 바랍니다.”

“아, 으, 그렇게 송구할 것 없네! 우리 쪽 사절단도 환대를 받았다고 하니! 분명 좋은 관계야 되고 말고!”

“그렇게 말해주시니 마음이 놓이는군요.”

서로의 말이 오고 간 후 자신을 카라라고 소개한 공주는 허리에 맨 소검을 다른 이들에게 맡겼다. 말투도 딱딱하고 검을 만지는 모습도 익숙했기에 류협은 「나와 정 반대의 타입이다」라며 살짝 기죽고 만다.

“류협 님. 이번에 온 손님은 특별하신 분. 게다가 저쪽에서의 부탁으로 카라 공주의 거처는 잠시 동안만 이 왕궁이 되겠는데 괜찮으시겠지요?”

“이쪽에서 말입니까?!”

“네. 아무리 그래도 타국에서 온 공주님. 게다가 우호적으로 동맹을 맺어야 할 분. 우리 같은 자들의 집에서 머물게 하기엔 너무나 무례한지라…”

소년의 마음이 들뜬다. 늙은이들이 귓속말을 하면서 「수작을 부리고 있다」라며 경고를 하지만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이대도 비슷하고, 혹시 좋은 말상대가 되지 않을까 싶어,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그리 부탁하셨습니다.”

“비, 비슷한 나이대라…?”

“혹시 불편하십니까? 염치없는 일이긴 했으니 그러시다면 예정된 대로 다른 곳으로 떠나도 괜찮습니다.”

“아니 그런 건 아니다… 그러나…”

입으로 끄으응 소리를 내고 싶을 정도로 깊은 고민에 빠지는 류협. 정말로 같은 나이대인가 싶을 정도로 신장 차이가 있다. 게다가 조금씩 다가올 때마다 느끼는 색과 이국적인 향기에 류협은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늘리고 말았다. 여태까지 많은 여성을 소개받아온 류협이지만 이런 느낌은 정말로 처음이었기에 곤란해하고 있다.

‘대체 뭐지 이 느낌은… 우리나라의 여성과는 달라… 청조함의 정 반대이면서도… 그렇게 천박해 보이지는 않는데… 어째서 이런…’

한창 성에 눈 떠 있을 소년에게 이국에서 온 미소녀는 독밖에 되질 않는다. 그러나 이번 일을 거절할 수도 없고 류협은 이득고 「좋다」라고 단언 지었다.

‘으으으음, 겨우 한 달 정도 여기에 머무르는 것뿐이다. 분명 아무런 일 없을 테지. 그래, 그녀는 매력적인 여성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불상사가 일어나진 않을 거야.’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이성을 붙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류협. 그 얼굴은 이성을 붙잡으려는 내심과 다르게 아무 즐거워 보였고. 드물게도 강압적인 말투를 사용하며 가신들에게 「그녀에게 이곳을 안내시켜라」라고 명령 내렸다.

‘응, 아무런 일도 없고 말고.’

그녀는 순수히 이 나라와 저 나라의 발판이 되려 온 것일 뿐.

불순한 의도는 없을 거라고.

소년 특유의 망상을 부풀리지만…

‘저게 류협인가. 어린 왕이라고 들어서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작네. 저래서야 하반신이 설지 안 설지도 의심이 드는데…?’

반면, 이쪽은 눈웃음 아래에 음탕한 능구렁이를 기르고 있다.

류협의 망상 따위, 현실로 일어나는 일은 없다.

‘주위에 억눌린 어린 왕. 딱 봐도 연약하고 가녀려서 맛있어 보여. 게다가 색에 빠진 적도 없는 건지 필사적으로 표정을 숨기려는 것도 귀엽고. 저거라면 한 달 내로 어떻게든 되겠는데…’

한 달 내내 동방에 있을 걸 생각하면 재미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거라면 즐길 수 있겠다며 내심 낄낄낄 웃는 카라. 어머니의 성질을 물려받은 건지 거친 성격인 것도 그대로이며 겉으로 보인 모습은 전부 가짜였다.

“카라 공주, 나중에 옥외에서 봅시다.”

“네, 류협 님도 나중에… 쪽…”

“앗…”

카라의 속마음도 모르고 손등에 키스를 당한 것으로 얼굴을 새빨갛게 하는 류협. 가신들이나 왕을 지지하는 늙은이들이 하나같이 눈치를 주지만 카라는 「우리나라의 기사들이 하는 작법이다」라며 일축하고 류협에게만 보일 수 있도록 윙크를 한 후 그 자리를 떠나갔다.

‘윽… 놀림당한 건지… 유혹을 받은 건지…’

반면, 아직 성 경험이나 여자와의 연애 경험이 없던 류협으로서는 그 행동에 두근거리고 만다. 동정 특유의 망상이 가속하면서 음탕한 생각이 몰아치는 걸 참을 수 없었고. 결국 카라가 그 자리를 떠나기 전까지 멍하니 그 뒤태를 바라볼 정도로 푹 빠진 표정을 지어버리고 말았다.

“류협 폐하.”

“아, 알고 있습니다. 저는 괜찮으니 눈치 주지 마세요.”

“정말로 그렇습니까?”

“괜찮대도요?!”

사실은 전혀 괜찮지 않으면서 허세를 부린다.

즉, 동정 특유의 반응.

그 목소리를 저 멀리서 들은 카라가 음탕하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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