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능 귀족 여체 하렘-161화 (161/199)

 에피소드 3 - 애마 공주 루트

에키시나 라키시와 똑닮은 남자가 하나 있다. 레즈우 왕도의 왕성에서 옥좌를 차지해 나르시시스트처럼 눈을 가늘게 뜬 남자다. 에키시나 라키시와 달리 컬러링만을 바꾼 것처럼 금발 금안이 특징인 그 남자는 퀴어 왕처럼 그리스 신화에서나 볼법한 천을 걸치고 옥좌에서 턱을 주먹으로 괸 모습으로 한 보고서를 읽고 있다.

“그래서, 이건 뭐냐?”

“호모우 왕국에 잠입해 있던 우리나라 병사의 보고서입니다.”

“어이, 내 눈이 잘못된 거냐? 어째서 블랙우드 가문의 무능아랑 호모우 왕국의 눈꽃 공주가 호모우 왕도에서 결혼한다는 정보가 여기에 적혀 있는 건지, 나라도 알 수 있도록 논리적으로 설명해주겠냐?”

“그건…”

“제길, 이 쓸모없는 년!”

“으끄윽?!”

에키시를 닮은 금발남이 자리에서 일어나 옥좌 바로 아래에서 거의 전라로 다리에 매달려 있던 여자를 발로 찬다. 그 여자의 얼굴은 완전히 레인을 닮아서 그녀의 언니나 동생쯤 돼 보였는데 그 남자는 그런 자기 딸을 발로 차는데 주저함이 없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어느 신하가 「예전에는 저런 분이 아니었는데」라면서 작게 푸념하고 있다. 근 몇 년간 사람이 많이 바뀐 건지 폭군이 되어버린 레즈우 왕은 그 금발을 성질 사납게 손톱으로 긁으면서 자신에게 온 것 같은, 보고서란 이름의 청첩장을 읽으며 분노에 빠졌다.

“라키시, 이건 무슨 일일까?! 왜, 어째서, 어찌하여, 네가 거기에 있는 거지?! 호모우 왕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도가 넘지 않았나? 누가 봐도 날 겨냥한 짓거리 아냐?! 앙? 안 그래?!”

“진정해주시옵서서.”

“라키시 공은 이 나라를 위해 수십 년을 호모우 왕국과 싸워온 분. 호모우 왕과 만난 것도 전장이니 마음을 깊게 나누지는 않았을 터.”

“부디, 화를 진정시키고 일을 그르치지 말아주셨으면…”

“시끄러워!”

레즈우 왕의 외침에 가신들의 대부분이 뒤로 나자빠지듯 숨을 죽였다. 그에게 맞아 땅바닥을 기던 레즈우 왕의 딸은 그 가신단의 뒤로 숨어버렸고. 레즈우 왕은 여전히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그 보고서를 하늘로 던져버린 후 다시 외쳤다.

“너희들이 말했을 터다! 그 아들 놈은 무능하니까 금방이라도 호모우 왕국과의 관계가 깨지게 될 거라고! 실제로 무능했다고! 학교 수업도 나오지 않고! 타 귀족과 싸움을 한 건 물론! 하루 종일 섹스만 하는 병신 같은 놈이라고! 너희가 직접! 그리! 말! 했! 잖! 아! 이 썩을 당나귀 새끼들아!!!”

“그, 그러나, 실제로 그는 무능했고…?!”

“우리로서도 왜 그 무능아가 눈꽃 공주의 마음에 들었는지 전혀 모르는지라~!”

“애초에 그런 남자가 타입이었던 건?”

“그런가?!”

“변명은 집어치워! 이 좆같은 새끼들아!”

“히익?!”

이번에야말로 몇 명이 뒤로 나자빠지고 레즈우 왕이 그 자리에서 일어나 가신단이 있는 쪽까지 걸어간다. 앞으로 뻗어진 오른팔이 자기 딸의 머리채를 잡기까지 수초도 걸리지 않았고. 그래도 공주인데 머리채가 질질 끌려가 다시 옥좌의 앞에 눕게 되는 그 꼬락서니는 길거리 창녀보다 못한 상황이었다.

“스노는 어딨어?!”

“와, 왕의 명령으로… 학교에서 그를 보좌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아아, 그랬지. 세스트에게 붙여놨던가. 적어도 밖에서는 경거망동하지 않을 정도의 교육을 위해서 스노를 붙여놨었지. 많은 아들내미들 중에서도 그나마 마음이 통하던 아이라 아껴했던 게 문제였나. 아무리 그래도 그 녀석에게 스노를 붙여놓은 건 아까운 선택이었어.”

혼잣말 후 학교의 상황을 말해보라는 듯 눈치를 주는 레즈우 왕. 그에 따라 가신단이 하나같이 비슷한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러나, 그 교육도 잘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학교를 담당하는 각 부서에서 불만이 담긴 보고가 막 올라오고 있습니다.”

“아, 불만? 불만이라고 하면 너희가 예전에 말해줬던 그 썩을 식민지 놈들의 불만을 말하는 건가? 그때도 말했을 테지만 그냥 가볍게 무시하라고 했잖냐.”

“그게 아닙니다!”

“세스트 왕자님의 만행도 그렇고! 그 수상스러운 여자는 왕자님을 전혀 보좌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추기는 것으로만 보입니다!”

“관한 것을 기점으로 사태가 걷잡을 수없이 커져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유력 귀족에도 손을 대는 상황에, 누군가는 노예로 팔려나갔다는 정보까지!”

“학교 내에 중독성 약물이 돌고 있다는 정보도 계속 들려오고 있습니다!”

“대응은?”

“그게, 학교 내에 배치한 병력으론 모자라, 대규모적인 수색이 필요한 상황입니다만…”

그 말에 레즈우 왕의 얼굴이 구겨진다. 학교는 각 나라의 유력 귀족이나 왕족이 모이는 중요한 장소. 거기에 병력을 투입하려면 결국 레즈우 왕의 허가가 필요하고 여태까지 그것을 못했단 소리는 결국 그를 탓하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까, 이 모든 사건이 나 때문이라는 거냐?”

“그런 소리가 아닙니다!”

“그저 지금이라도 좋으니 수색 명령을?!”

“늦긴 했습니다만 꽁무니에 붙은 불을 치워내는 정도는 됩니다!”

가신단의 말이 마음에 안 드는 건지 레즈우 왕의 표정은 차갑다. 발로 자기 딸의 얼굴을 꾹꾹 밟아대면서 무표정한 얼굴을 그만두지 않고 거칠게 숨만을 쉬어댄다. 어디까지나 자기만을 아는 그 남자는 곧이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불편하게 말했다.

“누구 꽁무니에 불이 붙었냐? 대체 누가 그런 소리를 하지? 국력이 깎인 것도 아닌데 기껏해야 우리 속국의 꼬맹이들이 부르짖는 것 가지고? 그 널리고 널린 공주들이 겨우 약에 찌든 것 가지고 내가 머리를 숙여야 하나?”

“이대로 내버려 두면 전쟁이 일어납니다! 반 레즈우 연합이 만들어질 기색은 예전부터 있었으며 지금 당장 그것을 막을 방법은 왕의 성심 어린 행동뿐입니다!”

“만들라고 해. 이번에야말로 그 속국 놈들을 깡그리 밟아서 우리 영토로 삼을 수 있겠군. 안 그래도 그 야만인들부터, 자잘한 나랏 놈들까지, 전부 왕을 자칭하는 게 마음에 안 들었다. 이 대륙에 하늘은 두 개나 필요하지 않아. 나 하나면 된다고.”

“제정신입니까?!”

“그런 말을 하는 너야말로 제정신인가? 언성이 좀 높은데?”

“으윽…”

가신단의 기색이 꺾인다. 소수의 인원이 옳은 말을 하고 있지만 그것을 옹호하는 이가 몇 없는 게 현실이다. 가신단 자체도 자기네들끼리의 음모가 똘똘 뭉친 자들이니 대놓고 옳은 말만 하는 사람을 대놓고 두둔하려 들진 않는다.

“그럼, 왕께서는 이대로 싸움을 바라신다. 그렇게 봐도 되겠습니까?”

“그래, 물론이지. 내가 흥분한 것처럼 보일지도 몰라도 실제로 흥분한 건 너희다. 흥분을 식히고 곰곰이 생각해봐라. 그 자그마한 나라들이 똘똘 뭉쳐서 연합을 만든다 해도 우리나라의 발끝에 닿을 수 있을까? 적어도 난 그 똘마니들이 무섭지 않다. 한곳으로 뭉친다 해도 피해를 입을 거란 생각은 전혀 안 해.”

“그건…”

“그 말대로이긴… 합니다만…”

“농성만 해도 이길 수 있다. 애초에 이럴 때를 위해서 정병을 훈련하고 식량을 비축해둔 게 아니었냐? 가만히만 있어도 저쪽이 알아서 나가떨어줄 테지. 그리고 애초에 녀석들의 자식들은 우리나라에 있다. 지금이라도 좋으니 인질을 잡아두면 여러모로 요긴하게 쓰일 터. 그래도 자칭 공주였으니 잘 쓰면 국고도 충당할 수 있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습니까? 잘도 그런…”

“난 지금 당연한 일을 말하고 있는 거다. 머리에 피가 쏠린 건 너희들이야. 세스트는 골치 아픈 아이지만 이런 일에는 잘 어울리지. 그대로 일을 계속 크게 만들라고 해라.”

“그 왕자님을 방치하는 건가…”

“그럼 호모우와 블랙우드는 어쩌시겠습니까?”

“예전 일을 앙심품고 호모우 왕국과 손을 잡아오면 그 똘마니들이라고 해도 쉽사리 무시할 수 없게 될 겁니다만.”

호모우 왕국이나 블랙우드에 관한 것도 대응할 생각을 해놨는지 곧장 대답이 튀어나왔다.

“영지를 인질로 잡아놔라. 대놓고 들어가서 자극하지 말고 블랙우드의 영토 전체를 둘러싸듯 하는 거다. 그리고 그 녀석이 운용하던 기사대의 행방을 알아내 빠르게 보고하도록 해라. 이 타이밍에 호모우 왕국과 손을 잡았으니 분명 전면전을 생각했을 터. 흑수대는 이미 이 땅에서 빠져나가고 없겠지만 그걸 역수로 취하는 거다. 그 영지와 민중들의 목숨을 가지고 협박하면 분명 이 싸움에 끼지는 않겠지.”

“이미 우리를 배신할 생각이었던 남자입니다. 이제 와서 영지민들의 목숨을 가지고 협박한다고 해서 우리 말을 들을지 의문입니다.”

“녀석은 명예를 중시하고 정에 약하다. 그건 누구보다 경들이 잘 알고 있지 않나? 자기 아내를 범해, 임신시켜, 죽이기까지 한 왕에게 아직까지 충성을 맹세하고 있을 정도로 자기 가문의 이름을 더럽히기 싫어하는 남자지. 영지민들을 가지고 협박하는 건 분명 잘 먹힐 거다.”

“그렇다면 호모우 왕국의 개입은…”

“없다는 겁니까?”

“반반 정도일까? 이 상황을 보아하니 라키시가 꼬드긴 것 같은데 그놈이 물러선다고 한다면 호모우 왕국도 침묵하겠지. 애초에 녀석들과 우리들의 사이가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고 갑자기 싸움을 거는 것조차 의아할 정도다. 수십 년간 의례적인 전투만을 벌이며 일부러 이기고 지고를 반복하기도 했고. 이젠 서로 간 젊은 귀족들끼리 즐기는 명예 쌓기 게임 같은 게 됐잖나.”

“확실히 그렇죠. 사상자는 고사하고 부상자조차 없는 의례적인 전쟁. 포로로 잡힌 귀족이 웃으면서 대접받고 오는 관계니까요.”

“이젠 그런 싸움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자랑거리가 된다. 젊은 애들은 귀족으로서의 자존심과 명예를 얻고. 그 부모는 자기 자식을 바라보면서 합숙 여행이라도 보낸 듯 흐뭇하게 바라보지. 이젠 양 나라끼리 벌이는 서바이벌 게임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야만인을 몰아낼 때는 양국끼리 진심으로 합을 맞추기도 했고…”

“아무리 봐도 라키시 경 혼자서 이간질할 수 있는 관계는 아니란 거군요.”

“그렇지. 진심으로 우리와 맞붙는다고 하면 저쪽 귀족들도 반발하게 된다. 그걸 감안하면 기껏해야 퀴어 왕의 사병이 연합군에 붙는 정도일 터.”

“어디까지나, 변명할 수 있는 선에서 파병한다는 겁니까?”

“그래, 거기에 라키시의 흑수대가 섞인다.”

“연합군, 호모우 왕의 사병, 라키시 경의 흑수대…”

“그 남자, 이런 평화로운 상황에 잘도 머릿수를 갖추는군요…”

야만족도 밀려나 평화롭기 그지없는 대륙. 어디에도 전쟁의 불씨는 없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고 만다. 각지에서 모인 공주나 귀족의 아이들이 레즈우 왕가의 자식 손에 망가지는 것으로 각 나라의 불흥을 사버렸다. 안 그래도 대국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많은 원망을 산 두 나라 중 하나로서는 이번 일을 막을 순 없다.

그러나, 불흥을 사는 건 그렇다 쳐도. 보통이라면 소국이 대국에 대응할 리 없으나 이렇게까지 많은 소국이 한곳에 모여 힘을 합쳐버리면 레즈우를 밀어내려는 경향이 겉으로 드러나고 만다. 레즈우와 맞먹는 호모우 왕국이 지원한다고 해주면 더욱이 숨길 수 없게 되고 지금 이렇게 싸울 계기가 완성됐다.

“자식은 무능해도 아비는 무능하지 않았단 거다. 어째서 호랑이의 자식이 고양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재능이 아까운 놈이야. 그 재능이 우리 세스트에게 조금이라도 갔으면 좋았을 텐데.”

“이 대륙 최악의 폭군이 됐겠군요.”

“그래, 상상만 해도 짜릿하지?”

이히힛 웃는 그 모습은 여전히 에키시와 똑 닮았다. 나른한 그 눈을 비비면서 입꼬리만을 건방지게 세우고 다리에 달라붙게 한 자기 딸의 얼굴을 발바닥으로 누르면서 아까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해댔다.

겉으로 봐서는 기분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이해할 수 없는 언동. 밟히고 있던 딸도 자기 아버지의 기분을 모르는 것처럼 비위를 맞춰야 하는 건지 아닌지 몰라 하고 있다. 딸을 바라보면서 화를 냈다가 말았다 하는 것이 그저 그 자리에 딸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감정이 격해지는 모양인지 아무도 그의 기분을 몰라 한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하나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또 뭐냐.”

“거기에 계신 제2 공주님은 어째서… 벌을 받고 계신 건지…?”

“이 녀석이 내 눈앞을 알짱거렸다. 레아와 전혀 닮지 않은 얼굴로, 레아와 똑닮은 목소리를 내, 아침부터 내 기분을 망가뜨렸다고…”

“예를 드시면?”

“아침부터 날 보며, 화사하게 웃으면서,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라고 했다. 내게 그런 말을 해주는 여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레아뿐이었지.”

“그게, 제2 공주님이 벌을 받는 사유라고요?”

“레아를 닮게 하려 하다가 실패해버린, 말 그대로의 실패작. 그런 게 레아의 흉내를 냈으니 당연히 벌을 받아야지.”

“그렇… 습니까…?”

“아, 그래, 그렇고말고.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 이참에 제1 공주인 로키시를 손에 넣기 전까지는, 레아를 똑닮은 그 아이가 여기에 발을 들이기 전까지는, 너를 괴롭히며 시간을 보내주마.”

“우읏?! 으큭! 으으윽!”

“하하하하, 하하핫,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소란스러운 레즈우 왕성.

광기에 찬 목소리.

에키시를 똑닮은 그 왕은.

앞으로 있을 소란을 그런 식으로 즐겁게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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