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2 - 시아버지 루트 〈인정 완료〉
아이 일행을 밤새 떡으로 만들어놓은 후 겨우 정신을 차린 점심시간. 우리들은 기숙사 무렵처럼 또 식사용 홀에 모여 여태 있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있던 이야기라고는 해도 그 대부분이 약물이나 레인 관련 이야기이지만 아버지 일행은 의외로 그런 이야기를 담담히 들어줬다.
퀴어 왕은 역시나 친근한 타입.
반대로 아버지에 관해서는 좀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점심까지 허슬 했나, 라키시 녀석에게 들었지만 너도 참 어지간한 독종이군. 애를 만들라고 했더니 애들을 잡고 말이야. 이거 좀 봐라, 우리 딸내미들 얼굴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운걸. 네가 라키시 아들이 아니었다면 열대는 때렸을 거다.”
호모우 왕국 특유의 고소한 계통의 식사를 즐기면서 퀴어 왕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상하게 치즈 관련이 많은 이 식단. 익숙해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구나 싶은 느낌으로 그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댔다. 말은 저렇게 해도 크게 웃고 있었으니 영 싫은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니, 애초에 저런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시아버지에게 정사 이야기를 들어봤자 어색해질 뿐이다.
“아버님, 새 아들이 생겨서 무심코 음담패설을 하는 건 알겠는데요. 그 옆에 당사자인 제가 있다는 것 정도는 고려해주시면 안 될까요?”
“뭐냐, 매일 섹스하고,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며, 밤에는 같은 침실에 눕는다. 어떻게 보면 행복한 일 아닌가? 난 지금 축복해주고 있는 거야. 난 아내랑 그러지 못했으니까 부럽기도 하군.”
“어머님은 아직 못 찾으셨나요?”
“그 상여자, 또 어딘가 전장을 헤매고 있겠지. 남자보다 더 남자 다운 여자니 이젠 평생 볼일 없지 않을까 싶다.”
아무래도 퀴어 왕의 아내는 저 마초 성격을 받아 줄 정도의 여걸이었는지 그녀를 놓친 게 아쉽다는 말투를 하고 있다. 다음 아이를 낳도록 신하들에게 닥달당했음에도 낳지 못한 이유가 그거겠지. 그런 여걸이 아니라면 상대할 수 없는 진성 마초 게이 왕. 그렇다고 내 엉덩이를 노리는 건 아닌 것 같아서 다행이지만 우리 아버지를 보는 눈은 약간 의심스러웠다.
혹시나, 싶은 기분이 솔솔 든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 아버지는 그쪽 취향이 아닐 테니 받아주진 않겠지만…
“아버님도 마찬가지야. 언제까지 여기에 있을 건지 말해줘. 우리 관계를 듣고, 퀴어 왕과의 관계를 알리고, 에키시의 얼굴까지 봤으니, 이제 만족했을 것 아냐?”
“울 애깅, 내가 있어서 불편한 건 알겠지만 아직 돌아갈 생각이 없어. 안 그래도 텅 빈 것 같은 영지에서 홀로 빈둥거리는 것보다는 여기가 훨씬 나으니까. 아아, 너희가 떠나자마자 얼마나 향수가 돌았는지~! 정말로 매일이 힘들었어…”
“그런 이야기 듣고 싶지 않아. 그리고 아버님의 빈자리는 대체 누가 대체하고 있는데?”
“집사랑 내 부관.”
“미친 거 아니야?”
“믿을만한 녀석들이니 한동안은 괜찮아.”
누나가 이빨을 갈면서 영지로 돌아가라고 한다. 아버지는 괜찮다면서 껄껄 웃으며 치즈가 올라간 크래커를 씹고 있지만 나도 누나의 말에 찬성이기도 했다. 저렇게 보여도 아버지는 블랙우드 가문의 가주다. 이런 곳에서 꾸물거리고 있으면 이상한 오해를 받을지도 모르는데 그것까지 감안하고 계신 것 같지는 않았다.
뭔가 다른 목적이 있나?
그런 생각을 할 무렵 두 아버지의 얼굴이 음흉하게 빛났다.
“갑자기 뭔가요? 두 분 다 서로 바라보더니 그런 표정을 하시고…”
“혹시 이상한 생각하는 건 아니지?”
“별로? 이상한 생각 따위, 없다.”
“아버님? 이상하게 말이 짧네요? 이쪽을 보고 말해주시겠어요?”
“흐, 흐흠, 흠…”
아이의 말에 벌벌 떨면서 눈을 돌리는 퀴어 왕. 팔짱을 낀 채 그 슬림한 근육을 자랑하듯 하고 있지만 그런 행동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색하기 그지없는 공기가 만들어졌다. 누가 봐도 난 지금 뭔가 숨기고 있다고 자백하는 것 같은 분위기다. 반면 우리 쪽 아버지는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으로 치즈 크래커를 다 먹어치운 후 식후 와인까지 마시면서 그 어색함의 정체를 밝혔다.
“퀴어 말대로 이상한 일은 아니지. 슬슬 우리도 후계는 물론 손주도 보고 싶고. 그걸 떠나 애깅들의 미래를 확정 짓고 싶기도 한 나이야. 다른 이들이라면 벌써 결혼을 했을 텐데 너희는 좀 늦은 감이 있으니 이제라도 하면 좋겠다 싶을 뿐이지.”
“그게 무슨 소리예요?”
“설마, 아버님?!”
“그, 그하하하핫! 쇠뿔도 단번에 빼라는 말이 있잖냐? 그래서 기왕 여기까지 온 거! 바로 결혼식을 준비하기로 했다! 물론 바로 하라는 건 아니고?! 이제부터라도 준비하면 적어도 여길 떠나기 전까진 가능하게 될 테니…………”
“아버니이이이임?!”
“그렇게 화내지 마라. 저 바보가 자기 나름대로 너희를 생각해서 한 일이니까. 아, 지금부터 취소하려고 해도 이미 늦었다. 어젯밤 각지에 전령을 보냈기에 일주일 이내엔 각 영지에 그의 편지가 닿아 호모우 왕국 전역에서 각 귀족들이 몰려들 거다. 일단 우리 가문의 이름이 여기까지 팔리기도 했고 저항하는 이는 거의 없겠지.”
“아버지! 아니, 그래도! 이건 너무 갑작스러운데?! 조금만 더 시간을 두는 편이 좋지 않아?!”
“울 애깅도 이제 인생의 무덤에 발을 들이는 건가.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아.”
“그런 눈물 필요 없거든?!”
내 말을 들을 생각 없는 건지 아버지 일행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크래커를 씹어댄다. 어깨를 들썩들썩, 들썩들썩, 들썩들썩, 아주 즐거워 보이는 표정으로 빨리 그 모습을 보고 싶다며 입술을 부르르 떨어대고 있다.
반면 우리들은 어깨를 부들거려대면서 당황해한다. 유일하게 레인만이 콧바람을 불면서 의외로 즐거워하고 있다. 원래라면 남자와의 결혼 따위 꿈도 못 꿨을 여자였으니 그 부분에 관해서 생각하는 바가 있는 듯 내가 예상한 것과 비슷한 말을 지껄여대고 있다.
“아버지, 우리끼리 결혼하는 것에 관해서는 둘째 쳐도 레즈우 왕가가 가만히 있을 리 없잖아요? 이런 중대사를 아무런 말도 없이 독단으로 저지르다니. 본국에서 아버지를 소환해 무슨 말을 할지?!”
“그렇지, 그러니까 이번 일은 아주 즐거울 거야. 레즈우 왕가의 돼지들 따위 알 게 뭐냐하고 무시해라. 네가 호모우 왕국의 왕녀와 결혼했다고 해서 저쪽이 네게 실을 붙여 당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게 머리를 숙여 무언가를 부탁했다고 해서 그것을 들어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혼잣말이야, 혼잣말. 우리 애깅에게는 들려줄 수 없는 나쁜 의도가 잔뜩 담긴, 그런 혼잣말이지.”
“…?”
아버지의 말 그 대부분이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런 나를 바라보면서 「울 애깅은 여전히 무능해~!」라며 놀려댔지만 이상하게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넌 그렇게 계속 그러고 있어주면 된다」라며 지금의 날 좋아해 주는 모습이었으니 대놓고 싫은 티를 낼 수 없었다.
반면 우리 여자 측은 여러모로 생각하는 바가 있는 것처럼 표정이 어두워진다. 후식으로 나온 과일 플람베가 여태 느낀 고소함을 다 날릴 정도로 달콤했지만 그녀들은 그런 달콤한 맛조차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진지하다.
“후후, 울 애깅이 드디어 결혼인가? 이 자리에 레아가 없는 게 참 아쉬워. 그래, 아쉽고 말고.”
“……………”
그 혼잣말이나, 여자들의 반응에 대해, 그것을 좀 캐물으려 했지만 아버지의 독백에 말이 막힌다. 혼자 우리 둘을 키워오고 이젠 결혼까지 앞뒀으니 생각하는 바가 많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 덕에 일부로 인 것처럼 또 입이 막혔다.
화창한 금발에 날 보며 늘 싱글벙글했던 어머니의 얼굴이 살짝 떠올랐다. 마지막의 마지막, 대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거의 기억이 안 나기에 그 부분이 많이 안타깝다. 아무도 날 방에 들여보내주지 않고 어머니의 비명만 들렸던 기억만 난다. 혹시 나쁜 일이 생겼나 싶어 아버지께 몇 번이고 어머니의 마지막을 물어본 기억이 있지만…
“대체 뭘 숨기는 건지는 몰라도 마지막에는 좀 털어놔 줬으면 합니다. 끝까지 사람 왕따시키듯 하지 말고요.”
“뭐가?”
“어머니에 관한 거나, 지금 제 주위에 있는 여자들, 전부요.”
“일부로 물어보지 않는 게 현명할 때가 있지. 울 애깅, 넌 지금 아주 잘 하고 있는 거고.”
“전 그렇게 안 느껴져서요.”
“글쎄? 진짜로?”
또 말을 돌리는 건가 싶었지만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건 의외의 말이었다.
“호모우 왕국의 공주님을 얻어, 네 목숨을 위협하던, 언제 폭발할지 모르던, 그런 자기 누나를 따르게 해, 레인 공주님마저 가지게 됐는데… 흠, 그래도 우리 애깅은 이 상황이 그렇게 나쁘게 느껴지니?”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건 너무 답답하잖습니까.”
“그러니까 모르는 게 좋을 때가 있는 법이지. 아무것도 모르는 사이 귀찮은 일이 깔끔하게 처리되는 인생이라니.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인생을 바라지만 손에 못 넣는 것과 달리 넌 이미 그렇게 돼 있다. 이번 일도 그래. 굳이 알면 감정 상하고, 굳이 움직이면 일이 실패하는, 그런 상황이니 굳이 알려주지 않을 뿐이야. 누군가는 무능이라 놀릴지 몰라도 이 아비는 그런 우리 애깅을 좋게 생각하고 있단다.”
“상투적인 감성이네요.”
“그래서 효과적이지.”
“그래서, 가만히 있으라고요?”
“가만히 있어. 다 알아서 잘 풀린다.”
“…………”
골이 아픈 이야기다. 나와 비슷한 기분을 우리 쪽 여자들도 느끼고 있었던 걸까. 입에서 퍼지던 과일 맛이 싹 사라지고 찝찝한 기분만 남았다. 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따르기는 하겠지만 이걸로 여기 있는 모두가 무슨 꿍꿍이가 있다는 사실이 그대로 드러나고 말았다.
‘아이도, 썬도, 누나도, 레인도, 모두들 각자의 속셈이 있다는 걸 알았지만… 거기에 아버지까지 낀 건가…’
그 말을 들은 후 내가 과일 플람베의 마지막 조각을 씹어 삼킨 걸 계기로 모두가 조용해진다.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바라보면서 조용히 지나가는 시간. 나와 아버지들, 거기에 여자들이 섞인 첫 식사는 그렇게 미묘한 분위기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