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 귀족 - 난폭한 애완동물을 기르는 방법(5)
그 후 카울을 어떻게 하는 일은 없었다. 곧장이라도 이곳을 떠나야 하는 상황인데 그 계집과 이러쿵저러쿵할 시간 따위 없었던 거다. 클리와 질이 새빨갛게 부은 그 애완동물을 방치하고 그날은 내가 해야 할 일만 딱딱 끝내놓았다.
씻고 나와, 여자애들을 모아 성적 운동을 한 후, 다음날 그곳을 떠나는 일. 마음 같아서는 좀 더 해변가를 뒹굴며 놀고 싶었지만 그게 무리인 상황이니 황급히 떠나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한 번 더 오자는 약속을 나눴다.
일단 카울을 요리해버리고 그다음은 호모우 왕가로. 마침 아이도 호모우 왕성에 들러야 했는지 이번에는 자기네 왕성에서 쉬자면서 우리를 유혹해왔다. 호모우 쪽 음식은 어떻까 싶기도 했고 거기라면 암살 소동은 안 일어나겠지 싶어서 단번에 수긍. 애초에 따로 선택지가 있는 것도 아니니 우리들은 그대로 호모우 왕국으로 향했다.
지루하고 또 지루한 뱃여행…
그다음은 마차를 타고 이동…
그 와중 카울은 짐짝처럼 온몸이 묶여져…
기사들도, 시종들도, 우리들도, 전원 기진맥진 해질 무렵 도착한 새로운 왕도…
호모우 왕국은 레즈우 왕국과는 확연히 다른 곳이었다. 저쪽이 화려한 계통의 여자들을 자주 볼 수 있는 곳이라면 이쪽은 마초 계 남성이 득실득실. 아예 웃통을 까고 보디빌더처럼 자신의 근육을 자랑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여자보다 더 여자 같은 남자가 음란한 자태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것마저 볼 수 있었다.
호모우 교단이 깊게 침투한 지역답게 그쪽 향기가 풀풀 난다. 안 그래도 남존여비 사상이 강한 이 시대. 여기만큼 여기사들이 살기 힘든 곳은 없겠지 싶을 정도였다. 창관은 꽤 구석진 곳에 있었고 대부분 남성끼리의 사랑을 중요시했기에 남창이 제일 큰 길목에 들어서 있다.
그런 호모스러운 거리 중심에서 나와 기사에 시종들은 여기서 헤어지게 됐다. 아이를 맞이하러 온 호모우 왕국의 기사들이 있으며 왕성 내에도 따로 시종이 있으니 그동안 우리 사람들은 할 일도 없을 테니 그동안 휴가를 보내도록 한 거다. 안 그래도 저쪽에서 고생을 많이 했을 테니 기사들은 자기 취향에 맞는 창관으로 가고 시종들은 쥐여준 돈으로 자기 할 것을 하며 보내길 바랐다.
호모의 나라였기에 기사들은 어쨌든 시종들 그 대부분이 미묘한 표정을 했지만 그럼에도 거부하지는 않고 흩어진다. 저쪽에 있었던 일로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도 있을 테고 모처럼 그런 나라에 갔는데 제대로 쉬지도 못했으니 여기서 회포를 풀려는 사람도 있었을 터. 부디 이번에는 아무 일도 없길 바라면서 나와 동료들은 그들을 내버려 둔 채 왕성으로 입성했다.
화려한 복도, 멋진 홀, 일렬로 늘어진 기사들과 우리를 반기는 왕정 귀족들. 모두가 조용히 웃고 있으나 그 입 아래에서는 폭풍이 일어나고 있음을 안다.
“분명히 조용한 곳인데 이상하게 소란스럽게 느껴져…”
“아마 저 때문이겠죠.”
“썬에 관해서는 모두에게 허락을 얻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저와 협상을 했을 뿐. 직접 썬을 만나본 게 아니니까 신경 쓰여 하는 거예요. 만일 자기네들의 입장에서 쓸만하다 생각한 여자라면 단번에 괴뢰 취급하려 들겠죠.”
“궁정 안의 참새인가, 싫어하는 이유가 다 있었구나.”
“정말로 시끄러워서, 입을 다물고 있는데 머리가 산만해져서, 다 쫓아내버리고 싶다니까요? 후훗…”
아이와 썬이 불편한 티를 내면서 대놓고 화를 내는데도 그들은 멀어지지 않는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 채 싱글벙글 웃으면서 인사를 나눈 후 다시 거리를 벌린다. 의례상 인사를 하기 위해 홀을 잠깐 들렸다지만 그걸 감안해도 이 녀석들의 시끄러움은 하나의 폭풍과도 같았다.
대놓고 화를 내도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는다. 무언가를 추궁할 수 없는 분위기로 만들어 어영부영 무마한다. 저 멀리서는 남자들 틈에서 빠져나온 여식들이 모여 무언가를 작당하는 둥 도저히 좋은 분위기가 아니었다. 겉으로만 본다면 새롭게 나타난 공주에게 충성을 맹새하는 좋은 장면이었지만 그 가면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는 생각은 추악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끄떡하면 궁정 안의 참새들을 비유해댔지만. 이 꼬락서니를 보니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이 자랐겠군.’
나에게 천박함을 요구하던 아이.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너무나 좋아해서 내 성벽을 뭐든 받아주던 우리 변태 공주. 어째서 그런 공주님으로 자랐나 싶었지만 지금 이 꼬락서니를 보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녀석들과 같이 지내다 보면 조금의 감춤도 용서할 수 없는 성격이 되는 건 필연이었던 거다.
그 정도로 이 녀석들은 심했다. 아이와 깊은 관계가 된 나를 상대로도 거리낌 없이 머리를 들이밀어 온다.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음에도 그럴 듯한 지명의 이름을 대고 거기서 한 번 만나뵌 적 없냐면서 접점을 가지려하는 짓한 스무 번이 넘는다. 뭐든 하나만 걸려라는 식으로 떡밥을 던져대는 것이 아주 불쾌한 녀석들이었다.
썬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사실은 그 정체를 알고 있었다는 둥, 뒤에서 지원하고 있었다는 둥, 언제든 조력할 수 있게 대비했다는 둥, 말 같지도 않은 거짓말을 내뱉어 거리낌 없이 지뢰를 밟아온다.
거짓말의 연쇄로 뭐가 진짜고 뭐가 가짜인지 모를 정도의 상황.
여긴, 지옥인가?
내게 아첨해서 날 속이려 들었던 창녀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걸 다시 깨닫고 만다.
‘이 녀석들 사이에 있다간 정신병 걸릴지도 몰라. 진지하게 생각하면 곪아서 터져 버릴 테지.’
옆을 바라봤다. 아이와 썬은 이런 일을 예상한 듯 머리를 텅 비우고 인사만 대응하였고 우리 누나도 비교적 온건히 대응했다. 파이와 와이는 카울과 차오를 데리고 하드 교단으로 먼저 향했으니 보이지 않지만. 비교적 오래간만에 보는 것 같은 레인도 이런 일에 익숙한 것처럼 능숙히 대응하고 있다.
좋은 표본이었다. 나도 그녀들을 따라 해 인사만 적당히 받아주면서 말도 적당히 맞장구친다. 적당히 대응한 후 호모우 왕을 만나러 가기로 했으니 그때까지만 버틴다는 일념으로 난 잠깐 생각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래서, 에키시 님은…”
“아이 공주님~!”
“아이를 이미 가지셨다고~?!”
“그보다 이쪽 이야기는 어떻습니까아~!”
“아뇨아뇨, 기왕이면 저와 차를!”
“떼엑! 어딜 감히 공주님과?! 이쪽이 먼저다!”
“혹시 점은 관심 있으십니까?”
“그보다 첩 이야기가 빠르시겠지.”
“그거라면 이쪽 아이를…”
“아니지, 이쪽의 젊은 애가…”
바글바글 움직이는 사람들. 우리가 그렇게 대응하니 단번에 수단을 바꾸어 오는 것도 그렇고 사람을 밀어붙이는데 능숙했다. 그렇게 온건히 대응할 거면 여자들을 억눌러 넣어 주겠다는 마인드다. 이걸 어떻게 할까 표정 변화 없이 고민하며 시선을 슬쩍 여자들 쪽으로 돌리자 그쪽도 난처한 듯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로키시 누나야 나보다 이런 경험이 많으니 참고 있지만 아이는 뭔가 달랐다. 줄곧 이런 광경을 보면서 살아왔을 텐데 첩을 들이 미려하는 그 행태는 참지 못한 건지 드물게도 노기를 드러내고 있다. 아이의 그런 모습을 저쪽도 처음 본 건지 드디어 한 발 물러서 당황한 표정을 짓고 만다.
“큭… 기껏 에키시가 왔다고 하는데도… 그 행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다니…”
‘아, 그래서 화난 거냐.’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앞이다. 결혼은 거의 확정적이며 앞으로 같이 살아갈 나라. 기껏 자신의 나라로 초대했는데 보여준 건 추태. 부끄러워서 죽어버릴 것 같겠지.
‘기껏 타국에, 아이와 결혼해 눌러앉을 나라에, 왕성까지 온 거다. 이쪽 귀족들과 사이가 틀어지는 일은 피하고 싶은데.’
여기서 아이가 화내는 건 상책이 아니다 싶어 내가 적당히 말을 끊기 위해서 앞으로 나선다. 다리를 한 발짝 내밀어 외교용 웃음을 꺼내며 외국인처럼 HA! HA! HA! 하고 웃으며 어중간하게 얼버무릴 생각이었지만…
“아?”
“으음…”
“오셨나.”
“그럼, 공주님.”
“블랙우드 님도.”
“또 다음에…”
그 타이밍에 그들이 자리를 뺀다.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이 파티 홀의 제일 큰 문에서 소란이 일어났음을 느끼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직감했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기사들의 당황스러운 목소리. 당혹해하는 아이와 썬. 여기가 누구 안뜰인지 생각해보면 그 대답은 명확하다.
“호모우 왕께서 오시는 건가.”
“아버지와 만나는 건 정말로 오래간만이라… 걱정되네요…”
“여자를 싫어하는 건 둘째 쳐도… 평범히 가족을 아끼시는 분이니 에키시가 어떤 취급을 받을지…”
“소란스러운 걸 보니 좋게 반길 거 같지는 않은데…”
내 말이 키가 된 것처럼 문이 부서짐과 동시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천둥이 울려 퍼지는 것 같은 고함소리도 났으며 왕성 귀족들 전원이 한발 물러선 자세로 우리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나타난 그 남자.
그것은, 근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