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종료 - 최악의 후배 루트 〈장전 완료〉
달마식 처벌, 수개월간 슬람가 방치, 위장 소변으로 채우기 챌린지, 클리 전극 고문, 그 외 기타 등등이 적힌 그 룰렛은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딱 봐도 알 수 있도록 쉽게 만들어져 있다. 덕분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지금부터 일어날 일을 기대하면서 지켜봤으며 박수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본래라면, 원래 성격이라면. 이런 상황을 말릴 사람이 한 둘이라도 있었을 텐데. 이 미친 세계에 빠져버린 여자들은 이제 말리지 않는다. 에키시의 적이 되는 여자는 그 누구도 용서하지 않는 거다.
룰렛이 돌아간다. 에키시가 직접 다트를 던져 맞추는 형식의 벌칙 게임. 모두가 왁자지껄 시끄럽게 웃는 광기의 연회가 시작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썬은 이 상황이 많이 불편한 듯했지만 에키시를 농락하려 한 여자였기에 용서 못 한다는 자세로 이번 일을 묵비 했다.
즉, 이 자리에서 그나마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썬이 그녀를 못 본 척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할 필요도 없을 터.
“미쳤어…”
그런 와중에 그 소리를 흘린 건 누굴까?
‘스노 녀석… 녀석들을 회유하는 척하면서 무언가 작당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시종들과 기사들이 섞인 연회장이지만 그 넓은 장소에 그들만 있을 리 없다. 열심히 음식을 옮기고 있는 종업원들 사이에 자연스레 끼여있는 한 여자가 있다. 커다란 키와 기다란 흑발. 피부는 짙은 갈색으로 눈동자도 똑같은 그녀는 짐승 공주.
즉, 카울이다.
당연한 소리지만 본래라면 이 자리에 있어선 안될 여자.
애초에, 이번 일을 알지도 몰라야 정상이었지만…
‘혹시나 싶어서 직접 날아온 게 정답이었나. 저 멍청한 년, 평소엔 그리 잘난 척하더니, 물류를 공급하기 위해서 바쁘니 뭐니 지껄여댄 주제에, 스노와 작당해서 나를 골탕 먹이려다가 뒤통수를 맞아버린 거냐고…’
짐승의 후각은 대단했다. 호위를 해야 했던 스노는 어디다 두고 온 건지 하룻밤 사이에 이 섬에 나타난 카울.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모종의 방법으로 하룻밤 사이에 이 섬으로 휙 나타난 모양이라 현재 상황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이상한 낌새가 나타나서 그 뒤를 쫓아왔더니 전 동료가 끝장나기 일보 직전인 광경을 발견해버리고 말았다는 것. 그렇지만 그 동료가 자기를 배신한 흔적이 있어서 구할지 말지 깊게 고민을 하고 만다.
‘이해를 못 하겠네! 나도 스노를 배신하려고 했지만 너는 예상 외다! 네가 그럴 줄은 몰랐어! 넌 계산에 안 넣어놨단 말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파란 머리 할망구와는 다르게 넌 욕심에 눈이 먼 멍청이었잖아?! 왜 성급하게 저 망할 남자를 자기 것으로 삼으려 한 거야?! 제길, 제길, 제길, 기분 나쁘게에… 이게 대체 뭐냐고~?!’
이렇게 보여도 격정에 몸을 맡겨 모든 것을 망치는 여자는 아니다. 속으로는 분노의 불길을 이중적 의미로 활활 불태우고 있지만 겉으로는 누군가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 응당의 노력을 하고 있다.
‘내가 스노를 배신한다, 스노가 나를 배신한다, 그리고 우리 둘의 싸움이 끝나고 승자 쪽에 붙어야 하는 게 바로 너였잖아! 그렇게 얍삽히 맛있는 부분만 딱 가져가는 게 바로 너니까! 그래서 나도 스노도 널 사용했던 거라고! 미약의 공급과 제작까지 전부 맡겨버릴 정도로 신뢰하고 있었는데! 결국 너도 너대로 다른 욕망에 빠져버라고 만 거냐?!’
미약은 이미 충분히 공급돼 있다. 학교의 사건도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으며 이제 스노와 카울이 건들지 않아도 알아서 터지는 시한폭탄이 돼 있는 상황. 솔직히 말해 카울이나 스노가 미약과 노동력 공급책인 차오를 손절해도 상관없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협력하고 있었는데…
‘배신하려고 한건 맞지만! 배신감을 느끼는 쪽이 될 줄이야?!’
세상에서 제일 배신을 잘 할 것 같은 여자가 배신감을 느끼는 아이러니함. 곧이어 들려오는 파라라라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룰렛에 무언가가 박힌다. 그게 다트라는 걸 모를 리 없고 카울의 얼굴에 초조함이 더욱 묻어났다.
‘제길, 배신한 거 맞겠지? 확실한 거 맞지?! 이 내게 보고도 없이… 이런 곳에 에키시·블랙우드와 저 망할 걸레를 불러들였으니까…’
소문은 듣고 있다. 무슨 상황이 일어났는지 그 경위도 대강. 그러나 그렇기에 초조하다. 아직까지는 서로 손을 잡고 있을 단계에서 하나둘씩 수상한 짓거리를 해대더니 결국 이런 대형 사건을 터트렸으니까.
‘그렇지만 제일 중요한 정보가 없어! 어디까지 말한 거지?! 저 꼴을 보니 있는 거 없는 거 다 불어버린 거 같은데! 우리가 나라를 엎으려고 한 것까지 저 남자에게 지껄인 건가?! 스노 그 계집이 공주 일행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인 건 알고 있어! 그쪽에서 입막음을 하는데 성공했나?! 제길, 모르겠어. 여자들 쪽이 입막음하는데 성공하지 않았다면 저 망할 남자 놈까지 견제해야 되잖아?!’
카울은 스노와 로키시 일행의 밀담을 모른다. 그 내용물을 자세히 모르니 차오가 정말로 자신을 배신한 건지 그것마저 의심하고 있다. 사실은 스노에게 협박당해서 이런 일이 되지 않았나 싶기까지 했다.
‘저 여자들은 못 믿어! 로키시 저 걸레 년! 자기 남동생에게 푹 빠진 미친년이잖아! 이번에 차오가 나불나불 불어버린 것으로 저 남자 놈이 우리를 막겠다는 생각을 한순간 스노와의 동맹도 팡이야! 완전히 없었던 것으로 되는 것도 모자라 우리들의 비밀을 다 불어준 꼴이 돼!’
서로가 서로를 배신하는 것도 이번 일이 잘 풀렸을 때의 일이다. 그렇기에 이 시점에서 차오를 내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만약 스노와 로키시 일행의 동맹이 깨지는 일이 생기면 즉각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
‘일단은 알아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저 녀석을… 구해야 하는 거지만…?!’
노추르와 호모우 왕국에 이번 이야기가 보고된 건 확실하다. 그렇지만 저 녀석의 능력이라면 어디든 써먹을 수 있기에, 그래도 한때는 동료였기에, 일단은 구할 궁리를 한다.
일단 도망칠 곳은 두 곳.
그 외의 선택지는 없다.
‘학교는 당연히 무리고. 그 바보 돼지에게 빌붙어서 그 작은 왕성에 숨겨도 돼. 아니면 아예 우리나라로 불러들여서 일을 시키는 것도 괜찮아. 녀석이 저런 꼴을 당하는 건 본의가 아닌 모양이니까 구하면 은혜는 갚을 테니…’
주위를 둘러보며 숫자를 센다. 종업원들이 입고 있는 빨간 찜질복 차림이었기에 몇 남자들이 들러붙어 성희롱을 해왔지만 지금은 꾹 참고 눈만을 움직였다.
‘큭, 하나, 둘, 셋…’
기사들만 해도 오십, 시종들은 백이 넘어가, 로키시 일행을 합치면 함부로 싸움을 걸 수 없는 숫자 차이가 됐다. 시종들이야 비 전투원들이니 어떻게든 된다지만 기사들과 싸우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계책이 아니다.
레인도 그렇고 공주들을 지키는 기사들은 카울이나 로키시 급은 안되더라도 그럼에도 초인들. 라키시가 데리고 다니는 흑수대처럼 맨몸으로 배 하나를 부숴버리는 미치광이들이다.
‘평소라면 나 혼자서 뚫을 수 없는 포위망이지만… 일을 막 해결한 상태라 모두가 느슨해져 있다… 그래… 이거라면… 딱 한순간으로 충분해…’
카울의 시선이 날카로워지고 근처에 감도는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손에 쥔 찻잔을 꽉 쥐고 숨결을 한 번 내뱉은 순간 성희롱 아저씨 같은 분위기를 내던 기사들의 눈이 단번에 날카로워지고 로키시의 얼굴도 확 굳었다.
성욕으로 충만하던 공간에 불온한 기운이 섞인 거다. 그런 방면에 관해서라면 둔하디 둔한 에키시를 제외하고 싸울 줄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숨을 삼켰고. 그 목 넘김이 방아쇄라도 되는 것처럼 카울의 손에서 찻잔이 부서졌다.
‘지금이다!!!’
“뭐야?!”
“안 좋은 예감이?!”
그 행동에 제일 먼저 반응한 건 로키시다. 그 후 썬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지만 카울의 행동을 막을 순 없었다. 찻잔의 파편이 연회장 각 방면을 총알처럼 튕겨 날아가 연회장을 환하게 만들고 있던 샹들리에와 등불을 전부 날려버렸으니까.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리고.
그 비명이 신호처럼 울려 퍼진다.
「습격이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인간이 할 수 있는 짓이 아닌 완벽한 곡예. 연회장 중앙에 있던 샹들리에의 불이 꺼짐과 동시에 그것이 쿵 내려앉고 빛이 사라진다. 커다란 연회장 전부가 어두컴컴해지는 것과 동시에 시종들이 샹들리에에 깔려 큰 비명소리를 냈다.
쾅쾅쾅! 쾅쾅쾅!
기사들이 재빠르게 몸을 날려 연회장의 각 벽을 몸통 박치기로 날려버리고 바깥에서 흘러들어오는 빛으로 시야를 확보. 그리고 눈치 좋은 나머지 기사들이 아이와 레인의 곁으로 향했지만 그들의 예감은 좋지 않았다.
마음속 깊숙한 곳으로 흘러들어오는 불안.
가슴속에 있는 누군가가 「이미 늦었다」라고 외친 거다.
“공주님! 공주님!”
“무사하십니까?!”
“아이 공주님! 레인 공주님!”
“에키시 공!”
기사들의 손에 의해 눈 깜짝할 사이 벽이 부서져 바깥에서 빛이 흘러들어온다. 공주들은 괜찮았던 건지 모두가 자신의 무사를 알리고 있었다. 샹들리에 아래에 깔려 다친 이들을 제외하면 사상자는 없는 상황. 이거라면 금방 침착할 수 있는 사건이었지만 에키시만은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시야는 연회장의 한쪽에 쏠려 있다. 이 상황 속에서 딱 한사람 크게 다친 사람이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노렸다는 것처럼 노골적이고 크나큰 상처가 눈에 띈다. 그녀의 팔에 묻은 새빨간 자국과 피비린내가 코를 타고 들어온 순간 에키시의 얼굴이 여태 없을 정도로 험악하게 물들었고…
딱!
그런 소리와 함께…
그의 참을성이 끊어졌다…
12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