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능 귀족 여체 하렘-119화 (119/199)

 무능 귀족 - 반란의 밤(3)

그렇게 두 사람이 침대에 누운 채 시간이 흐른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신음 소리는 끊이질 않지만 로키시와 스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 와서 여자나 남자의 헐떡임에 얼굴을 붉힐 정도로 숫처녀도 아니고 그럴 상황도 아니니까.

“어머님은 어떤 사람이었어?”

“너랑 똑같이 생겼음. 다만, 신체는 여렸고 생각하는 게 괴짜였지.”

“외형에 관해서는 말 안 해도 돼. 그리고 그 괴짜라는 건 뭔데? 내가 기억하는 어머님은 너처럼 이상한 것에 빠진 사람이 아냐.”

“너는 모를 테지만 나와 비슷한 부류였음. 오컬트에 빠져있는 것도 그렇고. 애초에 나를 블랙우드에 맨 처음 권한 것도 그녀임. 이 땅에 처음 발을 디디고 자리를 잡아가는 와중 우연찮게 만나서 의기투합하고 이후 레즈우 왕과 라키시 공의 사이에 벌어진 불화를 내가 약으로 처리하려다 레아 사모님을 죽이게 됐음.”

스노의 목소리는 평탄했다.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같은 푸념 정도의 어투. 그 말에 로키시가 불만을 품은 듯 인상을 구겼지만 침대에서 일어나진 않았다.

“귀찮은 여자였음. 그녀와 처음 만난 장소도 내가 이 거리에서 열었던 오컬트 가게였고. 호위와 감시역의 눈을 따돌리고 왕도를 돌아다니다 흥미에 이끌려 여기저기를 다니다 내 가게에 당도했다고 말했음.”

“의외네? 어머님이 그런 가게에 가다니… 내가 기억하는 어머님은 말없이 책만 읽던 분인데…”

“그 부분은 네 기억이 옳음. 레즈우 왕성에는 많은 고서가 잠들어 있었고 그녀만큼은 그런 것에 대한 흥미가 남달랐음. 애초에 외형을 바꾸는 약에 관한 것도 그녀가 발굴했었음. 그게 그런 식으로 쓰이게 될 줄은 그 당시에는 몰랐을 뿐.”

꽤 연극 같은 만남이었다고 말하며 침대를 뒹구는 스노. 바로 옆자리에 누워 눈만 감고 있는 로키시는 그것을 신경도 안 쓰고 그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친했어?”

“친구냐고 물어본다면 아니라고 답함. 그러나, 제일 가까운 지인이었음. 네가 태어나고 에키시가 태어날 때까지 줄곧 같이 있었음. 마음은 열지 않았지만 중요한 일을 부탁할 정도의 관계는 됐다고 생각함.”

“그게 친구란 거 아냐?”

“그럴 리가. 네가 생각하는 그런 관계는 절대 아님.”

“흐응~?”

스노의 말투는 여전히 평탄하다. 후회하고 있는 건지 아닌 건지 알 수 없는 어투. 그렇지만 로키시는 그녀의 심정이 어떤지 대강 눈치챘고 눈을 감은 채 인상을 풀어버렸다.

“어머님이 죽은 후 화는 안 났어? 그 실상을 알았을 때는?”

“화를 내는 역할은 라키시 공의 것. 그러니 화는 나지 않았음. 실상을 알았을 때는 당황했지만 슬픔은 없었음. 사전에 눈치채지 못한 내 어리석음에 미안함을 느꼈을 뿐. 차가울지도 모르지만 그게 전부임. 나 개인이 왕에게 복수할 생각은 없지만 라키시 공이 복수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면 거기에 도움을 줄 정도의 공감대는 가지고 있음.”

“이 나라를 엎겠다는 말을 했잖아? 그래놓고 어머님에 관한 이유는 아니라고 하다니. 변명하는 꼴이나 마찬가지야.”

“그녀를 위해 이 나라의 왕을 죽이겠다니. 난 그렇게 뜨거운 사람이 아님. 언제나 사리사욕을 위해 움직이고 있음. 그런데 어느 날, 아주 우연찮게, 이 나라를 망가뜨리는 겸 내가 원하는 보수를 제시한 여자가 있었을 뿐임.”

그 말에 카울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로키시는 그녀가 왜 이런 타이밍에 여기에 왔나 싶었지만 그 말로 모든 것을 납득해버렸다. 야만족이 밀리고 언제 다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이 상황. 레즈우 왕가를 내부에서 흔드는 건 효과적으로 먹힐 터였다.

“외형을 바꾸는 약에 관해서는 알겠는데. 그 독에 관해서는 전혀 몰랐던 거야?”

“외형을 바꾸는 약이 레아 사모님의 손에 의해 발굴된 후 레즈우 왕 또한 고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게 문제였음. 어떻게 하면 그런 약들을 응용할 수 있는지 머리를 굴린 거임. 그렇게 보여도 왕이 될 정도로 재능 있는 자니까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던 것도 문제임.”

생각보다 귀찮은 남자라면서 나지막이 욕을 토하는 스노. 로키시는 풀린 의문 사이에서도 궁금한 게 있는지 여전히 입을 나불거려댔다.

“그 사건이 있은 후 보모 노릇을 하다가 왕성에 갔단 소리인데. 레즈우 왕에게 입 막음을 당했을 것 아니야? 보통 죽이지 않나? 나도 그렇지만 당신도 잘 살아있네.”

“나도 그 부분을 염려했지만 상황이 좋게 흘러갔음. 레아 사모님을 죽인 후 고서에 빠져 있었기에 그 부분에 관한 지식을 뽐내 가까이 다가갔음. 아양을 떤 것도 있었고 그 이후 블랙우드 가문과 접촉하지 않았기에 나를 믿고 신용해주는 단계까지 왔음.”

“그 와중에 카울과 비밀리에 만났다?”

“그런 거임. 게다가 세스트를 빼내는 것도 아주 간단한 일이었음. 자기 아들과 취향이 맞는 건 둘째치고 그에 관한 취급을 곤란해하고 있었으니까.”

“아하아…”

밤새 들려오는 여자의 신음소리. 그것을 듣고 밖을 손가락질하면서 풋풋풋 웃는 로키시. 이 나라 저 나라에서 모인 여자들이 이런 곳에 붙잡혀 섹스나 하고 있는 상황. 게다가 미약까지 써대며 여자들을 폐인으로 만들고 있으니 이 일이 어떻게 커져 돌아올지 뻔히 알 수 있었다.

“그 결과가 저거야? 널 믿고 세스트를 내보냈는데 저 돼지를 제물로 이 나라를 무너뜨리려 하는 거네?”

“제물이라니, 듣기 안 좋음. 정정 바람.”

“그럼 뭔데?”

“그냥 돼지를 방목했을 뿐임.”

“그게 그거잖아.”

“뉘앙스의 차이임.”

그 말에 크게 웃어대는 로키시. 뭐가 그리 즐거운 건지 스노는 그녀의 웃음 포인트를 잡아내었다. 여태까지의 이야기는 충격적이고 어느 정도 화가 나는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어딘가 통쾌한 부분이 있었다.

에키시가 모르는 사이 일이 걷잡을 수없이 커져가고 있다. 차세대를 이끌어갈 인재들이 하나같이 성욕에 빠지면서 몇 여성들은 돌이킬 수 없는 길은 건넌다. 명확한 범죄에 세스트도 스노도 옹호할 수 없는 입장이지만 로키시의 마음은 흔들렸고 이 계획에 동참할 마음조차 생겼다.

“그래, 뭔지 알겠다. 왜 여기에 끼지 말라는 건지도 알았어. 이런 터무니없는 이야기에 아버님과 에키시를 끼어들게 할 수는 없었네? 에키시야 어느 정도 분노하는 선으로 끝나겠지만… 아버님은…”

“너희 둘의 사이도 괜찮아졌겠다 적극 동참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의 명예 중시 성격상 나와 적대할 수도 있음. 아니면 아예 가문을 벗어나 한 개인으로서 명예조차 내던지고 홀로 일을 벌이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함.”

“하… 머리 아프게 하기는…”

“원래라면 너에게 다 까발릴 예정이 아니었음. 하드 교단에서 개입한 것 때문에 발등에 불이 떨어졌기에 이렇게 털어놓게 되었던 거임. 아직 미약의 원료나 루트에 관해 까발려지면 곤란한 시기라서 그럼.”

그 말에 젖소 둘을 떠올리는 로키시.

“학교 밖을 나가지 않고 계속 이 주위를 서성이는 걸 보면 그 말도 나름 납득이 가. 너희가 여기에서 일을 벌이고 있다는 걸 확신하고 있는 거겠지.”

“당연함. 그 교단 사람들은 약물 재조의 프로들임. 현자라 불리고 있지만 본직에 이길 수 있다 단언할 수는 없음. 이런 일에 관해서라면 빠삭하고 여기 근처에서 미약 원료를 재배할 수 없다는 걸 알면 지금 쓰고 있는 루트도 금방 알아챌 것임.”

“걔네 말로는 야만인들이 쓰는 그 약초… 즉, 음문을 박을 때 쓰는 것이라 들었는데. 그걸 대체 어디서 가져오는 거야? 정작 미약의 원료가 나는 땅은 우리가 차지했잖아? 다름 아닌 이 내가 카울을 몰아내고 빼앗은 거니까 잘 알고 있다구.”

“야만족들이 지키고 있는 마지막 땅에서 소량으로 자라고 있음. 빼앗긴 땅이 미약 재료의 원산지처럼 유명한 것뿐이지 야만족들이 다스리는 땅이라면 어디라도 평범히 재배할 수 있는 거임. 곡창지대를 빼앗겨도 쌀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게 아닌 것처럼 그것도 여러 곳에서 재배하고 있음. 그 땅에서만 난다고 하는 문구 자체가 사기니까 말임.”

“헤에.”

“수송에 관해서는… 흐음… 이제 와선 숨길 것도 없나…”

요전 날 라키시 본인에게 털린 그 상선에 대해 지껄이는 스노. 바로 최근까지 학교의 쓰레기 매립지 부근에서 거래를 했던 것까지 가볍게 털어놓았다. 게다가 카울과 자신의 관계에 대해서도 알았으니 이 학교 내에서 조용히 암약하고 있는 또 하나의 동료 차오까지 소개한 것이다.

거대한 상회를 이끄는 젊은 여자, 몰락하기 직전인 야만족의 공주, 왕의 환심을 사 내부에서 사건을 일으키는 현자, 그 세 명이 일으키는 행위는 나라를 무너뜨리는 폭탄이나 다름없다. 야만족의 배를 몇 척이나 사용한 것은 물론이요 스노 본인의 인맥을 사용해 약재를 왕도로 들인 후 쓰레기 매립지 루트로 조용히 들여보내고 있는 것이 현 상황이다.

인맥도, 돈도, 뭣도 없이 이 나라에 발을 들였던 때와는 다르다. 왕의 고문역, 회계, 왕자의 감시역, 지금이라면 뭐든 할 수 있는 여자다. 선박 하나가 라키시에게 붙잡혀 망가졌다고 해도 다른 루트를 사용해 얼마든지 약재를 들일 수 있다. 그녀를 돕는 사람 또한 왕도 내부에 잔뜩 심어뒀으니 어려울 것 하나 없다.

왕은 학교나 세스트에 대해 신경을 껐으니 타국의 중진들에게 간섭만 안 받으면 된다. 그들에게 막히지만 않으면 일은 쭉쭉 진행될 것이고 그렇게만 되면 레즈우 왕이 현 상황을 보고받을 무렵에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달했을 테니까.

“최종적으로는 어떻게 되는 거야?”

“학교에 유입한 아이들이 약에 찌들 때까지 학교 내를 더럽히는 거임. 그리고 졸업할 무렵 야만족과 그들과 연합한 소국이 우리가 제조한 미약을 팔아넘기기 시작함. 물론, 효과는 지금 우리가 뿌린 것보다 약한 것으로 기호품 수준으로 떨어뜨림. 충분히 무역 상품으로 쓸 수 있는 수준으로 말임.”

“흐응…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점점 강도를 올림. 어차피 야만족들에게 빼앗은 그 땅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들이 미약을 만들어 국내에 유통할 리는 없음. 그것도 우리가 팔 예정인 것만큼 강력한 것을 팔 리 없으니 방치하거나 불태워버리거나 둘 중 하나가 될 것임.”

“아니면 다시 빼앗는다던가?”

“그것도 염두에 두고 있음. 학교를 졸업해 미약에 찌든 애들이 전 국토로 나갈 무렵이지만 당연히 이 학교에는 타국에서 온 학생들도 존재함. 여기서 벌어진 미약 소동은 레즈우 왕의 귀에도 닿을 것이고 세스트의 행보도 들릴 것임. 당연하지만 세스트는 사형, 여러 나라에서 클레임이 들어오는 건 물론, 우리가 판매하는 미약을 막기 위해 일을 벌이겠지만 그걸 어떻게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진 않음.”

“실패해도 군자금은 모을 수 있고… 차세대를 이을 아이들이 미약에 빠졌으니… 후에 레즈우 왕의 걸림돌이 된다 그건가…”

“왕이 안된다고 해도 비밀리에 거래할 바보들은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 당연히 우리 측에 이득이 돌아옴. 왕의 입김이 닿은 자들이 레즈우 왕국 전체를 돌아다닌다 하더라도 모든 귀족들을 단속할 수는 없음. 하물며 지금도 우리가 쓰는 배가 바다를 돌아다닐 정도니 그쯤 되면 일이 얼마나 커질지는 너라도 알 수 있을 거라고 봄.”

로키시가 두 눈을 감은 채 이번 일이 안 막힐 경우 어떻게 될지를 상상한다. 국내에 혼란이 일어나는 건 물론이고 사회 문제로 번진 후 커다란 불길이 솟을 것이다.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치게 될지 알 수 없다. 그 사이에서 블랙우드 가문만은 멀쩡히 자기 영토만을 지킬 것이며 이후에 있을 변화에 맨 먼저 대응할 터.

“미약 전쟁이라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내 의향뿐만 아니라 고용주인 카울의 의향도 섞였으니 이렇게 된 거임. 왕 하나를 끌어내리는 게 아니라 나라 하나를 집어삼키는 게 목적이니 어쩔 수 없음.”

“그걸 가만히 두고 보고 있으라고? 우리 가문을 건들지 안 건들지 알 수도 없는데?”

“카울의 목적은 그것이지만 내 목적은 다름. 다시 말하지만 이 나라가 휘청이든지, 망가지든지, 어쨌든 왕이 사라진 후 에키시가 필요함. 차세대의 왕은 정해둔 자가 있지만 그 자리에 에키시를 놓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님. 일이 어떻게 구르든 로키시 네 도움이 있다면 모든 일이 미담으로 퍼질 수 있도록 꾸미고 있기도 함.”

“이런 소동을 미담으로 만든다고? 아니, 그리고, 에키시를 왕으로?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 말에 움찔하는 로키시. 가문은 탐낸 적 있지만 그런 자리엔 탐낸 적이 없었기에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 자기가 느끼고 있는 것이 욕심인지 아니면 불안인지는 몰라도 에키시를 그 자리에 두고 싶지는 않았다.

“왜 하필 에키시야? 내 남동생으로 이상한 생각하지 마. 나라의 발전이니 뭐니 조언을 받는 정도면 상관없어도 그렇게 대놓고 앞잡이로 세우지 말란 말이야.”

“앞잡이라니, 뭔가 오해가 있음.”

“무슨 오해? 네가 만든 판, 엎어지는 나라, 거기에 에키시가 왕으로 올라서면 모두가 에키시를 나쁜 사람으로 알게 되잖아?!”

“그게 오해란 거임.”

“그러니까 무슨 오해냐고?! 다시 말하지만 이 모든 게 네가 만든……?!”

“그 부분, 그 부분, 지금 네가 말하는 그 부분임. 애초에 내가 판을 짠 게 아님. 이 작전은 애초에 네 동생이 짠 거임. 나는 들은 것을 어레인지 해서 따라 했을 뿐이고.”

“뭐?”

“정확하게는 수년 전. 아직 내가 보모를 하고 있을 무렵 네 동생 에키시가 말했던 거임. 그것도 아주 해맑은 얼굴로 자기가 만든 가짜 역사를 읊어댔음.”

에키시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역사 이야기.

알 사람은 다 아는 그 전쟁.

“다시 말하지만 네 동생은 바보가 아님.”

어렸을 무렵 아직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때 지껄인 그 가벼운 이야기의 정체는.

“괴물이지.”

그것은 바로 바로 아편 전쟁의 일부분.

스노는 아주 어렸을 무렵 에키시가 지껄여댄 그 이야기를.

자기 나름대로 이해한 결과 이렇게 됐다고 또 비밀을 털어놓았다.

100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