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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 귀족 여체 하렘-118화 (118/199)

 무능 귀족 - 반란의 밤(2)

로키시의 분노는 컸으나 그것도 아주 잠시. 절망하지 않았고, 슬픔도 크게 와닿진 않았으며, 당황한 건 사실이나 침착함이 돌아오기까지 불과 수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놀란 이야기였지만 결정적으로 로키시의 마음에 닿진 않는 이야기였으니까.

레아 어머니의 일은 충격적이다.

‘근데? 그래서?’

레즈우 왕과 세스트는 쓰레기다.

‘레즈우 왕은 어쨌든, 세스트가 인간쓰레기라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야.’

그럼에도 라키시 아버지는 로키시를 가족으로 바라봤다.

‘그것도 알고 있어. 에키시를 죽이려고 했던 나를 살려두고 있는 게 그 증거야. 아버님도 복잡한 마음으로 나를 내버려 두셨을 테지. 실제로 죽이려 했으면 말렸을지는 둘째 치더라도…’

로키시의 처사에 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그야, 그렇겠지, 어머님이 날 좋아할 리 없었던 거야. 일찌감치 마음을 접어서 충격은 덜하지만 이렇게 이유를 들어보면 날 싫어할 수밖에 없었던 거라는 걸 알아. 대놓고 매도하지 않은 것만 해도 감지덕지한 꼴이었어.’

로키시의 마음이 침착해졌다. 역겨운 감정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그건 핏줄 때문이지 블랙우드 가문의 가족들 탓은 아니다. 막장 드라마에 나오는 비극의 히로인처럼 춤출 생각은 추호도 없고 실의에 빠질 생각 또한 없었다.

‘그렇지만… 심정으론 납득했어도… 그래도…’

아직은 확정된 게 아니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지 않을 확률도 있다.

“증거는 있어?”

“약에 관해서라면 그 책을 가지고 너희 기숙사로 온 젖소들에게 물어보면 됨. 약효에 관해서는 그녀들이 실증해 줄 것임. 약재는 전부 레즈우 왕국 근처에서 나는 것. 그리고 그 대부분이 일반인이 채취하지 못하도록 이 나라 특유의 법률로 정해져 있음. 다시 말하지만 외형을 바꾸는 약은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얼마든지 범죄와 연관 지어 쓸 수 있으니 엄숙히 관리되고 있는 편임.”

“그럼… 머리카락이나 외형은 그렇다 치고… 그럼 우리 특유의 능력은…”

“그 신체 능력에 관해서는 뭐라 할 말이 없음. 에키시와 로키시, 너희 둘의 그것은 그냥 너희 둘이 뛰어난 거임. 블랙우드 가문의 특유의 재능? 그렇게 치면 라키시 공도 점프로 하늘을 날아다녀야 정상. 그러나 그는 무술에 재능은 있어도 너희처럼 비상식적인 영역에 발을 들이진 않았음.”

“그런 말로 납득하라고?”

“그럼 어쩔 거임? 애초에 너희 둘의 재능이 일정하지도 않잖음?”

“윽…”

그 말 그대로였다. 에키시가 로키시를 이기는 부분은 힘 정도뿐. 나머지는 로키시 쪽이 특출나게 우월했다.

“지금은 무능하게 보일지 모름. 그렇지만 레즈우 왕가도 나름 재능 넘치는 아이를 많이 배출하고 있음. 네가 레즈우 왕가의 피를 잇고 있음을 생각하면 그 안에서도 톱에 서겠지만. 그렇기에 재능 하나만으론 증거가 될 수는 없음. 애초에 어떤 가문의 자식이라는 것만으로 태어날 때부터의 재능이 정해진다면 이 세계는 좀 더 발전하고 있었을 것임.”

“재능 넘치는 아이를 많이 배출하고 있다라…”

“물론 레인과 세스트는 예외임. 입 아프게 하지 말아 줬으면 함.”

그럼에도 로키시는 납득하기 힘든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마음은 꺾인지 오래였다. 스노가 「그 책 안에 모습을 돌리는 방법도 적혀 있으니 실험해보길 바람」이라고 말한 걸 계기로 그녀의 말을 믿기로 했다.

“제길… 모두들… 나만… 바보 만들기는…?!”

“흐음…”

로키시의 짜증 섞인 반응에 스노는 냉담히 반응했다. 차갑게 한숨을 내뱉는 로키시를 평가하는 것처럼 바라보더니 이득고 다시 한마디 내뱉는다.

“라키시 공은 아직도 영지에 계심?”

“아버님은 영지에서 나가질 않으셔. 급박한 업무가 아니라면 대게 영지에 틀어박혀 있지.”

스노의 물음을 계기로 무언가를 떠올리는 그녀. 납득했다는 말투로 라키시의 일상을 줄줄 읊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일이었어. 아버님쯤 되는 남자가 다른 여자를 들이지 않는 것도 그렇고. 그 누구보다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이 우리가 저지르는 일을 관대히 봐주는 것도 그렇고. 왕성에 얼굴을 비출 만도 한데 그쪽엔 발도 들이지 않으셨지……”

“극악무도한 괴물들의 소굴. 여기의 연회장 따위 거기에 비교하면 소귀의 동굴이나 마찬가지임. 자기 아내를 죽인 우두머리가 그곳의 톱으로 서 있으니 도통 발을 들이기 힘들었을 것임. 그렇다고 대놓고 적대하자니 너희 둘의 목숨줄이 위험했음.”

“우리 아버님, 그런데도 웃고 계셨지… 내가 집안에서 저지른 행태를 생각하면 목을 분질러버리고 싶으셨을 텐데… 잘도, 잘도, 잘도, 정말로 잘도… 살아있었구나…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보여도 연륜이 있는 사람임. 그의 근성은 너희 같은 애송이들이 가늠할 수 있는 게 아님.”

스노의 말에 로키시의 표정이 어두워지고 한 장면이 떠올랐다. 학교에 가기 전 셋이서 했던 그 식사 장면. 로키시를 나무라면서 에키시를 걱정하던 라키시의 모습. 그에 반발하여 에키시는 자기가 꼭 지킨다고 했던 로키시 본인의 모습까지.

「우리 공작가의 이름은 높다. 그렇기에 본래 덤벼들어야 할 적은 자세를 굽히고 꼭 덤벼들어야 하지 않을 멍청이들이 덤벼들어 온다.」

무슨 심정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이제서야 이해한다.

「핫, 예쁜 여자만 보면 사족을 못쓰는 멍청한 누이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지. 본인의 어리석음에 관해 알고 있다면 그 행태를 고치는 게 도리일 터인데 본인은 그럴 생각이 없어. 에키시가 뿌린 소문이 아니었다면 너에게 이 자리를 넘겨줄 생각은 하지 않았을 거다.」

그럼에도 가주의 자리를 넘겨주려고 했던 것에 감사했다.

“왜 살려뒀는지 모를 정도네… 나… 진짜로 왜 살아 있는 거야…”

“사실은 알고 있지 않음? 라키시 공과 같이 살았더라면 누구나 알 것임.”

“사랑하는 자기 아내에게 불명예를 씌우지 않기 위해서?”

“맞음, 그거임. 그렇게 비참히 죽으셨는데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입에 그녀의 이름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건 라키시 공이 참을 수 없었음.”

“정말 아버님 다운 발상이야…”

로키시는 생각을 깊게 하며 여태 마음에 걸렸던 것을 모조리 납득했다. 생각해보면 에키시와 로키시의 관계도 보통은 아니다. 남매끼리 섹스를 하고 가끔은 질내사정까지 하는데도 라키시 공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있었으니 그 부분도 문제가 있다. 아무리 이 세상이 그런 일에 관대하다 하더라고 사람 심정이란 게 간단한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내가 임신을 해도, 하지 않아도, 아무래도 상관없었던 거야. 에키시는 블랙우드 가문의 씨, 나는 레즈우 왕가의 피, 아버님이 레즈우 왕가의 공주님을 손에 넣은 것처럼… 에키시도 레즈우 왕가의 여자를 가진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이번 당주는 너에게 넘길 수 있었지만 다음은 아님. 네가 에키시 이외의 남자와 결혼해서 애를 낳아도 그 애가 다음 가주는 될 수 없었음. 레즈우 왕가의 피와 다른 가문의 피가 섞여 결국엔 블랙우드와 전혀 관계없는 애가 태어났을 테니.”

“그러니까 방치했구나… 오히려… 나와 에키시와 들러붙길 바란 거야…”

“너와 에키시가 애를 낳으면 뭐가 어떻게 돼도 일단 블랙우드 가문의 피가 섞임. 라키시 공은 그 부분을 제대로 생각했음. 네 아이가 금발을 가지고 태어나도 애초에 블랙우드 가문과 레즈우 왕가의 관계가 깊으니 격세유전이겠거니 하고 속일 수 있음.”

“평생 몰랐을 수 있다니… 치밀하긴…”

처음부터 다른 남자와 결혼할 가능성은 없었다. 로키시는 에키시가 태어났을 때부터 그와 결혼할 운명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나쁘진 않아… 에키시에겐 못된 짓을 저질렀지만… 그럼에도 결국엔 그 아이의 애를 낳아야 할 운명이었다면… 그건… 어떤 의미론…”

「로맨틱」이라고, 로키시는 그렇게 지껄인다.

그 말을 들은 스노의 표정이 구겨지지만 로키시의 감수성을 나무라진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네 자유임. 남이 하는 사랑에 찬물을 끼얹을 생각은 없음. 결혼식 날에 부른다면 축복 정도는 하겠지만 말임.”

그 말에 헤벌쭉 웃다가도 다시 얼굴을 굳히는 로키시. 기쁜 건지, 슬픈 건지, 화난 건지,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하나 확실한 것은 아직까지 스노를 믿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전부 알면서 에키시를 죽이려 한 거야? 내게 왜 그랬어? 아버님은 왜 방치했고?”

“왕성으로 끌려가기 전 라키시 공의 명을 받아 네 인성을 알아봤던 것임. 너만 모를 뿐 네 목줄과 같은 역할이었음. 정말로 위험한 상황이 온다면 말릴 예정이었고 만약 실패해서 에키시가 죽게 된다면 그건 그것대로 괜찮다고 생각했음.”

“뭐가 괜찮다는 건데? 에키시가 죽으면 그걸로 끝이잖아? 방금 그 이야기를 듣건대 아버님이 다른 여자를 얻을 거란 생각이 들지도 않고…”

“그러니까 그건 그것대로 괜찮단 말을 쓴 거임. 그 당시의 라키시 공은 우울증이라도 도진 건지 너희를 양육할 상태가 아니었음. 그건 로키시 너도 잘 알 거라 생각함.”

그 당시의 라키시의 상태가 어땠는지는 로키시도 잘 알고 있다. 평범하게 지내면서도 어딘가 의욕이 없는 상태. 로키시를 칭찬하면서도 에키시를 보고 활기를 얻던 그 모습을 그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자기와 달리 에키시의 앞에선 진심으로 웃고 있었다는 것도 말이다.

“네가 에키시를 죽이면 라키시 공은 널 죽였을 거임. 그리고 블랙우드 가문의 마지막을 선언한 후 왕가로 쳐들어가 난리를 부리고 자살할 예정이었음.”

“그것참… 웃어넘길 수 없는 이야기네…”

“실제로 그런 일은 없었으니, 이제 와선 과거의, 혹시나 일어났을 수 있는, 그런 이야기일 뿐이지만…”

그런 일이 있긴 있었다며 흘리듯 넘긴다. 만약 이 자리에 에키시가 있었다면 이야기를 듣자마자 발광했을 폭탄 발언들 투성이었다. 이 썩어 빠진 게임은 스토리가 변경되면서 새로운 지뢰를 여기저기에 심었으나 정작 본인은 그것도 모르고 그 위에서 탭댄스를 추고 있었던 꼴이었다.

“그럼, 여기까지 말했으니 이제 좀 눈치챘으면 좋겠음. 네가 그렇게 궁금해하는 우리들에게 연관되지 말라는 의미. 그리고 지금 이 학교에 뿌려지고 있는 미약들. 슬슬 촉이 오지 않나 싶음.”

“저 짐승녀도 그렇고. 국가 전복 비슷한 거라도 노리는 거야?”

“비슷한 게 아님. 진심으로 노리고 있음.”

“아, 농담이지?”

“난 농담을 싫어함. 특히 레아 사모님이 죽은 후부터 줄곧 싫어했음.”

“……………”

스노의 단언에 서로의 표정이 굳는다. 출생의 비밀 다음은 국가 전복 선언. 그것도 전 국토에서 모인 타국 사람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 그 소리를 내뱉었다. 그게 뭘 뜻하는지 모를 정도로 그녀는 바보가 아니다.

“한동안 안본 사이 머리가 삐었어? 아니면 그 병신 같은 왕에게 병이라도 옮기라도 했어? 방금까지의 이야기는 그렇다 쳐도 그 이야기는 뭘 어떻게 해도 납득할 수가 없는데?”

“납득하라고 말한 적 없음. 그러니까 우리와 관련되지 말라는 부탁을 한 거임.”

“너 미쳤어?”

“나름, 정상임. 게다가…”

「원래라면 이 나라를 먹은 후 에키시에게 손대려고 한 것」까지 털어놓자 로키시의 표정이 이 이상 있을 수 없을 정도로 험악해진다. 말 그대로 수라가 이 자리에 강림. 그 말을 내뱉은 스노도 아차! 한 얼굴로 식은땀을 흘릴 정도였다.

“거기서 에키시 이름이 왜 나와?”

“인상 풀어주길 바람. 성적인 의미로 그런 말을 한 건 아님.”

“그럼 뭔데?”

“어렸을 무렵 그에게 특별한 재능을 봤음. 네가 말하는 그 신체능력이니 뭐니 그런 것 말고. 세상을 발전시킬 수 있는 부류의 재능임.”

“또 막연한 걸 지껄이네.”

이 여자는 늘 그런 식이라면서 욕을 토해내는 로키시. 그 말에는 스노도 반성하는 점이 있는 건지 입을 쩝쩝거리면서 다시 설명했다.

“세상을 발전시키는 재능…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레즈우 왕도 상공에 떠 있는 드래곤이나… 지금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괴물과 이형의 무언가 대신… 사람만으로 세상을 발전시키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데 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음…”

“그렇게 말해도 이해가 안 가는데. 또 연금술 같은 거에 빠져있는 거야? 미리 말해두겠는데 우리 에키시는 그런 거랑 관련 없어.”

“이번엔 그런 것이 아님. 확실히 실현할 수 있는 것을 말함. 그의 머릿속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알 수 있을 거임. 그렇기에 이 나라를 먹은 후 그를 새로운 왕의 곁에 두고 싶음. 그는 이런 곳에서 여자 놀음이나 하고 있을 사람이 아님.”

“흐음?”

“네 동생 에키시는 이 대륙 역사서에 기록되어 후손들에게 평생 거론될 인물임.”

“………………”

스노의 단언, 그러나 로키시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정으로 침대에 발라당 누워 눈을 감았다. 출생의 비밀에 동생에 관한 극찬까지 들었으나 뇌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였으며 이득고 하룻밤 생각하게 해달라면서 그대로 고민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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