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 귀족 - 색욕과 고민(4)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띠디이잉~!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알람 소리가 인상적이었다…
마치 전자레인지가 움직이는 것 같은 음성에 내 정신이 잠깐 나갔다가 돌아왔다. 아이는 놀란 소리를 냈지만 금방 제정신으로 돌아왔고 엘피는 나보다 더 놀란 듯 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표정으로 뒤로 주춤 물러섰다. 물론 우리 측 파벌과 레인 측 파벌도 심각한 표정이었다.
소곤소곤, 소곤소곤, 소곤소곤…
소곤소곤, 소곤소곤, 소곤소곤…
소곤소곤, 소곤소곤, 소곤소곤…
소곤소곤, 소곤소곤, 소곤소곤…
너무 소곤 거려 대서 귀가 아플 지경이다. 분명히 서로 속닥이고 있음이 분명한데 그 자체가 시끄러운 행위가 되었고 서로 짜기라도 한 것처럼 반쯤 뜬 눈이 이쪽을 향해 있는 것이 시선이 따가워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레인은 그런 것도 상관없다는 듯 싱글벙글이다. 평소보다 화장도 옅고 약간 피곤한 기색이었지만 그럼에도 나에게 호의를 보이는 걸 거부하지는 않았다. 연기라면 좀 더 티가 날 텐데 그런 것도 없고 내 목에 매달려 기분 좋게 야한 한숨소리를 내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소름이 돋을 정도의 변모.
가랑이는 섰지만 머리는 차가워졌다.
“떨어져…”
“아앙, 차가우셔라~!”
고작 몇 마디 했을 뿐인데 캐릭터가 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소름이 돋아서 그 이상 입이 안 열렸지만 왜 갑자기 이렇게 변했는지 조금 감이 갈 것 같았다.
“너… 이래도 정말… 아무 일 없다고 할 거냐…?”
“아으…”
옆을 바라보니 아이가 몸을 움츠리며 뒤로 발을 빼고 있었다. 레인이 왜 이렇게 됐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는 것처럼 입술을 부르르 떨어대는 것이 날 무서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 상황을 즐거워하는 것 같기도 한 알 수 없는 표정이다.
그리고 내가 화를 내자 은근슬쩍 웃으며 내 팔에 자신의 가슴을 대고 손을 휘감아왔다. 화내지 말라며 아양이라도 떠는 건지 가슴을 깊게 밀착시키며 내 기분을 풀어대려 하는 것이 내 생각이 적중이었던 모양이다.
“양다리?”
“그것도 양 국의 공주님을 상대로?”
“히에에.”
“용감하다…”
그런 아이의 행동이 어떻게 보였는지 소곤거림을 넘어서 대놓고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이, 나, 레인의 파벌이 섞인 혼잡한 공간. 그 중심에서 나는 오른손에 레인을, 왼손에는 아이를, 그렇게 껴안고 있는 것처럼 됐으니…
‘왜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가냐…’
학교 내에서는 안 좋은 소문을 좀 꺼트렸나 싶었는데 그것도 아주 잠깐이었던 모양이다. 안 그래도 여자 밝힌다는 소문은 지워지질 않았는데 다른 나라의 공주들이 막 편입한 시기에 이런 모습을 보여버리다니. 학교에 뭘 하러 온 건가 싶을 정도로 한심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레인 공주님. 다른 사람 눈도 있으니 떨어져 주시죠.”
“어머, 매정하긴~! 방금처럼 낮잡아보듯 말씀해도 되는데~!”
첫 대응을 실수해버렸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의 눈이 있었으니 「떨어져」라고 대놓고 말해선 안됐다. 너무 놀라서 개인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잠깐 가면을 벗었다지만 레인은 내게 그런 가벼운 태도를 요구하고 있었다.
마치 연인을 본 여자애 같은 행동. 아이가 무언가 저질렀다는 건 거의 확정 사항이지만 그럼에도 모르겠다. 대체 무슨 수를 썼길래 그렇게 남자 혐오가 심했던 레인이 내게 안기게 된 걸까?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 고민하는 것조차 어리석게 느껴졌다.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 나는 남들의 시선을 그대로 받으면서 조용히 고개를 내려 레인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크, 대체 무슨 바람이 분 거냐? 혹시 남들 앞에서 날 망신 주려고 온 거냐? 만약 그렇다면 정말 아쉽게 됐다. 나는 이런 일로는 전혀 당황하지 않……”
“아뇨, 이뇨, 대체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요~? 그렇게나 뜨거운 밤을 보내놓고 모른 척하다니 너무 하셔라아~!”
“뭣?!”
레인의 말에 주위가 술렁인다. 이번에는 마치 파도처럼 술렁이며 나에 대해 잘 모르는 공주들도 입술을 가리고 크게 놀라 했다. 현재 이 대륙을 좌지우지하는 대국. 호모우와 레즈우 그 두 공주님을 농락하고 있는 남자라니 그런 칭호 얻고 싶지 않았다.
“아이는 기억하고 계시죠~? 아니, 다름 아닌 장본인이니까 모를 리 없잖아요~?”
“네에, 그, 그렇죠…”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렇지만 사실인걸요…”
아이에게 화를 낸 순간 다시 주위가 술렁인다. 내가 아이에게 반말을 하거나 화를 내는 걸 보면서 자기네들끼리 우리의 관계를 추측해댄 것이다. 누군가는 대놓고 3P 관련 이야기를 꺼냈고 이 이상 여기에 있으면 쓸데없는 오해가 쌓여갈 것 같아 두 사람을 데리고 자리를 뜨기로 했다.
자리를 뜬다고 해도 양 팔에 붙은 두 사람을 그대로 업고 데려가는 식이었지만. 그게 또 어떻게 보였는지 뒤에서 꺅꺅 거려대는 영애들. 레인도 거기에 맞춰셔 꺄악 거리고 아이도 그 분위기에 맞춰서 즐겁게 꺄악 거려댔다. 그리고는 두 사람 다 자기네들의 파벌에 손짓을 하면서 「금방 다녀올게요~!」같은 소리 나 하고 있었다.
이 상황을 힘들어하는 건 정녕 나뿐이란 말인가…
아니, 좆을 좆대로 놀린 내 좆 잘못이긴 하지만…
그래도 레인을 덮친 기억은 없다…
있다고 해도 그걸 까먹을 리 없잖냐…
‘귀찮기 그지 없어어어어… 소문은 소문대로 퍼질 테고… 또 색욕 관련 이야기가 퍼질려나… 다행히 사이좋은 모습을 보였으니 그리 나쁜 소문이 퍼지진 않을 테지마안…’
소문은 나중에라도 가라앉힐 수 있다. 지금은 그보다 레인의 일이다. 내게 껴안긴 상태로 다리를 흔들거리면서 내 가슴 냄새를 킁카킁카 거리고 있는 그 모습에는 이성이 남아 있어 보이진 않았다. 피로에 절어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색욕에도 빠져있는 것이 아예 정상이 아니었던 거다.
나는 그런 레인과 아이를 데리고 저번에 썼던 그 개인실로 들어갔다. 붉은색 빛이 일렁이는 술을 먹기 딱 좋은 조용한 공간. 현대로 치자면 노래방과 닮은 장소. 내가 부르지 않는 이상 아무도 오지 않고 영애들이 함부로 귀를 댈 수도 없는 공간이기에 이런 이야기를 하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꺄윽?!”
“아흐으으~!”
“엄살 피우기는.”
다른 사람이 볼 일도 없겠다 두 사람을 난폭하게 내던졌다. 그래도 다치지 말라고 기다랗게 이어진 소파에 내동댕이 쳤지만 두 사람은 그것마저 아팠던 건지 아야야 소리를 내면서 나를 기쁘게 올려다보았다.
‘진짜 영문을 알 수 없는 공주님들일세.’
아픈 건지, 기쁜 건지, 둘 중 하나만 하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것을 꾹 참고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어서 아는 걸 말해라」라는 의미를 담아 노려본 것이지만 내가 그렇게 압력을 주는데도 불과하고 두 사람의 얼굴에는 흥분만이 쌓이고 있었다.
“어머, 저를 이렇게 난폭하게 취급하시다니. 역시 에키시는 에키시라니까요. 그때와 다를 바 없는 게 제가 역시 사람을 잘못 본 게 아니네요~?!”
“그렇죠. 우리 둘을 상대로도 이렇게 강압적으로 나올 수 있다니. 그런 남자니까 제가 당신을 그런 꼴로 만들기까지 한 거지만…”
“지금은 감사하고 있어요. 로키시는 여왕님으로서 나쁘지 않았지만 역시 시대는 왕자님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에키시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던 남자였네요.”
“그 일로 악의를 품고 있는 것 같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혹시나 실패했을까 봐 조마조마하고 있었는데 아까 그 모습도 그렇고. 좋은 건 나눠먹자는 의미가 잘 통했나 보네요.”
“아하핫~! 아이, 당신이란 여자도 참~! 정말 장난꾸러기라니까아~!”
지긋이 노려보고 있는 날 내버려 두고 서로만 아는 이야기를 꺼내며 크게 기뻐하는 두 사람. 뭐가 그리 즐거운 건지 영문모를 소리를 늘어놓으면서 음탕한 표정을 짓고 있다. 마치 아이가 날 레인에게 소개해준 것 같은 말투였지만 정작 난 그런 기억이 없었기에 크게 당혹스러웠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왕자님이니 뭐니, 나눠먹니 뭐니, 레인이 왜 내게 이러는 건지, 아이 넌 또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하나도 숨기지 말고 전부 말해라.”
“말할 것도 없지요.”
“맞아요!”
“뭐?”
“이걸 보시면 아실걸요~?”
이히히히히 웃어 젖히는 레인. 그리고 그녀의 드레스 안쪽에서 무언가가 슬그머니 튀어나왔다. 요즘 공주들은 마스크로 자위하는 게 취미라도 되는 건지 다름 아닌 팬티 안에서 그것이 튀어나온 것이다.
“그건…?!”
“아흐으, 후, 후으, 바로 저번에 보셨잖아요? 아이언 메이든에 갇혀서 고통받는 저를… 그 후에 격렬하게 안아대기까지 하셨고… 보지에 마킹까지 하셨으면서 모르는 척하시는 건 아니죠오~?”
“너 설마…”
뭐가 나오든 당황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결국 놀라버리고 말았다. 레인이 음탕한 표정으로 팔랑거리는 그것은 그때 본 마스크였다. 예전에 썬이 쓴 것과 똑같은 디자인이었지만 그녀는 이미 자신의 정체를 까발렸으며 최근에 안은 마스크 녀는 딱 한 사람뿐이었으니 다른 여자랑 착각할 일은 없었다.
“그때 안은 노예 년이… 너라고…?”
“네, 맞아요. 로키시와 아이에게 납치당해서 하룻밤 동안 숙성당한 걸 아무것도 모르는 당신에게 범해졌죠. 처음에는 혐오밖에 없었는데… 뭐라 해야 할까… 뭔가 좀 다르더라고요? 비교 대상이 우리 오빠라 그런지 좀 과격했지만 트라우마 해소도 됐고. 제 성벽에 잘 어울리는 난폭한 섹스였어요. 으흐흐~!”
“………………”
레인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그보다, 그때 했었던 플레이만이 떠올랐다.
‘나… 아무렇지도 않게 질내사정 해버렸는데…’
레인이 나와 섹스해서 기쁨을 알아버린 건 솔직히 놀랍지 않다. 저런 성벽이니 조금의 계기만 있었더라면 언제든 남자 엉덩이 아래에 깔릴 수 있는 타입이었으니까. 그렇지만 내가 한 행동은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좀 위험했다. 그때 아무렇지도 않게 질내사정을 했고 뒤처리 안 하고 방치까지 했었다.
만약 그때 레인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위험한 꼴이 됐을 거다. 말 그대로 ○반 게리온처럼 폭주해서는 있는 힘을 다해 날 죽이려 들었을 테지. 안 그래도 세스트의 건으로 트라우마가 있는 여자다. 자칫하면 위험한 결과가 됐을 지도 모르는데 아이 이 멍청한 공주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위험한 다리를 건너게 했다.
“아이… 너 정말… 생각이 있는 거냐…?”
“레, 레인의 일로 고민하고 있길래요. 에키시의 여자로 만들어버리면 만사 OK 이겠다 싶어서 그만…”
“설마… 내가 공주님 따먹고 노예로 만들면 좋아하겠다 싶어서 이런 일 벌인 건…?”
“크흠.”
“너 이 미친…”
장난스럽게 살짝 내밀어진 혀를 엄지와 검지로 잡고 쭉 당겼다. 아이는 혀 짧은 소리로 「에키시도 즐겼으면서!」같은 소리를 내뱉어댔다. 그야 그 말대로 즐기긴 했지만 상대가 레인이라는 건 꿈에도 몰랐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대체 어떤 귀족이 자기가 모시고 있는 왕족을 자기 노예로 만들고 즐거워하겠냐.
“에키시는 불만이었나 보네요? 전 아이가 잘 했다고 생각하는데.”
“너 이 쓸모없는 공주년. 이 철부지 공주에게 납치당해서 그 몰골을 보여놓고 실드를 쳐줘? 너도 생각이 없냐?”
“저, 저야, 으흐, 그런 거 좋아하니까아…?”
“발정하지 마 이 미친년아.”
“무, 무리예요~! 아직 약기운이 다 빠지지도 않았으니까~! 후으흐~! 그렇게 차갑게 보시면… 이젠 에키시의 눈동자만으로도… 아핫…”
“미치겠네 진짜.”
레인을 조교해서 일을 풀어나간다고 하는 건 당초의 내 목적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갑자기 조교한 것도 그렇고 레인의 상태도 내가 상상한 것보다 심했다. 정말로 인정사정 없이 변기처럼 사용해서 그런지 레인의 성벽에 크리티컬 히트해버린 모양이다.
이걸 좋게 생각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나쁘게 생각해야 하는 건지, 정말로 구분이 안 간다. 이걸 좋게 생각해버리면 이 건을 빌미로 아이가 콧대를 세울 걸 생각하니 좋은 기분이 들진 않았다. 처음에는 좀 쿨한 공주님인 줄 알았는데 가면 갈수록 내 손을 벗어나서 선을 넘고 있다.
‘썬이 말했던 그 수면제 사건도 그렇고… 처음부터 좀 도가 지나친 공주님이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 누나까지 사용해서 레인을 잡아다가 조교할 생각을 하다니…’
나와 의논해도 좋았을 텐데 내가 좋아할 거라 생각하고 이런 일을 벌였다. 썬도 이 사실을 말하지 않은 걸 보면 알면서 숨긴 것 같고. 로키시 누나까지 끼여서 이 지랄을 했다고 하니 속이 답답해진다. 점점 혼내야 할 상대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이는 슬슬 고삐를 잡아야 한다.
“어, 으응, 으~? 에, 에키시이~? 왜 갑자기 그런 진지한 표정이 됐어요? 조, 좀 더 기뻐하셔도 좋잖아요~? 레인이 당신 품에 쏙 들어갔다구요~? 이제 레인과 함께 쌔쌔쌔 하면서 여태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봐도오……”
“조용히 해… 생각하고 있으니까…”
“으읏…”
명백히 기분 안 좋은 티를 내니 아이의 표정이 뭉개진다. 자기 예상과 달리 내가 기뻐해 주지 않으니 곤란한듯했고. 돌아가서 체벌을 한다고 말해주니 한 번 더 슬픈 목소리를 내면서 내게 달라붙어 아양을 떨어댔으나 나는 끝내 그것을 무시하는 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