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 귀족 - 색욕과 고민(3)
예상은 역시 빗나가지 않고 그날 썬과 다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식사가 끝나자마자 잠깐 어울려준 후 다시 쓰러져 자버렸지만 확실히 하긴 했다. 시종들의 눈을 피해서 남장을 한 채 내방에 쭈뼛쭈뼛 거리면서 들어오는 그 모습은 자기 전 내게 인사를 하러 온 아이의 얼굴이 굳을 정도로 요염했다.
그러나 어제처럼 3P를 하는 일은 없었고 평범히 한 발 뺀 후 그대로 수면. 그리고 자고 일어나서 아침을 맞이해 다시 생활 리듬을 되찾았다. 수업이야 자기 마음대로 빠질 수 있고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다만 그렇게 오래 자리를 비울 순 없었기에 오늘은 수업에 나갔다.
이렇게 보여도 이 학교는 거대한 사교장이다. 지금은 토라져 있는 누나도 원래라면 한 파벌을 이끄는 장. 지금은 내가 거기에 끼여있으니 영애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학교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 사고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것도 파벌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을 때의 이야기다.
“몇 영애들이 블랙우드 가문에서 손을 떼려는 움직임을 보인다고 합니다. 원인은 그때 세스트 왕자의 환영회에서 보인 모습 때문이라네요.”
“우리가 레인과 적대했다고 생각한 건가?”
“네.”
오늘은 승마에 관한 수업이 있었다. 말이야 탈 줄은 알았지만 나나 누나나 뛰는 편이 더 빨랐기에 자주 타는 편은 아니다. 그렇기에 실기가 어려운 수업이 됐고 조금 추태를 보이면서 그 수업을 빨리 끝내게 되었다. 그 후 쁘띠 왕성으로 들어왔지만 레인을 만나러 온 순간 엘피의 입에서 그런 정보를 듣는다. 그날 이후 쁘띠 왕성에 다리를 대지 않았지만 우리를 감싸고 있던 파벌의 영애들은 나와 누나가 레인과 적대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정말이지, 건방진 분들이와요~!”
“겨우 그 정도로 블랙우드 가문이 흔들릴 리 없는데~!”
“오호호홋~! 그렇습니다~!”
“따끔한 맛을 보여드릴까요?!”
“로키시 님이나 에키시 님이 우리들을 얼마나 아껴주고 있는데~!”
“배응망덕하긴!”
반면, 남아있는 사람들도 있다.
남아있다기보다, 빠져나가봤자 수명 정도니까 큰 소란이 되지 않았다.
다만, 일부가 폭주하려는 기색이 있는 정도일까?
나야 외형이 좋으니까 나와 관련된 그 흉흉한 소문만 걷히면 평범한 미남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파벌을 내버려 두고 노예 녀와 섹스나 하고 있던 나를 감싸 주는 거겠지. 아니면 블랙우드 가문의 막강한 권력에 눈이 멀었던가, 누나의 카리스마에 이끌렸던가, 어쨌든 내 위엄에 이끌려서 온 여자는 없다.
참고로 우리 얼굴 모를 노예는 오늘 아침부터 파이와 와이의 손에 건네져서 하루 종일 못 봤다. 조교가 정말로 끝났다면 자기네들 나름대로 처리할 테니 이제 못 볼 거라고 하던데. 그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끈덕지게 놀 걸 하고 아쉬운 감정마저 들었다.
‘아침에 건네줬으니 시간이 꽤 되긴 했지. 이제 점심도 지났고 저녁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어. 우리 쪽 영애들이 떠들어대는 거도 참새들이 앵알 거리는 것처럼 쓸모없는 정보들뿐이고. 이럴 거면 다른 쪽을 알아보는 편이 더 나아 보이는데…’
쁘띠 연회장의 한구석을 파벌로 채워 즐겁게 떠들고 있는 나. 물론 그것도 즐거운 척 연기하고 있는 거지만 쓸데없는 시간을 보내버렸단 생각만 들었다. 미약에 관한 이야기는 종종 들려오지만 그 대부분이 「제 지인이 당했습니다」 정도의 이야기다. 조금씩이지만 학교 내부가 좀 먹히고 있다.
‘우리 파벌에도 미약에 당한 영애가 셋. 그러나 아무도 출처를 몰라. 피해자가 있고 가해자가 있다. 분명히 산 사람이 있을 텐데 어떻게 뿌려지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무슨 마술이라도 쓰는 건가?’
원래라면 따로 팔아대는 녀석이 있었던 모양이다. 소문으로는 레인 파벌에서 그 판매상 녀석들과 깊게 관련됐다고 하는데 최근에는 그마저도 해산해서 어떻게 미약이 뿌려지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레인은 손을 뗐다는 건가?
원래 약을 뿌리던 놈들은 몸을 숨겼고?
모르는 일 투성이다.
좀 더 확실한 정보는 없는 건가.
‘역시 레인을 손아귀에 넣는 수밖에 없나.’
기왕 이렇게 시간을 보내버린 거 오늘은 저녁까지 이 사교장에 있을 생각으로 자리를 잡았다. 하루 종일 섹스 생각에 본래의 목적(소문 지우기)에 멀어지기도 했고. 얼굴빨로 인기를 끌었겠다 영애들의 비위를 맞추면서 누나 대신 파벌을 이끌어 새로 온 공주님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대륙은 넓지만 패권을 쥐고 있는 건 레즈우와 호모우 뿐. 아버지의 말대로 대륙의 전 국토에 흩어진 떨거지 공주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난 그 대응을 한 거다. 세스트와 달리 입학했다고 해도 따로 파티를 여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소국의 공주들이다. 대게 소문이 퍼지기 마련이기에 이 연회장에 자연스럽게 모이게 되는 것이 이 학교의 흐름이다.
본래라면 이런 파벌 이끌기는 내가 할 행동이 아니다. 고민거리가 있으니까 하루만 내버려 두라고 했다만 원래라면 누나가 해야 할 일이었다. 그야 그럴 것이 이 파벌은 누나의 파벌. 우리 누나는 오늘 방에만 틀어박혀 나와 대화조차 하려는 생각이 없었기에 내가 대신하고 있을 뿐.
‘여기도 공주, 저기도 공주, 그렇지만 프리미엄함은 전혀 없음. 자칫하면 우리나라의 영애보다 못한 녀석들이 수두룩. 예의상 인사는 하고 있지만 마음에 와닿는 여자는 없나. 공주란 직함이 아깝구만.’
하나같이 생존 경쟁에 치열한 여자들이다. 자칫하면 자기 나라가 뭉개질지도 모르니까 아이처럼 제1 공주님을 수두룩 보내왔다. 블랙우드 가문처럼 왕가의 피를 잇고 있는 사람을 노리는 경우는 물론이고 아직 바깥(학교 밖)에 흉흉한 소문이 떠돌고 다닐 날 상대로도 웃으면서 다가오는 여자도 있었다.
내게 직접 말을 건 공주들은 극히 소수. 혹시나 죽지 않을까 벌벌 떨긴 했지만 그 용감함은 높이 살만했다. 살인마, 인육 취미, 강간마, 대략 그런 소문이 쫙 퍼져 있는 나를 상대로 유혹을 하다니. 다른 여자들과 달리 그런 부류의 공주들은 좋게 대해줬다. 나중에 보자며 손등에 입술 자국을 남겨주고 자리를 떠줬으니 저쪽도 나와 가깝게 지낼 명분을 얻은 것이다. 나머지 어중이떠중이 공주들은 눈길도 주지 않았으니 내가 어떤 남자인지 대부분 눈치챘으리라.
“서비스가 좋으시네요? 도련님 눈에 띄는 여자는 없었습니다만.”
“막 전입해와서 내 소문을 그대로 믿고 있을 여자도 많았는데 그럼에도 말을 걸어줬다. 그렇게까지 자기 몸을 안 아끼고 내게 접촉하고 싶어 하는 상대라면 나중에라도 써먹을 수 있겠지 싶었을 뿐이다.”
“그렇습니까?”
“그러니 쓸데없는 질투는 그만두고 방금 본 여자들의 이름을 리스트로 작성해서 아버지께 보내놔라. 발등에 불이 떨어진 부류인 것 같으니 뭘 어떻게라도 뽑아먹을 수 있을 거다.”
“네…”
자기 질투가 쓸모없는 것이라 알았는지 엘피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나면서도 심한 말투였지만 노리고 있는 상대도 아닌데 발정할 생각은 없었다. 그보다 최근에 여자들을 잔뜩 안아대서 그런지 내 안의 욕망이 약간 수그러들어 있다. 외형이 조금 갖춰진 정도로 공주님 소리 들을 정도의 가벼운 여자라면 「필요 없다」라고 단언 가능할 정도로 현자 타임 상태다.
‘그 성격 나쁜 레인 이하의 공주라면 말할 것도 없지.’
밤이 찾아올 때까지 발을 움직이고 눈을 돌려서 스노나 카울을 찾아댔다. 이런 자리기도 하고 세스트가 있을만 한데 그 돼지 새끼는 물론 그 두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점심이 지나서야 뒤늦게 온 아이를 빼면 눈에 띄는 사람도 없고 레인조차 내려오지 않았다.
“아직 여기에 있었어요? 지금쯤이면 다 돌아봤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얼굴 좀 볼 사람이 있어서.”
“레인이요?”
“그래.”
짧게 오고 가는 나와 아이의 대화. 나와 아이의 관계가 소문이 퍼지긴 퍼졌는지 영애들이 조용히 소곤거리면서 얼굴을 붉게 하고 있다. 보란 듯 아이의 허리를 잡고 에스코트하니 아이에게 말을 걸려고 한 어중이떠중이들이 어색한 표정으로 뒷걸음질 친다.
레즈우 왕가의 핏줄을 이은 나. 그러나 아이는 호모우 왕국의 제1 공주님이며 곧 여왕이 될 사람. 우선순위로 따지자면 나보다 높으니 어떻게서든 그녀에게 말을 걸고 싶은 상대가 수두룩하지만 좀처럼 말을 걸 수 없어서 초조해하는 모습. 그러나 난 그들에게 아이를 양보하지 않고 그 상태 그대로 서로 찰싹 붙어있었다.
“제가 알기론… 아마… 오늘 여기에 나타나지 않을 텐데요…”
“그걸 어떻게 알아?”
“아, 그게, 잠깐 그럴 일이 있어서요?”
썬의 건도 그렇고 아직 이야기하고 싶은 게 많았다. 그런 와중에 레인에 관해 무언가 알고 있는 말투를 하니 내 인상이 좋아질 리 없었고 그녀를 추궁하는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아이는 그런 날 바라보면서 오싹거리는 것 같은 표정으로 즐겨댔지만 난 꽤 진심이었다.
“사실 우리 누나도 그렇고 너한테도 그렇고 말하고 싶은 게 많거든? 썬의 정체도 어영부영 넘기려는 것 같은데 난 그럴 생각 없다? 또 나 몰래 이상한 짓 하고 있다 들키면 동생이랑 같이 처벌해버릴 거라는 거 기억해놔라.”
“처벌이라니, 남들이 다 보고 있는데…”
“대체 뭘 상상하길래 얼굴을 붉히는 거냐…”
뭘 상상하고 있는 건지 쉽사리 예상이 간다. 아이의 행동도 그렇고 너무 노골적이다. 썬도 그랬지만 자기 마음이 들킨 순간 대놓고 노골적으로 돌격하는 게 이 자매의 특징인듯했다. 아이가 음란해지는 거야 거의 운명이 정해놓은 거나 마찬가지지만 이렇게 빠르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심란하다.
“으음, 어, 어쨌든~? 오늘은 레인이 내려오지 않을 거예요. 아니, 잘하면 한동안 얼굴 볼일 없을 테니까 이대로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죠? 썬도 기숙사에서 기다리고 있고 로키시도 방에 틀어박혔겠다 오늘은 셋이서 느긋이……”
썬의 정체를 들킨 걸 빌미로 오늘은 3P를 요구하는 음란 공주님. 그러나 내 시선은 그쪽으로 향해 있지 않았다.
“느긋, 느긋, 느으~? 잠시만요… 에키시? 지금 어딜 보시는……?”
그녀의 허리를 꽉 잡은 채 파벌 사람들이 만든 고리 밖을 바라보는 나. 아이는 내게 3P를 요구하다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내 시선을 따라 그 방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음탕한 입을 다물고 안색을 바꾸기까지 수초도 걸리지 않았다.
“안 온다며?”
“어, 어라~? 그럴 리 없는데에…”
아이는 그녀가 이 장소에 내려오지 않는다고 딱 잘라 말했는데 그녀의 예상이 틀렸는지 레인이 이 연회장에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 그런 일도 있었겠다 우리 파벌의 대부분이 레인에게 시선을 고정했으나 그녀는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레인은 평소와 같은 핑크색 드레스 차림으로 다른 공주들에게 인사를 받으며 천천히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는데 그 모습에는 영문모를 들뜸이 느껴졌다. 이 자리에는 세스트도 없겠다 그 때문에 기쁜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어쨌든 날 보는 얼굴에 환희만 물들어 있다.
얼굴을 새파랗게 한 아이와는 대조적인 얼굴…
원래라면 레인의 표정이 저렇게 돼야 정상인데…
“너 혹시 나 몰래 무슨 일 꾸몄냐?”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요.”
‘이 년이 진짜…’
명백히 「나 무슨 일 저질렀습니다」 같은 표정에 불안감이 커진다. 혹시나 싶어서 로키시 누나의 이름을 세번 불러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름을 부를 때마다 어깨가 움찔거리며 「당신 누나도 공범입니다」같은 티를 내었다.
대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모르니 화를 낼 수도 없다. 그렇지만 레인의 기분 좋은 표정으로 보건대 심상치 않은 일인 건 확실했다. 내게 협박 당하듯 하던 여자가, 남자만 보면 몸서리치던 여자가, 나를 적대하던 여자가, 그런 일을 몽땅 잊은 것처럼 기분 좋은 스텝을 밟으면서 이쪽을 보고 있으니 말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내 의문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는지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영애들이나 엘피도 똑같은 생각을 한 듯했다. 영애들이야 그때 있었던 일을 다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나와 레인의 사이가 나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니 더욱이 의문으로 생각했다.
나를 향해 욕을 토해도 이상하지 않는데 점점 기쁘게 다가오고 있다. 핑크색 드레스 끝자락을 들고 발소리를 총총총 내면서 다가오는 것이 사랑에 빠진 공주님과도 같다. 평소의 그 히스테릭한 분위기는 어디로 갔는지 레인의 파벌도 깜짝 놀란 표정으로 뒤를 따르고 있었다.
단순히 기분이 좋은 건지…
무언가 책략이 있는 건지…
어쨌든 무슨 일이 있어도 당황하지 않도록 마음을 가다듬었지만…
현실은 언제나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무서운 일을 들이민다…
“아, 역시 여기에 있었네요~! 에키시 니임~! 보고 싶었답니다아아아아아아아앙~!”
““뭣?!””
파벌이 만든 인파의 고리를 뚫고 붕 점프하는 레인. 옆에서 경악하는 소리를 내는 아이와 엘피. 난 그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이쪽을 향해 점프한 레인을 양손으로 받아들였고. 그녀는 만족한 것처럼 내 뺨에 자신의 입술 도장을 찍고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 또 다른 혼란을 만들어 내었다…